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시궁창.
까악-! 까악-!
썩은 살점의 냄새를 맡은 까마귀 떼가 마을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거 진입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지?”
“줘 봐.”
마을 한 구석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린 뒤 얼마 후.
타앙-!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놀란 까마귀들이 날개소리를 내며 황급히 마을을 벗어났다.
푸드드득-!
“아오 진짜! 얘기 좀 하고 쏴라 좀!”
“허구한 날 듣는 게 총소리인데 뭘 새삼스럽게.”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진 총소리에 깜짝 놀란 카일이 볼멘소리를 냈지만, 얀은 표정변화 없이 눈앞에 있는 마을을 응시했다.
“가로등, 전신주…. 사람이 안 걸린 곳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잿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 위치한 마을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로등 위에 걸린 시체.
가로수에 걸린 시체.
지붕 한편에 걸린 시체.
창문에 매달린 시체.
“내분인가?”
“생각해봐야지. 가이드랍시고 데려온 게 저 모양 저 꼴이니.”
단델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며 시선을 돌린 곳에는 아직까지도 구역질을 멈추지 못하는 라니스의 모습이 있었다.
“꺽…! 꺼억…!”
이미 게워낼 것도 없이 헛구역질만을 계속하고 잇는 라니스였지만, 그녀는 눈앞에 닥친 참상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었잖아…! 이런 건 수도 없이 볼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온 거잖아…!’
끊임없이 그렇게 되뇌며 자신을 다그치는 라니스였지만, 주저앉은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야…!’
“시체를 본 건 처음이었나 보지?”
얀의 팔이 그녀를 잡아 일으키자 그제서야 그녀는 겨우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저…. 저는…. 괜, 찮….”
“안 괜찮아. 이미 탈수가 오잖아.
그렇게 말한 얀이 대원들을 향해 손짓하자 한 사람이 다가와 그에게 수통을 건넸다.
“여기서 나자빠지면 뭐 어쩌겠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수통을 받아든 얀은 뚜껑을 딴 뒤 그녀에게 건넸다.
“입에 머금고 삼키지는 마. 무리하게 삼키려고 하면 또 토한다.”
입 안에 물을 머금은 라니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입 안에 든 물을 삼킨다면 이 마을 전체에 퍼진 시체 썩은 내를 같이 들이킬 것만 같았다.
[수색팀, 진입 완료했습니다. 현재까지 위험요소는 없습니다.]
“확인했다. 전 부대, 진입 개시.”
평소와는 달리 직접 대원들을 지휘하는 얀의 목소리에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방 민가, 확인.”
“시체 한 번 더 체크해. 부비트랩이 있을 수도 있어.”
“고블린 거주지다. 수류탄 하나 정도는 까넣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한다. 엄호 준비해.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마을을 뒤집어엎는 대원들을 보며 카일은 질린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얘네…. 평소에도 저렇게 해?”
“아니. 오랜만에 보는 개판이라서 과민반응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얀의 시선은 자신과 대원들이 몸담았던 케르단 전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투의 난이도, 작전 성공률. 항상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87중대원들이었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케르단 전선에서의 하루하루. 위험한 임무, 고된 임무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지만, 우릴 죽음으로 내몬 건 따로 있었지.”
콜로서스의 굴착기에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동료의 시신들.
피로에 절어든 몸을 뉘인 핏덩이로 가득한 참호.
썩어 문드러진 피와 쥐, 오물, 그리고 그 곳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인간성. 나락으로 떨어지는 도덕.
두 번 다시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까지.
그곳을 빠져나온 이들에게 이 곳은 또 하나의 케르단이었다.
마치 그 곳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
케르단 전선에 무겁게 깔려있던 검고 탁한 공기가 그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수색 계속해. 난 외곽을 돌아보지.”
그렇게 말한 얀은 더 대꾸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마을 안으로 걸어갔다.
“이, 이봐! 얀! 혼자 어딜 가는…!”
황급히 그를 따라가는 카일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얀이 중얼거렸다.
“마을 전체에 깔린 이 썩은 내. 겨우 이 정도의 시체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얀은 마을 중심부를 지나 뒤편에 있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라니스. 넌 이 이상 오지 마.”
“네, 네?”
무심코 얀의 뒤를 따르려던 라니스가 흠칫 몸을 떨며 멈춰 섰다.
“내 예상이 맞다면…. 넌 지금 따라오면 무너진다.”
그렇게 말한 뒤 얀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렇게 10분.
마을 외곽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을에 깔린 듯한 썩은 냄새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지독한데.”
“역시, 악취의 근원은 마을이 아니야.”
단순히 시체가 썩는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화약, 재, 그리고 눌어붙은 진흙의 흙냄새까지.
이윽고 방독면 없이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심해지자, 대원들에게 보급되는 바이저를 쓴 얀과 카일은 드디어 그 악취의 근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씨발, 이거…!”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거대한 구덩이.
마을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것만 같은 거대한 구덩이 속에는, 수 만이 넘는 오크와 고블린들의 시체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우욱?!”
매일같이 시체를 눈에 담는 군인이라 해도, 진창과 같은 구덩이 속에 살아가는 그들이라고 해도 정도란 것이 있었다.
이미 강직을 넘어 액체화된 채 꿀렁이는 시체의 늪을 본 카일은 곧바로 등을 돌려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죽자고 싸워대더니, 하는 짓은 똑같군 그래.”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라니스와 카일을 떠올린 얀이 그렇게 평했지만, 카일은 거기에 뭐라 대꾸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정신나간 짓이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이 정도로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 수 있는 장비. 딱 떠오르는 게 있지 않아?”
그렇게 말하자 카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발두르? 성왕이 동족을 학살한단 말이야?!”
“굳이 말하면 동족은 아니겠지. 엘프의 시체는 안보이잖아.”
기사단으로 전선을 유지하는 알프라이아에게 있어, 엘프는 무엇보다도 귀중한 전력이다.
이런 식으로 낭비할 리 없지.
그렇게 덧붙이는 얀을 보며 카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안그래도 제국과의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이런 짓을 해서 알프라이아에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데?”
“이득?”
그렇게 말한 얀은 차갑게 웃으며 카일을 향해 내뱉었다.
“이 전쟁은 애초에 이익을 바라고 시작한 전쟁이었나?”
“…!”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군수물자 수요로 인해 쌓이는 엄청난 부.
그렇지만 그것은 카르디어스와 귀족들의 금고를 배부르게 할 뿐, 제국은 한 세기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차츰차츰 죽어가고 있었다.
“알프라이아에 비해 몇 배는 부유한 제국도 온갖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어. 여기도 다르지 않겠지.”
“그걸 해결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고?! 세상천지 어느 통치자가 이 따위 만행을…!”
“허, 뭐야.”
카일의 말을 끊은 얀이 웃음 띤 얼굴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전까진 포로를 죽이네 뭐네 하더니, 이젠 동정하는 건가?”
“…하, 내가 말을 말지.”
얀의 이죽거림에 그렇게 대답한 카일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눌러 참지 않는다면 지금도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이상하잖아. 적어도 수만 명이 이곳에서 살해당했는데, 반기를 드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게….”
“반대야.”
새로운 목소리의 출현에 구덩이를 바라보던 얀이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렌.”
어느 새 눈앞에 나타난 새하얀 소녀가 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반기를 든 이들, 성왕에게 탄원한 이들, 전쟁을 거부하는 이들…. 그들을 한데 모아서 처분한 거지.”
그렇게 말한 렌의 한 마디에 카일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새끼!”
참전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학살하는 왕이라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해상기지에 포로가 적은 것도 이유가 있었군.”
전투 보고에 따르면 패색이 짙은 순간에도 몇몇 오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싸웠다고 한다.
눈앞에서 수만 명이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본 이들이 이성을 내던진 채 달려든 것일까.
부스럭-!
그 순간, 수풀 한 가운데에서 들려온 소리에 곧바로 반응한 얀이 그 곳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쏘, 쏘지 마!”
겁에 질린 목소리.
양 손을 든 채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녹색의 거구에 얀이 얼굴을 찡그렸다.
“오크?”
녹색 피부에 사람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근육질의 거구.
그와는 다른 순박한 인상의 오크였다.
‘옷이…. 저게 뭐지?’
겁에 질린 채 손을 들고 있는 오크의 복장은 얀이 그동안 봐 오던 알프라이아군의 군복이 아니었다.
동물의 가죽을 통째로 무두질해 만든 옷과 곳곳에 달려있는 조잡한 장신구.
거기에 귀 뒤쪽에 달려 있는 깃털까지.
“군인은 아닌 듯 한데.”
“부족민. 숲 속에 사는 오크들이야.”
“뭐? 부족?”
렌의 설명에 얼굴을 찡그린 얀이 눈 앞에 서 있는 오크를 바라보았다.
‘케르단 북부에 살던 엘프들과 같은 건가? 그렇지만 이 곳은….’
그렇게 생각하던 얀은 이윽고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이 땅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 우리 부족의 전사들이 숨어서 너희를 노리고 있다! 야, 얌전히 우리를…!”
“노려? 설마 지금 손에 든 그걸로?”
그렇게 말한 얀은 겁에 질린 오크의 손에 들려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소총의 철제 부품이나 장갑판을 날카롭게 갈아 묶어놓은 조잡한 창.
수풀 곳곳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무기들 또한 화살이니 돌멩이니 하는 것들뿐이었다.
“성왕에게 대항하려 해도, 대항할 수 있을 턱이 없지….”
한탄에 가까운 말을 중얼거린 얀은 피로감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닐.’
대답이 들려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일럿 위험 확인. 글레이프니르, 접근중.]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닐의 중저음과 함께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얀의 등 뒤에 내리꽂혔다.
쿠콰아앙-!
“으, 으아아악?!”
“뭐야! 저건 설마 콜로서스?!”
“말도 안돼,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생각도 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오크들이 뒤늦게 화살을 날려보려 했지만, 글레이프니르의 팔에 장착된 기관포가 더 빨랐다.
부와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수풀 앞에 내리꽂힌 기관포의 포탄들이 주변의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으으! 으으으으…!”
그들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다.
섣불리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을 공격한다면 주변 정착지를 자극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전원 손들고 앞으로 나와.”
글레이프니르를 등지고 서 얀의 말에 오크들이 하나 둘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 창조주님의 신체다.”
“우리의 기도가 닿았어.”
“우릴 구하러 와주신거야…!”
붉은 안광을 내뿜는 글레이프니르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오크들을 보며 얀이 표정을 구겼다.
“씨발, 여기도 계승자 타령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