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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51화 (51/200)

제51화

#51화

끼리릭, 끼릭.

장전 장치의 도르래가 움직이면서 시위를 밀어낸다.

이어서 여유 공간 위에 화살을 올려놓는다.

이로써 힘겨운 장전 과정이 완료되었다.

철컥.

쇠뭉치가 맞물리며, 초목 위에 메마른 비명을 토해낸다.

‘아이고 힘들어라.’

장전을 완료한 이밀훈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까보다 더 우중충해졌다.

전기장 역할을 하는 업화가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이밀훈은 등 뒤에 크로스 보우건을 걸치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 보우건도 생각보다 힘들단 말이지…….’

다른 무기에 비해서 비교적 편하지만, 변수에 따른 신경 부하 감소가 없기에 지속적인 피로감이 더했다.

이밀훈은 이동하면서 지도를 펼쳤다.

현재 있는 장소는 훈련 대륙 옆에 있는 작은 섬.

넓게 보면 가이아 얼라이언스 내부였으니.

장소 한정 설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린이지와 같은 환경이었다.

물기를 머금은 잡초가 사근사근 밟히는 가운데.

이밀훈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면서 자극의 크기를 가늠해봤다.

‘빙의체가 없어서 그런지 누적되는 신경 부하가 크네……. 나중에 본 대륙에서 시작할 때 이 정도는 아니겠지?’

성인이 된 다음에 들어가는 한국 대륙.

그곳에서는 직업과 보유 스킬에 따라서 신경 부하 레벨이 다르다.

지금도 스킬북 형식으로 스킬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상 보정이 없는 퓨어한 상태라고 보는 게 좋았다.

‘앞으로 2년…….’

이밀훈은 잠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졸업하기 직전에 보는 성인식 서브 스킬 쟁탈전.

그리고 사회 초년생 때, 한국 대륙을 돌면서 얻게 될 메인 스킬.

위의 2가지 요소로 인해.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힘들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겠네.’

처음에는 신영범 선생님의 이런 수업 따위.

왜 하는지 몰랐다.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기부여가 된다…….’

원래는 큰 생각이 없었는데.

이 모드를 경험하자마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점령했다. 빙의체가 없는 상태에서 쓰는 스킬이 얼마나 구린지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동기를 심어주다니…… 역시 다 생각이 있다는 건가.’

이밀훈은 신영범 학년 담임의 큰 뜻을 이해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부스럭.

그때였다.

“아.”

“아.”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

40반의 허건섭이었다.

‘40반이면…… 여기서 유리한 놈들이군.’

40반에 특별 전형 합격자가 몰려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뤼븐 뛰기의 룰을.

이밀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겠다.’

상대는 지구력이 좋고 자신은 아니다.

이에 이밀훈은 즉시 거리를 벌렸다.

평소의 실력이 어쨌건 간에, 붙으면 불리한 건 확실하니까.

핏!

그 사이, 화살이 날아오고.

퓻!

서로 한 발을 교환했다.

이밀훈은 회피하면서, 곁눈질로 상대의 무기를 빠르게 훑었다.

허건섭은 보우건이 아닌 활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색이 파란색인 특수활.

‘일단 조심해야겠다.’

두 인영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풀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서로 갑옷을 입고 있는지라, 이동하는 소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밀훈은 멈춰서서 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가 정지하자 별안간 허건섭도 자리를 잡았다.

끼릭.

끼익.

각자의 시위가 당겨진다.

목울대로 꿀꺽하고 침을 넘기는 가운데, 풀벌레 소리만이 이따금 귀를 침범했다.

‘장전 시간을 고려해야 하니까 최대한 침착하게…….’

하나.

둘.

핏-!!

이어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

또다시 1발이 교환된다. 뱀 우는 듯한 소리가 귓전에 걸침과 동시에.

퍼걱!

은폐하고 있는 나무의 겉면이 톱밥을 흘려낸다.

화살이 이밀훈의 옆을 지나쳐서 땅에 박힌다.

한 발이 아닌 두 발이었다.

‘2발이 오기엔 간격이 짧은데, 특수활 효과인가?’

다시 공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이밀훈은 재빨리 장전을 완료하고 몸을 돌렸다. 스코프가 없어서 눈에 의지한 채 전방을 빠르게 훑는다.

그리고 문득 잡힌 살구색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핏!

그라운드 제로와 레전드 오브 히어로에서 단련된 사격 실력이 발현된다. 정확하게 상대방의 급소를 향해서 날아간다.

팅!

급소를 가린 철판이 이를 막았다. 뒤틀린 화살촉이 허건섭의 허벅지에 박혀 들어간다. 그의 자세가 무너졌다.

‘원래는 즉사를 노렸지만…… 기동력이 약화 됐으니 저 정도면 충분하다.’

이밀훈은 재빨리 허리춤의 단검을 꺼낸 다음 돌진했다.

오래 끌면 불리하니까.

상대가 활을 잡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그는 시든 꽃을 짓밟으며, 허건섭의 머리맡까지 도달한 다음 칼을 내리쳤다.

부웅.

팔이 내려간다.

확정적인 킬 자세였다.

그러나.

스르릉.

이밀훈이 간과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허건섭의 티어가 40반에서 제일 높다는 것.

“으럇!”

다친 다리로 일어선 허건섭의 한손검이, 역으로 빈틈을 찌르고 들어왔다.

우드득.

내려치던 이밀훈의 관성까지 더해진 나머지 갑옷을 비집고 칼이 들어갔다. 으득거리는 마찰음이 짧게 퍼진다.

“어……?”

“느려.”

그 말과 함께, 이밀훈의 몸이 부서지면서 호롱불로 변했다.

‘아슬아슬했다.’

상황을 설명해보자면.

이밀훈은 신경 피로도 누적 때문에 둔해진 상태였고.

이는 다이아 티어인 허건섭의 칼이 파고들기 용이한 구조였다.

현재의 허건섭은, 상황적인 이점 덕분에 다이아 이상이라고 봐도 좋았다.

“후우…….”

허건섭은 여신의 축복 정수로 체력을 회복한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지구력이 좋아도 찰나를 가른 전투는 힘든 법이었다.

‘언더 워치에서 1대 5를 하는 게 훨씬 편하겠네…….’

허건섭은 탈력감을 느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잠깐 쉬기 위함이었다.

부스럭.

“건섭?”

그때 풀숲에서 같은 반인 이태원이 등장했다.

허건섭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휘저었다.

“야, 자, 잠깐. 나 좀 쉬자.”

“방금 싸웠나 보네.”

이태원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이 활은 뭐냐?”

“아, 이거? 청궁이라고. 한번 쏘면 약한 거 한발이 자동으로 더 나가는 거야.”

“류시안의 패시브가 적용된 건가?”

“아니, 그것보단 루울루의 패시브랑 비슷한 것 같아.”

루울루는 평타를 때린 다음에 스픽이라는 정령이 추가타를 때리는 패시브를 가지고 있었다. 이 활은 그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이태원은 허건섭과 몇 가지 대화를 하다가 말했다.

“그럼 같이 다니는 거로 할래?”

그러자 껄끄러움을 느낀 허건섭이 말했다.

“흠, 근데 이거 나중에 신영범 선생님이 뭐라고 안 하려나?”

“괜찮아. 다른 애들도 하던데 뭐.”

“그러냐.”

“솔직히 이렇게 힘든데 봐줘야지.”

신경 지구력이 좋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길 뿐이지, 당장 힘든 건 똑같았다.

부스럭.

그때였다.

또다시 나무가 흔들렸다.

팀 간 전음이 없으니, 허건섭과 이태원은 서로 손짓해서 움직였다.틈을 봐서 협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끼에엑!

그들은 곧 생각을 접어야 했다.

중형차 크기의 용이 급습했다.

퍼억!

단단한 흰색 비늘에 둘러싸인 팔이 허건섭과 이태원을 덮쳤다.

‘뭐, 뭐지…….’

허건섭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먹어.”

그 드래곤의 위에는 갑옷이 이리저리 찢어지고, 넝마가 된 여자애 한 명이 타 있었다.

‘저 사람은 1반의…….’

콰직.

거기까지 생각한 허건섭의 시야가 검은색으로 변하고, 곧 로그아웃되었다.

* * *

그 무렵.

고대현은 와이번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고 손끝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조작키가 복잡하네.’

키보드의 오른쪽에 있는 숫자키인 텐 키.

그 키보드 하나하나에 날개의 각도 조절.

꼬리의 방향 조절 등이 전부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딸깍.

키 하나를 잘못 누르자 와이번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린다.

뒤에 타 있던 이하린이 입을 열었다.

“조종하기 어려운 건 알겠는데…… 이러다 떨어지겠어.”

“괜찮아. 떨어지진 않을 거야.”

고대현은 이제야 얼추 방향키의 감각을 익혔다.

아까 흔들렸던 건 일종의 실험 오류였다.

‘지도나 봐볼까.’

대현은 지도를 펼쳤다. 전기장 역할을 하는 악신의 업화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은 이미 새까마네.”

“그러게.”

옆을 보니 저 멀리서 악신의 업화 어쩌고 하는 게 보였다.

검은색 연기였는데, 마치 화산재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우리도 이제 성 쪽으로 가야겠다.”

키보드를 누르면서, 막 방향을 수정하려던 때였다.

푹!

돌연 와이번의 몸통에 화살이 날아와서 박혔다.

다행히도 와이번의 움직임이 크게 요동치는 일은 없었다.

‘누구지?’

고대현은 마우스를 돌렸다.

3인칭 모드 인지라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보였다.

끼엑!

바람과 함께 거대한 몸체가 아래에서 위로 상승했다.

거대한 자동차의 옆에 있는 소형차처럼 와이번의 몸이 흔들렸다.

“저, 저건?”

이하린의 눈도 커졌다.

현재 타고 있는 와이번보다 큰 생명체.

흰색의 드래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저건 또 뭐야.”

드르륵.

고대현은 의아해하면서 스크롤로 화면을 확대했다.

그러자 드래곤 위에 타고 있는 태해란이 감지되었다.

갑옷이 찌그러져 있고 피폐해진 모습.

마치 악성 고양이에게 시달린 것처럼 보였다.

퓻!

그때.

화살 한 발이 또 날아왔다.

푹!

화살이 박히면서 와이번의 Hp가 떨어졌다.

‘이거 공중에서 공격할 수도 없는데 어쩌지?’

고대현과 이하린은 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공격하려면 이대로 달라붙어서 육탄전을 해야 했다.

드래곤이 와이번보다 기동력이 좋은 탓에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끼에에엑!

전투적으로 다가온 드래곤이 와이번에게 들러붙는다.

공중에서 날개가 퍼덕이면서 몸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스피커를 통해서 공기가 떨리는 소리가 전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이하린이 나섰다.

“최대한 수평으로 유지해봐.”

“여기서 싸우게?”

“잠깐만 갔다 올게.”

태해란이 타고 있는 드래곤에게 간다는 소리였다.

참고로 드래곤은 와이번보다 높은 고도에서 공격하는 중이었다. 즉, 드래곤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건데.

“떨어지면 어쩌려고.”

“괜찮아.”

고대현은 하는 수 없이 이하린의 말을 수용해서 드래곤의 아래쪽에 바짝 붙었다. 태해란은 한창 화살을 장전하느라 이하린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절반만 쓰면 되겠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꾸욱.

발에 힘을 집중한 이하린의 몸이 일순 높이 뛰어올랐다.

와이번의 몸이 살짝 아래로 내려갈 정도의 각력이 가해졌다.

콱!

“윽!”

삐끗해서 떨어질 뻔한 그녀는, 다행히도 드래곤의 목덜미를 잡아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아래를 내려다본 태해란은 당황했다.

‘도움닫기를 해도 닿을까 말까 한 거리를 제자리 뛰기로 오다니…….’

그녀는 다급하게 드래곤을 조종했다.

“한 바퀴 빙 돌아!”

원래라면 단기간에 타지 못하는 유닛이지만.

곰과 몇 명의 사람들을 먹어 치운 드래곤은 순순히 태해란의 명령을 따랐다.

날개의 각도가 접히면서 몸을 회전시킨다.

애매하게 매달린 이하린은 이를 악물고 매달렸다.

세상이 뒤집히면서 거센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각을 봤다.

‘조금만 더…….’

몸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의 텀을 노린다.

팔의 부담이 덜해지고, 무중력 상태가 된 찰나.

스릉.

이하린은 허리춤의 롱소드를 뽑았다.

그리고 획득한 스킬인 오행베기를 사용했다.

다음 순간.

/    사    /     사     /

/    사    /     사     /

/   삭!    /     삭!    /

드래곤의 단단한 비늘을 칼끝이 뚫고 들어갔다.

롱소드의 겉면이 우둘투둘한 비늘에 지속적으로 걸리면서 카각, 거리는 비명을 토해낸다.

끼에에에에엑!!!

결국 드래곤은 피어를 내지르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이하린은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흰색 휴지처럼.

흰색 드래곤에 매달린 채 땅으로 떨어졌다.

쿠웅-!!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흙을 밀어낸 드래곤의 몸 위로 이하린과 태해란이 쓰러진다.

태해란은 날개폭으로 몸을 가려서 겨우 살아남았고.

이하린은 영 좋지 않은 부분으로 떨어진 탓에 로그아웃되었다.

‘윽…… 설마, 이렇게 하고도 당할 줄은…….’

태해란은 반 빈사 상태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드래곤에게 한 번 눈길을 줬다.

고대현이 와이번을 길들인 것을 본 뒤로, 일종의 호승심이 발동해서 무리하게 길들인 녀석이었다.

‘사실상 먹이를 안 주면 내가 죽는 구조였지만…….’

태해란이 약간의 회의를 느끼며, 여신의 축복 정수를 꺼낼 때였다.

쿠웅-!

문득 검은 안개가 자신을 휘감고 지나갔다.

“이, 이건…….”

전기장의 역할을 하는 업화였다.

화산재 같은 먹구름이 몸을 감싸면서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신경 부하 레벨이 상승했다.

엄청난 중압감이 몸을 짓누른다.

그녀는 무력감을 느끼고 쓰러졌다.

드래곤이 죽었으니, 이대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테이밍 능력은 내가 훨씬 우세하겠지? 내가 나중에 후원자 명단에서 밀리는 일은 없을 거야.’

태해란이 속으로 안심할 순간이었다.

펄럭.

“응?”

갑자기 검은색 무언가가 앞에 착륙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전의 와이번.

고대현이 길들인 와이번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도 조종이 가능하다고……??’

태해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어지간한 유대감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당장 자신만 해도 목숨을 대가로 드래곤을 조종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팔로 상반신을 잡아끌어서 겨우 고개를 들었다.

“어…….”

그러자 고대현이 호롱불 앞에 있는 게 보였다.

태해란은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정식 팀이 아니라 티밍이고…….

여기까지 구하러 올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다니.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다가 옆에 있는 와이번에게 닿았다. 와이번은 대미지가 들어가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반듯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되는…….”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고개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날.

태해란은 진정한 유대, 그리고 우정을 보았다.

* * *

“휴, 이 스킬은 내가 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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