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17화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을 때 즈음.
대현의 모니터 구석에서 작게 움직이는 형상이 잡혔다.
오른쪽 나무 뒤에 2명.
왼쪽 바위 뒤에 2명이 있었다.
키보드를 계속 누르며 뛰어가던 대현의 캐릭터가 바위 뒤에 엎드렸다. 전지수도 비슷한 속도로 그의 옆에 엎드렸다.
그녀는 숨을 돌리며 총을 꺼냈다.
흔히들 카구팔이라고 부르는 총이었다.
전지수는 그 위에 4배율 스코프를 달고, 상반신을 옆으로 기울였다. 능숙한 동작에서 프로의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서는…… 내가 다 처리할 거니까. 넌 쉬어.”
전지수는 앞서 고생한 대현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괜히 그런 질문을 해서 자격지심을 자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마 그게 맞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무리하게 움직일 리가 없으니.
“후우.”
전지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타앙─!
스코프 너머의 한 명이 헤드샷을 맞고 쓰러졌다.
깔끔한 클린 히트.
즉사였다.
철컥-
탄피가 금속음을 내며 지면에 떨어진다.
전지수는 이어서 총알을 장전하고, 다음 타깃을 노렸다.
‘다들 구석으로 피했네. 역시, 게임고는 게임고라는 건가.’
교전 중에 끼어들어서 쐈거늘.
민첩한 벌레처럼 숨어버렸다.
‘자리를 이동해야겠다.’
전지수가 상반신을 일으킬 때였다.
“잠깐! 지금 왼쪽에서 한 명이 이쪽 조준 중이야.”
“뭐?”
전지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대현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즉, 바위 너머를 보고 있지 않은 상태.
‘슬쩍 본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바닥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멈춰있는 신호’가 아주 미세하게 잡혔다.
“아! 지금은 옆으로 이동하고 있어.”
“…….”
전지수는 고대현을 곁눈질로 응시했다.
대현은 거의 ‘굳었다’라고 표현할 만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신뢰성은 둘째치고 가능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탐지계 비술 사용자는 아닐 텐데…….’
같은 류의 사용자끼리는 서로 간의 느껴지는 기운이 있다. 하지만 고대현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바위 뒤에서 가만히 있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미묘하게 대치를 이루던 적들이 뒤로 뿔뿔이 흩어졌다.
전투보다는 안정적인 생존을 도모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대현은 언성을 높였다.
“뭐야, 다 갔네? 몇 명 정도는 접근할 줄 알았더니.”
고대현이 아쉬워하자, 전지수가 말했다.
“아무래도 첫인상이니까. 다들 알게 모르게 신경은 쓰고 있나 봐…….”
‘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건가?’
듣고 보니,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이 현 상황을 관전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오래 살아남는 게 무의식적 평가는 좋게 작용하겠지.
애애애앵!!!
그때 섬 곳곳에 있는 경보기가 울리고, 대현의 모니터 화면에는 경고 문구가 떠오른다.
띠링-
[전기장 범위가 축소됩니다. 2단계.]
이동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라운드 제로는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계속 줄어드는 게임이니까.
“일단 이동부터 하자. 보니까 섬 아래쪽 중심으로 줄어들 것 같아.”
흔히들 밀베라고 부르는 장소.
그 부근까지 가려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으니.
대현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짐을 메고 움직였다.
뒤에서 그걸 보던 전지수는 이동 수단을 떠올리며 말했다.
“차 탈래?”
“차 좋지. 근데 그것보단…….”
대현은 문득 눈에 띄는 이동 수단을 가리켰다.
“저게 좋겠다. 지금 섬 하나에 200명이나 몰아넣어서, 육지로 가면 위험할 것 같고, 차라리 지금 저거로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침 해안 마을인지라, 수면 위에 2인용 아쿠아 바이크가 있었다.
“……아쿠아 바이크? 근데 가서 타기엔 물길 중간에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되지.”
“어? 잠깐!”
풍덩.
그때 갑자기.
고대현이 물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3렙 가방과 총을 멘 상태로.
허걱, 그걸 보던 전지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 * *
탕─!!
활엽수와 빈집이 만연한 풍경.
그런 장소에서 경쾌한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걸로 4팀째…….”
임상배가 낮게 웅얼거리며 총을 내렸다.
그의 어깨에 밀착된 개머리판의 압박이 약해졌다.
멀리 쓰러져 있던 사람은, 조금씩 움직이다가 이내 상자로 변했다.
그는 4배율 스코프가 달린 AKM을 내리고, 창밖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네가 가서 파밍 해줘. 나는 뒤에서 엄호하고 있을게.”
“뭐어?”
“왜? 총소리 때문에 다가오는 팀이 있을 수도 있잖아. 한 명은 뒤에서 봐줘야지.”
태연하게 말하는 임상배.
“으…….”
이하린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상자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절그럭- 절그럭-.
계단을 내려가자 장구류가 서로 부딪친다.
소음원은 그녀의 빵빵한 3렙 가방이었다.
가방의 양옆에는 M416과 샷건이 있고, 엉덩이에는 프라이팬. 가방에는 총알과 스코프, 붕대, 구급상자까지 있었다.
거의 모든 짐을 이하린이 드는 구조였지만. 그녀는 임상배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임상배는 방금 쏜 총알로 벌써 4팀이나 처치한 상태였다.
섬에 떨어진 애들이 전부 게임고 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실력자들을 상대로 그만한 성과를 거뒀으니까.
이에 따라, 지구력이 더 좋은 사람이 짐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말투가 재수 없어. 특별전형을 무시하는 듯한 말도 하고…….’
기분이 나쁜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일까.
이하린은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며, 눈앞에 있는 상자를 벌컥 열었다.
구성품은 샷건과 소총 한 정.
약간의 총알과 붕대 하나…….
정말이지 빈약한 구성품이었다.
내부에 아드레날린 주사 하나쯤은 있길 바랐던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하린은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함을 견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기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절반은 버리고도 남았을 중량이었다.
‘고대현도 나랑 비슷한 포지션일 것 같은데…….’
말이 특별 전형이지.
사실상 상위권을 위한 짐꾼 용병이 되어버렸다.
이럴 거면 그냥 반별로 5명씩 팀을 하는 게 나았을 텐데.
“후, 일단 빨리 끝내기나 해야겠다…….”
이하린은 은엄폐를 하고 있던 건물로 향했다.
2층으로 된 주택.
그 2층에 임상배가 있으니.
탕-!
“어?”
그때였다.
집에서 들려오는 총성.
설마 누군가가 침입한 건가?
이하린은 재빨리 움직였다.
집 문이 열려 있었다.
그때 팀간 전음으로 구조 요청이 들려왔다.
“한 명은 나랑 대치 중. 나머지 하나는 계단에서 잠복 중일 거다. 빠른 돌파 후 합류 요망.”
침착한 브리핑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빠르게 돌파하냐고…….’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붙으면 강하다.
그러니 붙으면 된다.
이하린은 눈앞에 있는 나무 계단을 응시했다.
약해 보이니까 저건 안 되겠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정면 돌파보단 우회를 선택했다.
임상배에게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으니까.
툭.
가방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무기만 챙겼다.
그리고 집 외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나온 널빤지와 지붕을 통해서.
드디어 2층 창문에 도달했다.
임상배와 여자 한 명이 총격전을 벌이는 게 보인다.
실력은 임상배가 조금 더 높은듯했다.
여자애 혼자만 붕대를 감고 있기에.
쨍그랑-!
틈을 노리고 진입한 이하린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뇌의 리미터를 약간 풀었다.
“뭣?!”
붕대를 감고 있던 여학생은 곧바로 몸을 뒤로 던지며,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꺼냈다.
‘역시 반응이 빠르다.’
이하린은 내심 감탄하면서 준비했던 여분의 코트를 투척했다. 투척하면서 극하단으로 구른다. 시야가 가려진 탓에 총알이 빗나간다.
“합!”
그대로 일어나면서 복부에 돌려차기.
이어서 허리를 비틀며 상단차기.
무릎으로 명치를 가격했다.
현실이었다면 당분간 일어나지 못했을 타격.
“이런!”
하지만 가상현실은 일정 통각 이상이 차단되기에.
적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권총을 다잡는다.
일촉즉발의 상황.
‘은 아니고…….’
탕!
그보다 먼저 이하린이 권총으로 헤드샷을 날렸다. 이런 경험이야 많으니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탕—!!
“뒤를 봐야지. 한 명 더 있다니까.”
다만, 컨트롤에 있어서 헛점은 존재했다. 리미터를 완전히 풀지 않으면, 다수와의 싸움에서 취약했다.
털썩.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던 적이 쓰러지고.
임상배가 총을 어깨 위에 올린 뒤.
이하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결과물을 응시했다.
‘몇 반인지는 모르겠는데 40반에 지네.’
40반 학생한테 죽은 누군가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낸다.
그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앞으로 그런 거 하지마라. 짐꾼이 죽으면 나 혼자 어떻게 버티냐?”
“뭐……?”
기분 나쁜 말투에 이하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임상배는 이를 무시하고 상자로 변한 적들의 장비를 훑었다.
“흠, 다들 많이는 안 들고 다니는군. 이쯤 되면 더 들고 다닐 만도 한데…….”
임상배는 스코프를 교체했다.
그리고 지도를 보며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네가 들고 다녀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이하린은 고개를 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전기장 범위가 좁혀오고 있으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이동해야 했다.
‘이번 판 끝나면 앉아서 쉬고 있어야겠네…….’
안 봐도 그런 미래가 그려진다.
피로감이 점점 증가한다.
그녀는 온몸이 푹 젖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발을 떼었다.
그렇게 섬의 중앙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 저기!”
이동수단 중 하나인 버기를 발견했다.
이하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걸 타고 가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임상배가 먼저 선수를 쳤다.
“저건 소음이 커서 좀…….”
‘이런 씨…….’
이하린의 미간이 구겨졌다.
* * *
한편.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대현의 몸이 물속에 잠겼다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그리고 아쿠아 바이크가 있는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전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보통 물로 갈 일이 있어도, 짐을 다 내리거나 최대한 간소화 시킨다. 저런 식으로 뛰어드는 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 상태로 헤엄치려면 힘이 꽤 많이 들 텐데…….’
부르릉.
그때 아쿠아 바이크의 시동이 걸리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대현이 아쿠아 바이크를 끌고 뭍으로 왔다.
“타.”
“으, 응…….”
전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쿠아 바이크에 탔다. 뒷좌석에 앉으니 앞에 있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은 아랫부분만 젖어 있었다.
짐의 보호 또한 완벽했다.
‘누구한테 배운 거지?’
그녀는 의문을 느끼며, 움직이는 아쿠아 바이크 위에서 총을 다잡았다. 아쿠아 바이크도 소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공격을 대비해야 했다.
부우웅.
아쿠아 바이크가 나아감에 따라 주변 풍경이 뒤로 밀려난다.
크게 우회하는 것이라 한동안 이렇게 가야했다. 정적 사이로 물보라 치는 소리가 파고든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오른쪽으로 푸른색 전기장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전지수가 말했다.
“잘못하면 중간에 세운 다음에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럼 지금 내릴까?”
전기장 범위에 들어가면 지속적인 대미지를 받는다.
그리고 전기장 단계가 올라감에 따라 신경 부하가 강해진다. 몸이 무거워진다는 소리였다.
‘속도로 보면, 대충 왼쪽으로 도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야. 아직 여유 있어.”
대현은 전지수의 의견을 확인하고, 다시금 아쿠아 바이크의 속도를 높였다. 투덕거리는 엔진 소리가 고즈넉하게 퍼져나갔다.
탕! 탕!
그때였다.
총소리와 함께 아쿠아 바이크의 옆과 앞으로 물이 튀어 올랐다.
누군가 저격을 하고 있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발각된 모양이었다.
탕! 푹─.
방탄조끼를 입은 대현의 상반신에 총알이 박혔다. 순식간에 체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
게임고답게 저격 실력이 꽤 괜찮았다.
‘어쩌지. 내려야 되나? 아, 그러고 보니 내리면 못 쏘는구나.’
고대현이 키보드를 통해 방향을 조정할 때였다.
“위치 알아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어?”
아까와 마찬가지로.
전지수가 카구팔을 들었다.
“그대로, 앞으로, 최고 속도로.”
“아, 응…….”
그리고 어딘가를 조준했다.
벌써 위치를 알아냈다는 건가?
다음 순간.
그녀가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