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26화
캡슐이 열리고 40반 인원이 밖으로 나왔다.
빙의체 컨트롤 방식인 LOH는, 그라운드 제로에 비하면 낮은 지구력을 소모하는 게임이기에.
“다들 수고했어.”
덕담 비슷한 게 오간다.
반 인원이 적고 같은 팀으로 게임을 해서 그런 걸까.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고대현은 그렇게 느꼈다.
오히려 보는 시선이 좀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너 생각보다 레전드 오브 히어로 잘하는구나?”
이태원이 고대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컨트롤적인 한계를 그렇게 극복하다니.”
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신경 지구력만 높고, 운 좋게 주챔프였던 뤼븐이 시험에 나와서 입학한 애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타 동작도 좋고.
상대방의 스킬도 잘 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딜량도 1등이었지.’
마지막에 딜량 그래프가 나올 때, 판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패시브가 도트딜인 브란도가 있는 판에서 1등이라니.
자연스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앳쉬는 원래 그런 식으로 했던 거야?”
“아, 그냥…… 지금은 이렇게 컨트롤 하는 게 편해서. 잠시 이렇게 했어.”
말을 종합해보면, 원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결론이 나왔다. 이에 궁금해진 이태원이 질문했다.
“그럼, 원래는 뭐 갔는데?”
“음, 그냥 정석적으로 갔지. 원딜 신화템 상황에 맞는 거 하나랑 나머지는 공속. 방관.”
평범한 대답이었다. 특수한 걸 기대했던 이태원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특이한 템트리로 가서 아이언 2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동작이 딱딱하긴 하다만.
적어도 아이언 2에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판에서는 이하린보다 확실하게 쓸모 있었으니까.
때마침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유금옥이 이하린에게 질문했다.
“하린이, 너는 종합 티어 골드 4더니. 설마 레오히가 평균 다 깎아 먹은 거였어?”
“으, 응…….”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하린.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상황 파악을 못 해서 판이 점점 기울었다. 평타 모션 캔슬 때문에 킬을 못 딴 적도 많았고…….
결과적으로 팀의 구멍 역할을 했으니, 얼굴을 들 면목이 없었다.
“어째 트롤할 줄 알았던 사람은 안 하고 엄한 사람이 하네.”
허건섭이 혀를 차면서 말하자, 유금옥이 그를 째려봤다.
“야, 말조심해. 1학기까지는 같은 팀인데 트롤이 뭐야, 트롤이.”
‘지, 지가 먼저 말했으면서…….’
허건섭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쭈뼛거렸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이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곧이어 다음 검바람 나락이 시작되었다.
* * *
검바람 OT가 모두 끝나고.
어느덧 반나절이 지나서 저녁이 되었다.
일과를 마친 대현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후우, 오늘도 보람찼다.”
기숙사의 방문이 열리고.
대현은 후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이제 내일은 언더 워치인가…….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일전의 게임을 상상했다.
39반과 격돌한 검바람 나락.
게임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패배였다.
3명이 잘린 상태임과 더불어 갱그플랑크가 체력 5% 이하의 적을 처형하는 아이템을 산 나머지. 피흡 할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역시, 2개의 처형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나름 만족한다.’
대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막혔던 카이팅이 점점 원래의 위치를 찾아간다. 이대로 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언더 워치도 계속하다 보면 되겠지.
‘안 그래도 오늘 이하린, 유금옥이랑 3인 큐를 하기로 했으니…….’
이어지는 검바람 나락.
이하린은 계속된 실수를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잘하다가, 막상 적이 오면 스킬 캔슬, 평타 캔슬을 밥 먹듯 한 것이었다.
해서, 오늘 유금옥이 멘토로서 이하린을 봐준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이하린이 자신을 지목해서 같이 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제 내려갈 준비나 해볼까?’
그렇게 대현이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순간이었다.
딩동.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지? 문을 열었다.
이하린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안녕.”
“너, 왜 여기까지 왔냐?”
“응? 데리러 온 거잖아.”
얘 설마…….
대현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여자가 남자 층 오면 벌점이야.”
“아, 앗…….”
에에엥.
때마침 천장 경보음이 울린다.
한차례 경보음을 뱉어낸 스피커가 차가운 현실을 읊었다.
[이하린(학생), 이성 기숙사 출입 확인.]
[벌점 10점이 부여됩니다.]
[지하 캡슐실 사용이 3일 제한 됩니다.]
“…….”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그래서 너 혼자 온 거야?”
“응.”
유금옥은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냥 우리 둘이 해야겠다.”
“응? 나랑?”
대충 약속이 파투 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 반, 그냥 캡슐실에서 게임하기 위해 반으로 내려왔는데 2인 큐라니.
원래 이하린이 지목해서 같이 하려던 그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하린의 움직임엔 관심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이하린이 없는 지금은 딱히 같이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유금옥이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너 아이언 2잖아.”
이 자식이……?
“……오늘 탈 아이언인 거 봤을 텐데?”
이어지는 검바람 나락에서 꽤 쏠쏠한 성적을 냈다.
수업이 끝난 뒤, 허건섭이 ‘믿겠다. 너는 탈 아이언이군.’이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말이다.
“아니, 너도 이하린처럼 모자란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 솔직히 레오히에서도 너무 목석같았고…… 여하튼, 다른 게임도 미리 해봐야 하지 않겠어?”
“끄음…….”
유금옥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내뺄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꾸 아이언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진달까.
‘실력으로 참교육 좀 해줘야겠군.’
결국, 레오히는 어느 정도 검증이 끝났다는 이유로 언더 워치부터 하기로 했다.
[게임에 참가합니다.]
비정규 일반 게임 수락 후.
유금옥은 립허, 고대현은 켄지를 골랐다.
“켄지? 그거 빨라서 컨트롤 하기 어려운데 괜찮겠어?”
기계 사원 맵에 진입한 유금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립허의 모습으로 말해봤자 별 감흥은 없지만…….
“괜찮아.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음, 굳이 연습을 켄지로?”
유금옥은 의문이었다.
켄지는 빠른 2단 점프와 벽타기를 쓰는 챔피언.
정신없고 시야도 어지러워서 트레리스 다음으로 기피되는 챔피언이었다.
린이지의 특정 클래스나 기술을 전공할 게 아니라면, 현재의 대현에게는 오버픽이었다.
물론 켄지의 현란한 컨트롤.
그것을 보고 나면, 누구나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마음은 이해하는데…….’
그녀의 시선이 측은해졌다.
켄지는 대부분 얼마 못 한다.
아무리 운동 능력치를 보정 받아도.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에 적응하긴 힘들다.
사실 유금옥도 그러한 이유로 켄지를 포기했었다.
‘켄지는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는 사람이 해야지…….’
유금옥이 양손의 샷 건을 들어 올렸다.
크기는 상당했지만 본래 자신의 것처럼 손에 딱 맞는다.
언더 워치도 레전드 오브 히어로처럼, 빙의체가 일정 부분 신경 지구력을 부담하는 구조인지라 힘들지 않았다.
유금옥은 신경 지구력이 좋은 편이지만, 신경 지구력 소모가 많이 없는 편한 챔피언을 선호했다.
‘신경 지구력은 개인의 최대치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신경 지구력은 투자 시간 대비 증가량이 적다.
그래서 사격 실력을 늘리거나 스킬 시전을 연습하는 애들이 많았다.
지구력이고 뭐고 결국 맞추면 이기는 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근데 요즘은 점점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라그나로크.
이때 북부 접경지, 러시아대륙의 전사들은 돌격보단 굳히기를 선택했다.
무조건 전투를 길게 끌어서, 상대를 지치게 하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었다.
‘앞으로 메타가 바뀔지도 모르겠네…….’
치익.
[기계 사원 : 사단]
[정복 지역 활성화 중…….]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팀원들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촤아악.
곧바로 초록색 궤적을 그리며 돌진하는 켄지.
‘나중에 죽고 바꾸겠지?’
유금옥도 영혼화와 그림자 교체를 이용해 사각으로 이동했다. 상대의 뒤를 잡을 계획이었다.
립허는 붙었을 때의 대미지가 강해서, 뒤를 치면 어지간해선 금세 다운되니까.
스르륵.
그림자 교체를 통해 건물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저격하고 있는 위도 테이커를 발견했다.
탕탕!
간단하게 컷하고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 고대현의 켄지가 트레리스와 교전하고 있었다.
이단 점프를 하면서 각을 보다가 딸피가 된 순간 돌풍참. 그리고 초기화된 돌풍참으로 다시 돌진해서 힐팩을 먹는다.
‘오, 돌풍참 컨트롤은 꽤 하네.’
유금옥은 과거, 켄지를 컨트롤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켄지는 킬이나 어시를 올리면 돌풍참의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그래서 적당한 딸피를 노리고 쓴 다음, 연속적인 돌풍참을 쓰는 게 좋았다. 킬을 따는 동시에 힐팩까지 먹으면 더 좋고 말이다.
‘근데…… 트레리스도 일반 비정규치고는 좀 하는 편이었는데…… 생각보다 대응을 잘했네?’
유금옥은 쓰러져있는 트레리스의 시체를 유심히 살폈다. 오랜만에 보는 트레리스의 플라즈마 권총.
그 작동 방식을 떠올렸다.
각 총에 있는 2개의 방아쇠.
제1 방아쇠는 탄환 발사.
제2 방아쇠는 점멸 발동.
추가로, 가늠자 아래의 해머 버튼을 누르면 행동 역행을 쓸 수 있는데.
이 권총은 작지만, 초당 피해량이 높은 무기라서 딜이 강했다.
‘물론, 붙어야 강하지만.’
트레리스도 립허와 마찬가지로 붙어야 강한 대미지를 줄 수 있다. 립허의 영혼화와 그림자 교체를, 트레리스는 점멸과 동작역행으로 수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어려워서 트레리스가 외면받는 거지. 궁극기 부착도 엄청 어려운 편이고…….’
생각을 마친 유금옥은 전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제 슬슬 궁게이지가 찼다.
그녀는 영혼화를 통해 이동했다. 팔을 뒤로 뻗으며, 몸에서 힘을 뺀다.
적진 중앙으로 향한다.
삑.
[동작 구현 : 76%]
다만 동작 구현율이 76%인 탓에 영혼화가 예상보다 빨리 풀렸다.
“쳇.”
하는 수 없이 예정보다 빠른 죽음의 회전을 사용했다.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샷 건을 난사한다.
영혼화가 없으면 궁극기가 끝난 뒤 죽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으나.
“휴, 살았다.”
계획대로, 유금옥은 패시브인 영혼 흡수를 이용해서 간신히 살아나갔다.
빠져나간 그녀는 잠시 뒤로 빠져서 힐러 챔피언인 로시우의 옆에 붙었다.
그 후로는 안정적으로 제단을 점령하는 시간이었다. 자리에 눌러앉아서 방어만 하고 있자, 자동으로 점령 게이지가 차오른다.
[점령 중…….]
‘이제 거의 다 찼다.’
그렇게.
아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구석에서 나타난 로드 피그가 고철 산탄총을 들고 점령지를 정조준했다.
그리고.
뀌에에엑—!!
궁극기인 돈재앙을 시전했다.
넉백 효과를 가진 연발 기술이기에.
점령지에 있던 아군이 모두 뒤로 쓸려나간다.
텅텅텅텅-!!
[동작 구현 : 40%…… 60%…….]
돈재앙은 짧은 시간에 강한 부하를 주는 궁극기 중 하나.
산탄총을 들고 버틸수록 넉백 거리가 늘어난다.
하나. 둘. 셋.
점령지의 모든 아군이 뒤로 밀려날.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타탓-
“켄지?”
이단 점프와 돌풍참으로 뛰어온 켄지가 로드 피그의 앞에 섰다. 유금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거, 설마 매드무비 보고 따라 하려는 거야……?’
켄지의 검날 흘려내기.
한때 이 스킬에 대한 매드무비와 강의가 판을 쳤다.
너무 멋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면 아군의 공격으로 만들기까지 하는 궁극의 기술!
‘하지만 고대현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일 텐데…….’
기대는 사치다.
이는 유금옥도 알고 있다.
그녀도 한때 켄지를 했기에—.
“아아, 안 돼…….”
찰나의 회상에서 돌아오자, 켄지의 검날 흘려내기가 시작되었다.
유금옥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팅-!
그다음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튀는 듯한 스파크 소리가 귓전을 침범한다.
팅팅팅팅-!
1초.
탱탱탱탱탱-!
2초.
팅티티티팅티팅-!
3초.
탱태앵탱팅팅-!!
“어……?”
눈이 가늘게 뜨였다.
뜨여서 앞을 응시한다.
눈이 점점 커진다.
로드 피그가 역으로 날아간다.
옆에 있던 상대팀까지도…….
“아—.”
유금옥의 시선이 고정된 곳.
켄지가 모든 돈재앙의 탄알을 정확하게 ‘반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