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37화
그쯤, 고대현은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20반 매치라는 건 안 봐도 자신 때문이었기에.
‘잘 보여야지.’
세계가 바뀌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진심을 다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표창을 던진다. 던지면서 감각을 주변으로 흩뿌린다.
‘왼쪽.’
게임 내부에서 주변을 살피기란 힘들다. 손발을 움직이는 전투라는 건, 그만큼 앞일에 몰입하게 만드니까.
표옥-!
그렇기에.
움직임이 편한 지금은 주변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왼쪽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포착했다.
팅팅팅팅팅─!!!
연속적으로 정조준된 화살.
핸조의 집속 화살이었다.
검날 흘려내기의 방어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 튕겨낼 수 있었다.
“윽!”
반사된 화살이 상대에게 맞았다는 표시가 뜬다.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한 핸조가 힐팩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걸 피하다니 실력이 꽤 높네.’
반사된 투사체를 피하는 경우는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감각이 남들보다 좋은 거겠지.
‘저놈부터 처리해야겠다.’
검날 흘려내기 쿨타임 동안 신중하게 각을 보면서 표창을 날린다. 종각사의 2층으로 올라가서 저격하고 있던 위도 테이커를 공격했다.
표창 던지기로 피를 빼놓고.
돌풍참으로 관통 후, 뒤돌아서 표창과 평타로 마무리.
이어서 초기화된 돌풍참으로 다시 힐팩을 보충하거나 예의 컨트롤을 반복하면서 딜러를 압박했다.
하지만 적팀이 리스폰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벌써 팀 내부에 소문이 퍼졌는지.
이전보다 견제의 강도가 심해졌다. 윙스턴과 자랴의 레이저 공격이 가해진다.
‘검날 흘려내기가 불가능한 챔피언으로 골라왔네.’
대현의 켄지는 몸을 피했다.
작전상 후퇴다.
언더 워치는 아이템 시스템이 없기에, 레전드 오브 히어로같은 원맨쇼가 불가능했으므로.
“잠시 뒤로 빠질게.”
“나중에 궁 게이지 차면 말해. 나도 준비 중이니까.”
“오케이.”
이태원의 에나가 기면탄과 힐링탄을 장전하면서 궁 게이지의 수치를 보여줬다. 78%, 거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꾸웅!
그 사이에 이하린의 둔피가 적팀 하나하나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스킬 동작 완성도가 높아서 그런지 걸렸다 하면 즉사였다.
[정복 완료!]
[다음 지역이 열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점령 목표지가 추모 사원으로 바뀌었다. 적들은 미리 후퇴하고 진형을 갖춘 상태였다.
“이제 종각사는 처리했으니. 추모사원으로 가자!”
종각사의 오른쪽에는 제2 스테이지인 추모사원이 존재한다. 종각사의 2배 정도 되는 크기인 데다가 적들의 리스폰 위치가 내부에 있어서 격한 충돌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초반에는 적들도 얕잡아서 봐서 금방 뚫렸지만, 저기는 워낙 철통같은 곳이라서 어렵겠지.
“가자!”
그래도.
다들 기세를 타고 돌진했다.
입구에서 털릴 걱정을 했던 것이 비하면 많이 왔다. 그 때문에 40반은 기세등등해진 상태였다.
“나는 왼쪽으로 이단 점프해서 진입한다. 다들 정문 쪽 봐줘.”
“적당히 간만 보고 죽을 것 같으면 나와.”
고대현은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켄지가 추모사원으로 들어가는 루트는 정문 옆의 쪽문 또는 왼쪽의 테라스.
특히 테라스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에 잠입하기 좋았다.
탓 – 타탓-!!
그가 이단 점프를 해서 나무판자에 발을 디딜 때였다.
촤락, 드르르륵-!
집게 로봇팔이 벽을 잡고, 그 끝에 거대한 공이 달려서 날아왔다.
진영파괴용으로 자주 쓰이는 붐볼이었다.
뻐억.
밀어내기 효과가 있는 붐볼의 몸통 박치기에 당했다. 켄지의 몸이 밀려났다. 시선 아래로 수풀이 들어온다. 이대로 떨어지면 추락사.
‘붐볼 컨트롤 좀 하는군.’
살짝 당황했지만, 대현은 금세 마우스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옆으로 돌풍참을 썼다. 켄지의 몸이 돌진해서 마루를 밟았다.
‘저 녀석…….’
붐볼의 시선이 뒤늦게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는 켄지가 보여준 찰나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넉백에 당했는데 바로 돌풍참을 쓰다니. 꽤 침착한데?’
기습당한 것치곤 자세를 회복하는 속도가 빠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황하다가 구현도 하락으로 떨어졌겠지.
그야말로 무감정한 사이보그다.
철컥.
벽에서 집게손을 뗀 붐볼이 연사모드로 전환했다. 기관총의 총구가 켄지의 발자국을 뒤따라간다.
타탓.
착륙한 켄지는 붐볼과의 교전을 피하며 앞으로 향하기로 했다. 탱커인데다 피통이 높은 붐볼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점프해서 넓은 사각형의 추모장 내부에 도달하니, 자랴의 레이저가 켄지를 맞이했다.
붉은 줄기가 슥 - 하고 스치자, HP가 감소한다. 대현은 옆으로 화면을 돌렸다.
‘핸조는…… 저기 있네.’
자랴의 옆에 있는 핸조가 보인다.
검날 흘려내기를 의식한 건지.
녀석은 활시위를 당긴 상태에서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짧은 체공 시간 동안.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거린다.
쓸까 말까.
땅이 가까워진다.
발이 허공을 밟는다.
발이─.
스핏!!
다시금 허공을 밟으며 이단 점프가 될 때, 비로소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딸깍.
채앵!!
진동하는 듯한 단도에 의해 화살이 튕겨 나갔다.
튕겨낸 단도의 검날 너머로 낭패감에 젖은 핸조가 눈에 들어온다.
참고로, 대현의 시선은 핸조의 정수리를 보고 있었다.
‘이단 점프할 때의 틈을 노린 건가? 시도는 좋지만, 너무 뻔해.’
푹-!
켄지의 발끝이 다다미 바닥에 사뿐히 닿고. 이어서 핸조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해, 핸조!!”
“뭐야, 핸조가 왜 당해?”
시끌시끌해졌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팀 간 전음으로 말하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스르릉.
잠깐의 틈을 타서 추모장의 하단으로 몸을 숨긴 켄지.
검날 흘려내기가 빠졌으니, 쿨타임 동안 사리면서 표창을 던지기로 했다.
“핸조 컷.”
“오, 진짜?”
대현이 팀 간 전음으로 말하자, 40반 인원들이 안으로 돌격한다.
강한 공격 딜러 중 하나인 핸조가 빠졌기에 대치 균형이 깨졌다.
이제 그나마 걸림돌이 있다고 하면, 상대방에 탱이 많다는 건데…….
“대현! 궁 준비됐어!”
“나도 준비됐어. 쏴.”
때마침 해결법이 완성되었다.
에나의 궁극기인 플라즈마 로이더가 켄지의 등에 박히면서 오버클럭이 시작된다.
몸이 푸른색으로 파직거리며 전체적인 속도와 공격력이 오른다. 여기에 켄지의 궁극기를 첨가함으로써 마지막을 장식한다.
쓰오오옷!!
장검을 뽑았다. 그냥 용이 아닌 번개용이 몸을 한차례 휘감고 지나간다.
칼끝이 땅을 향해 궤적을 그리고.
적의 몸들도 지면을 향해 호를 그리며 떨어진다.
그렇게.
6초.
마지막까지 서 있는 이는 켄지 뿐이었다.
* * *
[-승리-]
화면에 승리 표시가 나타났다.
마지막 점령지에서 켄지로 쓸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일.
여기까지 해줬는데 못 이기면 팀 때문에 진 거로 봐도 좋으리라.
대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흰색 내면의 공간에는, 고대현 혼자밖에 없었다. 마치 추모사원의 켄지처럼.
‘흠, 이제 15분 정도 쉬는 시간이려나? 빨리 나가서 반 애들 반응 좀 직관하고 싶네.’
일전의 켄지 컨트롤을 보고 반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분명 독수리 여왕 때보다 반응이 좋겠지.
파앗.
그런 상상을 하면서.
발을 까딱이고 있을 때였다.
돌연 모니터 내부의 화면이 전환되었다.
“어?”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님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잠시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자니, 별안간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첫날 신영범 학년 담임이 설명하던 장소와 비슷한 곳.
가마 정도 크기의 돌들이 촘촘하게 쌓여 있는 성벽. 돌 틈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넝쿨과 이끼.
시선을 바닥에서 벽으로 돌린다. 성채 너머로 어둠을 머금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다들 왔는가.”
목소리와 함께.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한 남자의 모습을 비췄다.
신영범 학년 담임이었다.
‘뭐야, 설마 개인 면담 같은 건가?’
생각나는 건 그거 하나였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고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림잡아 30여 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 옆으로 쭉 서 있는데. 각자 다른 반처럼 보였다.
“여긴 어디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언더 워치 전을 끝내고 소환당한 정태룡이 물었다.
신영범은 앞에 있는 검을 잡으며 말했다.
“훈련 대륙에 있는 베타테스트 장소.”
훈련 대륙이라는 말에 정태룡이 산 너머를 응시했다. 산능선 끝에 익숙한 첨탑이 걸쳐져 있었다.
“갑자기 훈련 대륙으로 데려오시다니…….”
“너도 커리큘럼을 봤으면 알고 있겠지. 게임고는 훈련 대륙에서 다양한 방식의 시험을 치른다는 걸.”
알다마다.
이 훈련 대륙은 본성에서 아주 잘 보이는 곳이니까.
정태룡이 고개를 끄덕이니, 신영범이 말을 이었다.
“방식이 여러 개로 나왔는데, 마침 시험해볼 게 생겨서 각 반에서 한 명씩 불렀다. 아무래도 평균 난이도 조절이 필요해 보여서─.”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오른쪽에 있는 거대한 돌판에서 냉병기들이 솟아올랐다.
신영범 학년 담임은 그중에서 가벼워 보이는 레이피어 하나를 뽑았다.
그의 손목 옆으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이상한 수치가 적혀있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훈련을 위해 특별 제작된 것들이다.”
핏-!
레이피어가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엄청난 민첩함이었다.
그가 검격을 이어나가며 입을 열었다.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면 한없이 가벼워지는 검이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부웅.
레이피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돌바닥에 떨어졌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레이피어가 돌을 부수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설마…….”
일반적인 레이피어면 챙- 하고 맑은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한데 저렇게 된다는 것은 즉.
“속도 따라서 무게가 바뀌는 검이란다.”
보고 있던 고대현은, 새로운 무기 시스템을 흥미롭게 응시했다.
‘저런 식의 조정도 가능하구나.’
그때 정태룡이 손을 들고 신영범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저 검을 잡고 계속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건데…… 빠르게 휘두르기만 하는 건 검술 적으로 불가능할 텐데요.”
“공격을 안 멈추면 된다.”
“네??”
그의 말에 학생들의 반응이 요란해졌다.
슥.
그러거나 말거나.
떨어진 레이피어를 잡아든 신영범.
그가 스산한 안광으로 차가운 금속 면을 훑었다. 그러다가.
“너희도 북부 러시아 대륙 녀석들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입술을 뗐다.
그리고 자신이 게임고에 부임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타 대륙의 괴물에게 대응하는 특수 인력이 필요해. 하지만 한국의 게임교육 시스템으로는 육성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 너무 효율을 중시하거든.”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천상계 같은 학교인데…….
고대현이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신영범이 레이피어를 학생들 사이에 던졌다.
위로 부웅, 하고 올라간 레이피어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땅에 박혔다.
콰앙!
“그러니 이 중에서 아무나 이 검을 뽑아봐라. 결과에 따라서 다음 주부터 있을 수업의 난이도를 조절할 거니까.”
평균 난이도 조절이라…….
고대현은 학생들 사이에 떨어진 레이피어를 응시했다. 가느다란 쇠 막대가 돌을 깊숙하게 파고든 상태였다.
엄청 무거워 보인다.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걸 들어야 하는 건가요?”
“그래.”
“저희는 메이지류 희망인데요?”
“일주일에 2번만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쉬는 시간도 충분히 주어질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학생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니.
“어차피 블루 클래스는 다른 학교나 아랫반 애들이 알아서 할 텐데, 이걸 왜 내가 하는 건데?”
“이런 건 LOH랑 그라운드 제로 연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검사가 부임했을 때부터 뭔가 싸했어.”
“맞아, OT도 그라운드 제로로 했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사실 검사도 유사 블루 클래스잖아.”
웅성웅성.
낮은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걸 들은 고대현은 생각했다.
‘이건…… 반드시 뽑아야 한다.’
느낌이 왔다.
난이도를 확 올려야 자신에게 유리해진다는 것을.
‘흠, 근데 저걸 어떻게 들지?’
하지만, 게임 시스템이 달라졌기에.
당장 모니터 너머의 칼을 드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고대현이 쓰읍, 하고 숨을 내쉬며 레이피어를 응시할.
띠링-
바로 그때였다.
[UI 시스템 발동]
화면에 도움말이 나타남과 동시에 조작키가 표시되었다.
레이피어 - [F]
‘UI를 업그레이드해두길 잘했다. 운이 좋군.’
고대현은 머뭇거림 없이 다가가서 F키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 속 자신이 손을 뻗어서 레이피어를 들었다.
딸깍딸깍.
그리고 마우스를 눌러서 휘둘렀다.
속도가 느리긴 해도 휘두르기가 가능했다.
“야야, 저 새끼 뭐야?”
“저걸 그냥 든다고?”
누군가가 말릴 새도 없었다.
40반을 제외한 나머지 반대표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신영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난이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