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마음이 끓어오른다.
귀족회의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청문회.
그곳에서 얀이 발언한, 정확히는 얀이 발언한 것으로 조작된 내용들은 언론들을 타고 빠르게 제국 전체에 퍼져나갔다.
‘진술 확보. 제국에 발포된 전단, 유언비어로 밝혀져….’
‘로렌츠는 황좌를 노렸는가?’
‘반란을 진압한 형벌부대의 얀 베르쿠트 , 백작위 수여….’
“다 헛소리들이야!”
술에 잔뜩 취해있는 남자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이봐, 말조심해! 잘못하면…!”
“잘못? 무슨 잘못! 형벌부대에서 굴러먹던 놈의 진술 하나가지고 이걸 없던 일로 치부하는 게, 이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술기운에 못 이겨 고래고래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술집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피했다.
“아니, 다들 입이 없어 눈이 없어?! 케인 로렌츠가 누구여! 어?! 제국의 영웅 아니여!”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만 하라니까! 자꾸 그러면…!”
쾅-!
그 순간, 문을 박차는 군홧발 소리에 술집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반역자를 옹호하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자가 누구인가!”
고성과 함께 들이닥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소총을 둘러맨 채 술집으로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역자라니! 케인 공작님은 전선에서 내 목숨을 구해준 분이여! 전쟁에서 제국을 구한 분이라고!”
남자는 병사들의 살벌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발길질 세례였다.
뻑!
“어억?!”
갑작스러운 폭행에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낸 남자에게 다가간 병사들이 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빡! 빠악!
“이 곳에 있는 자들을 전부 구속하라! 경비대에서 심문하겠다!”
“예!”
장교의 고성에 일제히 가게 곳곳으로 퍼져나간 병사들이 가게 곳곳에 자리 잡은 손님들과 주인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거 왜 이러시오!”
“난 잘못 없어! 난 못들은 일이라고!”
“제발 부탁입니다! 저 자가 혼자서…! 어억?!”
그런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에서, 개머리판으로 곤죽이 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황제가 로렌츠를 죽였다! 제국의 영웅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
“이 자가 아직도…!”
계속해서 외치는 남자의 입을 막으려 병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는 미친 듯 발악하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제국에 저주 있으라! 제 주인을 팔아넘긴 얀 베르쿠트에게 저주 있으라아아-!”
***
덜컹-! 덜컹-!
흔들리는 열차 안은 승객들의 말소리 대신에,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베르쿠트 공…. 시, 신문입니다.”
딱딱한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문 밑으로 방금 인쇄된 신문이 얀에게로 전달되었다.
“…이게 오늘 신문입니까?”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신문을 받아든 얀은 그곳에 적힌 수많은 낙서들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겁에 질린 역무원은 얀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남은 신문이 없다고…. 기관장님께서….”
그렇게 말하는 역무원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
얀이 헛웃음 소리를 내자 공포감이 극에 달한 역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얀에게 사정했다.
“저, 전 그저 상사의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얀의 어깨에 박힌 형벌부대의 낙인을 본 역무원이 그렇게 말했지만 얀은 체념한 듯 한숨 쉬며 신문을 들고 개인실 문을 닫았다.
‘살았어?! 살았어?!’
‘개새끼, 꼴에 죄책감은 있나보지?’
‘죄책감은 개뿔. 제 주인도 물어 죽이는 놈이!’
‘쉿! 들리겠어…!’
얀은 음성감지모듈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낙서로 가득한 신문을 펼쳐들었다.
“닐.”
[수기 작성이 아닌 인쇄물 텍스트 선별. 안구에 표시함.]
자신에 대한 비방과 욕설로 이뤄진 낙서 사이로 떠오르는 글자를 통해 각 지역의 현황을 확인한 얀은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실내흡연. 비매너.”
“…알았어.”
라이터에 가져가려던 손을 거둔 얀이 물고 있던 담배를 꺾고 신문을 읽었다.
“역시, 제국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군.”
신문의 내용을 확인한 얀이 그렇게 말하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제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 로렌츠. 네 진술만으로는 잠재울 수 없어.”
“그렇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이 혼란은 곧바로 민란으로 번졌겠지.”
‘황제는 국민을 속이고, 그것을 폭로하려 한 로렌츠를 죽이려 했다.’
충격적인 내용과 교황청의 직인이 찍힌 전단은 순식간에 제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사건의 당사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얀이 그 사실을 부정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황가와 귀족들을 바라보는 제국인들의 민심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요동쳤다.
“유일한 진술자가 형벌부대 출신이라면 그걸 믿을 인간은 아무도 없어.”
“그걸 백작의 진술이라며 격상하고 있는 황궁도 정신이 나갔고 말이지.”
황궁과 귀족원의 공식발표 내용을 들으며 얀은 차갑게 비웃었다.
내전으로 기사단이 손실되고, 황제가 없는 이 혼란한 상황에, 민란까지 일어난다면 제국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렇기에 들끓는 민심과는 별개로, 천출인 자신을 혐오하던 귀족들은 온 힘을 다해 얀의 거짓 진술을 입증하고, 그 권위를 격상시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국인들 사이에서, 넌 악의 축이 되었어.”
얀을 향해 쏟아지는 제국인들의 증오어린 시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저주로 가득 찬 신문을 바라본 얀은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 지었다.
“내가 케인은 죽인 건 맞잖아? 그 사실을 이용해 작위와 영지를 얻어낸 것도.”
얀의 진술을 변호하는 것과는 별개로, 귀족원은 얀을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검열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얀의 행적은 과장되고, 왜곡되고, 확대해석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악명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이 퍼지기 시작하면, 나와 클라우스 황자님의 연결고리도 옅어지겠지.”
케인을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한 클라우스가 얀을 폭행하고, 얀은 적반하장으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빗속이었지만 이 광경을 목격한 제국인들은 분명 존재했고, 그 사실은 수도 바일사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케인 로렌츠의 맹우라는 위치를 지닌 클라우스 황자님이 지금 나와 엮여서 좋을 게 없으니.”
“그것뿐이야?”
렌의 반문에 얀이 신문에 고정한 시선을 그녀에게로 옮겼다.
“일부러 자신을 악인으로 만들고, 대중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도록 하는 거.”
“….”
렌이 하는 말에 얀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얀.”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른 렌이 다가와 그의 한쪽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객실에 있는 것은 얀과 렌 두 사람 뿐.
얼굴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신문을 쥔 얀의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다면. 일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지.”
“….”
만일, 트로이얀의 영상을 확인하지 않고 케인을 감시했다면.
만일, 앞을 가로막은 황도군을 무시하고 곧장 케인을 따라갔다면.
만일, 이중동조를 사용하지 않고 알리에노르의 방해를 뚫어냈다면.
수많은 가정들이 얀의 머릿속을 채워가며 점점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은 건 내 실책이야.”
그렇게 말한 얀은 자신의 뺨에 있는 렌의 손을 치우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야니카를 구해내지 못했어. 내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어. 내 안일함 때문에! 그리고 이젠 케인을! 내 친구를…!”
점점 목소리를 높여 종국에는 비명과도 같이 내뱉던 얀의 목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언젠가 그러했듯이, 렌의 가녀린 두 팔이 자신의 얼굴을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널 둘러싼 모든 불행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
“….”
“네 탓이 아니야.”
죽는 그 순간까지도 웃고 있던 케인의 유언을 떠올린 얀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와락 구겼다.
지금 힘을 풀어버린다면, 목 끝까지 차오른 무언가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로렌 영지! 도착 10분전-!”
개인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얀은 조용히 자신을 끌어안은 렌의 몸을 밀어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응.”
한 마디와 함께 몸을 일으킨 얀은 개인실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나갔다.
“얀, 베르쿠트.”
개인실에 홀로 남은 렌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채 조용히 얀의 이름을 되뇌었다.
인공심장의 맥박과 함께 느껴지는 이 기묘한 감각은 생체단말에게 있어서는 금기와도 같았다.
“감정 회로에 중대한 결함 발생. 신속한…. 조치가….”
기계적으로 그렇게 되뇌던 렌은 이윽고 말을 멈춘 채 얀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었다.
“생체단말에게 감정의 표출은 금지사항. 신속히 제어해야 함.”
하지만 그렇게 되뇌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끓어오르는 감각은 그녀에게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감정을 제어한다고? 인간들도 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이 어떻게?
왜…?
***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열차에서 내리는 얀과 렌을 맞이한 것은 아이린과 단델이었다.
“전 병력, 임무 완수하고 복귀했습니다.”
단델의 한마디에 다른 대원들이 얀에게 경례를 올렸다.
제식을 갖춘 다른 부대와는 다른 느슨한 경례였지만, 얀은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장님. 신문에 나온 내용은….”
“작위와 이 영지를 받는 대가지.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얀의 말에 얼굴을 굳힌 중대원들이었지만, 이내 피식 웃어 보이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난리 나는 거 아닙니까?”
“난리는 이미 났지. 그리고 우리가 말한들 믿어주겠냐?”
“대장님 진술도 헛소리로 치부하잖아?”
“심정은 알겠는데, 가끔은 진짜 쳐버리고 싶더라.”
그렇게 한마디씩 거든 중대원들을 바라본 얀은 피식 웃으며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그 일을 겪으면서, 탈영한 놈이 한 명도 없어?”
그렇게 말하자 얀을 바라본 중대원들이 하나같이 넌더리를 냈다.
“어우, 탈영이라니.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십니까?”
“대장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계시는데, 어떻게 탈영을 합니까?”
“아마 죽어도 우린 탈영 못할걸.”
“아니지, 죽으면 되지 않나?”
“중대장님! 혹시 죽으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하하하-!”
삼천포로 빠진 대화가 그렇게 이어지자 중대원들이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저, 저기…. 아무리 그래도 죽으라는 건 좀.”
“이 분위기엔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네요.”
“가끔은 나도 적응이 안되는데.”
왁자지껄한 중대원들을 보며 그렇게 말한 세 사람은 이윽고 기차역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전에 얀이 도착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인지, 기차역은 그들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피한 행정관들이 복귀하는 대로 재건작업을 시작할거랍니다. 일단은 비쿠스 영지의 실무자들이 배치됐고요.”
“콜로서스 정비시설은 무사합니다. 브락 씨가….”
로렌 영지의 현황을 설명함과 동시에 얀이 없는 동안 눈에 띄게 성장한 비쿠스 영지에 대해 말하던 단델과 아이린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대, 대장님….”
“이건….”
“뭘 그리 놀래. 예상했던 일이잖아.”
두 사람을 향해 얀이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휘오오오-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와도 같은 시가지.
텅 빈 주택가의 모든 창문에는, 검게 물들인 로렌츠의 깃발이 걸려 나부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