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나라고 다를 거 없어.
“함열 유지! 기함의 위치를 파악하라!”
쿠콰콰쾅-!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공간 속.
눈앞을 가리는 빗물을 아무리 훔쳐내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함포의 포성과 섬광뿐이었다.
“이 날씨에 상륙작전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선두에 선 순양함 벨로스터를 지휘하던 카일 웬리는 바다 곳곳에 떨어지는 포탄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아군끼리도 식별이 제대로 안되는 와중에 도대체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아는 거지?”
휘하 구축함들이 보내고 있는 광신호조차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10KM가 훨씬 넘는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알프라이아 함대의 포탄은 선두에 선 순양함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투웅-!
“협차에 들어왔습니다!”
“제길! 우현 전타! 함포 사거리에서 벗어난다!”
세 발의 함포가 연달아 순양함의 주변 바다를 때리자 곧바로 벨로스터가 우측으로 키를 돌렸다.
관측 사격에 확인까지.
이 다음에 날아올 건 일제사격이었다.
콰아앙-!
“어디에서 난 소리야?!”
“구축함 베티! 직격입니다!”
정찰을 위해 앞으로 돌출되어있던 구축함의 탄약고가 터져나가며 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아아악-!”
“저, 전원 퇴함! 탈출정으로…!”
날아온 일제사격에 구축함 전단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까이에 떨어진 전함의 포탄이 물보라를 일으키자 그 압력에 용골이 갈라지는 배, 아예 뒤집혀 소장되는 배들도 있었다.
“이전에 놈들이 쓰던 함포가 아니야! 이건…!”
이를 악문 채 뇌까리던 카일의 시선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건너의 하늘을 향했다.
“저 빛은….”
거대한 무언가가 먹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배?”
그렇게 뇌까리면서도 카일은 하늘 위의 저것이 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선형 몸체를 지닌 전함들과는 달리, 길쭉한 삼각형 형태의 거대한 비행체.
그것에서 쏟아지는 빛무리가 자신의 순양함과 함대를 비추고 있었다.
“하, 함장님…. 설마 저건…?”
“그래. 알프라이아 수도에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왔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이질적인 형상.
그렇지만 카일은, 제국 해군으로 복무한 이들은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직감했다.
“전 함대 퇴각! 근처 연안에 착저한 뒤 퇴함한다!”
배를 버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지시에 깜짝 놀란 부관이 황급히 카일에게 말했다.
“배를 버리라니! 그럼 해전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부관의 말을 끊은 카일이 항해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저게 나온 이상, 해전은 성립되지 않아. 우리가 할 일은 수비가 아닌 보고다! 전군, 바일사르 연안을 향해라!”
그 말과 함께 광신호를 주고받은 함대가 일제히 뱃머리를 돌렸다.
쿠우우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공중전함 발두르.
성왕이 탄 알프라이아의 유물이었다.
***
“단장님.”
언젠가 자신이 케인을 부를 때 썼던 칭호.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란 것을 깨닫자 퍼뜩 정신을 차린 얀이 눈앞에 선 단델을 바라보았다.
“배치 명령을 받은 곳은 해군 주둔지인데, 왜 잔스카르로 가는 겁니까?”
로렌 영지 기차역에서 이동 준비중인 부대는 여느 때와 달리 분주해보였다.
경량화 된 신형 기체인 카발리들은 열차 한 칸에 두 대씩 실린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고, 87중대의 대원복을 입은 얀의 기사들은 제복과 어깨의 낙인이 익숙하지 않은 듯 굳은 표정이었다.
“잔스카르로 가는 건 나 혼자잖아. 너흰 예정대로 함대 지휘소로 가면 되고.”
“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겁니다. 하다못해 기사단 병력이라도….”
“괜찮아.”
한 쪽 무릎을 굽힌 채 플라이트 유닛을 점검하는 글레이프니르.
그것을 바라보던 얀은 단델에게 명령서를 보였다.
“이거 최고 지휘관 외에는 열람금지 아닙니까?”
“황제? 이미 무덤 속에 있잖아.”
황족 중 누군가가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를 서슴없이 내뱉은 얀이었지만 거기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황궁 정보부에서 온 첩보로군요. 알프라이아 함선 정박지를 그린….”
명령서의 내용을 보던 단델이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잃었다.
“다, 단장님 이건…!”
다급하게 휘갈기듯 그려져 보내진 그림.
그곳에는 정박되어있는 수많은 전함들과, 그들을 지켜보듯 하늘 위에 떠 있는 비행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발두르.”
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단델이 마른 침을 삼켰다.
“발두르는 1차 중앙 공방전 때 격침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걸 수리할만한 기술력을 가진 나라가 어디일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자 정신이 아찔해진 단델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잔스카르가 알프라이아에게…!”
“제국이 알프라이아를 밀어버린다면, 그 다음은 자신들이 될 테니까.”
두 국가 사이에서 이뤄지는 전쟁은 잔스카르에게 있어 최고의 시장이었다.
그렇기에 잔스카르는 알프라이아와 제국 사이를 오가며 자신들의 기술과 병력을 조금씩 전수하며 두 세력이 백중세를 이루게 조장했고, 그것은 바일사르와 알프라이아 두 국가의 군주에게 있어서도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바일사르는 전쟁특수로 인한 이익을, 알프라이아는 인간이라는 공공의 적을 통해 내부의 결속을.”
“내부의 결속이요?”
단델이 그렇게 묻자 설명하던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인간끼리도 출신과 신분에 따라 온갖 갈등이 끊이지 않아. 알프라이아는 고블린, 오크, 엘프 세 종족이 공존하고 있고.”
“귀족과 노동자. 그리고 가축으로 말이지.”
렌은 얀의 지적을 부정하지 않았다.
“서로 멸종이다 생존이다 싸워대면서 뒤에서는 각자의 이익을 챙기던 거지.”
그렇지만 지금은 케인과 카르디어스 황제의 죽음으로 제국에 혼란이 일어난 상황.
“내전으로 기사단 전력이 소모된 시점에 발두르가 나타난 것은…!”
“더 이상 백중세를 유지하며 서로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된 거지.”
그렇다고 해도 너무 정확히 들어맞는 타이밍이지만 말이지.
얀이 그렇게 덧붙이자 잠시 생각하던 단델은 거칠게 혀를 찼다.
“그러니 해안선 방어에 저희를 동원한 거군요. 싸우다 죽을 총알받이로.”
“황제가 로렌츠를 2인자로 만든 것과 같은 맥락이야.”
알프라이아와를 막고 죽거나, 알프라이아를 막은 뒤 숙청당하거나.
여느 때와 같은 절망적인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난 상황이었지만, 얀은 차갑게 웃으며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발을 옮겼다.
“보병 연계 전술이라면 나보다 네가 더 낫지. 책임지고 애들 목숨 붙여놔.”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는 명령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단델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믿는다.”
중대장이라는 직책과 늘어난 대원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수십 대의 콜로서스 병력.
열차에 오르는 대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얀의 눈앞에 작은 인영이 나타났다.
“넌 안가고 뭐하고 있어?”
백금발 머리를 올려 묶은 아이린이었다.
“단장님….”
기사로서의 경력은 모자랐지만, 형벌부대에서 복무하고 훈련하며 얻은 경험 덕에, 아이린의 운용능력을 따라오는 기사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근거리 백병전이 아닌 중장거리 저격전에 있어서는 아이린을 상대 할 수 있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부단장이 이러고 있으면 다른 애들은 어쩔 생각인데?”
“그, 그러니까 제가 부단장이라니….”
아직도 자신의 옷깃에 붙어있는 은색 증표가 거북한 듯 쭈뼛거리는 아이린을 보며 얀은 쓰게 웃었다.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해?”
“예.”
“당연히 과분하지. 체력이나 마력은 둘째고, 실전경험도 너보다 많은 녀석들인데.”
그 말에 움찔 한 아이린이 다시 얀의 안색을 살폈다.
“근데 나라고 뭐 다른 줄 알아?”
“…!”
얀의 한 마디에 아이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전략과 부대 운용은 단델이 더 낫고, 전투능력은 잘 쳐줘야 우리 부대원 평균 수준이지.”
“그, 그렇지만 단장님은 저희를….”
“공포로 군림하고, 차악의 선택지를 내밀어 강요했지. 난 너희와 계약했을 뿐, 케인이 하는 것처럼은 하지 못해.”
아이린 만이 아닌, 자신이 이끄는 모든 이들을 떠올리며 얀이 그렇게 말했다.
로렌츠의 기사들은 케인을 수도에 보내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아마 지금의 기사들 또한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
그렇지만 얀은 그들의 마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케인의 복수를 빌미로 묶어둔 부당계약이지.’
그들은 얀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죽은 케인의 복수를 따르는 것이다.
“너희들에 비해 내가 특출난 것이라고는 고대인의 피와 이 깡통밖에 없어.”
그러자 머릿속에서 닐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정정요청. 본 장비와 운영체제인 본 AI는 인류 연방 제식병기로써 다각도의 성능검진과 실전 테스트 및 성과를 증명함. 깡통이라는 발언은….]
쉴 새 없이 자신을 쪼아대는 닐의 목소리에 얼굴을 찡그린 얀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아이린은 얀의 말을 곱씹을 뿐이었다.
“나도 얼추 했어. 넌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얀은 아이린의 어깨를 두드린 채 등을 돌렸다.
“저 두 명이면, 부대도 얼추 굴러가겠지.”
화면을 바라보던 얀은 그렇게 말하던 중간에 귀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손을 그곳으로 가져다댔다.
“허, 하다하다 이제는….”
축축한 느낌에 손을 들어보자 그곳에 묻어있는 것은 찐득한 피였다.
“기다려. 지금 당장 치료를….”
“됐어. 대충 닦으면 돼.”
얀의 거절에 그에게로 다가가던 렌의 손이 도중에 멈췄다.
그것을 느낀 얀이었지만, 그는 말없이 소매를 들어 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앞으로 1년. 맞지?”
“…응.”
렌의 대답이 들려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온 몸으로 퍼져 수시로 과부하 하는 나노머신들.
올라간 출력과 운동량.
하늘을 나는 동안 느껴지는 엄청난 압력.
렌과의 이중동조.
글레이프니르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대가로 지불한 것은 그의 몸, 그의 수명이었다.
“지금 네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건 AI의 행동보조기능과 나노머신들이야. 네 몸에 해당하는 기관은 이미….”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얀이 손을 내저었다.
“대충 직감은 했어. 저번 주 부터는 맛도 잘 느껴지지 않던데 뭐.”
목덜미에 기계장치를 연결하며 그렇게 말하는 얀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생명체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들었어.”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 아닌가?”
트로이얀의 죽음을 떠올린 얀이 그렇게 물었지만 렌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글레이프니르가 정지한다면, 나노머신 활동도 정지돼. 그런데도 넌, 두렵지 않아?”
왜 답지 않게 말이 길어지는 걸까.
자신에게 말을 거는 렌에게 속으로 그렇게 되뇌인 얀은 조용히 그 질문에 대해 입을 열었다.
“두려워. 두렵지 않을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자 더 물으려는 렌의 입이 도중에 멈췄다.
“근데 죽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게 있어.”
시커멓게 죽어있는 얀의 눈은 조종석 구석의 검은 공간을 응시한 채였다.
“죽기 전까지 벨커스를…. 벨커스를 죽이지 못하는 것. 내게 있어서는 그게 가장 두려워.”
그렇게 말한 얀이 자신과 연결된 글레이프니르에 정신을 집중했다.
쿠오오오오-!
엔진을 밝히는 푸른 불꽃이 검은 콜로서스의 거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로렌 영지에서 수도 바일사르까지 약 두 시간.
로렌츠가 글레이프니르에게 선사한 날개는 얀의 활동영역을 무한에 가깝게 늘려주었다.
“부대가 해안기지에 도착하기까지 3일.”
그렇게 제한시간을 되뇐 얀의 눈앞에 목표지점으로 기체를 인도하는 입체지도가 활성화되었다.
“그 안에 잔스카르를 뒤집어엎어서, 발두르를 부술 수단을 찾아낸다.”
잔스카르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발두르를 수리한 것이 그들이라면,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또한 보유하고 있을 터.
[명령 확인. 글레이프니르, 발진.]
닐의 음성과 함께 공중에 떠오른 글레이프니르가 곧바로 하늘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앞으로 1년.
그 안에 벨커스를 뛰어넘을 수단을 모아, 그들을 전부 부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