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34화 (134/186)

134.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늘 하던 농담을 맞받아치듯이 말한 얀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얀 소령. 난….”

뒤이어 더 뭔가 말을 하려는 케인이었지만 얀이 손을 들어 막았다.

“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돌아오셨으니 대책을….”

그렇게 말하면서 케인을 부축하기 위해 얀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촤악-!

“?!”

반사적으로 목을 뒤로 빼자, 그 곳으로 케인이 휘두른 검날이 지나갔다.

흉흉한 오러가 둘러져있는 군용 대검이었다.

“단장님.”

“말했지 않나. 죽이라고.”

고저 없는 목소리. 그렇지만 얀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내 생각을 읽은 황제의 인격이…. 계속해서 탈출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 살인충동이…. 끊이지를 않는군.”

시시각각 움찔거리는 케인의 모습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권총은 이미 홀스터에서 뽑혀 나와 그를 겨누고 있는 중이었다.

“내 자아도…. 이미 반쯤은 황제의 정신과 섞여버린 상태네.”

그 말에 얀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계속 날 통제하려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어. 지체한다면 지배권을 빼앗길 걸세.”

그렇게 말한 케인이 얀을 바라보았다.

“….”

평소의 그였다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그것이 동료던 상관이던, 그는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거침없이 잘라내 왔으니까.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케인은 총을 겨눈 채 움직이지 않는 얀을 향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자네답지 않아. 얀 베르쿠트.”

자신에게 말을 거는 케인의 목소리에도 얀은 반응하지 않았다.

권총은 그의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지만, 방아쇠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얀. 날 보게.”

“이미 보고 있습니다.”

대답이 들려오자 안심한 듯 케인이 입을 열었다.

“벨커스를 모두 파멸시키는 것. 그것이 자네의 목표지.”

“단장님은….”

“나 또한 그것이 목표였네.”

그렇게 말한 케인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복수를 꿈꾸는 표정이 아니었다.

으득.

얀의 악문 이빨에서 소리가 났다.

여동생의 죽음을 목도한 마렉의 눈.

저것은 삶을 포기한 자의 눈이다.

“클라우스 황자님을 도와, 제국을 바꾸는 것. 그것이 목표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묻자 케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바꿨지 않은가? 하늘에 휘날리는 저걸 보게.”

무너진 황궁과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몇 개의 전단지.

이미 바일사르 수도 전체에 펴졌을 것이다.

“이걸로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대 격변이 몰아치겠지.”

식민지의 민심을 차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클라우스 황자는 점점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기사들도 로렌츠의 그늘에서 벗어나, 얀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스와 자신이 부여한 독립 작전권은 유효한 상태이다.

제국을 전복하려 한 반역자를 죽인 공훈이 더해진다면…. 얀은 자신 이상의 괴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케인의 설명을 들은 얀은 고개를 저었다.

“전 단장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물론이지. 자네는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낼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얀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난 자네를 통해 제국을 바꾼 셈이지.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도박이지 않은가?”

벨커스를 찌를 칼날을 이만큼 벼려놨으니, 적어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뵐 낮은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케인을 보며 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뜻밖의 한 마디에 케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시다시피, 전 고대인의 유물을 다룰 수 있습니다. 계승자니까요.”

그렇게 말했지만 케인은 고개를 저었다.

“렌에게 물어본다면…!”

“얀 베르쿠트 소령.”

자신의 관등성명을 말하는 케인의 모습을 본 얀은 입을 다물었다.

옆으로 다가온 렌은 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미 정신 제어가 중추까지 파고들었어.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은 얀이 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철컥-!

약실에 총알이 들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텅 빈 눈으로 케인을 바라보는 얀은 그의 심장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벨커스에게 둘러싸인 채로 강행된 변방행. 어쩌면 내 인생은 그때 끝나야 했을지도 몰랐네.”

처음 케르단 전선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희망 없는 전력차.

유출된 정보.

적과 내통한 아군.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희망을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얀이었다.

“그렇지만 단장님은 그곳에서 영웅이 되었죠.”

그렇게 말하자 피식 하고 웃어 보인 케인이 얀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날 영웅으로 만든 걸세. 얀 소령.”

“아니오. 당신은 영웅이었습니다.

“음?”

맥락 없이 이어진 얀의 한마디에 케인의 고개가 올라갔다.

“기사단을, 병사들을, 사람들을 이끌며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하하, 자네 그 사이에 아부도 할 줄 알게 됐나?”

황자님에게나 좀 그렇게 해 보게.

그렇게 덧붙이는 케인을 바라보는 얀이었지만, 그는 더 이상 농담에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힘든가?”

케인이 그렇게 말하자 권총을 쥔 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케르단 전선의 구렁텅이에서 절 꺼낸 게 당신입니다.”

그 말을 들은 케인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젠 제 손으로 당신을 죽이게 되는군요.”

짙은 자기혐오가 깔린 한마디.

그걸 들은 케인은 웃음을 지운 채 얀에게 말을 걸었다.

“얀 소령.”

“듣고 있습니다.”

“모든 걸 자네 탓으로 돌리려 하지 말게.”

그 말을 들은 얀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자네를 꺼냈듯이, 자네 또한 날 꺼냈어.”

그렇게 말한 케인은 얀을 바라보았다.

“…케르단 전투가 끝나고, 3대대 대대장이 찾아온 일.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벨커스 의 방계였죠.”

“디아나 양에게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었지.”

“그리고 하나가 터졌죠.”

그 말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자네와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해보는군.”

“그렇습니까.”

“그래. 생각해보면 우린 동갑이 아닌가.”

“그렇군요.”

얀의 대답이 들려오자 다시 웃어 보인 케인이 다시 말했다.

“생각했었네. 같이 고급 식당이나 무도회에 가서 자네의 그 울렁증 좀 고쳐보고.”

이젠 좀 나아졌습니다. 라고 얀이 덧붙였다.

“내 어린 시절과 자네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모닥불 사이에서 얘기도 해 보고.”

그리 듣고 싶지는 않으실 겁니다. 얀이 그렇게 말하자 케인 또한 ‘나도 그렇네.’ 라며 되받아쳤다.

“예쁜 아가씨를 만나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걸 잊기 위해 자네를 붙잡고 밤새 술독에도 빠져보고.”

제가 무슨 시종입니까? 얀이 그렇게 말하자 케인은 큭큭대며 웃어보였다.

“그래…. 그런….”

그렇게 말을 흐린 케인은, 이윽고 눈을 감은 채 허공을 향해 말했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

“항상 생각했었네.”

그 말이 끝난 뒤,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콜로서스의 발자국 소리.

시민들이 고함치는 소리.

정적이 찾아오자 온갖 잡음들이 희미하게 두 사람의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저도, 생각했습니다.”

정적을 깬 얀의 한 마디에 눈을 뜬 케인이 얀을 바라보았다.

“단장님이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케인은 잠시 멍하니 얀을 보고 있었다.

권총은 계속해서 그의 심장을 겨눈 채였다.

“가끔 생각했습니다.”

“…하. 하하하하!”

가끔이 뭔가 가끔이. 정 없기는.

그렇게 덧붙이는 케인이었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상관이 아닌 친구로서, 부탁할게. 얀.”

더 이상은 시간이 없다 생각했기에, 케인은 얀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격식을 차린 공작의 말투가 아닌, 친구를 대하는 케인 로렌츠의 한 마디였다.

“죽여줘.”

뒤이어 찾아온 정적은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얀은 더 이상 망설이는 기색은 없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케인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바일사르의 경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 그가 억눌러 온 모든 것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목줄이 끊어진 광견 알리에노르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황제가 죽고, 황도군이 혼란한 틈에 알프라이아는 다시 체제를 가다듬을 것이라고.

로렌츠라는 경쟁자가 사라진 이상, 벨커스의 세력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고, 이윽고 제국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케인은 얀을 믿는다며 눈을 감았고, 마지막으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는다고? 웃기는 소리! 만약에 그가 실패하면, 넌 그걸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냐?!]

황제의 마지막 일갈이 들려왔다.

물론, 그 물음에 대한 대답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절대 안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목소리에 대답하는 순간, 케인의 심장을 겨눈 얀의 권총 또한 불을 뿜었다.

타앙-!

지하실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정오에 접어든 바일사르 시내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이게, 이게 무슨 소리야!”

“난 이, 이해가 안돼! 폐하가 초, 초대…! 뭔 개소리야!”

“이 인장을 봐! 교황이라고! 이건 위조가 불가능한 각인이란 말이야!”

오후에 접어들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어느새 굵은 장대비로 변했다.

한낮에 뿌려진 정체불명의 전단지에 제국 수도 바일사르는 아비규환에 빠졌다.

곳곳에서 전단지를 해석하는 이야기꾼들이 연신 그 이야기를 해댔고.

수도방위사령부의 병사들은 계엄령을 뚫고 나온 시민들을 억지로 돌려보내며 그들을 억지로 다잡았다.

- 폐, 폐하-!

무너진 황궁의 중앙에서 발견된 지하공간.

고대인의 유적으로 보이는 곳이었지만, 전투의 여파인지 그 손상이 너무 심했다.

황도군에 소속된 기사들이 그곳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확보한 것은 콜로서스의 주먹에 짓이겨진 황제, 카르디어스 반 바일사르의 시신이었다.

“폐하-!”

“어찌 이런 일이!”

“주, 주동자! 사건의 주동자는 어디 있느냐! 반역자 케인 로렌츠는 어디에 있느냔 말이야!”

수도에 상주중인 원로원들은 한낮의 수도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에 몸을 떨었다.

케인 로렌츠와 그 일파가 황궁을 습격해 황제를 죽이고, 주동자인 케인 로렌츠는 모습을 숨긴 것이다.

그 와중에는 하늘에서 콜로서스가 떨어졌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증언들이 나오는 둥, 조사 과정 또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 이, 이봐!

- 저, 저거!

그렇게 무너진 유적을 치우고 있는 황도군의 앞에, 커다란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잿빛으로 물든 하늘을 헤치고 글레이프니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건을 조사중인 원로원들 앞에 기립한 글레이프니르는 기체의 손에 담겨있는 것을 그들에게 내보였다.

“이, 이 시신은?!”

“케, 케인…!”

눈을 감은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케인의 시신.

그것을 내민 것은 케인 로렌츠에게 거둬져 작위를 얻어낸 기사.

얀 베르쿠트였다.

치익-!

조종석 해치가 열리자 정복으로 갈아입은 기사, 얀 베르쿠트가 군모를 눌러쓰며 모습을 드러냈다.

“정식으로 보고합니다.”

자신의 주군과도 같은 기사의 시신을 내밀며 태연하게 보고하는 기사.

군모에 가려 그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반역자 케인 로렌츠를 제압. 사살했습니다. 원로원의 인증 및 포상을 요구합니다.”

상관의 시체를 바치며 그렇게 말하는 얀의 왼쪽 가슴에는, 이전에 케인이 황제에게 받은 금빛 사자훈장이 피가 묻은 채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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