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34화
부우우웅-
엔진의 소음이 낮게 깔린다.
거대한 수송기의 내부에서 지도를 펼쳤다. 현재 잡힌 맵은 사막맵인 사하라.
영역 사이즈는 에란웹과 비슷하지만, 바다에 접하는 부분이 적다. 결과적으로 에란웹보다는 넓은 환경을 구현했다.
최성우는 지도와 수송기의 경로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요?”
그런 그의 눈빛이 고대현에게 향했다.
사실상 그를 위한 모임이었으니.
대화의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사람이 많이 없는 한적한 곳이요.”
“한적한 곳?”
“네.”
대현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에 마크를 찍었다. 사하라의 오른쪽 구석. 7시 방향에 위치한 작은 민가들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라면 사람들이 많이 없겠지.’
사하라 맵은 모래 배경 때문에 적에게 노출이 잘 된다.
‘하지만 그만큼 영상에서 주인공을 식별하기 쉽지.’
컨트롤만 잘하면 시인성이 높은 장면을 쉽게 뽑을 수 있다.
게다가 사하라는 차가 흔들리거나 뒤집힐 정도의 험난한 지형이 많으니, 차력을 보여줄 장소는 많았다.
“그럼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음…… 지금 생각해 보니까 파쿠르 같은 장면도 좋을 것 같아요.”
대현은 대강의 계획을 남김없이 말했고.
김성현도 대현의 저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대화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이참에 그런 것만 잘 갈무리해서 영상을 만들면 되겠구나……. 안 그래도 기존 채널 성향에서 살짝 트는 거라 걱정했는데,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서 신규 구독자를 모으면 되겠어.”
고대현의 신경 지구력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게임고를 특별 전형으로 입학했을 정도다.
당연히 파급력은 있겠지…….
김성현이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이바노프처럼 지구력 과시 스타일의 영상이 좋겠네.”
“이바노프요?”
“응? 내가 저번에 병원에서 말 안 했었나?”
대현은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는 기억을 억지로 깨웠다. 야나 뭐시기라는 단어가 실낱같이 잡혔다.
“야나요? 그 사람도 저랑 비슷하다고 들었던 것 같긴 한데…….”
“비슷한 걸 넘어서 원조에 가깝지.”
김성현은 대현에게 야나 이바노프에 대한 정보를 설명했다. 단순하게 달리고, 물건을 들고 하는 것만으로, 고정적인 조회수 백만 정도를 가져간다고 한다.
신기하다면서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잘만하면 핸드무비도 그 축에 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 하는 걸 봐야 알겠지만요.”
옆에서 최성우가 토를 달았다.
김성현 대표에게 여러 번 말을 들어봐서, 지구력에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레벨은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의 수준.
잘 만들어봤자 나이에 비해 잘한다. 정도의 제목으로, 잠깐 반짝할 확률이 높았다.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고…….
“이제 슬슬 낙하하자.”
“넵.”
그때 수송기가 육지 상공에 닿았다.
지금부터 떨어진 다음, 왼쪽으로 이동하면 될 터.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하강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대현은 떨어지면서 상공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중간중간 낙하산을 메고 있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을 받으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대현은 머리를 목적지 방향으로 둔 채 키보드를 눌렀다.
한곳에서 뭉텅이로 떨어진 사람들이 점차 물감이 퍼지듯, 각 방향으로 산개하기 시작했다.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이제 거리가 다 됐다.
파악-
머지않아, 대현과 핸드무비팀도 낙하산을 폈다.
근처에 떨어지는 사람은 다행히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편하게 할 수 있겠는걸.
촤라락-
발이 땅에 닿고 낙하산을 밀어줄 공기의 흐름이 옅어졌다. 낙하산이 쪼그라든 채 사막에 떨어졌다.
주변은 온통 모래 천지.
비포장도로.
뜨문뜨문 보이는 허름한 건물들.
탐색을 마친 대현이 입을 뗐다.
“일단 가방부터 찾아야 해요.”
“가방?”
“가방을 가득 채우고 시작할 거거든요.”
아아.
그의 말에 김성현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을 채워서 무겁게 한 뒤에, 극적인 효과를 더 하겠다는 의미로군.
김성현은 병원에서 모니터링하던 시기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친 기색이 없이 다양한 무기들을 들고 다녔다.
캡슐이 아닌 헤드셋을 사용했다는 것을 고려해도 대단한 수치.
“여기 3렙 가방 찾았다.”
그 후로는 고대현에게 장비를 몰아주는 시간이었다. 총부터 해서 구급상자, 각종 보호구까지.
주변을 돌며 물건을 주워서 대현에게 전달했다. 최성우는 그에게 짐을 건네며 생각했다.
‘이, 이렇게나 부하를 준 다음에 하겠다고?’
영상을 뽑으려면 지금 말고도 다음 판에서도 계속해야 할 텐데.
최성우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체력 안배를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려는 찰나.
탕-!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들었다.
바닥에 있던 먼지가 솟아오른다.
아무래도 근처에 한 명이 있는 모양이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PvP모드로 했더니 이런 게 문제다. 그렇다고 사설로 하면 합을 맞췄다는 소리를 들으니 별수 없고.
“우리가 엄호할 테니 너는 지금부터 뛰어!”
“넵.”
마지막 말과 함께 모두 한 방향으로 뛰었다. 자기장은 사하라의 북쪽을 중심으로 조여들고 있었으니, 11시 방향으로 계속 달려 나갔다.
퓨- 퓨퓩-
최성우는 뒤를 돌아봤다.
총알 소리가 약해졌다.
AR이 아닌가 보네.
상대는 금세 사격을 멈췄다.
이대로는 총알 낭비라고 여긴듯하다.
“후우- 대현 학생. 그, 그만 뛰어도 돼요.”
“네? 벌써요?”
앞서 달려가던 고대현이 번듯하게 멈춰 섰다. 지친 기색이나 헐떡이는 숨소리는 없었다. 그저 달리기 전과 같은 상태로 서 있었다.
어.
그것을 보자 최성우의 몸이 잠시 멈칫거렸다.
‘이 학생 이거…… 생각보다 물건인데?’
저 각진 자세와 동작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모를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동시에 영상에 대한 가능성도.
툭-
“봐, 내가 뭐랬어.”
그때 뒤에서 김성현이 최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그렇게 말하는 김성현의 눈은, 그랜드 캐니언 같은 험준한 골짜기에 향해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자, 오늘 해볼 맵은 사하라 사막입니다.”
게이밍 플러그 소속의 게이머, 이유노는 게임을 시작하고 그린 인페르노 맵으로 향했다.
오늘은 사하라 맵의 꿀 자리를 알려주는 걸 찍으려 했으니.
“여기서 뛰면 저기까지 갈 수 있습니다.”
ㄴ 이런 얘기 너무 유익하고 좋아요.
ㄴ 학부모들이 봐야 하는 방송
ㄴ ㄴㄴ 이미 생각 굳어버린 학부모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헤드샷 잘하는데?’ 이거에 대한 답만 찾아서 무쓸모임.
ㄴ 원래 남들과 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쉽지 않죠 ㅠㅠㅠ
다행히도 반응들이 좋다.
이러면 할 맛이 나지.
이유노는 건물 사이의 점프 지점이나 시야 각도를 알려주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사사삭.
“응?”
그러던 중.
이유노는 특이한 3인팟을 발견했다.
서로 막 이상한 짓을 하는데.
‘딱 봐도 뭔가를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네.’
많이 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이유노는 그들을 노리지 않았다.
그저 무엇을 하는지 관찰했다.
말 그대로 단순 ‘관찰’ 말이다.
“어?”
ㄴ ?
ㄴ ???
그런데 별안간 이유노와 시청자들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한 사람에게 짐을 막 몰아준다.
과다할 정도로 RPG까지 달아주면서.
저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ㄴ 저거 북부 러시아대륙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 아님?
ㄴ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있네.
ㄴ 해외 부계정인가?
ㄴ 근데 사설도 아니고 PvP에서 저러네 ㅋㅋㅋㅋ
이유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상황에서 저들을 처단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3명을 한 번에 죽이는 그림을 뽑으면 좋겠다.’
이유노는 영상각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그들이 들어간 민가에 다가갔다. 무소음 보법이 특기인 그녀답게 잡음은 없었다.
스윽.
창문 틈새로 내부를 살피니 2명의 남자가 있었다.
‘음? 이상하다. 한 명은 어디로 갔지.’
이유노는 내부에 조명탄과 연막탄을 던지고 돌입했다. 투시경을 썼으니, 시야적인 부분은 우세했다.
탕탕-!
곧바로 2명을 헤드샷으로 처리했다.
이유노는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후우, 아까 그 사람은 혼자 어디─.’
타앙!
어?
순간 머리가 꿰뚫렸다.
날아온 방향은 위.
쓰러진 유노는 위를 보았다.
천장 대들보에 대량의 짐을 메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있었다.
3렙 방탄을 써서 성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저길 어떻게.’
시야가 검게 변했다.
곧이어 나온 킬캠 속.
그 사람이 렛지를 통해 대들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 * *
“사람들이 어떤 챔피언을 하고 싶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아세요? 다른 사람들한테 그 챔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거예요. 왜? 그 게임을 졌을 때, 자기가 못난 사람이 안 되려고.”
“요즘 학생들이 그래요. ‘대표님 있잖아요. 요즘에 내가 하는 챔피언이 내 가슴을 뛰게 하지를 않아요.’ 자기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대요. 이 챔프가. 그래서 이건 자기 주 챔피언이 아니라서 이 게임을 15분 서렌하고 가슴 뛰는 챔피언을 계속 찾아다닌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 죽을 때까지 찾아봐라, 찾아지나!”
열띤 강의를 끝낸 남자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단상 아래로 내려온 그가 손목을 내려다봤다.
우웅 웅-
‘무슨 일이람.’
문자 소리에 게이밍 플러그의 대표.
주나무가 손목을 들어 올렸다.
[오늘 수상한 사람 만났어요.]
‘수상한 사람?’
송신인은 게이밍 플러그 소속 게이머인 이유노였다. 주나무는 문자를 확대해서 모든 메시지를 읽었다.
[오늘 수상한 사람 만났어요.]
[어쩌면 야나 이바노프 부계일지도.]
‘야나 이바노프 부계정?’
주나무의 눈이 커졌다.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사실 이유노의 정체는 켄G무비 채널의 주인이었다.
암살자에 재능이 있는 그녀는. 신체 보정이 거의 없는 린이지에서 조차 마법사 죽이기와 원딜 죽이기에 능했다.
‘눈썰미가 좋은 친구니까 가능성은 좀 있네.’
야나 이바노프의 부계정을 발견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혐한 선두주자인 그녀의 채널은 오직 하나만 있으니까.
[확실해?]
[잘은 모르겠는데…… 제 기준에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어서요.]
공식 생체 인증이 되는 퍼스널 계정은 오직 하나이며. 서브 계정은 인당 3개만 주어진다.
유명인은 평소에 1순위 서브 계정으로만 활동하고, 나머지 계정을 밝히지 않았다.
[일단 기록 영상 보낼게요. 한 번 봐보세요.]
“흐음.”
주나무는 문자의 내용을 읽고 비음을 흘렸다.
린이지는 라그나로크의 대통합이나 침략전, 성주 급은 되어야 타 대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대륙마다 고유 던전이 있기에, 일반 사용자의 움직임이 통제된 것이었다.
위의 이유로.
다른 나라의 3대 종목 게임에 서브 계정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상대 국가 유저들의 수준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서브 계정이라니. 그것도 한국 서버에서.’
야나 이바노프는 한국 대륙을 싫어한다.
시스템이 너무 빡빡하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뭐 그런 이유로 말이다.
‘마법사도, 탱커도 똑같은 대우를 받는 대륙이라…….’
그녀는 평등한 환경을 주장했고, 그 주된 반대 사례가 한국 대륙이었다.
‘하지만 야나……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은 전혀 모르지.’
근접으로 붙어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재능이 필요하다. 태생적인 센스와 스킬 완성도가 이를 받쳐줘야 한다.
학창 시절엔 젓가락 보조기처럼 빙의체 방식으로 연습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괜히 하고 싶다고 했다간 어중간한 실력으로 유저 인생 말아먹기 딱 좋았다.
‘어쩌다가 잠깐 잘했다고 재능이 아닌데 말이지…….’
재능이라는 것은 순간적인 1천의 포텐셜이 아니다. 지속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몇 번 잘했다고 재능이 되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은 몇 번의 1천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재능을 착각하곤 하는데.
운에 취해서 본 실력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연속된 1천이 아니면 반기지 않는다. 운을 실력으로 만들 노력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천재들은 이런 걸 모른다.
그들은 운을 실력으로 소화하는 속도가 빠르니까.
그렇기에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흠…….”
하지만 링크를 보냈으니 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링크를 누르고 홀로그램 화면을 확대했다.
삑-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컨트롤 영상이 재생되고.
“…….”
주나무는 말없이 멍하니 영상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