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32화 (32/200)

제32화

#32화

검은 괴물의 크기는 승용차 한 대만 했다. 거기에서 촉수 5개 정도가 뿜어져 나와서 공격하는데, 속도가 아주 빠르진 않다. 현실의 몸을 쓰는 것을 고려한 것 같았다.

‘그래도 좀 버겁긴 하네.’

휙.

고대현은 횡으로 날아드는 촉수를 아래로 피하면서 다가갔다. 가상현실에서 했던 동작을 상기하면서 발을 움직인다.

다행히도 감각이 죽진 않았다.

단지 모래주머니를 단 듯한 느낌이 더해졌달까.

덕분에 몇몇 공격은 방패로 넘겨야 했다. 막으면서. 대현은 손에 쥔 홀로그램 검을 내려다봤다.

손아귀와 팔 등의 신체 부위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생겨난 칼.

사실상 팔만 휘두른다고 보는 게 좋을 정도의 무기였다.

‘이거, 던지면 날아가는 모션도 적용되려나?’

해보진 않아서 모른다. 애초에 던져서 맞추는 게 더 효율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쒜엑!

수직으로 찌르는 동작과 중단 공격을 동시에 피했다. 이하린에 비하면 중구난방이었다.

그래도 나름 잘 피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쒜엑- 쒝!

다만. 갈수록 촉수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난도가 점점 올라갔다.

어렵다.

이하린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하다.

안타깝게도 옆을 볼 시간은 없었다.

당장 피하기에 바쁘니까.

싸우면서 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사기라는 걸 다시금 체감했다.

타탓.

스텝을 밟아서 앞으로 이동한다.

가까워질수록 공격은 복잡해진다.

방어에는 한계가 있기에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지막 한 방은 날려야겠지?’

방패로 막으면서 틈을 보고.

왼쪽 발을 뻗어서 상반신을 앞으로.

오른쪽 팔을 뒤에서부터 크게 휘두른다.

다행히도 홀로그램 검은 똑바로 나아갔다. 그리고 빨간색 수정구에 닿기 바로 직전!

삐익!

안타깝게도 버저가 울렸다.

“제한 시간 종료. 수고했다……. 흐음…….”

선생님이 종료 상황을 알렸다.

말끝을 흐린 그는 가상화면에 나타난 티어를 보고 있었다.

티어는 아이언 2.

상상 이하의 티어였다.

이하린 학생이 자신을 이기고 들어왔다고 해서 대충 다이아겠거니 했는데…….

‘정식 티어, 전형 성적, 학교, 홀로그램 훈련 결과. 모든 정보가 엇갈린다. 이상한 놈이군.’

혼란스러운 나머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형적인 걸 넘어서 기괴한 스텟이다.

티어는 낮고, 홀로그램 결과는 중간.

그런데 특별 전형은 통과라고 하니…….

이하린 학생과는 또 다른 수준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후우, 어때요. 잘 나왔나요?”

“어, 음 그래…….”

차마 이상하다는 말은 못 하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대현은 계단을 내려왔다.

홀로그램 훈련장은 부가 장치 때문에 일반 바닥보다 조금 높았다.약 4칸 정도의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야!”

그때 이하린이 미간을 잔뜩 좁힌 상태로 다가왔다. 볼 안쪽을 질겅질겅 깨무는 걸 봐선 뭔가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그녀가 괜스레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너, 왜 힘 숨기냐?”

“뭐어?”

숨기다니.

이게 전력인데.

대답하려는 순간 발을 헛디뎠다.

발이 허공에 뜬다.

데자뷔를 느끼면서 꼬꾸라진다.

오랜만에 뛰어다녀서 그런지,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게다가 이하린이 잡아당겼으니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앗……!”

이하린이 고대현의 허리춤을 끌어안아서 잡아들었다. 그 덕분에 옆에서 볼 때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고등학생 여자애가 동년배 남자애를 번쩍 들어 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짜, 이게 무슨. 겨우 이거 했다고 넘어져?”

이하린이 힘겨워하는 눈길로 올려다본다.

“씁…… 미안.”

대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하린이 내려줄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곧바로 지면에 발이 닿는 일은 없었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이하린이 대현의 가슴팍에 귀를 대고 으음,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뭐, 뭐하냐 또.”

자신이 왼쪽 가슴 아래가 귓불로 간질여진다. 정수리에서 샴푸 냄새가 올라온다. 맥박을 확인하는 해상 구조 요원 같다.

“으음…….”

“뭐가 으음 이야. 빨리 내려줘…….”

“이상해.”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상한 건 너야.”

어제는 물러나기라도 했지.

오늘은 아주 본격적이었다.

이쯤 되자, 선생님의 시선도 묘해진다.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면 이미 성공이다.

위이잉.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홀로그램 훈련장 내부에 모습을 비췄다. 훤칠한 키를 가진 남학생이었다.

명찰에는 전천후라고 쓰여 있었다.

명찰 색을 보니, 같은 학년은 아니고 선배 같은데…….

고대현이 이하린의 어깨를 톡톡 쳐서 내려올 때 즈음 그가 입을 열었다.

“신입생들이 벌써 여기에?”

“내가 불렀다. 이왕 온 김에 체험 좀 시켜줬지.”

전천후라는 사람은 이해가 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쉬는 시간 거의 끝나간다. 미리미리 올라가.”

전천후의 지적에 둘의 몸이 흠칫 떨렸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잠깐 방문한 것임을 잊었다.

“빨리 가자.”

마침 부끄러운 장면을 보이기도 했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에 대현의 발걸음은 빨랐다.

두 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관 건물에서 사라졌다. 남은 사람은 체육 선생과 전천후뿐이었다.

“강한가요? 저 애들.”

전천후가 질문하자 공중에 나타난 기록 창을 옆으로 건넨다. 그는 체육 선생이 준 홀로그램 창을 훑어봤다.

“여자애는 좀 하네요.”

“그렇지?”

“물론 저보단 아니지만.”

“또또, 그런 소릴 하는군.”

“죄송합니다. 습관이라서요. 그런데…… 이 남자애는 티어가 아이언 2로 표시되어 있는데, 뭐죠? 아무리 봐도 오류 같은데.”

“오류가 아니야. 사람이 측정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오류가 나겠나. 그냥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좀 특이케이스의 학생이지.”

“음, 듣고 보니 이상한 전형으로 티어가 낮은 응시생이 들어왔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골드가 아니라 아이언 2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전천후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매년 게임고에 못 들어오고 떨어지는 사람이 한 트럭인데, 그런 사람들을 제치고 저런 애가 들어왔단 말인가.

특별 전형이 원래 말이 많긴 하다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측정 방식으로는 통과해도 인식이라는 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뭐, 그래도 그게 AI의 뜻이니 그러려니 해야지. 그걸 부정하면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게 되니까.”

“으음…….”

AI라는 단어에 전천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실을 들이대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스템의 덕을 최대한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니까.

“오늘도 몸 풀러 온 거지?”

“네.”

그는 약간의 준비를 마치고서 훈련장 위로 올라갔다.

“난이도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최대로요.”

“알았다.”

곧이어 몬스터 한 마리가 소환되었다. 아주 크지 않고 적당히 작은.

그러나 속도가 굉장히 빠른 놈으로.

쒜에엑-!

그 모습이 돌진한다. 전천후는 아무런 무기 없이 맨손으로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날아 들어오는 공격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했다.

대부분 한 발자국에서 길면 두 발자국 정도일까.

스킬이 아닌 기본적인 움직임.

동작 읽기에 따른 특기인 무빙이 펼쳐진다.

동생의 감지에 비하면 그 범위가 매우 협소했지만, 극에 달한 수련을 통해 최대한의 효율 회피를 이룩해냈다.

“후우.”

마침내 훈련을 마친 전천후는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지금쯤 지수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의 눈빛이 본관 1학년 교실에서 멈췄다.

* * *

“약해.”

막 캡슐에서 나온 신영범이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쯧. 전부 내 기대치 이하였어.”

그가 혀를 차면서 말하자, 교무실에 있던 다른 교사인 시수림이 그에게 핀잔했다.

“바람 검사를 들고 너무 진심으로 하셨어요…….”

바람 검사는 빙의자에 따른 격차가 제일 심한 챔피언.

따라서 신영범 전 길드장이 빙의한 바람 검사의 힘은 챔피언 그 자체를 초월한 것이었다.

“흠, 내 발도술이 좀 빠르긴 했지. 그래도 그 정도는 피할 줄 알았는데, 꽤 실망이었어.”

바람 검사의 찌르기는 칼집에 넣은 다음에 빼야 그 대미지가 더 강하게 들어간다.

그냥 평타를 때리다가 찌르기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구현도가 떨어져서 대미지가 반감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신영범은 속도를 추구했기에.

이러한 찌르기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동작 완성도가 100을 초과하는 일도 많았다.

발도술의 속도만큼은 이 나라에서 제일 빠르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삐리리링- 삥-

“응? 벌써 쉬는 시간 끝이야?”

“저희가 좀 오래 하긴 했으니까요.”

일전의 계곡에서 좀 오래 끌었더니.

캡슐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업 시작종이 울린다. 신영범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냥 쉬어. 어차피 역량평가 주간이라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럼 아랫반 애들은 어떻게 할까요? 일단 그 애들 기록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나중에 해 나중에. 어차피 기록으로 남는데, 뭘 지금 하려고 그러나.”

신영범의 손짓에 김원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역량평가 기간인데, 굳이 지금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오늘은 1군들 상대해주는 거로 하자고.”

“아, 네…….”

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영범의 말이 맞다. 어차피 지금 봐도 큰 차이는 없을 거고, 상위권 반 상대나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때 특별히 보라고 하셨던 아이언 2 학생 말입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이참에 더 봐주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흐음, 그러고 보니 아이언 2가 있었지.”

신영범이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건조한 소리가 주변에 퍼진다.

“갑자기 재능이 개화했다거나. 아니면 일부러 힘을 숨겼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올해 응시생이 전부 쓰레기였거나. 셋 중 하나일 것 같군.”

“갑자기 재능이 개화했다고 보는 게 가능성은 제일 높지요.”

“그랬으면 좋겠네. 나도 나 때문에 들어온 학생이 구설수에 오르는 건 싫으니까.”

올해의 시험 방식은 신영범의 작품이었다. 그러니 특별 전형으로 뽑힌 학생에 대해서는 그가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좌천 검사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그때 한 차례 뜸을 들인 김원이 말했다.

“그게…… 검바람 나락 때 유심히 봤는데, 스킬 동작 완성도가 올 퍼펙트였습니다.”

“뭐??”

다시 컵으로 향하던 그의 손이 떨린다.

올 퍼펙트.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는 그 올 퍼펙트를? 그것도 아이언2가?

“컨트롤 챔피언은 뭐였지?”

“앳쉬입니다.”

“흐음…… 앳쉬라.”

앳쉬는 튜토리얼 급으로 쓰는 챔피언이다. 설마 그거 하나만 해서 올 퍼펙트에 도달할 정도까지 했다는 걸까.

보통은 조금만 하고 넘어가는데.

한 챔피언을 올 퍼펙트까지 연습하는 것보단 다양한 챔피언을 90퍼센트 이상 끌어내는 게 효율이 높으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아이언 2라서 그런 행동을 했을지도 몰라.’

“한데, 카이팅 실력은 어땠지? 그것도 좋았나?”

“아 그게 말입니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여는 김원. 곧 그의 말을 들은 신영범의 눈이 커졌다.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템 자체가 포킹에 중점을 둬서. 카이팅만 뽑아서 실력을 측정하기엔…… 데이터가 좀 모자랐습니다.”

“포킹? 앳쉬가 포킹을?”

앳쉬에게 포킹이란 스킬은 전방위 갈래 화살.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걸 주딜로 쓰진 않을 텐데.

“아이템이 어땠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군.”

김원은 스스로 그게 맞았는지 회상하며 아이템들을 하나씩 말했다.

“제국의 명령이랑 무라마사, 그리고 멸필자와 혈드라를 갔습니다.”

“대강 어떤 의도로 샀는지 알겠네. 거리를 최대한 벌리려고 그런 아이템을 갈 줄이야. 생각보다 소극적인 타입이었군…….”

신영범은 고대현이 뒤에서만 있기 위해 저런 템을 갔다고 생각했다.

강한 근접 딜러를 원하는 그와는 맞지 않는 타입이었다.

“어쨌든…… 그 학생은 원이 선생이 잘해주시고 클로이 연 선생은 올 퍼펙트인 학생 못 봤어요?”

“3명 정도 있긴 있어요. 난도가 그리 높지 않은 챔피언이지만요.”

“흐음, 올 퍼펙트라서 복잡한 챔피언을 기대했는데, 그런 학생은 역시 없는 건가.”

“가끔 찍긴 해도, 전투 중에는 떨어지죠.”

“흐음. 나는 바람 검사로 해도 전투 중에 100이 잘 나오는데 말이지.”

“우우, 비교 대상이 잘못됐어요. 학생들이니까 조금 봐줘야지요.”

“하긴.”

신영범은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