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72화 (172/186)

172. 거인이 그대들을 자유케 하리라.

드르륵-!

식사 시간.

이전에 죽임당한 카포와 같은 붉은 완장을 찬 죄수들이 수용소 복도를 돌며 음식이 든 접시를 철창 사이로 밀어 넣었다.

“죄수용 식사라기엔 너무 화려한데.”

자신의 눈앞에 놓인 것은 톱밥이 잔뜩 섞인 빵과 김이 나는 멀건 국. 그리고 소량의 마가린과 잿가루가 섞인 물이었다.

거진 일 년 만에 먹어보는 형벌부대식 식사에 헛웃음지은 얀은 철창 사이로 보이는 다른 죄수들의 상황을 살폈다.

“족장님. 여기….”

“나 같은 늙은이 말고, 자네들이 먹게. 체력을 남겨 놔야지.”

“그렇지만 족장님. 언제 다시 배급이 올지 모릅니다! 이대로라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잔말 말고 들게.”

우루크의 말에 따르면 이 식사는 얀의 행동에 지레 겁먹은 붉은 완장들이 자체적으로 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자신의 눈앞에 유독 수북이 쌓인 빵을 바라본 얀은 그 중 두 개를 집어든 뒤 나머지를 옆방으로 넘겼다.

“계, 계승자님. 감사합…!”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이젠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기에 얀은 자신을 바라보는 죄수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애초에 식사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나노머신이 신체 기능을 점점 대체해갈 수록 식사의 필요성도 줄어들었으니까.

으적. 으적.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퍼석퍼석한 흙의 식감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나노머신의 후유증으로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

함께 나온 국은 한 수저를 뜨자 안에서 담배꽁초가 튀어나왔다.

“꼴에 건더기도 얹어주고.”

음식이라기보단 찌꺼기나 다름없는 음식들을 보며 얀이 이죽거렸지만 그들 중 식사에 대해 불평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된 학대와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선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입에 집어넣어야 했으니까.

‘저 우루크라는 노인이 다급해지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빵을 들 기력도 없이 새된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구석에 격리된 병자들까지.

현세에 나타난 지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을 바라보며, 얀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우루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얀이 되묻자 우루크와 그를 둘러싼 젊은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포가 죽음으로써 이 곳 사람들도 어느 정도 기세를 되찾았네. 이 기세로 일제히 들고 일어난다면, 가능성이 있을 걸세.”

“그 다음은? 보급도 거주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다음? 말할 것도 없지. 자네를 구하러 라니스 왕녀가 오고 있지 않은가?”

태연자약하게 이어지는 우루크의 말에 얀의 눈이 깊어졌다.

“그 사이에 능력을….”

“비난해도 어쩔 수 없네. 우리도 그 만큼 절박한 상황이니 말일세.”

그 말에 한숨 쉰 얀이 팔짱을 끼웠다.

‘닐이나 렌이 없으니, 말싸움에서 이겨먹지를 못하겠군.’

지금 떠올린 생각은 들키지 않은 것인지, 우루크는 별 반응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데리고 있는 라니스 왕녀. 현 알프라이아 왕족으로써는 유일하게 성왕에게 반기를 들었지.”

“그 대가로 잔스카르로 도피했지만 말이야.”

짧게 반박한 얀이었지만 우루크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잔스카르 도피행 덕에, 많은 동지들을 꺼낼 수 있었다네.”

“이 포로들을 빼내고 있었다?”

“잔스카르 국적의 무역상사를 통해서 말이지.”

알프라이아 본국이 아닌 부족 사회의 이종족들을 연계하던 우루크. 그리고 잔스카르의 그늘에서 그들을 지원하던 라니스.

순조롭게 이어지던 두 집단의 공조는 공중전함 발두르의 재등장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가 동포들을 빼내는 속도보다도, 발두르가 그들을 죽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지. 지금에 와서는 내 다리도 이 모양이니….”

하늘에서 하나 둘 내려오는 콜로서스.

태양을 가리는 발두르의 함체.

그 광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대족장 우루쿠의 팔에는 미미한 떨림이 일었다.

“사연 없는 이는 없어. 중요한 건 가능성이지.”

우루크의 말을 들은 얀이었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수용소에서 당신이 제어할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이지?”

“2천. 그렇게 추정하고 있네.”

그 말에 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조용히 있어 봐.”

뜬금없는 한마디였지만, 얀의 눈빛에 순간 숨을 죽인 그들 사이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너희들이 더 잘 알겠지.”

들려온 것은 콜로서스의 발소리였다.

“무장하지도 않은 2천 명의 병든 군중과 콜로서스와 중화기로 무장한 중대 규모의 정규군 부대.”

그렇게 내뱉으며 얀은 허탈하게 웃었다.

봉기한다 해도 이 수용소에서 나오기도 전에 기관총과 콜로서스의 검에 짓이겨져 사라질 테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자 낙담한 듯 고개를 숙이는 젊은이들이었지만, 얀을 바라보는 우루크는 아직 눈에 빛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네에게 이 계획을 말한 걸세. 얀 베르쿠트.”

웃음소리와 함께 우루크가 그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그가 얀의 눈앞에 내놓은 것은 어댑터.

자신의 목덜미에 있는 기계에 연결되던 전선 끝에 부착된 장치였다.

“수용소 뒤쪽에 시체 구덩이가 있네.”

그렇게 말한 우루크는 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콜로서스 발굴작업을 위해 동원된 장소였고, 이젠 내 동포들과 가족들이 버려진 곳이지.”

알프라이아 곳곳에 위치한 콜로서스 매장지.

그곳을 파내고 남은 구덩이는 그 콜로서스를 파낸 혼혈 노동자들의 시체로 메워졌다.

“발굴된 골격들 중에 기괴한 기체가 있었지. 부족 원로들의 말로는 창조주의 유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덤덤히 말하며 손을 뻗은 우루크는 얀에게 그 어댑터를 넘겼다.

오랜 시간 보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도 상한 부분이 없었다.

‘확실히, 글레이프니르와 비슷한 기체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체가 생긴다는 사실 또한 고무적이었기에 얀은 주먹을 쥐었다.

그렇지만 희망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동지들이 일제히 봉기해 수용소를 혼란에 빠트린다면, 자네를 감시할 겨를도 없을 테지. 그러니 시선을 끈 사이에 구덩이로 들어가, 가운데에 묻혀있는 콜로서스를 작동시키게.”

얀이 기체를 가동시킨다면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

사실상 얀의 성공여부에 모든 죄수들의 생명이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좋아. 협조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얀은 그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되물었다.

“2천 명의 인원들이면 제압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콜로서스가 있다면 더더욱.”

백상어 정박지를 습격할 때, 글레이프니르가 3천 명의 해적들을 죽이는 데에는 이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알고 있네.”

“그걸 알면서도 내 행동 하나에 의지한 채 무리하에 일을 벌이겠다고?”

이들도 그들과 같은 광신도는 아닐지.

자신의 존재를 신격화 하여 그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뒤틀린 자들은 아닐지.

얀의 질문은 그 최종 확인이었다.

“확실히, 지금 이 곳에 있는 인원들로는 무리겠지만, 곧 열차가 올 예정이지 않은가?”

“…열차?”

얀이 되묻자 그를 바라보는 우루크의 웃음이 짙어졌다.

회한과 분노로 가득한 웃음이었다.

“우리 반쪽짜리들이 왜 죽지 않고 수용소에 남아있는지. 정말 모르겠나?”

***

치익-!

열차가 도착했다.

오크로, 고블린으로, 인간으로 가득한 열차.

도망자, 혼혈, 전쟁포로, 반역자, 탈영병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연을 담은 이들이 하나 둘 열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 전원 통제에 맞춰 이동하라!

인마살상용 기관포를 장비한 4호 콜로서스의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붉은 명찰을 찬 혼혈 죄수들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인간, 마흔 셋, 남성.”

“오크, 일흔 둘, 여성.”

“인간, 스물 둘, 남성….”

종족별로. 그리고 연령별로 정렬되어 대열을 맞춰가는 이들의 앞으로 커다란 수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들을 차례대로 반납한다! 불복 시 총살한다!”

눈앞에 콜로서스의 총구가 겨눠지자 공포에 질린 이들이 죄수들의 통제에 따라 자신들의 소지품을 하나 둘 수레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신발과 같은 가죽제품.

시계, 귀걸이, 장신구와 같은 금붙이.

가죽 재질의 외투와 벨트, 심지어는 안경까지.

온갖 물건들이 각각의 종류와 분류에 따라 차곡차곡 수레에 쌓여 거대한 언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번 인원수는 몇 명이지?”

“모르지. 한 칸에 수백 명을 눌러 담았으니.”

감정 없는 눈으로 수용소 앞에 모인 수만 명의 포로들을 바라본 엘프 기사는 차갑게 웃으며 각자의 콜로서스를 향해 걸어갔다.

“…음?”

그러나 그 순간, 빼곡히 들어찬 수많은 군중 속에서, 기사 중 한 명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이채를 띄었다.

“죄수? 완장을 차고 있지 않은데.”

“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다른 기사가 되물으며 다가오는 그 순간.

빠악!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돌덩이가 그대로 엘프 기사의 머리에 직격했다.

“아악?!”

“이런 미친! 어떤 자식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기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쇠창살을 뜯어내 각목에 감아놓은 둔기가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으직!

타격음은 순식간에 파열음으로 바뀌었고, 쇠못이 머리에 박힌 엘프 기사는 그대로 혀를 빼물은 채 절명했다.

“어, 어어어…!”

눈앞에서 동료가 죽었다.

이제 막 기사 서임을 받아 콜로서스에 탄 신출내기 기사에게는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어린 엘프 기사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기사를 죽인 하프엘프는 고개를 들어 그 기사를 바라보았다.

“성왕의 사냥개들. 오늘 전부 죽여주지!”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수용소 한 구석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에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무기를 들어라!”

오랜 수감생활에 노쇠할지라도, 그 목소리에는 좌중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었다.

수천만이 넘어가는 부족 연합을 통솔한 자의 관록이었다.

“살아남고 싶은 자! 더 이상 싸움을 원하지 않는 자! 모두 무기를 들어라! 숨지 말고, 당당히 저 성왕의 개들과 맞서라!”

온갖 잡동사니를 치켜든 수천 명의 죄수들이 수용소에서 쏟아져 나왔다.

‘곧 콜로서스가 반응한다. 그 전에 어서 빨리…!’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투콰앙-!

폭음과 함께 그들을 박아선 4호 콜로서스의 머리 부분에서 불꽃이 튀었다.

“역시!”

거동이 불편한 죄수들이 마력을 모아 완성해낸 마력포의 불꽃이 순식간에 4호 콜로서스 한 기를 불태웠다.

-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온 수용소를 울리는 기사의 비명소리.

그 소리가 이 곳에 가득 들어찬 포로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두려움을 앗아갔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도 형도! 얼마나 더 잡아 죽여야 직성이 풀리는 건데!”

“아무거나 잡아! 저 성왕의 개들을 죽여버려!”

“와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수용소.

곧이어 수많은 총성과 포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지만, 죽음을 바로 앞에 뒀던 죄수들의 고함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꾸득! 꾸드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독방에서 빠져나온 얀은 구덩이에 잔뜩 쌓여 있는 부패한 시체들을 걷어냈다.

강직을 넘어 물렁해진 시체들을 한 곂 걷어내자, 그곳에는 은회색 금속판이 얀을 맞이했다.

“아직 살아있다면, 어디 한 번 해결해 봐.”

그렇게 말하며 얀은 그 은회색 철판을 향해 손을 댔다.

“이게 네놈들이 원하던 인류의 영광이냐?”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명 씩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던 얀이 씹어뱉듯이 그렇게 말했다.

이종족에 대한 어쭙잖은 동정이 아니었다.

고작 유물 때문에.

고작 계승자라는 이 같잖은 칭호 덕에 벌어진 이 웃기지도 않는 살인공장의 참상에 넌더리가 났을 뿐이다.

“창조주니 뭐니 되도 않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면, 하다못해 네놈들이 만든 것 하나라도 지켜보란 말이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일갈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얀의 머릿속으로 처음 듣는 낮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합니다. 파일럿. 험지돌파형 중장갑 인형병기, 타이탄(Titan), 탑승 대기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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