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내 것이다.
우웅-!
분노에 찬 델타 콜로서스의 오러블레이드가 계속해서 얀을 덮쳐왔다.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살수였다.
-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냐!
- 희생? 지금까지 한 나라의 역사를 희생시킨 자가 그런 말을 하나?
얀의 한마디에 델타 콜로서스의 검격이 더욱 거세졌다.
- 어떻게 쌓아올린 제국인데, 이런 자그마한 변수 하나로…!
- 이게 그렇게 빡돌 일이었어?
투콰콰쾅-!
달려드는 델타 콜로서스를 향해 산탄으로 설정된 입자포를 난사하자, 근거리에 달라붙은 황제가 황급히 뒤로 몸을 피했다.
제국을 송두리째 뒤흔들 초유의 사건을 터트렸음에도 얀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평온하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케인의 몸을 빼앗은 황제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닐. 어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러 블레이드의 압도적인 절삭력.
여유를 가장하며 그것을 피해내고 있었지만, 그 또한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삐-!
[전술패턴 산출 완료.]
“좋아. 간다!”
촤악-!
횡으로 휘둘러지는 오러 블레이드를 피해낸 얀이 곧바로 황제의 델타 콜로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렌!”
[각 구동부, 동조율 리미터 해제. 글레이프니르, 이중동조 개시.]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반응하는 황제의 델타 콜로서스.
그렇지만 생체단말인 렌의 시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얀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촤르르륵-!
검을 뽑는 순간, 휘두른다.
최대 출력으로 돌아간 단분자 커터는 칼날에 집중된 오러를 몸으로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델타 콜로서스의 장갑판과 골격을 도려냈다.
끼기기기기긱-!
양 팔. 그리고 두 다리.
순식간에 모든 말단부위를 베어내자 델타 콜로서스의 거체가 바닥에 처박혔다.
- 이중동조라니,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그렇게 내뱉은 황제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 1번 단말! 네 년이 감히…!
렌의 이름이 나오자 얀과 몸을 등진 렌이 확성기를 켜 입을 열었다.
- 계승자를 지키는 건 내 의무야. 지금의 당신은 방해요소일 뿐이고.
- 계승자?! 단지 피를 타고났을 뿐인 애송이를 위해, 이 제국을 무너트리겠단 말이냐!
그 말에 답하는 렌의 말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 한 사람의 군주가 사라졌다고 무너지는 제국이라면, 없어지는 게 나아.
- 네 년이…!
렌의 말을 들은 황제의 일갈을 뒤로 한 채 델타 콜로서스의 장갑판을 잡은 글레이프니르가 그대로 그것을 열어젖혔다.
콰드득-!
이윽고 우악스러운 콜로서스의 손이 황제의 몸. 케인의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옭아맸다.
“이제 끝이다. 황제 바일사르.”
“크윽…!”
침음성을 흘리는 황제를 바라보던 얀은 이윽고 시선을 시설로 돌려 그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케인의 몸을 원래대로 돌려놔. 그렇지 않으면….”
“얀 소령. 안돼.”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발끈한 얀이 그대로 케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이제 와서 같잖은 연기 집어치워. 당장 시설 제어권을…!”
“아니. 불가능하네. 다른 방법은 없어.”
점점 커지는 얀의 목소리를 끊고, 두 번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단장님?”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이의 얼굴은, 그가 알고 있는 케인 로렌츠의 얼굴이었다.
***
아무것도 없이 새하얀 공간.
그곳에서 케인 로렌츠는 눈을 떴다.
“여…. 긴.”
정신을 차린 케인 로렌츠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는 자신의 몸이 어딘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색이…. 없잖아?”
단순히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을 집중하려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몸이 마치 물감이 녹듯 점점 흩어져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렇게 생각하던 사이, 눈을 뜨기 직전까지의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황제의 목적. 그와의 싸움. 심지어는 그의 기억들조차.
[인격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군. 알리에노르…. 그 여자가 수작을 부린 것인가.]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황제의 목소리.
정확히는 카르디어스가 아닌 바일사르 1세의 원래 목소리였다.
“당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호화로운 옷으로 몸을 둘러싼 초대 황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대한 기골에 총기로 가득한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안심하게. 이곳에서 난 자네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으니.]
“순순히 믿을 수 없다는 것. 당신이 더 잘 알겠지?”
그렇게 맞받아치자 한숨을 내뱉은 바일사르 황제는 포기했다는 듯 제자리에 걸터앉았다.
[낯설겠지?]
“…!”
기사로써 살면서 몇 번이나 황제를 독대한 케인은 지금의 그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카르디어스 반 바일사르에게서 보이던 압도적인 위압감도, 사석에서 만났을 때처럼 지적인 분위기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
여행길에 나선 행상과 같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것이 원래의 나다. 마을을 위협하던 이종족들을 토벌하는 모험가 출신. 입도 걸고, 배운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푸근한 인상의 청년이, 제국을 총치한 철혈군주를 연기했다고?
갓난아이를 검으로 베어죽인 폭군을?
죽은 황후를 그리워하며 스스로 목을 멘 암군을?
[단지 날 보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한마디가 그리워서…. 제국을 만들었지.]
그렇게 말하자 케인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을 변호할 생각은 마시오 황제. 당신의 계획에 희생된 사람들은….”
[알고 있어.]
아무 말 없이 인정해버리니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
젊은 날의 바일사르 1세.
입고 있는 왕의 옷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그는 침중한 눈으로 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없이 그를 보던 것도 잠시.
그에게서 뜬금없는 질문이 흘러나왔다.
[사냥감이 되어본 적 있나?]
케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짧게 내뱉은 대답.
그렇지만 이내 다시금 바일사르의 입이 열렸다.
[난 있다. 보기도 많이 봤어. 어린 아이 하나를 두고 어디를 자를지 고민하는 고블린들.
마을에 불을 질러대고 고기 파티라며 춤추는 오크들.
장신구에 쓰겠다며 눈을 뽑아가는 엘프들까지.]
그 말을 들은 케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만 해도 속이 역해지는 광경인 것은 둘째고,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온 황제의 기억이 그 광경을 자동으로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 그 유적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행복한 고대인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러웠지.]
배를 곪지 않아도 되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맹수와 이종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삶이었지만, 당시의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은 꿈과 같은 삶이었다.
[난 그저,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랬을 뿐이다!]
자신의 몸을 빼앗은 황제와 대화라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몇 명의 자유를 짓밟아왔지?”
케인이 그렇게 말하자 곧바로 바일사르의 반박이 들려왔다.
[자유? 당장 내일 그 몸뚱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깟 게 무슨 상관이야! 살아야지!]
바일사르의 목소리를 들은 케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물감처럼 녹아가던 자신의 몸이 점점 형태를 되찾고 있었다.
“살겠다는 욕망도. 삶을 포기하는 용기도. 사람 개개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택지야.”
[하, 배부른 소리!]
그렇게 코웃음 친 바일사르가 케인을 노려보았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공작가의 애송이.]
“당신이 만든 시대에서 살아왔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엉터리 목동.”
말문이 막힌 듯 바일사르의 목소리가 끊겼다.
“난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야. 당신에게 자유를 거세당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더 매달리게 된.”
이제 그는 바일사르 황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잘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나?! 인간은 가축으로 전락했어!]
그렇게 역설한 바일사르가 케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명해진 자신의 몸에 원래의 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난 너희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거다! 내 계획에 따르기만 하면, 너희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아!]
케인의 상태를 확인한 바일사르가 급히 그렇게 말했다.
이제 그는 차라리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패하는 것도, 그 책임을 지는 것도 나다.”
몸의 색이 완전히 돌아왔다.
몽롱한 의식에서 깨어나 팔다리의 감각을 확인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밀려왔다.
“끄으윽?!”
그러자 머릿속에서 케인을 비웃는 바일사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 잘난 자유를 되찾으니 느낌이 어떤가? 콜로서스에 붙잡혀 가루가 되어버린 몸뚱이! 이게 네가 원하던 자유다!]
격통과 함께 밀려오는 바일사르의 조롱을 듣는 케인이었지만,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부서지고 흩뿌려질지라도 내 몸이다. 빼앗겨 진창에 버려진다 해도 내 의지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함께 몸의 감각이 하나 둘 돌아온다.
자신의 의지를 떠나간 몸이 점점 자신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말도 안돼! 고대인의 기술을, 의지로 풀어냈다고…?]
“하…. 씨발. 하니까 되네.”
아주 가까운 위치가 아니라면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
그렇지만 그 말을 내뱉은 뒤 케인은 자신의 언행에 놀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 잠시 오류가 있었을 뿐이야. 네 정신은 간단히 다시 장악할 수 있어!]
이미 고대인의 기술로 뇌를 주무른 상태였다.
제정신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제대로 가늠되지 않는 상황.
[프로그램은 일정 주기를 거쳐 초기화되지. 그 때가 오면 네 자아는 한 톨도 남김없이 사라질거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케인의 눈앞에 얀의 모습이 보였다.
“이 시설을 다시 이용하면, 케인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겠지. 그렇게 하면….”
그렇게 중얼거리는 얀을 보며 케인은 이를 악물었다.
‘바일사르 황제. 당신은 자신이 만들어낸 영광에 사로잡힌 망령, 인간은 당신의 가축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내뱉자 코웃음친 바일사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말하는 너 또한 검의 시대의 산물. 나와 같은 망령일 텐데?]
‘그렇지.’
짧은 긍정이 이어지고, 케인은 피식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케인의 생각을 알아챈 바일사르가 경악하며 말했다.
[케인 로렌츠. 안돼!]
“얀 소령. 안돼.”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발끈한 얀이 그대로 케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이제 와서 같잖은 연기 집어치워. 당장 시설 제어권을….”
“아니. 불가능하네. 다른 방법은 없어.”
두 번째 목소리를 낸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얀이 입을 열었다.
“…단장님?”
역시. 알아보는군.
웃음지은 얼굴 그대로 얀을 바라본 케인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사단장이자 자네 직속으로써 내리는 마지막 명령일세. 기사 얀 베르쿠트.”
‘그렇기에, 난 당신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바일사르 황제를 향해 말하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있는 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 죽이게. 얀 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