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고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콰앙-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집안에 크게 울렸다.
“저, 저 녀석이 어른 말을 귓등으로 듣고!”
닫힌 문 너머로 부모님의 성난 목소리가 들린다.
대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쿵쿵-
곧바로 방문이 흔들리며 문고리가 철컥 인다. 평소 같으면 쫄아서 열었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결심을 굳힌 대현은 이어폰을 끼고 책상 앞에 앉아 분을 삭였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소리가 잦아들고, 부모님이 돌아갔음을 확인한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게임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게임고 진학 반대하는데 어케 하냐?]
ㄴ 종합 티어 어딘데?
ㄴ 마스터 나옴
ㄴ ㄹㅇ? 근데 왜 반대하냐
ㄴ 몰라 집안이 너무 보수적임
가상현실 게임의 발전에 힘입어 생겨난 전문 교육 기관인 게임고.
프로게이머와 더불어 영상 편집, 크리에이터 같은 각종 게임 산업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다.
오늘 부모님에게 말을 꺼냈다가 단칼에 거절당한 곳이기도 하고.
띠링-
ㄴ 마스터면 학교에서 돈 주고 모셔 가려 할 텐데.
ㄴ 안 그래도 쪽지 받아서 말해 본 거임.
ㄴ 공부 생각 없으면 지금부터 겜고 가서 준비하는 게 나음. 거기도 실적 때문에 중위권은 몰라도 상위권 아웃풋은 확실하게 신경 써주거든.
“흠.”
대현은 추가로 달리는 댓글을 보며 확신했다.
‘그래, 역시 틀린 건 내가 아니야. 부모님 세대가 너무 구식이라 그런 거지.’
사실, 게임을 가르치는 교육 시설은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 자신의 게임 티어를 올리기 위함이라던가, 프로게이머를 목적으로 말이다.
이 때문인지 게임고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인식은, 잠깐 흥하는 분야로 이름을 바꾼 대학교 학과.
혹은, 유행을 따라 창업한 식당 정도의 수준.
한 마디로 구식이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학원 같은 느낌이었지, 그거는.’
과거와 현재의 게임 시장은 판이해졌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 하나로 인해서 새로운 시장, 새로운 직업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가.
규모만 커진다면 모든 게 갖춰 돌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
이는 가상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과도한 게임중독에 따른 규제네 뭐네 말이 많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터.
고대현은 머릿속으로 희망 회로를 돌렸다.
‘빨리 가상현실 프로게이머가 돼서 유명세를 쌓고, 은퇴한 다음에 너튜브로 꿀 빨면서 살면 좋을 텐데…….’
티어는 다이아도 아닌 마스터.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나?
부모님이 누차 강조하는 ‘안정성’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도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일단 장학금을 받고 스타트하는 거니까.
집안 경제 사정과 자신의 성적 향상의 가성비를 따져봐도 게임고 진학이 효율적이었다.
‘안정성이라…….’
그 단어를 상기하자,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인생 길게 봐야지. 어느 부모가 딸내미를 게임이나 하는 남자한테 시집보내겠어?
-아빠 말이 맞아 대현아, 그거 게임 유행 지나면 너 폭삭 망하는 거다? 나중에 다시 공부하려면 머리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해, 너.
아니.
무한한 시간 동안 계속 가는 직업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애초에 부모님 세대도 할아버지 세대에 눌려서, 이 직업 저 직업 전전긍긍한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고대현은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긴 시간 동안 바뀌지 않는 게 게임이다.
게임이라는 것은, 인류가 과거부터 해오던 유서 깊은 놀이.
게임의 종류가 바뀔 순 있어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니까 동생한테나 신경 썼으면 좋겠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걸까.’
자신에게 공부하라고 할 바엔, 동생한테 투자하는 게 더 낫다. 그도 그럴 게 동생은 공부만 하는 애니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할 사람은 1가정당 1명이면 충분하다.
끼익.
그렇게 생각한 대현은 의자에서 일어난 뒤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오면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누가 부모님 사상 좀 개조시켰으면 좋겠다……. 그래. 예를 들면 게임에 대해서 엄청 호의적이고 좋아하는—.’
띠링-
그때였다.
ㄴ 쯧…… 어린 시절 젊은 뉴럴링크 적합도 믿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퇴물 된 다음 인생 조질 일 있냐? 이거 몸 금방 망가진다. 걍 부모님 말이나 들어라…….
격려의 말이 몇 페이지 이어지는 가운데, 떡하니 훈수가 달렸다.
“……뭐야, 이놈은.”
어느 커뮤니티에나 시비 거는 놈은 있다지만, 마침 기분이 안 좋았던지라 미간이 좁혀졌다. 특히 부모님 말이나 들으라는 부분이 심기를 건드렸다.
‘그렇게 따지면 사람한테 안 늙는 부분이 있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에 고대현은 놈이 올렸던 글을 검색했다.
촤라락-
그러자 나타나는 글들.
그중 대다수가 고전 게임기에 관련된 글이었다. 보아하니 그런 것들을 수집하는 모양이었다. 대현은 게임기의 사진을 쭉 훑어봤다.
한때는 게임용으로써 훌륭하게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타이핑하는 용도로만 남은 그런 기기.
가상현실 게임이 나오고 쇠퇴한 게이밍 기어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요즘 누가 이런 거로 게임을 할까.
‘키보드랑 마우스, 그리고 막대기 달린 플라스틱 덩어리? 이런 것도 게임기랍시고 수집하고 있네.’
시대에 뒤처진 아저씨.
키덜트.
단지 그뿐.
상대방의 역량을 파악하자 왜인지 모르게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는 곧장 댓글을 달았다.
ㄴ 이 틀딱 새끼가 뉴럴링크도 안 맞아서 가상현실 못해본 놈이 아는 척 좀 작작 해라. 전에 올린 게시글에 순 사무용품밖에 없네ㅋㅋㅋ
그렇게 조롱 섞인 댓글을 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 사람의 댓글이 달렸다.
ㄴ 무근본 애X끼가 원조도 안 해보고 게임고 질알거리고 있네……. 네가 근본 게임에 대해서 알음? ㅋㅋㅋㅋ
근본.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서 RPG만 인기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 PC 게임인 그라운드 제로, 레전드 오브 히어로, 언더 워치를 리워크한 가상현실 게임이 [3대] 종목으로써 주목을 받고.
앞서 말했던 종합 티어가 3대 게임의 평균값이었다.
그렇기에 근본.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현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ㄴ 그래서 님 티어가?
바로 그님티를 시전했다.
게임에서 티어는 절대적이니까.
‘근본? 근본이 티어지 뭐야.’
티어 외적인 정보는 무쓸모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고대현의 생각이었다.
ㄴ 말 안 하는 거 보니까 브론즈네.
ㄴ ㄴㄴ 딱 기다려라.
ㄴ 뭘 기다리는데. 티어 조작하는 거요?ㅋㅋㅋㅋ
ㄴ 내가 억지로라도 쓰게 해준다.
ㄴ 횡설수설 딴소리하시네.
“에휴, 티어 가져오라니까 뭐라는 거야 이놈은.”
고대현이 웃음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
상단에 이상한 알림이 나타났다.
‘응? 이게 뭐지?’
습관적으로.
뭐라고 의심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알림 배너를 눌렀다.
삑.
그러자 화면이 잠시 흰색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글로 넘어가…….
삑- 삑-
……지 않는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대현은 흰색에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화면을 이리저리 만져봤다.
몇 번의 터치 신호를 줬는데도 먹통인 것은 마찬가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역시, 요즘 시대와는 안 맞는 구린 핸드폰이라서 그런 걸까.
대현이 그리 여기며 핸드폰을 끌 찰나였다.
삑삑삑삑-
“……어?”
삑, 하고.
규칙적으로.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깜빡거렸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으슬으슬한 감각이 몸을 덮으며 시야가 울렁이고.
다음 순간.
의식이 흐려졌다.
평범하게 잠드는 게 아닌,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
이어서 환청이 들렸다.
고대현은 무의식중 들려온 환청을 똑같이 따라 읊었다.
“써보고…… 그런 말…… 해라……?”
써보라니, 도대체 무엇을.
의문을 표할 시간은 없었다.
[고대현 님은 특수 패치 대상자에 선발되셨습니다.]
[지금부터 위상(位相) 역전패치를 시작합니다.]
[위상 역전 (게임-공부)]
[특이점 돌파]
[아카식 레코드 – 페러렐 월드 조합 - 대상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구현합니다.]
팟─!
눈앞은 빠르게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어…….”
해가 중천에 떴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걸까.
어제와는 달리 환해진 방 안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현은 몇 분 정도 멍하니 벽지의 무늬를 훑었다.
그러기를 잠시.
‘조용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분위기.
부엌이나 거실에서 가족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날 법도 한데…….
의외로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적막감이 주위를 맴돌았다.
집에 누군가가 있다면 불가능한 느낌.
‘지금 집에 나 혼자 있는 건가?’
이것을 인식하자 아까부터 느껴지던 이질감이 더욱 커진다.
아직 수면 욕구가 몸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떨쳐내곤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나서.
대현은 별안간 방안에 감돌던 이질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책상.
고개를 돌리니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책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상 옆 책꽂이에 자그마치…….
“책?”
책들이 잔뜩 꽂혀있었다.
한두 권, 공부하는 척을 위해 산 정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 칸까지 꽉 차 있는.
누가 봐도 학생 방이라는 이미지를 물씬 풍기게 하는 그런 책상이 있었다.
“…….”
대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방이 갑자기 동생 방처럼 되어버리다니, 도대체 누가 언제 이걸?’
의심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동생이 옮기진 않았을 테니, 사실상 남은 선택지는 부모님일 확률이 높겠지.
물론 문이 잠겨있긴 하지만.
문은 문 나름의 해결방안이 있었다.
보통 가정집은 문이 잠길 것을 대비해서 예비키를 두니까.
‘내 방 예비 키를 가지고 계셨구나…….’
그러니 이 일을 단적으로 살펴보자면, 자는 사이에 부모님이 문을 따고 책꽂이를 채워 넣었다.
하나하나.
뭐, 그런 이야기가 되겠다.
“허…….”
헛웃음이 나온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제 그렇게 엄하게 말을 해 놓고서는, 공부하라는 방식이 꽤 조용해서.
그리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싹해서.
‘……저 책들은 다 어디서 구하신 거지?’
대현은 서늘한 기분에 팔뚝을 쓸어내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곧장 핸드폰으로 손이 향했다.
잠금 화면을 보니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시간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다들 토요일 오전부터 어딜 간 거지?’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간 자체가 동생이 독서실에 갈 시간이었다. 아마 데려다주는 김에 다 같이 나간 거겠지.
원래라면 캡슐방에서 게임을 할 시간이었기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꼬르륵-
아, 그건 그렇고.
배고프네…….
꼬르륵 소리와 함께 음식 생각이 속속히 떠오른다.
보통 이 시간대에는 캡슐방에서 나온 다음, 대기실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꼬들꼬들한 면발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삼각김밥을 국물과 함께…….
그것을 상상하자 공복감이 더욱 거세졌다.
‘아무래도…… 게임을 하러 가야겠다.’
부모님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게임이라니.
그것도 방에 책들을 투입 시킨 날에.
꼬르륵-
하지만 지금부터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의견이 바뀔 것 같진 않고…….
오히려 어제의 일 때문에 추가로 잔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배고프기까지 하니, 캡슐방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대현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은 다음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이상한 문자가 와 있었다.
[고대현 님은 특수 패치 대상자에 선발되셨습니다.]
[지금부터 위상(位相) 역전패치를 시작합니다.]
[위상 역전 (게임-공부)]
[특이점 돌파]
[아카식 레코드 – 페러렐 월드 조합 - 대상자에게 적합한 환경을 구현합니다.]
‘이게 뭐냐.’
스팸 메시지인 걸까.
이상한 내용이 와 있었다.
요즘 사기꾼은 창의력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다들 접속했으려나?’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인 최성재의 접속 여부가 궁금해졌다. 곧바로 앱에 접속해서 친구 목록을 쭉 훑었다.
[현재 접속 인원 : 0명]
‘음? 보통 이 시간대에는 하고 있을 텐데…….’
이상함을 느끼고 전화하려던 찰나, 손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지원 시즌이었지?’
그쯤, 대현은 잊고 있었던 학교 일정에 대해 떠올렸다.
인구감소로 인한 교육 개정 이후, 고등학교도 지원해서 가는 시대가 되었다.
각 학교 특성에 따라 학사일정이 제각기인지라, 실력 있는 학생은 이미 조기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게 일상이었다.
‘얘도 어디 준비한다고 그랬었지 아마…….’
그때의 일을 떠올리니, 접속을 안 한 게 대충 이해가 된다.
‘그냥 나 혼자 해야겠다…….’
대현은 차가운 현실을 느끼며 캡슐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가는 길.
어째서인지 거리가 어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