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21화
몇 시간 뒤.
40반의 전 인원은 상담을 마쳤다.
이하린을 제외한 대부분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린이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단다. 팀 게임인데.”
“네에…….”
이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고 싶지만.
괴력에 대해 큰 꼬투리가 잡히지 않은 거 만해도 다행이었다.
아직 그 기술은 너무 드러내고 다니면 안 된다고 그랬으니까.
김원은 아이들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말을 이었다.
“학교 코인으로 내부 물건도 살 수 있으니. 내일 아침에 쓸 사람은 써보거라.”
정산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었다.
훈련 대륙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쓸 수 있게 만들다니.
‘결국, 많을수록 좋다는 거네…….’
“생체인식으로 자동 결제되니까. 그냥 손가락만 대면 돼.”
김원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30반까지 살펴야 했으니 그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문이 닫히고, 교실에는 다시 학생만이 남았다.
“여기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자율인가?”
“그럴걸?”
“그럼 지금 가자.”
드르륵.
교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하린.
다른 애들이 그녀를 따돌린 건 아니었다.
그저 고대현을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에 권유를 거절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이익-
기다리고 있자니, 별안간 고대현이 캡슐에서 나온다.
“가자.”
“기다리고 있었어?”
대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이해했다.
그래 봐야 빵이지만.
그래도 받긴 했으니 기다려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애들은 먼저 갔어.”
“그래 보이네.”
대현과 이하린은 복도를 이동했다.
이쯤 되자 다른 반에서도 한두 명씩 나와서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으로 가는 중앙 계단은 20반의 앞에 있었다.
“다른 반은 넓어서 좋겠다.”
마침 할 이야기도 없으니.
이하린은 마음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20반 즈음 오니까 교실 크기 차이부터 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교실에 음료수 뽑는 기계도 있네.”
“1반은 안에 라운지랑 음식 주는 곳도 있던데 뭐.”
“진짜??”
대현의 말에 이하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커졌다.
“2학기 때는 꼭 위로 가야겠다.”
“그러게.”
대현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말문을 트면서 이동하는데…….
“아.”
“어.”
돌연, 임상배와 마주쳤다.
임상배의 멀대같이 큰 몸이 경직된다.
그가 고대현을 위아래로 훑다가.
쯧.
혀를 차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였다.
시선이 고대현 옆에 있는 이하린에게 닿았다.
찌릿.
꿀꺽.
자동으로 그때의 기억이 그의 뇌리에 재생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다리가 저리고, 목 부근을 방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크흠.”
임상배는 주머니에 넣던 손을 뺐다.
어중간하게 향하던 손이 짐짓 허벅지를 긁고 올라온다.
그들은 같은 복도에서 미약한 냉전 상태를 유지하며 학생 식당까지 향했다.
식당은 줄이 2개로 길게 나 있었다.
음식은 빨리 나와도 고질적인 좌석 문제 때문에 대기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임상배는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옆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한국 대륙은 원딜러의 대우가 높지만, 서양인들이 많은 대륙에서는 큰 상관이 없었다.
특히 북부의 러시아대륙은 저런 걸 더 좋게 봐준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 괴력. 평범한 건 아니다. 나중에 유학 예정인 사람인가?’
임상배가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치면서 보고 있자니, 별안간 시야에 전지수와 정태룡이 잡혔다.
기간티아 성의 전지수와 레기온 성의 정태룡.
괴물 같은 라인업 옆으로 1반에서 3반의 멤버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흠, 인맥을 늘리려면 저쪽 사람과는 반드시 친해져야 한다.’
게임고의 존재의의는 게임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위급 자제들과의 인연.
그 자체가 이 학교의 메리트기도 하니까.
그가 한창 상위권 사람을 관찰할 때였다.
“대현아.”
‘어?’
전지수가 고대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를 알아본 학생들이 저절로 길을 비켜준다.
“여기.”
“응? 이게 뭐야?”
“아까 짐 든다고 고생했잖아.”
음료수 하나를 건네고 다시금 1군 무리로 돌아간다.
“설마 오티 때 만난 애한테 준 거야? 인성이 좋네.”
“저게 1군?”
“역시 차기 성주인 건가.”
그 행동에 학생들이 입을 모아서 수군거렸다. 약간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오직 임상배만이 얼굴을 굳히고 가만히 서 있었다.
* * *
밥을 먹고.
여차여차해서 지금.
“오늘 하루는 이렇게 끝인가.”
기숙사로 돌아온 대현이 중얼거렸다.
오늘 일정은 자율적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인원이 피드백 받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오래 걸린 것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말 튼 사람 한 명은 생겨서 다행이다.’
이하린과는 타입이 비슷해서 그런지 할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대부분 질문을 받는 형태였지만 말이다.
대현은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따 저녁에 2인큐나 해보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으니 이제 지하 캡슐방에서 같이 해볼 시간이었다.
우웅.
그때였다. 스마트 워치가 진동하면서 메시지가 왔다.
이하린이었다.
[나 오늘 엄마랑 일 있어서 안 될 듯. 미안미안.]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어머니한테서 배웠다고 얼핏 들었는데, 오늘도 비슷한 걸 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네. 혼자 하지 뭐.’
어차피 그간 혼자 했기에 달라진 건 없으니까. 고대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마트 워치를 매만질 때였다.
우웅.
또 메시지가 왔다.
이번에는 친구, 최성재에게서 온 것이었다.
[야 학교는 어떠냐??]
아무래도 게임고의 삶이 궁금한 듯했다.
[그럭저럭 괜찮았음. 시설도 좋고. 아, 반 시설이 별로이긴 한데…….]
[오늘은 뭐 했냐.]
[그라운드 제로]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네 ㄷ ㄷ]
고대현은 최성재와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다음날 일정에 대해서 말하던 중.
[그럼 나 한 번 봐줄 수 있음?]
[뭐를, 설마 LOH를?]
[ㅇㅇ]
갑자기 레전드 오브 히어로를 가르쳐주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 버렸다.
‘친구를 가르쳐준다, 라…….’
솔직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각을 마친 그는 답장을 보냈다.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ㅇㅇ]
되짚어보니 오늘의 퀘스트에 LOH 퍼스트 블러드 1회가 있었다.
이참에 같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고대현은 방 한편에 있는 가상현실 헤드셋을 꺼내서 접속했다. 그리고 최성재가 파놓은 레오히방에 들어갔다.
“뭐부터 할래?”
“음, 일단 훈련 모드에서 하다가 일반 봇 듀오로 가자.”
대강 회의를 마친 그들은 훈련 모드에 돌입했다. 최성재는 포지션이 서포터였으므로,
“쓰렉시?”
무난한 서포터인 쓰렉시를 픽했다.
“쓰렉시가 좋다고 해서. 연습해보게.”
“음, 쓰렉시가 좋긴 하지.”
쓰렉시는 다른 그렙류 챔피언에 비하면 속도가 느리지만.
그렙을 한 다음 상대 쪽으로 이동할 수 있고. 마당 쓸기를 이용해서 상대 기술을 끊을 수도 있다.
‘랜턴으로 아군을 구조할 수도 있으니까 잘만하면 든든한 서포터지. 물론 잘 하면이지만…….’
캐이사를 픽한 고대현은 봇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렙하는 팁에 대해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쓰렉시는 그렙하기 전에 모션이 커서 적당하게 페이크를 줘야 잘 걸려.”
“페이크를 어떻게 주는데?”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오른쪽으로 그렙해 봐.”
“흐음.”
최성재의 쓰렉시가 왼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발걸음에 맞춰서 오른쪽으로 그랩했다.
하지만 모션이 너무 티가 나서 큰 효과가 없어 보였다.
“던지기 바로 직전에 방향 바꾸기가 좀 어려운데…… 애초에 쏘는 방향도 힘을 주기가 어렵고.”
그렙 직전에 채찍을 빙빙 돌리는 모션.
그것을 왼쪽으로 날리는척하다가 팔 방향을 바꾸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흠, 하긴 처음 하면 어렵긴 하겠네.’
그렙의 스킬 동작 완성도를 생각하면, 팔의 방향을 전환할 때 구현도가 떨어질 확률이 컸다.
“너도 한 번 해봐.”
“나?”
옆에서 보고 있자니, 최성재가 쓰렉시로 그렙 시범을 보여달라 한다.
못할 것도 없기에 쓰렉시로 챔피언을 바꿨다.
그리고 쓰렉시가 왼쪽을 보게 맞춘 뒤, 그렙할 순간에 오른쪽을 클릭했다.
촤락.
잘 모르면 당하기 쉬운 페이크 그렙이 재현되었다.
“오오. ……생각보다 잘하네?”
“이제 실제로 봤으니까 잘할 수 있지? 몇 번 더 해봐.”
자신이 시범을 보였으니 이제는 최성재의 차례다.
최성재는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했다.
촤라락.
[동작 구현 : 60%]
물론 구현도가 떨어져서 그렙 대미지가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제 실전에서 쓰면, 예전보다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 있겠지.
“너 그렙하면서 뒤에 랜턴 주는 거는 할 줄 알지?”
“할 줄 알지. 당연히.”
쓰렉시는 아군이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랜턴 스킬이 있어서 그렙에 성공한 뒤, 아군을 합류하게 하는 것이 주된 컨트롤 방식이었다.
“그럼 계곡으로 가자. 랜턴은 거기서 하는 거로.”
랜턴은 아군 구출용으로 쓰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실드를 주기에 쓰레기의 그렙 다음으로 중요도가 높은 스킬.
랜턴은 역시 사람과 붙어야 하기에, 바로 소환사의 계곡으로 게임을 전환했다.
[소환사의 계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현과 성재는 적당히 정글몹을 리시해주고, 봇으로 이동했다. 최성재는 당연하게도 쓰렉시, 고대현은 사미러였다.
“사미러, 그거 어렵다고 들었는데 괜찮겠냐?”
사미러는 원거리 딜러임과 동시에 빠른 이동이 가능한 챔피언이었다.
게다가 궁극기가 계속 회전하면서 총을 쏘는 방식인지라, 난전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게 일반적이었다.
“사미러 정도는 문제없어.”
고대현은 최성재의 걱정을 일축했다.
어차피 사미러 정도는 PC 모드로 몇 번 해봤고. 지금은 미니언을 먹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탕- 짤랑- 탕- 짤랑-
그 뒤로는 미니언의 막타를 치면서 골드를 수급하는 시간이었다.
탑, 미드, 바텀.
각 라인으로 오는 상대 미니언들이 죽을 지점에 맞춰서 막타를 치면 골드가 들어오는데.
미니언의 HP 상황과 상대 스킬 견제를 동시에 하는 것이, 초보들이 빨리 숙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고대현은 미니언 막타를 치면서 상대 라이너를 응시했다.
상대 챔피언은 붸인과 록스.
아주 강한 조합은 아니었다.
록스의 몸이 약한 걸 고려하면, 한 번의 그렙 성공으로 킬 각도 볼 수 있겠지.
“그렙 각 잘 봐. 괜히 그렙한다고 앞에서 서성이다가 주박 스킬 맞지 말고.”
“알았어.”
팀간 전음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최성재.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3렙 타이밍이 되었다. 그는 상대 록스의 스킬인 빛의 주박이 빠지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자니.
별안간 영창과 함께 록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록스는 상대를 속박할 수 있는 속박기와 광범위 딜링기 2가지가 있기에, 첫 속박에 안 맞는 게 중요했다.
최성재는 스쳐 지나가는 빛을 아슬하게 피한 다음.
고대현이 알려준 동작을 취했다.
앞으로 가면서 록스한테 그렙하는 척하다가─.
촤락.
붸인에게 그렙을 날렸다.
붸인은 자신에게 그렙이 날아올 줄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구르기조차 쓰지 못하고 목에 사슬이 걸렸다.
“들어간다!!”
최성재가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랜턴을 던졌다. 고대현의 사미러가 거기에 탑승함과 동시에 쓰렉시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촤라라락.
쓰렉시의 몸이 앞으로 이동한다.
목에 사슬이 걸린 상대 붸인에게.
2명이 동시에 돌진한다.
삑.
[동작 구현 : 75%]
다만, 구현도가 떨어져서 날아가는 거리가 살짝 짧았다.
“엇…….”
“당황하지 말고, 마당 쓸기로 끌어와!”
일정 경로의 적을 당기거나 밀어내는 마당 쓸기. 대현의 오더에 따라 마당 쓸기를 시전했다. 다행히도 끝단에 닿았다.
붸인은 선고 볼트를 장전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마당 쓸기에 당했다.
록스는 빛의 주박이 빠진 상태라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퍼스트 블러드!
[사미러 -> 붸인]
봇에서 퍼스트 블러드가 나왔다.
고대현은 퍼스트 블러드 퀘스트가 완료되었음을 상기하며, 최성재에게 말했다.
“아까 보니까 가르쳐준 거 잘 쓰던데?”
“어, 덕분에 잘됐다, 야.”
최성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슬을 내려다봤다. 붸인과 록스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약간의 팁으로도 꽤 많이 발전한 게 느껴졌다.
“이제 시작이니까 긴장 풀지 말고. 이제 집 가서 아이템 사자.”
“알았어.”
최성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귀환했다.
“아, 그리고 너 신발은 신속신 사라.”
“응?”
그의 아이템 벨트에 노란색 신발 토템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