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26화 (126/186)

126. 도망자.

삐이이이-!

제국 최대의 항구도시인 바인스버그.

갈색 후드로 몸을 덮은 인영이 불야성과도 같은 밤거리를 헤치며 도시 곳곳을 누볐다.

“젠장, 잡아라!”

“놓치면 안돼! 어떻게든 따라붙…! 으어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그림자.

그것을 쫓기 위해 병사들을 지휘하던 지휘관의 머리에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빠악!

불시에 머리를 얻어맞은 지휘관이 얼굴을 감싼 틈에, 곧바로 골목 사이로 도망간 그림자는 더 이상 사람이 ㅤㅉㅗㅈ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천천히 숨을 골랐다.

“후우.”

그러는 사이, 어두운 골목길에 달빛이 비추고, 그림자 사이에서 후드 속에 가려져있던 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미치겠군. 눈 색깔 때문에 위장도 불가능한 상황이니.”

후드로 정체를 숨긴 이는 제국 최대의 공작, 케인 로렌츠였다.

바인스버그로 향하는 기차에 몰래 올라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역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황도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정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계속해서 제국군에 의해 ㅤㅉㅗㅈ기고 있었다.

“도시 내부에는 기사가 없다니, 중앙 전선에 투입한 전력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군.”

그렇게 혼잣말한 케인이 곧바로 몸을 날려 바인스버그 중앙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향했다.

“찾았다.”

감시의 눈을 피해 그가 도착한 곳은 콜로서스 정비창.

중앙 전선으로 보내질 페이지 콜로서스들이 정비를 마친 채 운송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쏴아아-!

그것을 잠시 지켜보던 케인의 눈동자가 잠시 빛났다.

미약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파문.

케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그것은 곧이어 정비창 안에 든 이들의 마력을 감지하여 그의 눈동자에 그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온갖 잡기술만 늘고 있는 꼴이라니.”

케르단 전선에서 바인스버그까지 향하는 길은 시련투성이였다.

곳곳에서 달려드는 황도군의 콜로서스들과 추격자.

지원을 요청할 새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은 그의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전선에서 중대원들과 함께 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숲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잠을 청했고, 온 몸에 진흙을 발라 거지로 위장하기도 했다.

이전에 케르단 전선에서 중대원들과 부대끼던 나날, 그들이 케인에게 알려준 생존법들이었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진작에 잡혔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먹던 식량을 삼킨 케인이 다시 한 번 정비창을 보았다.

“무장한 인원은 스물. 시야각을 생각한다면 침입루트는….”

마력을 통해 알아낸 위치를 토대로 생각을 마친 케인은 망설임 없이 정비창 안으로 몸을 날렸다.

휘리릭!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도약력으로

뛰어오른 케인은 곳곳에 널브러진 기자재를 발판삼아 정비창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흐아암~! 후방 경계는 진짜 왜 시키는 지 모르겠…!”

소총을 끌러 맨 채 지붕 위에 서 있던 보초병이 하품을 하던 그 순간.

퍽-!

뒤에서 나타난 케인의 손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미안하네.”

아무리 ㅤㅉㅗㅈ기고 있는 몸이라고는 하나, 아군을 공격한다는 거부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얼굴을 찌푸린 케인은 곧바로 지붕 한 구석에 다가가 품속에서 대검을 꺼냈다.

우우웅-!

이내 대검의 날을 타로 올라온 오러를 확인한 케인은 곧바로 지붕에 대검을 집어넣었다.

마치 버터를 가르듯 부드럽게 철판을 뚫은 오러 블레이드가 사각형으로 천장의 철판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잠시 타이밍을 확인한 케인이 곧바로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말 아래에는 일자로 서 있는 페이지 콜로서스가 조종석을 연 채 세워져 있었다.

“음? 어이! 거기 누구야!”

뒤늦게 케인의 모습을 발견한 보초병이 소리를 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쿠르르르르…!

몸을 묶은 구속구를 풀어낸 페이지 콜로서스의 거체가 정비창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저 미친놈이! 콜로서스가 움직인다! 대피해!”

“수비대에 연락해! 누군가가 콜로서스를 탈취했다!”

밤중에 일어난 날벼락에 역을 경계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비상에 걸렸다.

- 목숨이 아깝다면 비키게!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노획된 페이지 콜로서스는 놀라운 도약력으로 튀어 올라 그대로 바인스버그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콜로서스 조종사는…!”

“케인 로렌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던 정비원들이 방금 탈출한 콜로서스가 누구인지를 알아챘을 때,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방금 전 콜로서스, 어느 방향으로 갔나?”

황제의 군대임을 상징하는 붉은 제복.

그것을 확인한 병사들이 경례를 붙일 새도 없이, 지휘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 남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그 방향이면 로렌 영지가 나옵니다만….”

“제길, 한 발 늦었나!”

씹어뱉듯이 그렇게 외친 황도군의 안색을 살핀 정비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근데 방금 지나가신 분…. 케인 로렌츠 경 아니십니까?”

“제국의 영웅이 갑자기 콜로서스를 타고 가시다니, 왜 그런 겁니까…?”

정비창에 있던 이들이 그렇게 묻자 잠시 말이 없어진 황도군 장교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 지나간 이가 케인 로렌츠라는 것. 자네들만 알고 있나?”

뜬금없는 질문.

그렇지만 상관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리고 그것을 본 황도군은 일제히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

타타타탕-!

정비창에서 야간근무중인 인원 스무 명을 전부 사살했다.

털썩!

힘없이 주저앉은 정비원의 시신을 바라보던 황도군 장교는 조용히 모자를 눌러쓴 채 뒤에 도열한 부하에게 말했다.

“시신에 칼자국을 내라. 반역자 케인 로렌츠에게 살해되었다고 공표해.”

“알겠습니다.”

조용히 경례를 붙인 병사들이 쓰러진 정비원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할 때, 케인의 콜로서스는 로렌 영지로 향하고 있었다.

쿵-!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나, 로렌 영지 외각에 도착한 케인은 뿌득 이를 갈아붙였다.

“이미 영지가 포위 되었어…!”

이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보였던 콜로서스들.

그들의 목적지는 그가 우려했던 대로, 로렌츠의 거점인 로렌 영지였다.

“어떻게든 저 포위망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야…!”

그렇게 말을 흐린 케인이 침음성을 흘리던 중,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에 곧바로 뒤를 돌아 권총을 겨눴다.

“워우! 가주님!”

“저희들입니다! 총 치우세요!”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던 것은 다섯 명의 로렌츠 기사들이었다.

“발터, 커크스! 자네들이 여길 어떻게…?”

예상하지 못한 이들의 등장에 눈을 크게 뜬 케인이 그렇게 묻자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지은 발터가 케인을 향해 말했다.

“전대 가주님의 명령입니다. 로렌츠가 위험에 처한다면, 가주님은 이 경로로 오실 테니 준비하라고.”

로렌 영지는 로렌츠의 앞마당.

이곳에는 눈에 띄지 않는 경로나 숨겨진 루트 등, 가문의 기사들끼리만 통용되는 비밀스러운 위치가 가득했다.

“어이구 그건 그렇고….”

그렇게 말한 발터의 등 뒤로, 다른 네 명의 기사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나저나 가주님. 안색이 그게 뭡니까?”

“눈빛도 살벌하시네요. 그 얀이라는 친구랑 다니더니, 어지간히 물드셨습니다 그려?”

“하하하하!”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쾌한 자신의 기사들. 아니, 친구들.

제국에 의해 가문 전체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이런 때 만큼은 마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 마냥 편안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다고?”

어느 정도 회포를 푼 케인이 그렇게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커크스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선대 가주님께서 이미 포위중인 제국군을 피해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습니다. 식민지 국경지대…. 비쿠스 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마치 이전부터 준비되었다는 듯 은밀하게, 그리고 빠르게 이뤄지는 피난.

알고 계셨던 걸까, 아니면 그저 제국에 대한 묵은 불신이었을까.

클로드의 얼굴을 떠올린 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발터에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아버지께 전해주게. 그리고…. 그분의 입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케인의 모습을 본 발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가주님.”

이윽고 표정을 굳힌 네 명의 기사들이 케인을 바라보자, 이를 악문 케인이 자신의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진실을 이야기할 걸세. 한 번 들으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자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듣지 않고 떠난다고 해도 괜찮네. 이미 제국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이상, 그대들은 역적인 내게 충성할 필요가….”

“가주님.”

케인의 말을 끊은 기사들이 케인과 눈을 마주쳤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그것을 본 케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이 그들을 선택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당신을 선택한 거죠.’

‘그렇다면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 또한 당신이 아닌 그들의 몫입니다’

자신을 이곳까지 끌어올린 얀의 한 마디.

그것을 떠올린 케인은 더 이상 그들을 털어내려 하지 않았다.

“말해주겠네. 수정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제국이 그 동안 숨겨온 진실이 무엇인지.”

***

하얗다.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에서 정신을 잃은 얀이 흐릿한 의식 속에서 떠올린 첫 감상이었다.

‘이건 또 뭐야….’

꿈? 아니면 자신과 연결된 글레이프니르의 다른 기능?

알 수 없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천천히 손을 뻗자 희미하게 들려오던 잡음들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칙- 치칙-

새하얀 시야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더니, 점차 흐릿한 시야가 분명해져 간다.

[인종, 언어, 문…. 그 동안 우리들을 가르던 수많…. 장벽을 넘어, 인류는 드…. 어, 하나의 연방으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합니….]

누군가가 단상에 서서 연설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망과 기대감이 섞인, 밝고 우람찬 목소리.

[이제 우리는 하늘을 넘어, 별과 별을 오가는 시대로 도약해야 합니다. 별을 넘어, 온 세상에 인류의 영광을 재현해야 합니다.]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지겹게도 들려오던 구호가 이번에도 똑같이 들려왔다.

[‘노예로서 태어나, 사람으로서 죽겠다.’ 3번 인공생명체들이 내세운 구호인가요?]

[그렇습니다. 연방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이며, 이들은 마력이라는 이상한 힘을….]

서로 토론하는 남자들의 목소리에는 묘한 비웃음이 깔려있었다.

[오류를 일으킨 4번 위성에서는 개발중인 4세대 인공생명…. 현재 공장은 무허가로 가동중….]

불안감에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4번의 폭주로 인해…. 이에 흡수된 3번 개체들은 현재 유라시아 대륙을 …한 상태이며, 연방군은 수적 열세….]

무미건조한 안내음이 불안해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체했다.

[우리는 존엄한 이 땅의 주인으로써,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질적인 감각 끝에 얀이 천천히 눈을 뜬 그곳에는, 끝없이 불타오르는 세상이 있었다.

수십 줄기의 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빛줄기 하나하나가 수천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거대한 불꽃의 비였지.’

공중함대는 바람 앞의 낙엽처럼 떨어져, 땅을 불태우고 있었다.

‘연방의 하늘이 뚫린 순간이었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거인과.

‘이제는 그 뼈밖에 남지 않았지.’

그것에 맞서 영원히 싸우는 글레이프니르.

‘불쌍한 아이.’

그리고 그것을 홀로 바라보는….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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