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14화
“2인큐 할래?”
진아가 방에 가상현실 헤드셋을 들고 왔다. 꼴이 스쿠터라도 타고 나갈 것 같은 모양새인지라, 헛웃음이 나왔다.
“왜, 왜 웃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대현은 의자를 돌려서 진아가 건넨 헤드셋을 받아들었다. 아직 뉴럴 퓨즈 카트리지의 양은 충분.
이대로 계속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 닳으면 또 사면 되겠지 뭐.’
영상 수익이 있기에 불안하지 않았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끝인데 뭐가 문제일까.
그리고 얼마 전에 보조 강의라는 것도 얻었으니, 소재거리는 많았다.
“오늘은 뭐하게.”
“레전드 오브 히어로 하자.”
요즘 들어 부쩍 레전드 오브 히어로를 하자고 한다. 왤까. 고대현은 짐작 가는 바를 슬쩍 던져봤다.
“뤼신 보고 싶냐?”
정곡인 걸까.
진아의 표정이 금세 부자연스러워졌다.
“내, 내가 뤼신을 보고 싶어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삐걱거리지 말고 본심을 말해.”
“에라이, 들켰네……. 예전에 했던 터널링. 그거 다시 하러 가자.”
과거, 뤼신으로 와드를 이용해서 벽을 통과한 일이 있었다.
그때 옆에 진아도 있었는데.
진아는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은 듯했다.
‘보조 강의 내용도 연습해야 하니까. 이참에 같이 하는 게 좋을지도…….’
훈련 모드는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적어도 보는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할 맛이 나니까.
“내가 방 파놓을 게 들어오면 말해라.”
“알겠으~”
방으로 돌아간 진아가 헤드셋을 착용했다. 고급형 기기라서 그런지 접속 속도가 빨랐다. 결국, 들어가니까 방을 먼저 파고 있던 건 진아였다.
“난 뤼신할 건데. 너는 뭐할 거야?”
“음, 꼬그모 카이팅이나 연습하려고.”
[소환사의 계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훈련 모드는 사용자가 환경과 시간, 위치를 조절할 수 있기에.
진아는 눈을 뜨자마자 조작창으로 챔피언 레벨을 올렸다.
고대현은 아이템 목록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골드도 올려줘.”
“골드도?”
“아이템도 실험해보게.”
예전 같았으면, 그보다 먼저 챔피언 숙련도를 올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가 천재인 것을 알았기에.
‘다 계획이 있겠지, 뭐…….’
골드양을 늘렸다.
진아는 상점창에서 물건을 사면서 말했다.
“나는 로난의 사이클론이랑, 고래 학살자, 고인수의 극노검 살 건데, 오빠는?”
“난 발자국 파쇄기 살 거야.”
“발자국 파쇄기를 사게?”
사용 아이템에는 패시브와 액티브가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거리를 이동시키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발자국 파쇄기가 대표적인 예인데.
거리는 짧지만, 부가적인 효과가 좋아서 전사형 챔피언들이 많이 가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철컥.
리쉰의 아이템 벨트 1번 슬롯에 발자국 파쇄기가 걸렸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슬 모양의 토템.
고대현이 키보드의 1번을 누르자, 화면 속 뤼신이 파쇄기 토템을 꺼내서 휘두른다.
다음 순간.
촤라라라락-!!!
뤼신의 주위로 거대한 사슬이 회전하고 사라진다.
앞으로 소폭 이동하면서 주변에 있는 적들의 이동속도를 늦추는 발자국 파쇄기의 묘리였다.
“오, 역시 잘 쓰는구나?”
그것을 본 진아가 옆에서 감탄했다.
꼬그모 상태로 말해서 큰 감흥은 없었다.
“너는 팔 짧아서 와드는 던질 수 있냐?”
“그럭저럭. 던질 수는 있어. 빨리 못하는 게 단점이지만.”
인외형 챔피언의 어려운 점은 기본적인 와딩 시스템에서 드러났다.
꼬그모처럼 팔이 짧은 인외형 원거리 딜러는 서포터의 도움을 받아서 지내는 게 필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꼬그모는 꼬그모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요즘 자주 연습하고 있어.”
“그래. 꼬그모 잘하면 강하고 좋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용 앞에 있는 얕은 물길에 도착했다.
거기서 상대용 봇을 소환했다.
고대현은 손가락을 풀면서 말했다.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까?”
“신기한 거?”
뤼신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짓이 있다. 그것은 횡파를 맞춘 상태에서 와드로 보호막을 타서 이동하고.
궁으로 차서 2명 정도를 에어본 시킨 다음. 맞춰둔 횡파로 돌진한 뒤 발자국 파쇄기와 평타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딸깍.
대현은 봇 하나에 횡파를 날려서 맞추고, 와드 보호막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궁극기인 돌려차기로 봇을 찼다.
“어.”
그런데 각도가 살짝 빗나갔다.
궁극기인 돌려차기로 뒤에 있는 봇도 맞춰야 하는데, 미묘하게 어긋났다.
“잠깐만, 다시 할게.”
고대현은 몇 번의 실수 끝에 그 동작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진아는 놀라는 한편.
‘역시 실수도 해야 사람이지.’
팔짱을 끼고 인간적인 미소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시험부터 합격 발표 후 입학식까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 게임을 해서 체감 시간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이쪽 세계는 기본적으로 합격과 입학 사이의 기간이 짧았다.
예를 들어서.
“……게임고의 모든 교직원과 로봇, 재학생들도 새 가족이 된 여러분을 큰 기쁨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실 학부모님께도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입학시험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게임고의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거참, 길게도 하네…….’
축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현은 하품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던 중.
‘저 사람은?’
대현의 눈이 한 여자애가 서 있는 장소에서 멈췄다.
“쟤도 붙었구나…….”
5인 선정에서 6명이 남은 시점.
앞에 있던 한 명이 멈추고, 뒤에 있던 사람이 커트라인에 걸렸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앞에 있던 5명이 선정되었다.
대현은 그녀를 보면서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 시험을 끝내고 캡슐에서 나온 뒤.
그가 맨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녹초가 된 상태로 들것에 실려 가는 여자애였다.
-하린아 정신 차려봐! 이하린!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붙어서 이동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약간의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내면의 PC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저러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바뀐 세상에서 꿀도 못 빨고 말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여러분의 높은 꿈을 크게 펼쳐보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마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강당을 채우고 축사가 끝났다. 이제 다음 차례는 신입생 수석 1군이 나와서 동시 선서를 하는 것.
“입학 수석, 1군.”
호명과 함께 수석 1군들이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전부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1군의 마지막 즈음.
드디어 아는 얼굴이 나왔다.
‘전지수…….’
전지수와는 일면식이 있기에, 대현의 눈이 단상으로 향했다. 기억 속의 그녀와는 어릴 적에 친했지만.
자신이 프로게이머로 노선을 틀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같은 학교에 입학해버리다니.
전지수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 반응할까.
어쩌면, 기분 나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정식 티어는 아이언 2에서 멈춘 상태니까.
‘전지수, 게임 실력은 어떨지 궁금하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지수에게 호승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로 접점이 없다가 이제야 생긴 것이니.
한 번 자웅을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것은 옆에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현은 강당에 모인 애들을 쭉 훑어봤다.
‘어차피 올라가려면 여기 애들을 다 이겨야 한다.’
아직은 약하지만, 조금 더 숙련도를 높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리라.
그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팟-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강당의 불이 최대로 켜진 것도.
어딘가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오, 저게 이번 수석 1군들의 POTG인가?”
“에임 뭐야…….”
강당 뒤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게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
흥겨운 BGM과 더불어 다양한 카메라 워크로 찍힌 게임 영상.
넓은 스크린 속에서 그라운드 제로, 언더 워치, 레전드 오브 히어로의 영상이 짤막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
다들 영상을 보고.
대현 역시 다른 애들처럼 스크린을 빤히 응시했다.
정확한 에임과 킬각.
학생들 개개인의 영상이 짧게 스쳐 지나간다.
‘좀 치네…….’
역시 상위권은 어딜 가나 잘한다.
원래 세계의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랄까.
팟-
그렇게 마지막 감탄과 함께 매드무비가 꺼지고.
대현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다음은 신입생 대표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여기도 선서를 하는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1군 중에서 맨 처음 이름이 불렸던 남자애가 걸어 나온다.
저놈이 사실상 수석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이름이 정태룡이었지 아마?’
들리는 바에 의하면 18대 성 중 하나인 레기온 성주의 아들이라는데.
‘나도, 나중에 성주 같은 거 할 수 있으려나?’
“──이 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상상하고 있자니 어느새 선서가 끝나고, 이어서 폐회식이 진행되었다.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입학식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다음 순서는 기숙사로 이동하는 것.
이를 증명하듯 학생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기숙사 방에 대한 정보가 오갔다.
“너 몇 동이라 그랬지?”
“나? c동 203호”
참고로 게임고는 재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해서, 이번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 부모님과 함께 기숙사로 짐을 옮겨놨다.
“대현아, 여기야!”
우르르-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강당의 문.
어수선한 분위기를 헤치고 밖으로 나가자, 먼저 나오신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밖에서 부모님이랑 밥을 먹든가 하는 자율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기숙사로 돌아오는 것으로 오늘 하루는 끝이었다.
대현은 시끄럽고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흐르고…….
가족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아직 시간은 8시밖에 안 됐지만, 10시 직전에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학교 수업과 관련된 자료도 알아봐야 했으니, 조금 빨리 들어가기로 했다.
“갈게요.”
“자주 연락하고, 다른 애들이 너무 잘한다고 기죽지 말 거라.”
“기 안 죽어요. 오히려 제가 다른 애들 기 안 죽이면 다행이죠.”
“어머, 애가 허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하셨지만,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 있었다.
거참, 게임 좀 했다고 저렇게 좋아하시네…….
끼익-
그렇게 차에서 완전하게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꾸욱-
옷깃에서 압력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근원지에 진아가 있었다.
“왜?”
“그…….”
진아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가를 달싹이다가 별안간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다.
다음 순간, 툭- 하고.
가슴팍에 단단한 물체가 닿았다.
이건…….
딱딱한 직사각형의 무언가.
살짝 묵직하면서도 언젠가 본 물건.
대현은 의외의 물건을 받고 잠시 멍해졌다.
“책?”
시선의 아래에는 [수학의 마정석]이 손에 들려져 있었다.
“가져.”
“…….”
대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치환하자면 마우스 정도는 선물로 준 급이었으니까.
“너…….”
멍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고개를 드니, 진아가 말했다.
“내년에는 내가 올 차례니까. 그동안 정보 같은 거 잘 정리했다가 나 줘.”
그 말에 대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러네…… 온다면 후배로 오겠네.’
“……응.”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대현은 왜인지 모르게 입가가 다물어지지 않음을 느끼면서.
책을 허리춤에 넣고 기숙사로 향했다.
모두의 기대가 담긴 새 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