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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58화 (58/200)

제58화

#58화

띵동.

침략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반한 연합 사이에 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 즈음.

바체슬라프의 현실 집에 사람 한 명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방문을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다.

“들어오시죠.”

바체슬라프가 문을 열고 친절하게 맞이한다.

들어와서 집안을 살펴보던 남자는 중절모를 벗고 대뜸 본제를 꺼냈다.

“결국 졌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미 예견된 일이었기에 바체슬라프는 태연하게 답했다.

집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는, 탁상 위에 머그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적의 전력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습니다.”

이번 침략전으로 수호 기사 1명과 스턴 특무대를 봤다.

한국 대륙의 18개 성 중 하나.

그 성의 5%.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위의 2개를 안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바체슬라프의 흐뭇한 웃음을 본 중절모 남자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크흠, 야나 이바노프는…… 뭐라고 합니까?”

“잘 지내는 중입니다. 옥살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9시부터 시작해서 22시까지.

야나 이바노프는 매일같이 레기온 성 지하 감옥으로 접속해야 했다.

안 그러면 퍼스널 계정이 삭제되고, 게임 계정을 만들 권한이 없어진다. 한마디로 알거지가 되는 것이었다.

슥.

바체슬라프는 곁눈질로 커뮤니티를 슬쩍 봤다.

이미 야나가 침략전을 걸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다.

[야나가 레기온 성 침략했다는 거 사실임?]

ㄴ 그런 듯

ㄴ 무슨 벌꿀오소리도 아니고 막 들이박네 ㅋㅋㅋㅋ

ㄴ 레기온 성에 흠집남?

ㄴ 성에는 타격 없음.

[킹법사한테 깝치니까 지는 거 ㅇㅇ]

= 반박 시 탱전사훌리건임

ㄴ 처리한 건 원딜러였다고 합니다^^

ㄴ 요즘 원딜이 원딜임? 걍 마법사 하위호환이지.

ㄴ 풀템 뽑으면 평타 하나가 마법사 스킬 하나 급인데 무슨

ㄴ 그래서 님 현재 보유 아이템이?

성이 멀쩡하니까 그녀가 진 건 확실한 일이었다.

바체슬라프는 스크롤을 내리다가 말했다.

“다음에는 더 많은 병력을 끌고 갈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야나 이바노프의 정지일은 300일.

300일 뒤에 나오고 다음 라그나로크에 참가하거나, 인장을 써서 또 침략전을 걸면 된다. 그때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갈 계획이었다.

바체슬라프가 자기 생각을 말하자, 중절모 남성의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불쌍하다뇨, 누가 말이죠?”

태연한 말투에 중절모 남성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도대체 뭘 노리는 겁니까.”

“흠.”

바체슬라프는 주변을 확인한 뒤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각 대륙의 보스 몬스터를 한 합에 처리하면 특전 스킬이 떨어진다는 말…… 혹시 알고 있습니까?”

“듣긴 했습니다만, 그런 건 다 소문 아닙니까?”

“아닙니다.”

바체슬라프가 손도끼를 흔드는 시늉을 했다.

“저는 얻었습니다. 썩은 아귀 대공을 처치해서 말이죠……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야나입니다.”

“그런…….”

중절모 남성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설마하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정도 일격이면, 자칫하면 목숨이…….”

“앞으로 쓸 수 있는 건 20회 정도입니다. 저도 제 한계는 잘 인식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니, 대강 윤곽이 나왔다.

중절모 남성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각 대륙에 있는 보스 몹을 한 합에 처리해서 모든 특전 스킬을 독식할 생각이군요.”

“맞습니다.”

필드 스와핑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륙의 구석구석을 탐사할 수 없으니까.

즉, 땅 자체를 점령해서 상대 던전을 끌어모아야 했다.

최소 보장 영역까지 잡아먹어도 서너 개는 나올 것이리라.

“한데, 특전 스킬이라고 해서 꼭 파괴력이 높은 게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금지 스킬로 들어간 게 특전 스킬로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금지 스킬.

언더 워치와 LOH의 스킬이 편입되어 들어오는 과정 중.

사기성이 짙은 건 너프 과정을 넘기고, 아예 금지되었다.

촤라락.

바체슬라프가 지도를 펼치면서 부연했다.

“제가 얻고자 하는 건 [일출의 시간]입니다. 아, 물론 편입 과정에서 이름이 달라졌을 테니 일출의 시간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일출의 시간 말입니까? 그건 편입 과정에서 금지 스킬로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일출의 시간.

그것은 일정 차징을 끝낸 뒤, 시야 내의 적들을 모두 죽이는 매트리의 스킬이었다. 그는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X 표시가 되어있는 지점을 가리켰다.

“거기에 있는 게 확실합니까?”

“솔직히 100%라고 확신하긴 어렵지만, 도전 가치는 충분합니다.”

“도전……이군요.”

바체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일출의 시간을 얻을 겁니다. 다른 금지 스킬까지 전부요. 그리고…… 제가 이 게임을 지배할 겁니다.”

바체슬라프, 러시아 대륙의 왕은 생각했다.

어차피 각 대륙의 보스몹을 한 합에 처리 가능한 건 자신뿐.

라그라로크에서 일출의 시간을 사용한다면.

적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킬 수 있겠지.

‘전쟁의 판도를 손가락질 하나로 바꿀 수 있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리바운드가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라면 쓸 수 있겠죠.”

“그, 그렇다면. 당신은…….”

중절모 남성은 순간 말을 멈췄다.

중간에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바체슬라프가 한때 한국 대륙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관계망이 넓어서, 각 성주의 자식들과도 친분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멀어지고, 동맹도 파기됐지.’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 계획을 들켰던 거군요.”

“허허, 흑심이라는 게 스스로는 몰라도, 다른 사람 눈에는 적나라하게 보이는 모양이더군요. 제 실책이었습니다.”

바체슬라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단순하게 물질적인 것만 가져오려 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부터 공략했다.

하지만 그게 역으로 꼬리를 밟힐 기미를 제공한 모양이었다.

“기간티아 성주…… 눈치가 참 빠릅니다.”

과거를 회상하듯 지도를 보고 있자니, 별안간 중절모 남성이 궁금한 듯 질문한다.

“그럼, 그 스킬은 왜 야나에게 준 겁니까. 바체슬라프 님이 쓰셨어도 충분했을 건데.”

“혹시 모르니까요.”

“예?”

“가이아 얼라이언스는 알게 모르게 균형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개인이 힘을 과하게 가져버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바체슬라프는 인류 시스템 에덴을 예시로 들었다.

이번 침략전만 해도 커뮤니티 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야나의 침략전을 허용했다.

인류를 이롭게 하는 시스템인 만큼, 녀석은 밸런스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딸들에게 힘을 분산시킨 거군요.”

그제야 이해가 된 중절모 남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면, 바체슬라프의 표정은 살짝 어두워졌다.

“딸들이라…….”

뒤를 돌아서 커튼을 내린 그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한테 딸은 아직 한 명입니다.”

* * *

아침이 되었다.

전지수는 여느 때와 같이 혼자서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먹을 메뉴는…… 간단한 스프 하나였다.

음식을 받아온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토독토독.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대지를 적신다.

물이 떨어진다.

나뭇잎을 때리던 빗방울이 아래로 떨어져서 꽃잎을 흔든다.

지금 보니 화단에 수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참고로 수국은 파란색이었다.

후륵.

전지수는 말없이 스프를 목 뒤로 넘겼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 잡혔다.

고대현이었다.

“둘 다 몸 괜찮아?”

“어 괜찮아.”

그녀는 한쪽 귀를 열어둔 채 이야기를 엿들었다.

“제일 쌩쌩해 보이는 애들 두 명이 조퇴해서 선생님도 신경 쓰더라.”

“아. 미안, 미안.”

‘고대현이 조퇴를?’

10반씩 따로 진행하는지라 전지수는 고대현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중세 모드 난도를 낮춘다고 하더니…….’

어제, 신영범 학년 담임이 돌연 중세 모드 수업의 난도를 낮춘다고 공지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으나. 지금은 알 것 같았다.

“근데 이하린, 너는 언제 조퇴했냐.”

“어제 메시지 보냈잖아. 그때 했지.”

‘이하린이면…… OT 때 그 애구나.’

그녀는 고대현과 이하린이 동시에 조퇴했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신경을 집중했다.

“또 혼자야?”

하지만.

곧이어 앞에 놓인 식판 때문에 도청을 포기해야 했다.

전지수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경리단 선배.”

가무잡잡한 피부에 금발을 가지고 있는 경리단이었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서 앉은 뒤,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같은 반 애들은 어쩌고? 보니까 맨날 혼자 먹는 것 같아.”

“걔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보니까 네가 해란이 보다 더하네.”

“끄응…….”

반 아이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혼자 있는 게 더 편할 뿐이었다.

‘아직 정태룡 말고 크게 대화해본 사람도 없으니까…….’

전지수가 미간을 좁힌다.

그녀의 뇌리에 정태룡과 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을 보조교사로 쓴다고?

-내가 아니라 신영범 선생님이 결정한 거야.

전지수는 제일 먼저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수업을 열심히 듣지 말라는 건 이런 경우를 염두하고 하신 말씀이었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무튼 정태룡의 언질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워졌다.

‘만나면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이게 제일 난제였다.

보니까 다른 학생들은 인식 저해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데…….

“흠.”

전지수가 골똘히 고민하고 있으니 경리단이 말한다.

“오늘 1학년들. 훈련 대륙에서 축성 수업 있다는데. 들었어?”

“아, 알고는 있어요.”

모의 공성전을 위한 성 짓기 수업이 오늘 있었다.

“참고로, 모의 공성전은 말이야─.”

경리단은 전지수에게 모의 공성전 팁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전지수가 물어보지도 않았건만 신나서 혼자 떠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밥을 다 먹은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네 친구랑 먹어.”

“친구요?”

교실로 가는 길에 경리단이 전지수에게 말했다.

“저번에 테라피 룸 왔던 남자애 있잖아.”

고대현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현이는 40반이랑 먹어서 안 돼요.”

“응? 너도 거기에 겸상해서 먹으면 되잖아.”

의외의 말에, 전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런 친화력은 선배만 가능한 거고……. 저는 불가능해요.”

“혹시 모르지. 생각보다 너랑 맞을지 어떻게 알아? 소문 들어보니까 40반은 특별전형으로 들어온 애들만 있다던데.”

“─??”

“그럼 잘 가. 난 이만.”

교실로 가는 갈림길.

마지막으로 의미 모를 남긴 경리단이 멀어진다.

아까까지 빗소리가 들렸던 전지수의 귓가에는, 경리단의 웃음 섞인 말이 맴돌고 있었다.

* * *

한국 대륙의 옆에 조그마하게 마련된 훈련 대륙.

그곳에 고대현이 발을 들였다.

‘오늘은 여기서 하는군.’

전과 달리, 오늘은 훈련 대륙 옆의 조그마한 섬이 아닌 훈련 대륙 중앙에 모였다.

비유하자면 단칸방에서 대강당으로 온 정도의 차이였다.

‘물론 크기 차이가 그거보다 더 엄청나지만.’

무려 게임고의 전 학년이 쓰는 장소다. 크기가 작을 리 없었다. 듣자 하니 소규모 대륙의 크기와 견줄 법하다는데…….

“흠흠.”

기다리고 있자니 신영범 학년 담임이 단상으로 올라온다.

“오늘은 각 반이 성을 지어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오오─.”

다들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모두의 표정이 상기된다.

“첫날에 각 라인 선생님에게 들었겠지만, 다시 설명해주겠다.”

신영범 학년 담임이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한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평가전을 치른다.

평가전 방식은 랜덤.

반끼리 대항전을 할 수도 있고, 사정에 따라서 또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다.

여하간, 거기서 얻은 코인으로 자신들의 성을 증축하는 게 핵심과제였다.

“중간고사가 이때 지은 성으로 공성전을 하는 거니까 다들 잘 지어보도록.”

방식은 그라운드 제로와 비슷하지만, 저번에 했던 중세 모드에서 특수 스킬을 얻는 방식으로.

그때는 신영범 학년 담 고안한 시스템이 아닌, 일반 시스템을 써서 신경 부하가 많이 없을 거라고 한다.

“이어서 축성 시스템에 관해서 설명하겠다.”

그가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 창에서 재료를 선택하자 정사각형 모양의 돌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 돌을 잡으니 손목에 원형 마법진 같은 게 생기면서 들어 올려진다. 성 짓기까지 신경 부하가 높진 않았다. 간단하게 원격 염동력으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네.”

그것을 본 고대현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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