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8화
로딩창에 들어가자 상대 팀과 아군의 조합이 공개되었다.
-쉐앤
-트라스타냐
-다이아나
-루울루
-트린담이어
VS
쟉스
록스
솔아카
아리스타
스카널
‘뭐야, 상대 팀에는 록스가 있잖아?’
대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록스는 장거리 마법 공격이 가능한 챔피언으로, 검바람 나락에서 좋은 픽중 하나였다.
그에 비해 자신의 팀은 대부분 팔이 짧았다. 퍼스트 블러드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대현의 뇌를 스쳤다.
[검바람 나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편, 길쭉한 검바람 나락 맵이 떠오름과 함께 진아도 눈을 떴다.
1인칭 가상현실 상태로.
작은 키와 손에든 총.
후반으로 갈수록 사정거리가 늘어나는 원거리 딜러인 트라스타냐가 그녀의 캐릭터였다.
진아는 옆을 응시했다.
대현이 고른 챔피언은, 탱커로 쓰이는 쉐앤이라는 캐릭터였다.
쉐앤은 적들을 도발해서 상대의 스킬이나 공격을 끊을 수 있고.
궁극기로 아군을 보호할 수 있기에, 서포터로도 쓰이는 챔피언 중 하나였다.
“아 참, 오빠 쉐앤 해본 적은 있어?”
“응, 그럭저럭.”
대현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쉐앤의 스킬 자체는 좋지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아군을 신경 써야 하기에.
그의 모스트 픽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지.’
오늘은 쉐앤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대현은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맵을 훑었다.
그간 연습한 덕분에. 컨트롤과 맵 확인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적재적소에 궁극기를 쓰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딸깍.
대현은 이어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그러자 쉐앤의 허리에 차여 진 아이템 벨트.
그곳에 시작 아이템, 고동피리와 포션이 담겼다.
“그럼, 가볼까?”
“응.”
그렇게 1자 맵의 중앙으로 가던 중.
퍼엉.
트라스타냐가 로켓 점프를 쓰며 뛰어오른 후 착지한다.
곧이어 마나가 소모됨과 동시에, 약간의 지구력 소진이 이루어졌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2초]
[동작 구현 : 96%]
동작 구현 96%의 깔끔한 스킬 마감이었다.
‘이 정도면 첫판치고는 느낌이 좋네.’
진아는 착지를 안정적으로 마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때마침 뒤에서 따라오던 고대현이 쉐앤이 도발 돌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응?’
눈을 가리듯 왼팔을 들고.
오른팔을 뒤로 빼면서 오른쪽 무릎을 위로, 동시에 왼발은 땅을 박차며.
슈슛-
쉐앤의 몸이 앞으로 돌진한다.
트라스타냐보다 짧은 거리였지만, [시전 동작]의 난이도는 쉐앤이 조금 더 높았다.
‘저 정도면 동작 구현이 적어도 90% 이상일 텐데…….’
진아는 뒤따라온 대현의 쉐앤을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스킬 생각보다 잘 쓰네?”
“이 정도야 기본이지.”
그러자 키보드와 마우스를 만지고 있던 대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도, 실제로 싸울 때는 잘 안될 수도 있으니까 주의해.”
이런 뒷사정을 알 리 만무한 진아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네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상대 팀도 가까이 왔다.
미니언이 생성되기 직전.
가벼운 대치가 이어졌다.
대현은 마우스를 좌우로 열심히 클릭하며 먹잇감을 탐색했다.
‘딸피 생기면 들어가서 도발 긁고 킬 따야겠다.’
쉐앤의 도발 돌진은 진행 경로에 맞은 적들을 도발하는 기능이 있다.
도발에 걸리면 상대에게 홀린 듯 평타를 때리게 되므로, 행동을 통제하기 편했다.
-뎀아시아의 빛이여!
상대 록스가 공격 대사 영창과 함께 스킬을 날렸다.
빛의 주박.
빛의 특이점.
둘 다 속박과 장거리 다인 타격이 가능한 스킬들이었기에.
대현의 팀은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범위가 워낙 넓은 탓에 다 피할 순 없었다.
-빛으로!
촤악, 하고.
영창과 함께 둥근 빛이 터지자, 범위에 있던 다이아나, 루울루, 트린담이어의 HP가 줄어들었다.
“보호막 안 쓰세요?”
“죄, 죄송합니다…….”
보호막 스킬을 가진 루울루가 가만히 있었다는 게 대현에게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동작 구현 때문에 빠른 반응은 무리겠지만.
아무래도 진입했을 때, 서포트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장렬하게 한 명 따고 죽어야지.’
대현은 빠르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각을 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아가 오두방정 떨지 말라고 말하는 바로 그때.
드디어 킬각이 보였다.
뾰로롱.
힐을 해주는 솔아카의 HP가 점점 낮아진다.
아군을 힐 해줄 때마다 최대 체력 10%가 소모되기에, 추후 워무그의 갑옷을 올리는 챔피언 중 하나.
‘따려면 지금 따야 해.’
대현은 적당히 거리를 체크한 다음 도발 돌진을 시전했다.
쉐앤의 몸이 미니언과 적 챔피언 사이를 가로질렀다. 정확하게 끝단에 솔아카의 몸이 닿았다.
그리고 도발에 걸렸다.
“이, 이건?!”
옆에 있던 아리스타가 손쓸 새도 없었다. 너무 빨라서 아군 방어 스킬 동작을 시전하지 못했다.
대현이 키보드의 Q를 누르자.
슈욱!
저 멀리 있던 보라색 [검의 혼]이 쉐앤을 향해 날아들었다.
경로에 있던 아리스타와 스카널의 몸을 통과해서.
스슥.
마침내 쉐앤의 몸에 검혼이 흡수되자, 작았던 단검에 보랏빛 검강이 덧씌워졌다.
스걱─!!
쉐앤의 황혼 검강이 솔아카의 몸을 베었다.
다음 순간.
퍼스트 블러드!
[쉐앤 -> 솔아카]
선취점 스코어가 눈앞에 나타났다.
상대 팀은 허무하게 퍼스트 블러드를 내주고 말았다.
“다들 스킬 퍼부어!”
하지만 적진으로 혼자 돌진했기에 쉐앤은 곧장 몰매를 맞았다.
아리스타와 쟉스, 록스 모두 스턴이나 에어본 같은 군중 제어기가 있어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점멸을 빼면 아까우니까 그냥 죽어야지.’
검바람 나락은 죽어야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본래의 목적인 퍼스트 블러드도 달성했으니.
대현은 큰 소모를 하지 않고 얌전히 죽었다.
“과감하네.”
체력 아이템을 사서 복귀하자, 진아가 말했다.
“쉐앤으로 원래 그렇게 공격적으로 했어?”
솔직히 던질 줄 알았는데 킬을 따서 의외라고.
의아한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가 대현의 아이템을 확인한다.
“그래도 템은 제대로 가네.”
“템 정도는 제대로 가거든?”
“아니, 그게 아니라 되게 옛날에 쉐앤으로 방관 격노검을 간 게 갑자기 생각나서…….”
“내가 그렇게 했었다고?”
“응. 쉐앤은 암살자처럼 생겨서 딜로 간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아니니까 신경 꺼.”
대현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여러모로 편했으니 말이다.
띠링─.
[팀 스코어 2 VS 4]
그러는 사이.
나머지 팀원들이 몇 명 죽었다.
큐가 낮게 잡힌 건지, 실력이 다들 고만고만했다.
‘나는 집요하게 록스랑 솔아카를 물어야겠네…….’
전장을 훑어보던 대현이 결론을 내렸다.
진아를 제외한 팀원들의 적극성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억지로 하는 것 같네.’
아무래도 역전 세계인 나머지 하위권은 게임을 대충대충 하는 듯했다.
‘그래도, 아군이 못하는 만큼 상대 팀도 못 하니까…….’
그쯤, 대현은 상대 진영을 응시했다.
여러 챔피언 중에서 특히 쟉스의 움직임이 별로였는데.
날카로운 진입도 없고.
들어오는 적에게 제대로 스턴을 걸지도 못했다.
‘결국, 주 딜러는 록스 하나에. 나머지는 고기 방패라는 소리네.’
물론 아리스타와 스카널이 고기 방패치고는 강한 편이지만.
루울루가 트라스타냐를 잘 살려주면 녹일 수 있을 것이다.
“루울루 님은 들어오는 적한테 변이 걸어서 트라스타냐 보호해 주세요.”
“아, 네…….”
스카널의 궁극기 수정 얼리기는 적 챔피언을 돌로 굳힌 다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스킬이다.
이를 통해서 납치가 가능한 데.
이것만 조심하면 한타에서 크게 밀릴 일은 없어 보였다.
‘뭐야, 혼자 오더도 내리네?’
듣고 있던 진아는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넘겼다.
지금은 모범 컨트롤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니까.
파앗!
때마침 상대 스카널이 점멸을 쓰고 다가왔다.
한 명을 끌고 가려는 심산이었다.
-변화해라!
하지만 적절하게 걸린 루울루의 변이 스킬이 스카널을 다람쥐로 만들었다.
1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앞에 있던 다이아나가 몸을 피하긴 충분했다.
이를 놓치지 않은 진아의 트라스타냐가 폭발 화약을 부착하고 평타를 때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한타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탱커 챔피언이라고 해도 아직 1코어가 안 나온 시점.
스카널의 체력은 빠르게 감소했다.
뒤따라 들어온 쟉스와 아리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쟉스는 도약이동이라는 점프 스킬로 빠져나갔지만.
스카널과 아리스타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트라스타냐 -> 스카널]
[다이아나 -> 아리 스타]
승전보가 떴다.
트라스타냐의 HP가 하나도 줄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이것은 진아가 상대와의 거리를 적절히 벌리며 때리는.
일명 [카이팅]을 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후우, 이 정도면 가르침이 됐으려나?’
진아가 바주카포를 내리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서걱─! 서걱─!
“어?”
문득 상대 팀의 후열 타격이 부족했다는 생각과 함께.
소리에 이끌린 진아의 시선이 아리스타와 스카널의 너머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
[쉐앤 -> 솔아카]
[쉐앤 -> 록스]
[더블 킬!]
대현의 쉐앤이 록스와 솔아카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어쩐지 힐이 안 들어오나 했더니, 뒤를 잡고 있던 거였어??’
멍하니 보고 있으니.
별안간 피신한 쟉스와 대현의 쉐앤이 만났다.
2명을 상대한 쉐앤은 쟉스보다도 HP가 낮았다.
하지만 쉐앤은 평타 방어 스킬이 있기에.
쿵!
-[평타 방어 상태입니다.]
쉐앤은 쟉스의 평타를 방어하고.
간소한 차이로 쟉스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
[쉐앤 -> 쟉스]
[트리플 킬!]
“와! 대단해요!”
“저게 쉐앤……? 내가 지금까지 본 쉐앤은 도대체…….”
팀원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전부 [비정규게스트 1234] 식으로 실명이 가려져 있었지만, 익명의 누군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서.
‘아니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오직 진아만이 얼빠진 표정으로 일전의 전투를 상기하고 있었다.
‘쟉스도 [공격반격]으로 평타를 방어할 수 있어. 그걸로 스턴까지 줄 수 있고.’
평타 강화와 상대 평타를 무시할 수 있는 스킬 구성까지.
사실상 비슷한 조건이라고 봐도 좋았다.
‘쉐앤의 딜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던데…….’
다만, 딜은 쟉스 쪽이 더 강했다.
쉐앤은 뭔가 애매한 느낌?
진아도 쉐앤을 몇 번 해봤기에 알고 있었다.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오빠, 설마 황혼 검강 강화 조건을 맞춘 거야??”
“응? 당연하지. 그래야 위력이랑 공격 속도가 올라가잖아.”
쉐앤은 30초 전에 있던 자리에 [검의 혼]을 세운다.
그리고 스킬을 쓸 때 [검의 혼]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데.
이때 [검의 혼]이 상대방의 몸을 통과하면, 위력과 공격 속도가 증가한다. 해서, 이것을 맞춘 뒤 황혼 검강을 쓰는 게 주된 컨트롤 방식이었다.
하지만.
“싸우면서 끌어당기는 각도랑 경로를 다 계산했다고?”
싸우는 도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손을 뻗어서 [검의 혼]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교전 중 신경 쓰기 힘든 요소였다.
가끔 방향이 맞으면 모를까.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고난도였다.
“응, 운이 좋았지. 마침 쟉스가 뒤에서 왔으니까.”
‘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진아는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삼켰다.
처음에는 가르쳐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너도 아까 보니까 카이팅 잘하더라? 원딜을 주로 하나 봐?”
“어, 으, 응…….”
“야, 상대 팀 또 온다. 이제 아이템 뽑아서 오니까 좀 단단하겠네.”
고대현은 그런 말을 하면서.
태연하게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아는 그런 대현을 감히 따라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