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6화
띠링.
[동작 구현 : 100%]
대현은 미세하게 떠오른 메시지창을 내려다봤다.
‘원래 세계에서는 행동 보정으로 그냥 됐는데…….’
스킬 동작의 완성도.
그것의 퍼센트가 나타나 있었다.
처음부터 100.
설마 PC 모드로 하면 계속 100이라는 건가?
딸깍.
이어서 구르기도 써봤다.
쉬프트키를 누르자 매트리가 재빠른 속도로 구른 뒤 일어난다.
[동작 구현 : 100%]
이번에도 100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좋은데?’
스킬 동작 완성도에 따라 성공확률도 갈리는 시스템인데, 무조건 100이 나오다니.
대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이건 좋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구르기는 보정이 들어가도 시야에 빈틈이 생기는지라, 원래 세계에서도 조심해서 쓰는 스킬이었다.
‘지금은 구르면서 시야 확인도 빠르게 가능하니까…… 오히려 좋아.’
“아까 전의 전탄 격발. 그, 그거 다시 한번 해줄 수 있니?”
대현의 매트리가 가만히 있자, 김성현이 부탁했다.
전탄 격발은 물론이고.
김성현은 대현의 구르기 동작에서조차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저렇게 절도 있고 빠르다니!
“아, 네…….”
고대현이 대답하는 사이.
철컥.
화면 속의 매트리는 어느새 장전을 끝낸 상태였다.
빠르다. 이 정도면 예전의 나보다 더 빠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한 대현은, 다시 벽을 조준하고 마우스의 오른쪽 버튼을 눌렀다.
타타타타탕—!!
아까와 같은 경쾌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오오오!”
김성현의 감탄이 이어지는 가운데.
휘리릭.
철컥.
촤라락.
손아귀에서 한 바퀴 회전한 리볼버의 약실이 옆으로 열리고, 총알이 빠지며 허리춤의 탄약이 장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현은 어떠한 수고도 들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
손을 바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벌써 영상감이 나왔군.”
‘대표님 기분이 좋은 것 같네.’
김성현의 어조는 누가 듣더라도 확연한 하이톤이었다. 이에 대현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계약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점령 지역이 활성화 중입니다…….]
대현은 마침 열리는 문을 향해 키보드를 조작했다. 이제 상대 진영에 있는 거점을 먹어야 했으므로.
타앙—!
문을 나서자마자 빨간색 총알의 궤적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도 테이커가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대로 사이드의 건물 계단으로 향했다.
삑쀽삑.
그때, 야생의 트레리스가 나타났다.
트레리스는 순간이동을 쓰는 챔피언.
가상현실로도 정신 사나웠던 놈을 모니터로 보니까 더 정신이 없다.
‘그래도 실력이 그리 높지는 않네.’
트레리스의 총알이 이리저리 빗나간다.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발광탄의 스턴을 경계하는 듯했다.
탕탕-!
대현은 트레리스를 몇 발 맞추고.
딸깍.
무빙을 치다가 쉬프트키를 눌러서 옆으로 한차례 굴렀다.
트레리스는 체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동작역행으로 15초 뒤로 돌아가기에.
미리 그 위치로 구르기를 쓴 것이었다.
펑-! 탕-! 탕-!
발광탄을 맞춰서 스턴을 먹이고, 머리에 고이 총알을 박아주었다.
금세 1킬이 나왔다.
‘어? 생각보다 잘 되는 것 같기도?’
뭔가 에임이 더 괜찮아졌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굴렀다고 익숙해진 걸까?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었다.
“벌써 한 명 처치야? 역시 넌 이 구간에 있을 애가 아니야.”
뒤에서 에나의 힐이 들어왔다.
원거리 저격 힐러인 에나 덕분에 먼 거리에서도 힐을 받을 수 있었다. 트레리스로 인해 까인 피가 회복되었다.
“이대로 쭉쭉 가자.”
“넵.”
대현의 매트리는 앞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가는 길.
몇 번이나 구르기를 사용했다.
당연하게도 신경 지구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 * *
그 시각 레드팀.
“야, 상대 매트리 좀 잘하는 것 같은데?”
“뭐?”
리스폰 지역에서 살아난 트레리스가 말했다.
“발광탄이랑 구르기 하는 속도가 엄청 빨랐어. 위에서 내려온 애일지도 몰라.”
“흠, 그래?”
레드팀의 매트리는 총을 돌리면서 대진표를 살폈다.
퍼스널 계정이 아닌 서브 계정이 사용되는 비정규게임인지라 실명이 아닌 닉네임이 적혀있었다.
‘게스트 1111…… 네임드는 아닌데 말이지.’
가끔 엄청난 실력으로 비정규전을 썰고 다니는 괴물들이 있다. 정규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비정규를 돌리니 말이다.
하지만 게스트 1111은 처음 보는 닉네임이었다.
“뭐, 어때. 어차피 여기 구간도 바닥이잖아.”
비정규게임이라 해도 승률에 따라서 매칭된다. 여기는 낮은 구간이니까 적도 비슷하겠지.
매트리는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1지점이 점령당했기에 빨리 가야 한다. 그래서 구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떨어지면서 팔을 뒤로.
무게중심을 빠르게 이동시키면서.
데구르르.
매트리의 구르기가 작동되었다.
스킬 시전 동작이 확인되자, 싱크로율이 오르면서 더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띠링.
[동작 구현 : 48%]
다만, 구현율이 낮아서 이동 거리가 절반이었다.
“그 정도면 그냥 뛰는 게 좋지 않겠냐?”
뒤에서 지켜보던 트레리스가 쀽쀽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저게…….”
완성도에 따라서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은 스킬도 있다. 대표적인 게 구르기였다.
“시끄러워. 궁 게이지 차서 이거 한 번은 써야 하니까.”
그는 매트리를 주로 사용했다.
궁극기인 일출의 시간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신경 지구력은 되냐?”
“응, 적어도 3명 커버 될걸?”
일출의 시간은 정신을 집중하면서, 시야 내의 모든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스킬.
성능만큼 신경에 가하는 부하와 지구력 소모가 심했다. 어쭙잖게 시도할 스킬이 아니었다.
“일출 간다!”
그러나 매트리는 그나마 있는 자신의 장점. 평균보다 높은 지구력 수치를 이 기술에 담고자 마음먹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적당히 건물 위에 숨어있던 그는 일출의 시간을 사용했다.
끼루룩.
새소리와 함께 시야가 세피아톤으로 변한다. 몸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
곧이어 빨간색 원이 적팀을 옥죄었다.
저 원이 최소로 줄어들 때가 즉사 히트 지점이다. 정신을 집중할수록 원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동작 구현 : 60%…….]
‘아직이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빨간색 원의 범위 축소에 따라 펄스 리볼버가 무거워진다. 몸도 무거워진다. 내려놓고 싶다. 하나, 히트 지점까지 버텨야 한다.
[동작 구현 : 80%…….]
80%로 올리기까지 단 15초.
아직 적들은 밝아지는 후광 빛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매트리가 정신 집중으로 구현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려 할…….
탕-!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푹-
[궁극기가 취소되었습니다.]
“앗.”
들키지 않게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총알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블루팀 매트리가 저 아래에서 견제 중이었다.
‘눈치가 빠르네. 같은 챔피언 사용자라서 그런 건가?’
일출의 시간은 준비 시간이 긴 만큼 시각적인 후광 효과 빼고는 여지를 주는 게 없었다. 아마, 후광 빛이 눈에 밟힌 것이리라.
“쳇.”
결국, 레드팀 매트리는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레드팀 매트리는 마지막 방어 지점에서 블루팀 매트리의 궁극기 시전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저, 저 새끼 뭐야?’
상대 팀 매트리가 기둥 뒤에서 걸어 나오며, 일출의 시간을 쓰는 게 아니겠는가.
‘일출의 시간을 움직이면서 쓴다고?’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조금이지만 슬금슬금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나는 한 발자국 움직이면 깨지는데…….’
레드팀 매트리는 놀라는 한편 정신을 다잡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처리해야지. 어차피 충격을 받으면 취소되니까.
총을 꺼내 들고 블루팀 매트리를 조준했다. 아직 시간은 5초를 안 넘긴 시점.
구현율이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5초 이하에서 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지금 공격하면 될 거야!’
그는 헤드샷을 노리고 손가락에 힘을 줬다. 그리고 격발했다.
탕─!
아니.
탕탕탕탕─!
격발하려고 했다.
“어……?”
상대 매트리가 궁극기를 시전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버, 벌써?’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 매트리를 바라봤다. 침착한 자세는 여전히 견고했다.
“이런…….”
시야가 어둠으로 물든다.
곧이어 그의 귓전으로 매트리 차이라는 팀 전음이 들려왔다.
* * *
병원에 입원하고 6일이 지났다.
옛 실력을 되찾기 위해서.
그동안 그라운드 제로는 물론이고, 레전드 오브 히어로, 언더 워치까지 골고루 연습했다.
‘덕분에 키보드와 마우스로 움직이는 게 익숙해졌지.’
주야장천 3대 종목을 한 결과.
에임과 스킬 사용 순발력이 조금 올랐다.
그리고 강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른 애들은 매우 힘들게 게임을 하는 반면.
자신은 PC 모드로 지구력 소모가 없고, 기본 보정치가 높았다.
물론 자유도가 떨어지고, 손가락이 숨 쉬듯 QWER로 이동하진 않지만.
여기 애들의 스킬 반응 속도가 느려서, 그럭저럭 따라잡을 수 있었다.
‘뭐, 아직 상위 티어를 만나면 개털리긴 하지만…….’
그때, 대현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다.
[-승리-]
“잘했다!”
수정석 파편 깨져서 올라간 승리의 표식 아래.
김성현이 대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대현과 달리 연일 흥분 상태였다.
‘스킬을 저렇게 빨리 쓰다니, 동작 완성도가 엄청 높아.’
조금 전의 레오히 판에서.
고대현은 쟉스를 했었다.
쟉스는 곤봉을 사용하는 평타 기반 챔피언.
따라서 궁극기 패시브인 일명 쿵쿵따 평타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했다. 잘못하면 평타가 캔슬되니 말이다.
하지만 대현은 이러한 걱정을 모두 날려버리듯, 너무나도 안정적인 공격 모션을 보여줬다.
김성현이 놀랄 정도로.
‘이런데 티어가 바닥이라니, 크게 모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네…….’
아직 골드급 학생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포텐셜을 보니 금방 올라갈 것으로 보였다.
의문점은 왜 그간 아이언 티어였냐는 건데……. 김성현이 위의 사실을 가지고 질문하자, 고대현이 태연하게 답했다.
“관심이 없었어요.”
“관심?”
“네.”
괜히 캐물으면 귀찮으니까.
고대현은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점수와 컨트롤로 손해 봤으니, 천재 같은 이미지라도 챙겨볼 생각이었다.
“하긴, 동생이 잘한다고 했으니. 너는 이제야 재능이 발현되는 걸 수도 있겠군.”
다행히도 대현의 변명은 잘 먹혀들었다. 진아가 나이대에 비해 높은 다이아 티어였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내일이면 병원도 끝인데. 고등학교 배치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김성현은 헤드셋을 벗은 뒤, 대현에게 넌지시 말했다.
바로 옆의 달력.
빨간 동그라미가 고등학교 배치 시험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배치 때 최대한 열심히 해야죠. 그 점수로 지원하는 거니까요.”
“지원할 학교는 선택했고?”
“흠, 아직 선택은…….”
대현은 말끝을 흐렸다.
마음 같아선 게임고에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 시즌 아이언 2가 과연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상위권을 대할 실력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으…… 배치 때문에 하는 말인데.”
그때, 김성현 대표가 입을 열었다.
충격적인 소리가 대현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너, 게임고 지원해보는 게 어떠냐?”
“네에??”
자신도 어느 정도 접어두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타인이 먼저 권유하다니, 대현은 호흡을 가다듬고 이어지는 김성현의 말을 경청했다.
“게임고는 특별 전형이 있거든. 배치 시험을 아예 이걸로 대체하는 거라서 전 시즌 성적이 좋은 애들만 하는 거긴 한데……. 내가 볼 때 그건 네가 해야 해.”
전 시즌이 아이언이기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김성현은 특별 전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보인 재능으로 봐선,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특별 전형? 그런 게 있었어요?”
“응, 너 전형 요강을 제대로 안 봤구나?”
고대현은 게임 연습에 몰두하느라 제도적인 부분을 크게 알아보지 못했다. 당장 PC 모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스윽스윽.
김성현은 스마트 워치에서 나오는 가상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내렸다.
‘얘는 이 전형으로 하는 게 제격이지.’
마침내 김성현의 손가락이 멈추고.
[특별 전형]
[평가 기준]
-신경 지구력
-스킬 동작 완성도
-심상력
중 1개 당일 공개.
[모집 인원 : 5명]
그의 손끝이 특별 전형 TO가 적힌 부분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