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57화 (157/186)

157. 얘기가 다르잖아.

“….”

“아, 베르쿠트 백작님도 함께였군요.”

고저없는 미리암의 목소리가 얀을 상념에서 깨웠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그렇게 그를 의심하던 얀은 미리암을 바라보았다.

“백작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이상한 듯 그가 되묻자 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리암과 얀의 만남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으며, 예측할 수도 없었다.

황제를 잃은 황후는 그녀의 측근들에게만 자신의 행적을 공유했고, 그 측근에 벨커스는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모른다기보단, 기억할 가치가 없는 거겠지.’

베르카 영지를 거쳐가는 빈민, 난민, 실업자, 상이군인….

그에게 있어 그들은 전부 벨커스의 피를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으니까.

‘그 수많은 재료들 중 하나일 뿐이겠지.’

얀은 자신의 사연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야니카와 같은 이를 구하기 위해 백작가의 경비를 뚫은 것도, 눈앞에서 소중한 이가 도축되는 것을 바라본 것도, 얀이 처음이 아니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자신은 그들을 부수기 위해 온 생명을 다 바쳐왔지만, 그들에게 있어 얀의 존재란 스쳐지나간 수많은 가축들 중 하나겠지.

얀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미리암은 얀에게 관심을 거둔 채 옆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벨커스 기사단의 협력을 얻게 되니 기쁩니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렇게 말하는 카일이었지만, 인사를 받는 미리암도, 카일 자신마저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바다를 지키던 바일사르 해군이 위험한데, 기사단으로서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미리암이 손짓하자 하인 한 명이 다가와 카일 앞에 선물함을 내밀었다.

이전에 자신이 입었던 하인복을 10년 만에 다시 본 얀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이건…?”

“가주님께서 보내시는 작은 선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하인이 선물을 풀어보이자, 그곳에는 호화로운 술병이 들어있었다.

“베르카 영지의 포도주로군요.”

라벨에 그려진 벨커스 백작가의 문양을 본 카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지었다.

‘전투를 앞에 둔 지휘관에게 술이라. 알 만 하군.’

최전선에서, 전투함 함교에서 술독에 빠져 살던 지휘관들의 면면을 떠올린 얀 또한 헛웃음 쳤다.

‘해군의 위기 운운하며 이걸 줬다는 말인즉.’

‘이 이상의 해전은 포기하고 기사단에게 해상 지휘권을 넘겨라…. 그렇게 말하고 있군.’

이마저도 듣기 좋은 말로 순화했을 뿐, 전장 뒤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으라는 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저 집사장의 머리에 술병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억지웃음으로 이를 받아넘긴 카일은 작전지도를 펼쳐 그 내용을 보였다.

“즉 벨커스 기사단은 상륙하는 적들을 막아내는 모루 역할을 하겠군요. 헌데….”

이미 전달받은 내용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기에 미리암은 감흥 없이 작전 개요를 살펴본 다른 쪽에 관심을 두었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뜸을 들인 미리암이 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역의 업을 짊어졌다고는 하나, 저들 또한 제국의 기사로서 서임 받은 이들일진대 식민지 반군의 전술을 사용한다니요, 하물며 물속에서….”

그 말에 얀과 카일은 동시에 혀를 찼다.

‘기사로써 오래 살아온 이들이라면….’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기사라는 칭호에 집착하는 이들일 수록, 벨커스 백작가에서 사사받은 이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콜로서스를 단순한 전투병기가 아닌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10 미터가 넘어가는 강철거인을 다룬다는 사실과 황실의 인증, 높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권위까지.

‘나쁘다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당연한 거지.’

‘그렇지만 이건…. 도가 지나쳐.’

그들의 지위는 그들이 다루는 콜로서스에서 나온다.

그러나 작금의 기사들은 전장을 가린다.

명예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겁하다는 이유로.

온갖 구실을 붙여 다양한 전장에서의 경험을 거부한 채 최대한 안전한 전장으로 스스로를 내몰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장기말은 없느니만 못하지.’

다른 기사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얀에게 있어 콜로서스란 전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방침을 받아들이지 못한 기사들을 훈련 과정에서 걸러낸 것이 작금의 베르쿠트 기사단.

‘네놈들을 전부 잡아 죽이기 위해 다 포기한 놈들이지.’

벨커스와는 다른 출신이라고 하나, 그들 역시 제국의 환경에서 자라온 기사들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받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지.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을 인정했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주인 잃은 개가 집 지키는 개를 거둔 격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표정을 고친 얀은 자신을 떠보는 듯 웃음 짓는 미리암을 향해 짙은 미소를 보였다.

“저도 제 기사들도 받아들인 일입니다. 책임지고 해내죠.”

그렇게 말하자 미리암은 어깨를 으쓱이며 얀의 말에 답했다.

“제국의 떠오르는 신성이시니. 믿고 협력하겠습니다. 제국을 위하여.”

자신이 두르고 있는 것과 같은 가식으로 가득 찬 한 마디.

그 말에 얀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제국을 위하여.”

***

“집사장님. 어떠셨습니까?”

회의에서 돌아온 미리암은 자신을 향한 기사들의 질문에 코웃음 쳤다.

“풍전등화. 이 인원이 전부 올 필요도 없었다.”

바일사르 해양의 수호신이라 불렸던 자.

해안 지역에 영지를 둔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망 높은 가문이 지크 백작가문이었다.

“본래는 카일 공자를 회유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함대가 이 지경이 돼서야, 그럴 가치도 없어.”

카일과 얀이 가진 것은 한 줌도 되지 않는 함대와 소수정예의 콜로서스 뿐.

이 상태에서 그들이 연합하든, 아니면 분열하든, 이 전장의 주도권은 벨커스에게 있었다.

“놈들의 콜로서스는 어떻지?”

로렌 영지에서 비밀리에 개발했다던 콜로서스에 대해 묻자 기사들의 입에도 비웃음이 걸렸다.

“정비창에서 확인했습니다만…. 말 그대로 누더기나 다름없습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것저것 덧대는 듯 합니다만…. 풋!”

그렇게 말하며 그들이 떠올린 것은 정비창에서 작전 준비중인 에퀴테스들의 모습이었다.

관절부와 동력로에 방수포를 덧대고, 장갑 틈새를 용접하는 작업.

그 덕택에 검은 색의 날렵한 카발리의 모습은 마치 해초를 뒤집어쓴 듯 기괴한 형상으로 변해있었다.

“저희 기준에서 보자면, 그건 콜로서스가 아닙니다. 장난감이나 다름없죠.”

그렇게 말한 벨커스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정비창에 입고된 벨커스의 신형 콜로서스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에 비하면 더욱 그렇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기사들의 눈앞에는 은색으로 번쩍이는 육중한 콜로서스가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콜로서스 ‘가디언’…. 드디어 빛을 보는군.”

안그래도 육중한 페이지 콜로서스를 더욱 부풀린 듯한 모양새에, 등에 수납된 거포.

그리고 가슴 중앙부에 위치한 두 개의 마력로까지.

“이 콜로서스의 기초 이론을 만드신 것도 하이람 백작님 아니십니까!”

“이미 양산 체계까지 갖추었으니, 조금만 있으면 우리가…!”

“그만. 거기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 기사들을 제지한 미리암이었지만, 그 또한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벌써부터 기뻐하기엔 이르다. 게다가, 우리에겐 할 일이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며 이를 드러낸 미리암을 따라, 몇몇 기사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전투가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상륙부대를 저지하고 해안선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그리고 돌아오는 로렌츠의 기사들과 베르쿠트 백작을…. 널 처리하는 거겠지.”

회의실 의자에 앉은 얀은 카일의 말을 들으며 품속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서, 난 그 녀석들의 계획대로 죽어주면 되는 건가?”

“왜.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인 얀이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쯤, 짓궂은 표정을 한 카일이 입을 열었다.

“모처럼 술도 받았는데, 이걸 이용해보면 어떨까 싶어.”

그렇게 말한 카일은 자신의 한 손에 들린 술병을 흔들어보였다.

“설마 해상 지휘권을 전부 넘기겠단 말은 아니겠지?”

“맞는데?”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흔들어 보이는 카일.

그곳에는 벨커스 기사단 지휘자에게 이 기지의 지휘권한을 이양한다는 내용과, 최종 결정권자인 그의 서명이 적혀있었다.

“허.”

너무나 평온하게 이어지는 카일의 대답에 얀은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꿍꿍이속이야?”

그렇게 말하자 카일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귀에 걸릴 듯 올라왔다.

“해상기지 지휘권을 넘긴다고 했지, 함대와 선원들을 넘긴다고는 안했잖아?”

그 말을 들은 얀의 얼굴이 이채를 띄었다.

“그 말인즉?”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저 녀석을 가져온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들어 올린 카일의 손가락은, 거대한 세 척의 상륙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

애애애앵-!

깊은 밤중, 벨커스 기사단 소속의 척후병이 울린 경보에 벨커스의 기사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콜로서스에 탑승했다.

쿠르르르…!

육중한 거체를 일으키는 콜로서스 가디언들.

그들의 양 팔에 기관포와 돌격포, 혹은 화염방사기와 같은 온갖 대인화기가 장착되며 수많은 기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왜 함대에서 경보를 울리지 않은 것이지?!

처음 경보가 울려 퍼진 것은 벨커스 기사단의 정비창이었다.

그 말인즉 앞서 일대를 살피고 있던 카일 휘하의 수병들은 기습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뜻.

“지휘권을 넘긴다 하더니, 최소한의 직무마저도 내팽개친 것인가!”

신경질적으로 그렇게 내뱉은 미리암 또한 자신의 가디언에 몸을 실었다.

치익-!

공기가 폐쇄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시야가 콜로서스의 그것으로 바뀌어갔다.

- 제 1병단은 날 따라 전선을 형성한다! 3병단과 7병단은….

- 지, 집사장님!

자신의 지시를 끊고 들려온 외마디비명에 짜증을 느낀 미리암이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 당황하지 마라! 기습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보병 위주의 상륙부대! 기사단의 상대가 될 리…!

거기까지 말한 미리암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 저, 저게…. 뭐야?

바다를 가득 메운 상륙정들은 보고받은 숫자의 두 배가 넘는 수.

그리고 그들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보병의 상륙정들을 조각배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거대한 배였다.

- 이, 이 건 설마…!

전열을 갖춘 가디언들이 일제포격을 쏟아붓자 1열의 상륙정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지만 눈앞에서 다가오는 저 거대한 것을 본 순간, 미리암은 이 전투가 결코 녹록치 않자는 것을 직감했다.

- 뭐가…! 뭐가 화력지원이냐! 저, 저건…!

쿵-!

해안선에 다다른 거대한 배의 해치가 열리고, 그곳에서 빛나는 안광들이 밤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 나 델란엘이 알프라이아의 근위기사들에게 명한다!

검붉은 색으로 온 몸을 칠한 거대한 콜로서스가 선두에 선 채 방패를 치켜들었다.

- 제국의 개들을 모조리 없애버려라! 성왕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말과 함께 델란엘의 델타 콜로서스의 양 옆으로 하나 둘 씩 다른 거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으아아아아아-!

- 크어어어어-!

- 인간놈드으으을-!

과부하 된 마력으로 인해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열 대의 콜로서스를 본 미리암이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

- 델타 콜로서스라니!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그리고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하늘을 가르며, 플라이트 유닛을 점화시킨 글레이프니르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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