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4화
가상현실 게임 사용자의 싱크로율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경 피로도에 따른 지구력.
가상현실에 접속한 다음.
게임을 이어나감에 있어서 무한정이란 없다.
사람이 일을 계속하면 나타나는 번아웃 증후군처럼. 신경 사용의 한계점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를 넘어서 게임을 계속하면, 일명 그로기(Grogi) 상태에 빠져 컨트롤이 자유자재로 되지 않는다.
지구력은 모든 게임에서 사용되지만.
특히 그라운드 제로에서 부각되는 요소다.
그라운드 제로는 빙의체가 없어서, 현실과 거의 똑같은 신경 부하를 주니까.
둘째는, 심상력.
심상은 마음에 떠오르는 상이나 정경.
어느 것들에 대해 품는 전반적인 느낌을 마음속에 그리는 일을 말한다.
한 번 상상해보라.
현실과 가상현실 속 몸의 간극을.
레전드 오브 히어로 같은 게임은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떠나, 컨트롤 하는 종족까지 다른 경우가 대다수다.
아무리 지구력이 높아도.
갑자기 벌레나 동물을 능숙하게 컨트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키시오페아라는 챔피언.
이 캐릭터는 꼬리로 이동하는데.
초보자는 당연하게도 컨트롤하지 못한다.
꼬리가 있어 본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꼬리를 조종할 수 있겠는가.
물론, 자신에게 꼬리가 달렸다고 강하게 암시를 걸면 되긴 된다.
암시, 그리고 상상.
이것이 심상력.
주로 레전드 오브 히어로와 언더 워치에서 부각되는 요소다.
셋째는, 스킬 동작 완성도.
레전드 오브 히어로나 언더 워치는 그라운드 제로와 달리 스킬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갑자기 손에 불이 나오기도 하고, 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스킬은 단순하게 의지로 발현되지 않는데.
스킬이 시전되는 조건부 동작이나 영창을 숙지해야 비로소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레전드 오브 히어로는 평타 동작마저도 맞춰야 해서, 미숙한 학생들은 평타 캔슬을 밥 먹듯이 하곤 했으니…….
위의 3가지를 모두 합쳐서, 싱크로율이라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흠…….”
그리고 김성현도 영상 제작자 이전에 게이머인지라,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을 선택해왔다.
구인 기준에 저것을 증명하는 영상 기록을 남기게 하기도 했고, 어쩔 땐 직접 관전을 하기도 했다.
티어 확인보다 깐깐하지만.
3가지를 얼추 통과하면, 낮은 페이에도 그럴싸한 영상을 뽑을 수 있어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해서, 눈앞의 남자애도 위의 3가지를 기준으로 관전하려 했다.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저, 저…… 컨트롤은?’
김성현의 눈이 고정되었다.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홀로그램 화면에서.
촤라락-
그의 캐릭터가 장비를 파밍하고 있었다.
현재 하고 있는 게임은 그라운드 제로.
그라운드 제로는 배틀로얄 형태로 싸우는 PVP 슈팅 게임이다.
맨몸으로 착륙한 다음, 무기를 파밍하고 교전해서 끝까지 살아남으면 승리하는 방식의 간단한 룰.
지금 보는 장면은 착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비를 주우러 다니는 시간.
그라운드 제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눈앞의 소년은.
촤라락-
가방에 총알을 넣고 있었다.
왼손에 ump9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으니 안 봐도 9mm 총알이었다.
9mm.
가볍다고 말하기 어려운 탄환.
이 때문에 총알을 가방에 넣으려면, 가방을 연 뒤 바닥에 내려놓고 집어넣어야 했다.
‘가방을 멘 채로 총알을 집어넣고 있다??’
하지만 고대현의 파밍은 위의 경우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었다.
묘기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가방을 멘 상태로 보지도 않고 총알을 훅훅 집어넣다니.
에너지 드링크나 진통제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안 본 상태에서 빠르게 획- 가방에 넣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지퍼를 닫고 있었다.
그야말로 노룩 파밍.
김성현은 그간 이런 컨트롤을 본 적이 없었다.
타당탕-
드르륵-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전을 시작하는데…… 장전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상대의 총알이 창문을 뚫고 날아오는 와중에 태연하게, 그리고 절도 있게 장전하다니 이 무슨…….
저런 능숙한 실력으로 삽탄과 동시에 장전을 마무리하려면, 싱크로율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경험, 그저 순수한 경험의 차이가 중요했다.
일전의 행동만 보면 거의 베테랑 그라운드 제로 강사급 자세. 저거 하나를 위해서 실제 모형총 장전을 연습하기도 하건만…….
이 정도의 능숙함은 게임고 교사에게서나 보던 것이었다.
‘놀랍군.’
속으로 감탄을 흘리는 그의 상반신이 앞으로 쏠린다. 그러자 파밍과 총격 이후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현의 캐릭터는 일전의 총격에서 빠져나온 뒤, 풀밭을 달리고 있었다.
총을 가방의 옆에 달고, 양팔을 움직이면서 절도 있게 달리는데.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모범적인 자세의 뛰기였다.
게다가 등에 메고 있는 짐.
크기로 봐선 3렙 가방이었다.
내부가 탄알과 붕대, 약물 등으로 가득 찼는지 빵빵하다.
어림잡아도 무게는 10KG 전후.
그런데도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벌써 수 분째 풀밭을 뛰고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신경 부하가 높은 게임인데…….’
저렇게 하면 신경 피로도가 금세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지치지도 않는 건가?’
이번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도 그렇고, 얼굴을 노출한 시간보다 헤드셋을 낀 시간이 더 많았다.
남들 같으면 이미 진이 빠져서 헤드셋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미 신경 지구력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선천적으로 신경 지구력이 높은 야나 이바노프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움직임이 지나치게 딱딱하긴 하지만, 또래 사이에서는 1% 안에 들어갈 수치가 나오겠어……. 뭐, 자세한 건 헤드셋이 아니라 캡슐로 측정해야 하겠지만.’
타당, 탕-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총알이 날아와 달려가는 캐릭터의 등을 꿰뚫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저격하고 있는 모양.
그동안은 얼추 잘 피했지만, 이번엔 피해 갈 수 없었다. 엄폐물이 없는 평야에서 더이상 버티기란 매우 어려운 일.
나름 엎드려서 피하거나 총을 쏘긴 했지만,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총도 AR이 아닌 기관단총과 샷건 하나.
탕-
결국, 몇 초 뒤.
띠링.
-#85
홀로그램 위로 그의 성적이 나왔다.
85등.
너무 평범한 수치였다.
일전에 보여줬던 가능성에 비하면…….
“후우.”
게임이 끝나자 고대현이 헤드셋을 벗었다. 표정은 약간 분했는지 굳어진 상태였다.
“그러게, 농장으로 가지 왜 군사기지로 간 거야.”
그때 헤드셋을 벗은 대현을 향해 진아가 말했다.
다른 지역에 떨어져서 좀 더 파밍하고 했으면.
그렇게 했으면 적어도 50등 이상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달리기도 그렇고, 파밍도 그렇고.
“생각보다 잘……했으면서.”
잘했다.
진아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새삼 놀랐지만,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이대로 말끝을 흐리기엔 대현의 컨트롤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고수들이 밀집되는 지역인 군사기지에서, 침착하게 장비를 파밍하고 생존까지 했다.
비록 상대를 잘못 만나 사망하긴 했지만, 본래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였다.
거기에 더해서 헤드셋.
분명 캡슐보다 링크율이 떨어지는 헤드셋인데 이 정도면…….
“오빠 캡슐방에서 측정해본 적 있어?”
“어?”
진아의 말에 대현은 잠시 말을 삼켰다.
캡슐방이라.
캡슐방에서 측정은 많이 해봤다.
애초에 그날도 캡슐방에 가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뀐 게 많아서 의미가 없기에.
대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런 대현을 보고 진아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퇴원하면 캡슐방부터 가봐.”
“그, 그 정도였냐?”
못했기에 나온 반응이 아니었다.
진아의 말에 고대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파밍은 그럭저럭했는데, 장비와 숙련도 차이 등의 문제로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처음부터 군사기지는 역시 무리수였다.
……생각보다 난도가 높았다.
해서, 헤드셋을 벗은 다음 바로 변론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잖아?’
원래 세계였다면 벌써 죽었냐고 듀오하는 친구한테 욕 좀 먹었을 상황이었다.
도대체 역전이 어떻게 됐기에 동생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대현은 이어지는 동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에임은 영 별로였는데, 가방 안에 짐 빠르게 넣는 기술이랑 오래달리기는 의외였어. 음…… 생각해보니까, 평소에 책을 많이 만져서 탄알 케이스를 잘 드는 걸지도 모르겠네.”
“……?”
잠시 눈을 깜빡였다. 잘한 게 하나도 없을 텐데 뭔가 했더니.
“아니, 겨우 그런 거로……? 그게 대단한 거였어?”
“겨우, 라니. 초보자치고는 대단한 거거든?”
대현은 어이가 없었다.
역전되기 전의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동생이 짐 넣고 빼기랑 달리기로 칭찬을 하는 걸까.
이제는 칭찬보단 일종의 무시로 들린다.
아.
그러고 보니 은근슬쩍 초보라고 말하네.
“달리는 거랑 파밍하는 게 뭐 어때서.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야?”
“그…….”
대현이 항의하는 표정으로 말하며 진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에 진아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기만이나 잘난 척이 아닌, 순수하게 몰라서 말하는 거다, 저거…… 원래는 사람인가 의심될 정도의 피지컬이었는데…….’
총의 장전이나 파밍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경 지구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런 거 못 해.’
“…….”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 막 재능이 개화된 재능충 같은 표정은 참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이언 주제에…….
‘오빠가 게임에 재능이라는 게 있었을 줄이야. 그동안 길게 해본 적이 없어서 눈치를 못 챘던 건가?’
대놓고 인정하긴 싫었기에, 그녀는 형식적인 기준으로 대답했다.
“티어 말고도 잠재력 측정 기준이 3개 있는데…… 오빠는 그중에서도 신경 지구력이 좋은 편이지.”
“지구력?”
“아까 달리기도 그렇고, 게임을 길게 해도 별문제가 없는 거 보니까. 나중에 짐꾼 하기 좋은 적성이야.”
“짐꾼……?”
‘짐꾼이라니 그건 또 뭐야.’
한편, 고대현은 이러한 진아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지구력이라는 것은 ‘원래 세계’에서 없던 개념이니까.
‘링크만 맞으면 나머지는 컨트롤의 영역이 아닌가? 지구력은 행동 보정이 들어가서 실력이랑 상관이 없을 텐데…….’
그때.
-게임 열심히 해라.
갑자기 스쳐 지나간 엄마의 말.
‘……아, 설마?’
그쯤, 대현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챘다.
세계가 역전되고 사회의 다양한 부분이 바뀌었는데, 메인 이벤트인 게임의 난이도가 그대로일 리 없다.
‘설마.’
그라운드 제로만 한 탓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왜 이걸 이제야 생각했을까.
대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쩌면 망할 PC 모드 퀘스트 때문에 이득을 볼지도 모르겠군.
“야, 아까 말했던 기준 3개가 뭐라고?”
그렇게, 희망과 함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갈 때였다.
“학생, 설마 게임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된 건가?”
진아의 어깻죽지 뒤편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현과 진아가 동시에 고개를 돌린 곳.
김성현이 바지춤을 주섬주섬 뒤지며 가까이 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이런 사람인데…….”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대현에게 다가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김성현이 아직도 사용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
……명함이었다.
“이건…….”
‘갑자기 이걸 왜……?’
놀란 눈치로 명함의 내용을 훑는 고대현.
그런 그의 눈에 다음과 같은 글자가 들어왔다.
[매드무비 수작업 공방 : 핸드무비]
-대표 : 김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