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버텨야 한다.
삐-!
평소였다면 들릴 리 없는 거친 부저음이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을 가득 메웠다.
“나노머신이 과부하 됐어. 장비 연결 해제.”
[확인. 파일럿 보호 모드로 이행. 기체 폐쇄.]
철컹-!
그레이프니르의 팔에 연결된 거대한 발사기가 해제되자 땀으로 범벅이 된 얀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경련하기 시작했다.
“헉…! 허억…!”
양 팔의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울룩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파일럿 맥박 불안정. 체온 상승. 진정제 투여.]
다급한 닐의 목소리와 함께 얀의 목덜미를 통해 약품이 들어오자, 그제서야 몸의 떨림이 조금 줄어들었다.
“씨발….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원래는 발두르보다도 거대한 함선이 주포 대신 사용하는 물건이야.”
발사 시 반동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포를 들어올려,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격통이 밀려온다.
“벌써 열다섯 번째야. 이대로 가면 실전에 투입하기도 전에 네 몸이….”
“처음엔 십 초도 못 들던 게, 이젠 삼 분까지는 버티잖아.”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얀은 입가를 비틀어 웃음 지었다.
“몇 번만 더 해보자고. 적어도 방아쇠를 당길 수는 있어야 할 것 아냐.”
“그 전에 네 몸이 망가져.”
“버텨. 죽어도 버티게 만들 거야.”
복수를 끝내기 전 까지는 자신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이것만…. 이것만 해내면 돼. 케인이 남긴 마지막 과업이다. 이것만 해내면, 계획을….”
흐릿한 눈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얀을 보며 렌이 눈을 내리깔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그렇게 말하던 얀은 이내 눈을 감고 조종석 한 편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었다.
[…파일럿의 신체 회복을 위한 플랜 재구축. 51차 플랜 제안.]
“세 번 더 수정해줘. 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할 테니까.”
[확인.]
닐의 음성에 답한 렌은 그가 보내오는 나노머신의 운용 데이터와 진단 결과를 보며 의료약품의 성질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지막이 말을 건 것은 렌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함.]
얀을 매개하지 않으면 서로 몇 마디도 나누지 않던 둘이었기에, 닐은 의외라는 듯 대답을 조금 늦췄다.
“이 일이 전부 끝난다면, 얀은 과연 살 수 있을까.”
마치 사람이 묻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어조.
그 기괴한 변화에 의아함을 느낀 것인지, 대답하는 닐의 목소리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본 기체 및 AI의 존재의의는 파일럿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의 목표를 보조함에 있음. 이에 해당하는 모든 수단을….]
“얀의 몸 상태가 어떤지는 너도 잘 알잖아.”
강제 연결시술에 의한 후유증.
수명을 대가로 기체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펜리르 시스템.
뇌신경을 직접 연결시켜 기체 제어를 보조하는 왼쪽 눈의 임플란트.
이제는 피보다도 더 많이 돌고 있는 나노머신.
기체 개조에 따른 신체 과부하.
휴식기 없는 계속된 전투로 인해 누적되는 피로.
“10대 중반에 입대해서 성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몸을 10년 넘게 전장에서 혹사시킨 상태야.”
격렬한 전투와 형벌부대원들 사이의 폭행.
오염된 물과 식사, 고통을 잊기 위한 독한 마약성 진통제, 공기 대신 들이마시던 포연과 화학가스까지.
오랜 전쟁은 그에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함과 동시에,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의 몸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이젠 기체 운용을 위한 시술까지 추가한 상황.
“우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얀은 점점 죽어가고 있어.”
스스로 빛나면 빛날수록 녹아내리는 촛불과 같이, 그의 성과와 명예가 쌓일수록 그의 몸은 점점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사용자의 몸을 좀먹는 무기라니, 그런 건 있어서는 안돼요!’
누군가가 이전에 했던 말을 떠올린 닐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우린 그를 이렇게 둬야 할까.”
천천히 말을 고른 렌이 그렇게 말하자 닐의 마크가 붉게 점멸했다.
[경고. 연방 규정에 의거, 생체단말 및 AI는….]
“사용권자의 행동을 보조할 뿐, 그 목적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
닐이 할 말을 먼저 내뱉은 렌이 고개를 돌려 붉게 점멸하는 닐의 마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규정을 만든 연방은 지금 어떻게 됐어?”
***
“이, 이봐! 저거!”
알프라이아 동남부 지역의 들판.
파종 준비에 한창인 농부 차림의 오크가 동료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저기, 북동쪽.”
“나도 봤어. 저 기체는 뭐지?”
잔스카르의 보급품을 두른 오크들은 망원경을 들어 북동쪽의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쿵-! 쿵-!
발소리와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붉은 색 거인.
아무런 호위도, 보병도 없이 나아가는 무방비 상태였지만, 그 거체가 뿜어내는 기괴한 느낌에 오크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델타도 아니야. 저런 기체가 있었나?”
“기사단에서 새로 만들었나보지. 저 총부리가 제국을 향할지 우릴 향할지….”
이를 악물며 그렇게 중얼거린 오크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느낀 듯 붉은 거인이 멈춰 서자 오크들은 재빨리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드, 들킨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 망원경 없이는 콜로서스도 손가락 만하게 보인다고. 우리가 누군지 어떻게….’
- 볼 수 있지. 들을 수도 있고 말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아닌, 머릿속에서 들리는 기괴한 전음.
그것이 마력을 담은 텔레파시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그것을 지켜보던 오크들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 목소리!”
“성왕의 기사다! 데, 델란엘!”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오크들은 황급히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 징병대상자인 오크가 어째서 이곳에 숨어있는 것이지? 폐하의 명령을 받지 못했나?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스산한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쪼, 쫓아오고 있나?!”
“아니야! 가만히 있어! 아무 것도 안하고 지켜보기만…!”
그렇게 말하며 달려가던 오크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몸 전체.
그가 딛고 있는 땅의 대부분이 그림자에 잠기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이건….”
그들이 느낀 감정은 의문이 아닌 공포.
마을과 집단농장에 살던 수천 명의 이웃들이 살해당하던 날, 그들은 이것과 같은 그림자를 본 기억이 있었다.
“하, 하늘에….”
쫓아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쫓아올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
“발두르.”
한탄하듯이, 체념하듯이 그 배의 이름을 불렀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거대한 역삼각형의 동체.
알피와 라이아와 함께 그들을 노예의 삶에서 해방시켜 찬란한 왕국을 만들고 지켜온 하늘 위의 성.
그리고 지금은 성왕의 명령에 따라, 시체의 산을 쌓아가는 성왕의 요새.
“도대체 왜 다시 온 거야…!”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렇게 말하며 그들은 품에 숨겨둔 무기들을 꺼내들었다.
낡은 권총, 소총, 심지어는 단검.
탈영할 때 까지 들고 있던 손때 묻은 무기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가증스런 전함.”
“지옥에나 떨어져라.”
발두르의 그림자 아래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오크들은 넋을 잃은 채 들고 있는 무기들을 발두르를 향해 쏘아댔다.
- 그리 허무하게 갈 것이라면, 차라리 인간을 하나라도 더 죽여줬으면 기뻤을 텐데.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성왕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을 죽이기 위해 발두르의 포문이 열렸다.
***
[형상감식 레이더에 이상 감지.]
“뭐?”
일대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글레이프니르의 정보 콘솔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여기서부터 멀지 않은 상공에서 천천히 전진하는 부유물.
“비슷한 표식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레이더를 가동했을 때 보이던 콜로서스의 표식이 아닌 거대한 표식.
잔스카르 지하의 아크를 표시할 때 나오던 표식을 발견한 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여기까지 접근했는데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건….”
[본 기체의 전자 레이더망을 의도적으로 교란중. 피탐용 전자기장을 활성화한 것으로 추정됨.]
고대인의 유물이,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함이 고작 콜로서스 따위를 상대하는 데 이런 준비를 하고 올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얀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말인 즉,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직접 행차하신거로군.”
에드윌 백작의 증원을 위해 부대원들이 빠진 이 타이밍에.
그리고 잔스카르의 증원함대가 도착하기 직전인 이 타이밍에.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인데. 제국군이 후방에 침투한 게 그리도 아니꼬우셨나?”
“제국군은 문제가 아니야. 가장 큰 문제는 너지.”
렌의 말을 들은 얀은 그렇겠지, 라고 답하며 글레이프니르에 몸을 실었다.
“아직 적응도 완벽하지 않아. 일단 잔존 함대에게 대응하게 하면….”
“이 기지 병력의 다섯 배를 수 분 만에 지워버리는 전함이야. 도착하면 늦어.”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얀은 한 쪽에 세워져 있던 미스틸테인 발사기를 들어 등에 장착했다.
“진짜, 더럽게 무겁네…!”
장비하는 것만으로도 기절했던 이틀 전 보다는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다루기 힘든 무기인 것은 자명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얀 자신 뿐 만이 아니었는지, 시야 한 구석이 점멸하며 닐의 중저음이 얀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경고. 현재 파일럿의 신체 상황을 근거로 판단 시, 미스틸테인 발사 시퀸스 이후 파일럿의 생존 확률은….]
“아까 계산 해 봤잖아. 이 수술도 살았는데, 대충 살겠지.”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닐은 더 이상 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말했잖아. 믿으라고.”
닐을 향해 그렇게 말한 얀은 시선을 돌려 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막을 수 없을 바엔 등을 떠미는 게 낫다고 했잖아.”
“….”
그 말을 들은 렌의 눈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조종석에 다시 걸터앉은 얀은 해상기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발두르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글레이프니르와 함께 외부 훈련에서 복귀한 얀이 가져온 정보는 믿기 힘든 것이었다.
“기체 레이더로 확인한 건 발두르와 6호 열 대. 그리고 뭔지 모를 기체가 하나야.”
“뭔지 모를 기체?”
그렇게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얀이 그의 눈앞에 렌이 인쇄한 그림을 보였다.
“이 녀석이 감지한 바로는 이런 형상이라던데.”
그러자 놀란 얼굴을 한 것은 정찰을 마치고 보고중이던 쿠르-막이었다.
“이, 이런 미친. 이 문양은!”
“아는 게 있나?”
얀이 되묻자 마른 침을 삼킨 쿠르-막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델란엘. 성왕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기사다. 근위기사 출신이었지만, 검은 콜로서스에게 패배한 뒤에…!”
그렇게 말하다가 말을 멈춘 쿠르 막은 얀을 바라보았다.
“아, 그 엘프. 아직 살아있었나 보지?”
중부전선의 괴물을 잡은 검은 콜로서스의 주인.
그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성왕의 기사가 직접 행차했다면, 발두르 안에는 성왕 본인이 타고있단 말이군.”
“그럼 오히려 잘 됐어.”
턱을 감싸 쥔 카일의 목소리에 그렇게 답하는 얀의 얼굴을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지를 헤집어놓도록 놔둘 수는 없지. 먼저 가서 부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