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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53화 (53/200)

제53화

#53화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흰색 내면의 공간 내부에 앉아있는 대현은, 마지막에 보았던 야나의 얼굴을 상기했다.

‘웃고 있었지.’

약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야나 이바노프가 왜 저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300일 정지를 당했다고 정태룡이 말했었는데.’

A급 대행증을 받을 때.

야나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300일 정지를 당했다고 그랬었다.

저런 식으로 보조교사가 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성의 사정이야 자신이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삑.

그때였다.

[야나가 훈련 대륙 수업을 봐준다는 사실은 되도록 발설하지 말아라.]

신영범 학년 담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그아웃이 되기 전, 따로 경고 사항을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관전하면서 야나와 대화하는 걸 엿들은 모양이었다.

[딱 지금 수준의 관계 유지가 적당해.]

“네.”

고대현은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야나 이바노프가 있어야 이 모드가 재미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별안간 게임이 종료되면서 눈이 뜨였다. 고대현은 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교실 내부는 조용했다. 다들 먼저 로그아웃해서 떠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누워 있잖아?’

대현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조용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유금옥을 제외한 인원 모두가 캡슐 내부에서 자고 있던 것이다.

“드디어 나오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유금옥이 반겨준다.

대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있다가, 왔지.”

“네가 1등을 했다고?”

“흠, 마지막에 야…… 아니, 그 보조교사가 남았으니까 2등이네.”

“에이, 그 사람은 빼야지.”

“그런가?”

“뭐야 1등 맞네.”

유금옥이 배시시 웃는다.

겉으로만 보면 축하해주는 웃음이었지만, 눈동자에서 왜인지 모를 피폐함이 느껴졌다.

‘뭐지.’

대현은 유금옥에게서 밤샘 작업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았다.

어째서 이런 감상이 드는 걸까.

상반신을 숙이니 스마트 워치에서 나오는 홀로그래피를 통해 영상 편집을 하는 유금옥이 보인다.

중간중간 수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거 하는 중?”

“아, 그냥…… 끝날 때까지 할 것도 없고 그래서.”

관심을 보이자 머리를 긁적이면서 시선을 돌린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고대현은 핸드무비의 영향 때문인지 유금옥의 결과물이 궁금해졌다.

“한번 봐도 돼?”

“어?”

“궁금해서.”

“으음…….”

유금옥은 잠깐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그녀가 손으로 홀로그램 창을 세 손가락으로 터치하면서 옆으로 슥- 하고 넘기니.

띠링.

하고, 자동으로 대현의 스마트 워치에 영상이 나타난다.

대현은 홀로그램 영상을 확대해서 유금옥의 결과물을 응시했다.

“벼, 별로지?”

“응? 아니. 괜찮은데.”

“진짜?”

“어.”

빈말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어설픈 부분이 보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흥미를 잡아끄는 구성을 하고 있었다. 엄청 짧은 영상을 효과적으로 잘 늘렸지만, 재탕이나 지루하다는 느낌도 없고.

“전체적으로…… 좋아. 음, 좋네.”

고대현은 뭐라고 꾸며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괜히 오버하는 것 같아서. 그냥 좋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다행이다…….”

유금옥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시간을 투자해서 나온 결과물의 평가가 좋아서 안심한 듯했다.

“그럼, 이제 이걸로 개인 채널에 올릴 거야?”

“응, 그래야지.”

“이름 좀 알려줘 봐.”

대현은 유금옥의 개인 채널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이거저거 꾸며놓은 게 많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거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시도한 영상이 있었다.

편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오, 엄청 많네.”

“취미로 가끔 하다 보니까 좀 쌓였어.”

대현은 리스트를 주르륵 넘기며 말했다.

“나중에 다 봐야지.”

“다, 다른 건 망작이야!”

유금옥이 손을 뻗어서 대현의 홀로그램 화면을 가린다.

얼굴이 붉다.

“알았어, 안 볼게. 나중에 그거 올리면, 그거 하나만 볼게.”

“휴.”

이마의 땀을 훔친다.

과거의 기록을 보여주는 게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개인 채널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대현은 이해하면서 넘겼다.

‘화장실이나 가야겠다.’

드르륵.

그는 교실 밖으로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길쭉한 복도를 걷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전체적으로 말끔했다. 큰 차이는 없었다.

볼일을 보니까 디스플레이에 건강수치가 나타난다.

상태는 양호했다.

대현은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면서 느릿느릿 복도를 걸었다.

창문으로 각 교실의 내부가 보인다.

다른 교실은 40반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신영범 학년 담임의 말에 의하면, 일반 그라운드 제로보다 몇 배는 힘들 거라 그랬는데…….

그 때문에 다들 녹초가 된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더 조용한 학교라…… 적응 안 되네.’

보통 수업 때 조용하고 쉬는 시간에 시끄럽지 않나?

기존의 학교와 정반대 구조라고 할 수 있었다.

길쭉한 복도를 거닐고 있으니, 문득 다른 층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현은 곧장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학년 3학년도 1학년과 마찬가지로 반이 세부적으로 나뉘어있었다.

“야, 너 저번 판에 CS 다 놓치던데 연습 좀 더 해라.”

“네가 이해해라. 우리 조장이 대포 멸시한 게 한두 번이냐.”

걷고 있자니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의 분위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1학년은 거의 다 쉬는 중인데, 여기는 분위기가 판이했다.

‘선배들은 신영범 선생님이랑 수업을 안 해서 그런 것 같네.’

다른 학년도 훈련 대륙에서 수업하지만, 신영범 학년 담임이 고안한 시스템을 쓰진 않았다.

각 학년 담임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듯했다.

대현은 교실이 있는 라인을 돌다가, 중간에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학교가 넓어서 그런지 탐색하는 맛이 있었다.

‘여기는 학교 구조도 안 알려주고 지금까지 게임만 시켰구만.’

학교에 대한 설명은 안내 사항과 팸플릿이 전부였다.

‘시설은 좋은데 친절하지는 않네.’

그러던 중, 특수한 시설을 발견했다.

동물들이 있는 실내 동물원 같은 곳이었다.

벽에는 [마인드 테라피 룸]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마인드 테라피라…… 하긴, 정신 테라피용으로 동물이 좋긴 하겠지.’

매일같이 가상현실을 컨트롤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어떨까.

일단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봐볼까.’

고대현은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므로 편히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니 다양한 동물들이 있고, 사이사이가 유리벽 등으로 막혀있는 구조였다.

위웅잉.

중간중간 로봇 동물들이 움직인다.

그 애들이 아르바이트 매니저처럼 실내 동물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대현은 동물을 한 마리씩 보다가 토끼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토끼를 좋아한다기보단 로봇 동물이 토끼 똥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삐야야아앗!

가까이 가니 토끼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입에 고철 다리를 하나 물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로봇 토끼의 다리였다.

설마 로봇 토끼를 공격한 걸까. 크기를 봐선 녀석이 토끼 무리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녀석은 고철 다리를 물고서 사람과 대치했다.

“조용.”

대장 토끼의 앞에 사람 한 명이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선배였다.

그녀는 관리 로봇을 파괴한 토끼에게 설교하고 있었다.

“로봇 친구를 건들면 안 돼. 너 이대로 계속 반란을 일으키면 추방당하는 거야.”

삐얏?

“먹이도 주고 잠자리도 주는데 뭐가 문제야?”

삐야야?!

“자유를 원한다고? 미안하지만 여기서 나가는 순간 네 사망 확률은 86.5% 증가해. 그래도 나가고 싶어?”

뺫!

그 말에 답하듯, 깡총 뛰어오른 토끼가 금발 태닝 선배에게 돌진한다.

“쳇!”

금발 여선배는 혀를 차면서 발차기로 대장 토끼를 제압했다.

대장 토끼가 바닥에 나뒹굴다가 원래 자리로 도망간다.

작은 반란은 이로써 마무리되었다.

‘토끼를 상대로 진심이네, 저 사람…….’

자신도 모르게 유심히 보고 있자니, 별안간 그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미간을 좁혔다.

“넌…… 신입생?”

“네…….”

겉모습만 보면 매우 불량한 이미지인지라 대현의 목이 자동으로 움츠러들었다.

“신입생이 제 발로 여길 오다니…… 너,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구나?”

“네?”

그녀는 돌연 대현의 팔을 잡고, 내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여기 관리 담당하는 부장이거든. 마침 너한테 적합한 게 있으니까 따라와 봐.”

“아, 넵…….”

거절할 수도 없고…….

대현은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엔, 골든 리트리버 대여섯 마리가 놀고 있었다.

3~4개월 정도 된 아이들 같았다.

헥헥.

컹컹.

강아지들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가온다.

“만져볼래?”

갑작스럽지만 이런 걸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지.

“네.”

대현은 달려드는 리트리버들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황금색 털이 삐져나온다.

“난 잠깐 사료를 가지러 갈게.”

선배는 그 잠깐 사이에 사료를 가져온다며 어딘가로 향했다.

고대현이 얼떨결에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윙.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지수?”

“어??”

한숨을 푹 쉬면서 들어오던 전지수의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이는 고대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이 장소의 이름이 마인드 테라피 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말했다.

“전 판에 빨리 죽었어?”

“응? 어…… 일찍 죽기는 했지…….”

아무래도 신영범 선생님의 수업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그 방식은 상위권에는 별로니까.’

어쩌면 하위권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보나 마나 자존심이 꽤 상했겠지.

게다가 전지수는 레기온에 버금가는 기간티아 성주의 딸이다.

대현은 정태룡에 대해 조사하다가 그녀도 만만치 않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승계 조건을 못 맞추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는 거니까…… 스트레스가 심할지도…….’

고대현은 여러모로 불리한 방식을 상기하면서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

강아지의 환대를 받던 전지수가 여유 공간에 앉는다.

어린 시절과 OT 때 같은 팀이었던 경험 덕분인지, 전지수는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다가왔다.

고대현이 전지수에게 말했다.

“여기 꽤 자주 왔나 보네. 한 번에 여기로 올 정도면.”

“2, 3학년을 주로 담당에 친기간티아인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여기는 꽤 많이 와봤어. 그리고 여기에 있는 선배도 기간티아 후원을 받는 중이고.”

“선배라면…… 약간 불량한 스타일인데 의외로 친절한 그 사람을 말하는 건가?”

“응.”

고개를 끄덕이고, 정적이 흐른다.

개들의 솜뭉치 같은 발이 오간다.

전지수가 한차례 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

“너, 정태룡이 하는 후원 프로그램 받는 중이라면서?”

“응. 그렇게 됐어.”

“그…… 나한테 말했어도 됐을…….”

그때였다.

사료를 가지러 갔던 선배가 돌아왔다.

“지수?”

“아, 리단 선배.”

전지수가 말한 이름에 의해 고대현의 눈길이 선배의 명찰에 닿았다.

선배의 이름은 경리단이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경리단의 질문에 대현이 답했다.

“친구입니다.”

“친구. 그렇구나…….”

3명은 골든 리트리버와 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경리단은 고대현이 레기온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흥미를 보였다.

“너는 무슨 재능으로 후원받는 중이야?”

“신경 지구력이요.”

“특이하네.”

“특이해요?”

“기간티아에는 아직 그런 기준이 없어서…… 아마 레기온도 없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그래요?”

이쯤에서 고대현은 알아차렸다.

정태룡이 포섭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내 인기가 생각보다 좋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능력이 뛰어나면 이곳저곳에서 부른다고…….

그때는 몰라서 고개만 끄덕였지만, 지금은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이참에 테이머로 전직할까.’

희소한 나머지 직업 순위에조차 집계되지 않는 직업이다.

이대로 태해란 2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고대현이 턱 끝을 만지며 생각하고 있으니 경리단이 질문한다.

“음, 그럼 태해란이랑 친하겠네?”

“친하진 않아요. 두 번 정도 본 게 전부라서.”

태해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경리단은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까딱거렸다.

그러다가 입술을 뗐다.

“그 애가 의외로 친구가 없어. 그러니까 네가 잘 봐줘. 난 기간티아라서…….”

“서로 친한가 봐요.”

“아는 동생 정도.”

경리단도 태해란처럼 심상력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녀도 기간티아 쪽에서 태해란과 비슷한 이유로 후원을 받고 있었다.

띠링띵띵.

그때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

“다음에도 또 와.”

대현과 지수는 손을 흔드는 경리단을 뒤로하고 1학년 교실로 내려왔다.

둘의 교실 위치는 정반대라서 내려오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져야 했다.

고대현이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 전지수가 말했다.

“내년에 바꿀 수도 있어.”

“뭐를?”

“그, 후원 있잖아…….”

내년에 기간티아 성에서도 자리를 하나 만들겠다는 말이 들려왔다.

중간중간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었지만, 대현은 전지수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약 파기하고 오라는 거구나.”

“강요는 아니야. 솔직히 잘 안될 수도 있고……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

“응.”

고대현은 대충 알겠다고 답한 뒤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저 사람은?’

40반 교실의 앞.

힘든 몸을 이끌고 온 태해란이 자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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