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49화 (149/186)

149. 다시 만났네요 우리.

삐-!

얀의 귀 옆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에 글레이프니르가 몸을 비틀었다.

투콰앙-!

기체를 배낸 자리에 곧바로 하전입자포의 열선이 스쳐나갔다.

“조금만 느렸어도 끝장이었군.”

흐레스벨그의 이목을 글기 위해 기동전으로 전환한 지 한 시간.

추가로 두 대의 흐레스벨그를 떨어트렸지만, 자신을 쫒는 알리에노르의 기체만큼은 끈질기게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 놓치지 않을 거예요 얀! 절대로!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알리에노르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대신, 얀은 글레이프니르의 플라이트유닛을 역추진 시켜 뒤따라오던 흐레스벨그의 뒤를 잡아냈다.

투웅-!

“끄으윽?!”

마치 열차에 치이는 것만 같은 엄청난 충격이 얀의 몸을 뒤흔들었다.

고속으로 비행하던 속도를 정시하는 순간 찾아오는 반발력.

순간 정신을 잃을뻔한 얀이었지만, 그는 흐려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사선 안에 들어온 흐레스벨그를 겨눴다.

- 어머?

“언제까지 당할 줄 알았냐!”

[하전입자포 사격모드 변형. 3점사, 방사형.]

그 말과 함께 글레이프니르의 어깨에 장비된 입자포가 불을 뿜었다.

쿠콰쾅-!

굉음과 함께 부채꼴로 퍼져나간 입자들이 뒤를 잡힌 흐레스벨그의 장갑판과 추진기 두 개를 갉아먹었다.

[3,5,12번 추친기 작동 불가. 봐완부 장갑 손상률….]

“필요 없어. 전부 떼어내.”

인공지능의 안내음성을 끊으며 알리에노르가 명령했다.

[명령 확인. 메인 파츠 퍼지.]

철컹-! 철컹-!

곧바로 튕기듯 떨어져나간 각종 부속들이 글레이프니르에게로 흩뿌려져 폭발을 일으켰다.

펑-!

“이까짓 폭발로 눈을 기려봤자…!”

폭연을 뚫고 솟아오른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이 알리에노르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 4번. 여기서 죽어.

고저 없이 들려오는 알리에노르의 목소리에 호위하듯 알리에노르를 따라오던 기체가 곧바로 글레이프니르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이런 미친!”

기회를 잡은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을 막아선 또 한 대의 기체.

짓쳐들어오는 랜스를 가까스로 피한 얀이었지만, 알리에노르의 앞을 막아선 하얀 기체는 알리에노르의 기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스페어 파츠 인계. 부품 교체 후 파기절차 개시.]

푸쉬익-!

자신의 장갑판을 떼어내 떨어져나간 알리에노르의 기체를 수리한 흐레스벨그는 이윽고 동력로를 과부하 시킨 뒤 글레이프니르에게로 달려들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카앙-!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랜스를 막아낸 얀이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이런 패턴이었다.

기동전 중 몇 전이나 뒤를 잡아 공격을 가했고, 몇몇 공격은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나 달려드는 알리에노르의 인형은 그녀에게 새 부품을 제공한 뒤 자폭하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 애처롭네요. 얀.

달려드는 기체의 머리를 날리고, 산탄 입자포 세 발을 처박았을 무렵, 고고도로 올라간 흐레스벨그의 확성기에서 알리에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과연 단신의 장난감들이 얼마나 버틸까요?

아래에서 전투가 한창인 베르쿠트 기사단의 콜로서스를 보며 알리에노르가 입을 열었다.

“글쎄. 적어도 널 죽일 때까지는 버텨주겠지.”

그녀가 있는 곳을 올려다본 얀이 그렇게 말하자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당신의 기사단이 먼저 사라지는지, 아니면 내 인형들이 먼저 다 사라지는지?

그 외에도 계속해서 얀의 기사들을 조롱하는 알리에노르를 보며 얀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저 독종들을 그렇게 얕보면 안될 텐데.”

- 독종? 재미있는 말이네요!

비웃음이 가득 섞인 알리에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신의 주신도 지키지 못한 채 버림받은 개들. 로렌츠가 남긴 찌꺼기에 불과한 가치 없는 족속들.

그들의 주인인 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로렌츠를 들먹이며 저들을 비웃는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알리에노르를 바라보는 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네 말마따나, 주인 잃은 미친개들인 건 맞지.”

그렇게 말한 얀은 자신의 훈련대로 완벽한 진형을 갖춘 기사들을 바라보며 알리에노르를 향해 말했다.

“네 눈앞에 있는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얀의 그 말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보고.

그것을 알아본 알리에노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2량 격파? 이게 무슨….”

자신의 호위를 위한 두 기를 뺀 나머지는 얀의 기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저공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아무리 개량을 했다 한들 저 검은 콜로서스는 미천한 피조물의 기체.

얼마 걸리지 않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격파? 격파라니?

눈앞에 있는 글레이프니르도 아니고, 저 미개한 콜로서스에게 자신의 인형이 당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알리에노르는 시선을 돌려 아래에서 이뤄지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위치 변경 확인. 사격 모드를….]

카앙-!

엄폐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기체를 조준하는 순간,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포탄이 흐레스벨그의 배후를 두드렸다.

그렇게 조준점이 흐트러진 순간, 미끼가 된 카발 리가 연막을 피우며 곧바로 몸을 피하고, 다음 기체가 나타나 돌격포를 쏘며 흐레스벨그를 자극했다.

한 기에 네 대씩.

서로 완벽하게 역할을 분담한 베르쿠트 기사단의 기사들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이 하늘에 뜬 흐레스벨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1량 추가 격파. 잔존 인원은 추가 작업에 합류한다.]

[A포인트에 지원이 필요하다. 4분대에서 누 명 차출 요청.]

[시선 돌아가는 거 확인했다. 엄호.]

[포착했다. 발사!]

도시 곳곳으로 퍼져 건물 뒤에 몸을 숨긴 카발리들이었지만, 그 안에 탄 조종사들은 서로가 코앞에 있는 듯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자율전투에 이상 발생, 지휘관기의 직접 지휘가 필요. 전투, 불…!]

콰앙-!

부모 잃은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조준하며 입자포를 난사하던 한 기의 흐레스벨그의 가슴이 포탄에 꿰뚫려 터져나갔다.

“이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정확하게 조준하며 빠르게 상황을 돌파하는 카발리들.

“자율전투의 약점을 이용했다고? 인간이 어떻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린 알리에노르가 인공지능을 불러 말했다.

“저 장난감들의 내부 구조. 당장 스캔해.”

[명령 확인. 스캐너 가동.]

무감정한 인공지능의 중저음과 함께 카발리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대륙의 기술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온갖 전자장비와 통신장비.

“잔스카르의 기술이 적용된 건 맞지만, 아크의 권한이 승계되기까지는 동력 확보가 안될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알리에노르였지만, 이내 그 원인을 알아챈 것인지 불쾌한 듯 혀를 찼다.

“트로이얀의 지식으로 연결을 해제. 그리고 저 기체의 출력과 통신망을 사용해서…!”

그제서야 글레이프니르의 탑재된 닐의 존재에 생각이 닿은 알리에노르가 곧바로 지휘통신을 연결하려 했다.

- 왜. 뭐가 잘 안되나 보지?

그렇지만 그 순간, 알리에노르에게로 달려든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이 그녀에게로 쇄도했다.

끼기기기기기긱-!

철판을 긁는 소름끼치는 고주파가 짓쳐들어오자 알리에노르는 통신 연결을 중지하고 그것을 피해냈다.

- 인형놀이라고 했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알리에노르가 표정을 굳히는 순간, 글레이프니르에게서 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인형사를 잡아두면, 인형들은 그저 과녁에 불과해.

지휘관의 부재는 부대의 전투력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다.

부대를 버리고 도망가는 수많은 상관을 겪어온 얀은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단델을 작전의 중추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성장이 끝난 지금, 87독립중대와 기사단은 자신 없이도 완벽에 가까운 작전행동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 여기서 숨통을 끓어주지.

그 말과 함께 글레이프니르가 역으로 그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캉! 카캉-!

진동하는 단분자커터의 옆면을 후려치며 검격을 막아내는 흐레스벨그였지만, 그녀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정말…. 당신은…!”

점점 다가오는 글레이프니르를 바라보며 알리에노르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쿵-!

이윽고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이 조종석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것을 바라본 알리에노르가 그 붉은 안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희열과 공포, 쾌락과 분노로 얼룩져 엉망진창으로 녹아내린 채였다.

“최고에요!”

그 말과 동시에 흐레스벨그의 신형이 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큭?!”

이전에 숲에서 벌어진 전투의 재현과도 같았다.

눈앞에서 사라진 흐레스벨그의 모습.

순식간에 등 뒤로 나타나 배후를 치는 알리에노르까지.

“렌.”

자신의 등 뒤에 앉은 새하얀 소녀를 부른 얀이었지만, 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은 안돼. 이미 가동시간은….”

“그렇게 망설이다가 케인을 잃었어.”

그녀의 만류를 끊은 얀의 목소리.

잠시 멈칫한 렌은 이윽고 눈을 감은 채 가슴에 손을 얹었다.

[명령 코드 확인. 이중동조 개시.]

격통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얀의 시야가 뒤바뀌었다.

카앙-!

곧바로 뒤돌아선 글레이프니르가 흐레스벨그의 랜스를 붙잡아 우그러트리며,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던져버렸다.

쿠콰콰쾅-!

순식간에 건물 세 채를 뚫고 땅에 처박힌 흐레스벨그.

그것을 향해 돌진한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이 흐레스벨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콰직!

잠시 동안의 침묵.

과부하를 견뎌내는 얀의 숨소리만이 조종석을 가득 메꾸고 있었다.

“끅…. 끄윽…!”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은 얀은 억지로 몸을, 글레이프니르를 움직여 흐레스벨그의 가슴 부분을 잡고 그것을 쥐어뜯었다.

뿌득! 뿌드득!

장갑판이 억지로 우그러지며 그곳에 감춰져있던 배선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하나 둘 끊어져나갔다.

“아직 살아있을 수 있어. 확인사살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되뇌며 조종석을 열어젖힌 얀은 조용히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조종석 안은 비어있었다.

“또 어디로 도망친 거냐.”

그리고 그 순간.

[와아~! 설마 이 상황을 타파하다니, 정말 놀라워요 얀!]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으로 알리에노르의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어느 새 기체 밖으로…!”

그렇게 말하며 기체를 움직이려 한 얀이었지만, 과부하로 날뛰기 시작한 나노머신들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크으…!”

그리고 그러는 사이, 노이즈가 가득 낀 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외부 프로그램의 침입을 확인, 생체단말 코드 식별. 9번 생체단말, 에다. 인증 IAA 코드 확인. 기체 시스템 강제 접…. 속….]

마치 얀에게 경고하듯 계속해서 정보를 쏟아낸 닐이었지만,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어가며, 조종석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이윽고 힘을 다 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은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 해치가 열리기 시작했다.

치익-!

“다시 만나네요. 얀.”

빛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알리에노르가 환하게 웃으며 조종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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