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16화
아이언 2라는 말에 정적이 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일 먼저 침묵을 비집고 들어온 이는 이하린이었다.
“아이언 2라고? 그게 가능해?”
놀라며 질문한다.
아이언은 브실골 패밀리에도 못 끼는 하위권이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대현은 자신의 게임 티어가 나온 퍼스널 계정 페이지를 보여줬다.
“헐.”
내가 아이언 2한테 졌다니…….
티어와 이름을 확인한 이하린이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옆에 있는 애들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네가 소문의 아이언 2로군.”
“그럼 특별 전형에서 내 근처쯤 있었겠네.”
“아, 그러고 보니 여기 다들 특별 전형으로 온 거지?”
“아마 그럴걸?”
특별 전형은 특정 싱크로율이 높지만, 티어는 낮은 사람을 위한 전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번에는 신경 지구력이 주된 기준이었기에. 평균 티어가 더 낮았다.
일각에서는 이미 짐꾼 전형이라는 멸칭까지 붙었으니 말 다 했다.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특별 전형 인원은 40반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네가 내 뒤에 있던 걔 맞지?”
“응?”
그때, 이하린이 뭔가를 검증하듯 대현에게 질문했다.
앞에서 쓰러지던 애가 이하린이었으니, 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흐음…….”
이하린은 탐정 같은 눈빛을 하고 턱 끝을 만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대현의 심장 쪽에서 멈춘다.
쓱.
이어서 손이 움직인다.
돌연,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저지할 새도 없이.
이하린이 청진기로 검진하듯 말했다.
“으으음. 느껴지는 건 없는데. 이상하네.”
고대현은 기겁하면서 이하린의 손을 떼어냈다.
그런데도 이하린은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대현은 옷깃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상한 건…… 너 같은데.”
상대방의 신체를 체크 할 수는 있다.
이런 게 아닌 수치적인 것으로 말이다.
뭔가를 알아보려 한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앗, 미, 미안…….”
고대현이 미간을 좁히니 그제야 사과하는 이하린.
덕분에 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대화가 끊겼다.
이대로 수업 시작 전까지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걸까.
삑.
그때였다.
작은 교실의 한쪽 벽면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보니 스크린이 있었다.
곧이어 스크린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안 봐도 선생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들 주목.”
높은 성채 위.
드넓은 하늘 아래.
갑옷을 입고 레이피어를 든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린이지의 돌풍 길드에서 길드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학년 담임을 하게 된 신영범이라고 한다. 반갑다.]
보통 은퇴한 게이머가 교사로 활동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게임고 정도 되니까 전 길드장이 와버렸다.
“신영범 길드장이면…… 라그나로크 때 북부 방어를 담당하던 사람이네.”
“아, 그 검사로 자수성가한 사람?”
신영범 길드장을 본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뭔가 있는 사람인가?’
짚이는 바가 없던 고대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별안간 설명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40개 반에 각각 송출하는 거니 설명은 짧게 하겠다.]
5명씩 40개나 되는 반에 각각 담임을 둘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어차피 수업은 가상현실 속 환경에서 통합으로 이루어지기에.
[다들 교실에 구비되어 있는 캡슐 안으로 들어가도록. 오늘 전 학년 OT는 게임 속에서 진행할 거니까.]
신영범은 레이피어를 가볍게 휘두르며 말했다. 반 아이들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이하린만 빼고.
“…….”
그녀는 신영범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넌 안 들어오니?”
“아, 응, 갈게.”
그러자 보다 못한 단발머리 여학생.
유금옥이 이하린에게 말을 걸었다.
이하린은 발걸음을 돌려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링크 스타트]
이제 교실은 조용.
[신체를 스캔합니다.]
[스캔 완료]
[자동 설정값에 따라 이동합니다.]
반대로 가상 속 세계는 시끄러워졌다.
곧바로.
부우우우우웅─.
그라운드 제로의 거대한 수송기 내부로 이동된다.
모두의 귓전에 프로펠러와 엔진의 소리가 윙윙대며 울렸다.
초거대 수송선.
약 200명이 탑승하고 있는 만큼.
수송기 내부는 길게 뻗어 있었다.
공기가 진동하고 귀가 먹먹하다.
이게 OT인 걸까.
그렇게 느낀 40반 인원은 주변을 둘러봤다.
학년 전체가 모인 수송기 내부.
아무래도 반이 많다 보니 한 번에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실력 차이 때문에 힘들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1반 팀과 40반 팀이 격돌한다 가정하면? 상대가 될 리 없는데…….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팀원 자동 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자동 매치?”
이어서 각자의 앞에 팀원 알림창이 나타났다.
1학년 전체가 각 2인으로 100팀.
매칭 기준은 티어와 컨트롤 스텟을 보완하는 방식이라고 나와 있었다.
“티어가 높은 학생과 비교적 낮은 학생이 한 팀이 되게 설정했다.”
수송기 내의 스피커에서 신영범 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수로 선정된 애는 부사수를 잘 챙겨서 팀워크를 기르고, 반대로 부사수는 사수가 하는 걸 보고 잘 배우도록.”
철컥.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각 의자의 벨트가 풀렸다.
팀원으로 매칭된 사람과 미리 조율하라는 뜻이었다.
[이하린, 임상배]
그런 상황 속.
이하린은 자신의 팀으로 표시된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같은 팀은 화살표로 머리 위에 표시되니까.
“잘 부탁해.”
“어, 나도.”
키가 크고 어딘가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다.
라고, 이하린은 생각했다.
“특별 전형으로 들어왔다고?”
“응.”
“흐으음.”
그러나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이하린은 무뚝뚝하다는 평가에 몇 가지를 추가해야 했다.
“티어는?”
“골드4.”
“그럼 내 짐이나 들어주면 되겠네.”
“응?”
특별 전형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미묘하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벌써 상종하기 싫은 기분이 드는 게, 이번 판은 운수가 그리 좋지 못할 것 같았다.
한편, 그 무렵.
‘어디 보자, 나는 누구랑 됐을까…….’
고대현도 흰색의 공간.
내면의 공간이라 이름 붙인 장소에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품을 하면서.
“하암…… 어?”
그러나 곧이어 발견한 이름 때문에 정신이 확 들었다.
[전지수, 고대현]
무려 전지수와 팀이 되어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확률일까.
대현이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신영범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능력치에 맞춰서 매치가 된 거니까,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면서 진행하도록.”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
1반과 40반 하위권인 자신의 매치.
하위권 멘토로 상위권 학생을 꼽아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 잘 부탁해.”
“아, 응…….”
그때 전지수가 다가와서 멋쩍게 말했다.
대현도 어색하게 대꾸했다.
다만 화면 속의 자신은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나머지, 상당히 무뚝뚝한 태도로 받아치는 형태가 되었다.
“…….”
잠시 정적이 흐른다.
‘……퀘스트나 봐야겠다.’
대현은 조용히 퀘스트 내용을 살피기로 했다.
[지속 퀘스트 : 하루 플레이 시간 : 6시간]
[오늘의 퀘스트 : 레전드 오브 히어로에서 퍼스트 블러드 1회]
‘퍼스트 블러드라…… 오늘 끝나고 레전드 오브 히어로 따로 해야겠네.’
레오히는 PC 모드의 변경점이 제일 컸다.
그냥 3인칭도 아니고, 더 위에서 보는 식으로 된다.
해서,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하지만 시야각과 컨트롤에 익숙해지다 보니. 역으로 장점을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마, 퍼블도 그렇게 힘들진 않으리라.
대현은 ‘오늘은 지하 캡슐방이 열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뒤, 창을 내렸다.
쿠웅.
마침 섬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듯, 수송기가 흔들렸다. 지도를 펼쳐보니 맵은 에란웹이었다.
“어디로 갈래?”
“음.”
전지수의 말에, 대현은 턱을 괴고 생각했다.
사격 실력은 떨어진다.
처음부터 2대2 교전은 무리.
앞서는 건 시야와 체력뿐.
그렇다면…….
“적당히 외곽지역에서 내릴래?”
“응, 알았어.”
‘?’
어떠냐고 물어본 건데.
어째서인지 승낙의 대답이 돌아왔다.
‘음, 어차피 연습전이니까 큰 상관은 없겠지. 뭐.’
대현은 지도로 수송기의 경로를 체크했다. 섬의 오른쪽 아래를 지나고 있으니. 미리 내려서 안전을 확보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때마침 내릴 준비를 하던 고대현의 눈에 이하린이 보였다.
‘옆에 있는 저 녀석은……? 이하린은 쟤랑 같은 팀인가 보네.’
같은 학교 출신인 임상배.
그 녀석이 이하린의 옆에 있었다.
대현은 왜인지 모르게 저 팀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에.
‘이하린이 나랑 비슷한 타입이니까. 팀 전략도 우리랑 비슷하게 돌아가겠지?’
전략을 짰다.
직접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왕 특별 전형으로 들어왔으니, 이하린이 짐을 분담하겠지.
‘나도 그렇게 할 거고.’
그렇게.
고대현이 나름의 생각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쿠웅.
수송기의 해치가 열리고, 저마다 낙하를 시작했다. 대현과 전지수도 곧 해치 앞으로 이동했다.
“갈까?”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전지수.
몇분 뒤.
대현의 팀도 하강을 시작했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두 사람의 몸은 지면을 향해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 * *
쒜에에엑-
바람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머리가 땅을 향한 채 고속으로 떨어진다. 단순하게 키보드 방향키를 누르면 되는 일.
이 때문에 전지수와의 거리 차이가 어느 정도 난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대현은 아차 싶어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전지수와 비슷한 속도로 하강했다. 옆을 확인하면서.
파악-
일정 고도에 도달하자, 자동으로 낙하산이 펴졌다.
이건 편하네.
대현은 새삼 편리함을 느끼며 땅으로 착지했다.
일어나자마자 지도를 펼쳤다.
현재 위치는 돌 사원과 해안 마을 사이에 있는 한적한 지대.
‘파밍이 잘 되는 곳은 아니지만, 맵에 200명이면 과포화 상태다……. 떨어지자마자 죽을 수는 없지.’
대현은 지도를 닫고, 뒤이어 착지한 전지수에게 말했다.
“일단 파밍부터 할까?”
“아, 응, 그래.”
전지수는 낙하산을 치우며 눈을 깜빡였다. 재빠른 행동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음, 역시 좀 어색하네.’
대현과 전지수는 다른 학우가 떨어진 위치를 체크 하면서 유적지와 민가를 훑었다.
몇 발자국 안 뗀 시점에서 전지수가 슬며시 질문했다.
“연습…… 언제부터 했던 거야?”
“그라운드 제로?”
“응. 들리는 말에 의하면, 종합 티어랑 점수가 되게 낮았다고 하던데…….”
역전 전의 자신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 넘어가기만 할 수는 없겠지.
대현은 적당한 설명을 하기로 했다.
“음, 그냥 운 좋게 특별 전형이랑 성향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생각보다 지구력이 좋아서.”
“아, 지구력.”
전지수는 일순 이해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신경 지구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노력을 안 해서 내 최대가 어딘지 몰랐어.”
“아. 그래……?”
태연하게 내뱉는 말에, 전지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무 자신감 있게 말해서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지구력이 그 정도라고?’
전지수는 이왕 같은 팀이 됐으니, 그를 잘 관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면 대현은 그녀가 별문제 삼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엄청나게 의심하거나 기분 나빠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구나. 다행이네.’
친구들을 이해시키는 급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총 있다. 여기…….”
전지수가 바닥에 있던 총을 건넸다.
5. 56mm 탄알 케이스와 M416이 손에 들렸다.
‘빨리 장전하고 가방부터 찾아야지.’
대현은 곧바로 장전키를 눌렀다.
딸깍이는 키보드 소리와 동시에 장전이 진행되고.
철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화면 속 자신이 장전을 마쳤다. 당연하게도,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엄청 능숙하네?”
그것을 보던 전지수는 감탄했다.
단순한 장전 동작이지만.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이, 숙련도가 되게 높아 보였다.
“연습했거든.”
대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나 게임 속의 그는 무미건조한 채였기에.
‘너무 의심해서 화난 건가…….’
전지수는 앞으로 큰 질문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건물로 가자.”
“……응.”
둘은 이어서 앞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로 들어갔다.
대현은 3렙 가방을 챙긴 뒤, 주변에 있는 물자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주운 탄은 대부분 5. 56mm 탄과 9mm 탄.
총은 일단 M416을 메인, 서브로 P9 권총을 둘렀다.
예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붕대와 구급상자, 약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방의 80%가 차 있었다.
“안 무거워? 무거워 보이는데, 그냥 권총만 들고 다녀. 나머지는 내가 할게.”
“아니야, 할만해.”
할 만한 거를 넘어서 뛰어다닐 수 있는 상태였다.
대현은 태연하게 난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적당히 스페이스 바로 점프를 해서 분신을 이동시켰다.
“너, 너무 무리하지 마.”
그 행동에 전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다. 침묵을 유지하는 게 필수인데, 순간 실수했다.
하지만 그만큼 파격적인 행동이었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진짜 특기자였구나…….’
그녀의 기준으로 무리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런데도 대현은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탕탕─!!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총성이 들려왔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벌써 교전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이에 대현은 재빨리 지면으로 내려왔다.
쿵, 하고 두 다리가 먼지를 일으킨다.
전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중간에 끼어들어서 싸우자.”
“어?”
“두 팀이 싸우고 있으면 주변 인식을 잘못할 거야.”
그를 생각해서 적당히 움직이려 한 전지수였다.
한데, 그런 배려는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는 대현의 모습에.
전지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행동을 대현이 먼저 내뱉고 있었으니.
“……그렇게 할까?”
“어, 빨리 가자!”
전지수는 급히 움직이는 대현의 뒤를 따라나섰다.
원래라면 반대여야 하는데…….
어느샌가 그의 뒤를 따라가는 형태가 되었다.
전지수는 수풀을 밟으며 생각했다.
‘이번 중간고사는…… 쉽게 예측할 수 없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