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진실의 무게(2)
“렌.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 얼마나 지났지?”
“두 시간.”
“그 인간 마력이면 벌써 제국령까지 도착했겠군. 씨발!”
사람의 다리로 걷는 것과 콜로서스의 다리로 걷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콜로서스로 걷는 것과, 콜로서스로 달리는 것 또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케인 로렌츠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마력을 사용하는 자.
행군으로 하루는 족히 걸릴 거리조차 한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기사였다.
“알리에노르 라 뒤누아. 그 여자가 이 사건을 뒤에서 조작했다면, 지금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위험해.”
“케인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어.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선수를 치러 간 거겠지.”
침대에 걸터앉은 얀이 잠시 숨을 고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쩔 셈이야?”
“잡아야지. 수정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알리에노르의 계획이 시작되었다면 제국 어디든 안전하지 못해.”
실질적인 시작은 케인이 자신의 영지인 비쿠스에 도착한 순간부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얀은 곧바로 군복 코트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닐!”
쿵-!
이제는 어디에 있든 불러낼 수 있게 된 자신의 콜로서스를 바라보던 얀은 망설임 없이 그곳에 몸을 실었다.
[메인 파일럿, 서브 파일럿. 연결 완료. 글레이프니르, 시스템 기동.]
엔진음과 함께 일어선 글레이프니르가 교국 밖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중대장님-!”
갑작스러운 콜로서스의 기동음에 놀라 뛰어나온 것은 부대원들을 지휘하는 단델이었다.
- 날이 밝는 대로 케르단 전선기지로 복귀해. 이쪽은 할 일이 있어.
“아뇨! 대원들 기상 시키겠습니다! 혼자 가시는 건…!”
- 안돼.
막사로 달려가려던 단델을 얀의 목소리가 막아섰다.
“산간지역입니다! 보병 지원이 있어야 작전이…!”
- 긴급상황이야. 보병과 함께 기동하면 너무 느려.
그렇게 말하는 얀이었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나와 케인의 독단으로 처리되어야 해. 부대에 피해가 가는 일은….’
거기까지 생각하던 얀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부대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내가 방금, 그렇게 생각한 건가?’
황제의 비밀을 알아낸 지금, 자신이 사라지면 복수 또한 불가능하고, 자신이 이용하기 위해 만든 87 독립중대의 존재의의 또한 사라진다.
근데 방금, 자신은 왜 목적보다 부대를…?’
“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무렵, 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얀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니, 이런 일로 부대를 잃을 수는 없어. 그것 때문이야.’
그렇게 자신을 다그친 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글레이프니르에 정신을 집중했다.
“닐. 콜로서스의 반응, 잡아낼 수 있나?”
대답은 빨랐다.
[일정 강도 이상의 마력 반응 확인. 빠르게 남하중.]
“그 외에는?”
혹시나 해서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역시 알리에노르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책사였다.
[데이터 대조. 페이지 급으로 추정되는 콜로서스의 마력 반응 확인. 수는 20. 앞서 이동중인 아군기와 동선 일치.]
그 말에 얀이 이를 악물었다.
“교국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추격을 붙였다는 소리군…!”
눈앞의 화면에 나타난 케인을 ㅤㅉㅗㅈ는 콜로서스들을 보며 얀은 이를 악물었다.
“지형만 아니었어도 문제없었겠지만….”
수정도시 내부나 요새처럼 탁 트인 개활지였다면, 케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수풀 속에서는 지형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육안과 마력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콜로서스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오러 유저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
물과 식량 없이 몰아붙인다면 언젠가는 그의 마력과 체력도 고갈되지 마련이다.
“이제 와서 케인을 막는 건 불가능해.”
“말린다고 포기할 인간도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인간도 아니지.”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얀의 표정은 편치 못했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과는 반대로, 케인은 뜻을 같이 하는 세 사람 중 누구보다도 감정과 정의에 휘둘리는 이였다.
전쟁을 끝낸다는 목표를 위해 계승권 최하위의 황자를 지원한 것도 케인 로렌츠이며, 전장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안된 얀을 위해 죽을 것이 뻔한 전선에 남기로 한 것이 케인 로렌츠였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라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몸을 들이미는 인간이야. 그 착해빠진 순둥이 새끼!”
지금껏 케인을 칭하는 말 중 가장 과격한 언사를 쓰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의 거체가 튕겨나가듯 쏘아 올려졌다.
투콰앙-!
지진과 같은 굉음.
그리고 그와 함께 숲을 질주하는 글레이프니르는 이윽고 숲을 벗어나려는 케인을 ㅤㅉㅗㅈ는 콜로서스 군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렌. 공포탄 장전하고, 저것들 발밑에 쏴!”
“확인.”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글레이프니르의 어깨에 장비된 레일 캐논이 곧바로 탄종을 바꿔 공포탄을 쏟아냈다.
투콰콰쾅-!
- 뭐야?!
- 포격! 어디서 들린 거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당황한 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짧게 혀를 찬 글레이프니르가 곧바로 그들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콰앙-!
폭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난 검은 콜로서스의 모습에 콜로서스를 따라 이동중인 보병들이 혼비백산하지 시작했다.
“으, 으아악?!”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전투준비!”
순식간에 수풀 곳곳으로 숨어 자신을 겨누는 수십 개의 총구들을 마주한 얀에게 닐의 안내음이 들려왔다.
[아군 기체의 속도 증가. 수풀 지형에서 이탈중.]
“그래. 차라리 이러는 게 낫겠지.”
안타까운 듯 혀를 찬 얀이었지만, 그나마 케인이 붙잡히는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다.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등을 떠밀겠다. 좋은 판단.”
“아니. 난 그렇게 생각 못하겠어.”
등 뒤에서 들려온 렌의 평에 그렇게 대답한 얀은 사방에서 자신에게 돌격포를 겨누고 있는 스무 대의 콜로서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한 무리의 병사들을 눈에 담았다.
“그래. 이 녀석들은 알리에노르가 아니라, 황제가 보낸 이들이군.”
그렇게 혼잣말한 얀은 활성화 된 기체의 무장들을 수납하는 것과 동시에 확성기를 통해 입을 열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릭. 에밀리. 스웨인.
굳은 표정으로 스무 기의 콜로서스를 지휘하는 이는, 이전 교국에 사절단으로 참여했을 때 만났던 세 사람이었다.
“이 목소리는…?”
“얀 베르쿠트!”
기억을 더듬어 얀을 기억해 낸 세 사람이 얀의 콜로서스를 눈에 담았다.
“그 사이에 뭔가 바뀌었군.”
“고대인의 콜로서스라고 들었는데, 개조된 건가요…?”
그렇게 주고받는 것과 동시에 손을 든 릭의 수신호에 얀을 겨누던 콜로서스들의 돌격포가 땅으로 내려갔다.
“사격중지! 아군이다!”
“보병대도 위장 해제하세요! 전투 중지입니다!”
그렇게 외치며 부대원들과 기사들을 진정시키는 이들이었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델란엘의 델타 콜로서스를 상대하던 얀의 모습.
그것을 떠올린 그들은 속으로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형에서 저 기체와 전투가 벌어진다면….’
글레이프니르가 가진 힘의 근원은 단순이 출력과 장갑만이 아니었다.
지형 데이터를 분석해 접지압을 조정하고, 야간 투시와 열감지 센서로 어둠을 꿰뚫어보며, 광역감시 레이더로 전장을 실시간으로 관조하는 정보전 능력.
지형이 복잡할수록, 엄폐물이 많을수록.
글레이프니르는 더욱 효율적이고, 더욱 빠르게 적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만일 교전한다면 페이지 급 스무 기 정도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없애버릴 수 있겠지….’
치익-!
먼저 무기를 내린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조종석 해치가 열리며 그 안에서 얀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위! 오랜만입니다!”
“소식 들었어요. 영주님에다가 소령으로 진급했다면서요?”
그렇게 말하며 짐짓 웃는 얼굴을 한 그들이었지만, 조종석 아래로 내려온 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교국으로 보내는 사절단은 연례행사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교국 때문이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게 다짜고짜 이루어진 얀의 질문이었지만 거기에 대답하는 그들 또한 보통 내기는 아니었다.
“교국 때문이기도 하죠. 정확히는 교국을 방문한 당신들. 특히 케인 로렌츠 때문이니까.”
그 말이 끝나는 것과 함께 연결이 해제된 글레이프니르가 자세를 낮췄다.
‘스웨인. 저건….’
‘예. 이전보다 더욱, 기체를 다루는 능력이 올라가고 있어요. 무서울 정도로.’
에밀리를 제외한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얀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사단장님께 무슨 용무이십니까.”
높낮이 없는 질문.
답을 알고 있는 자의 질문이었다.
“수도 바일사르로 출두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로렌츠 공작을 찾고 있었죠.”
그렇게 말한 스웨인이 얀에게 명령서를 내밀었다.
‘구속 명령…!’
황제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 확인한 이상, 이 이상 그들을 방해한다면 반역이었다.
“로렌츠 가문의 가주이신 케인 기사단장님에게 구속 명령이라니, 제국의 공작이 교국에 방문한 것이 그렇게 큰일입니까?”
떠보기 위해 그렇게 물어 본 얀이었지만 그들의 대응 또한 빨랐다.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신 이상, 저흰 거기에 의문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황제를 직접 섬기는 이들로써는 정론이대답. 그렇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 마치 적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마주한 얀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저들은 케인을 제거할 생각이야.’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을 둘러보며 얀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곳에서 시간을 끈다. 하다못해 대삼림을 벗어날 때 까지….’
그렇게 마음먹은 얀의 왼쪽 눈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가 경계태세를 취했다.
- 저, 저거!
- 무엄하다! 황제 폐하의 중앙기동군인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피식 웃어 보인 얀은 그런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글쎄요. 단순한 검거작전이라기엔 콜로서스의 장비가 심상치 않군요.”
두 대의 돌격포와 척탄. 그리고 두 자루의 검까지.
단순한 탐색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중무장된 중앙군 기동부대의 콜로서스를 보며 얀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때.
- 와아~! 여기 계셨군요 낭군님!
콜로서스의 확성기를 통해 들린 것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찐득한 광기, 그리고 그 것을 포장하는 매혹.
하늘 위에서 들려오는 것은 알리에노르 라 뒤누아의 목소리였다.
[경고. 고속 접근중인 기체 확인. 파일럿 긴급수용.]
“뭐…?!”
등 뒤에서 들려온 닐의 목소리와 함께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 안으로 들여보내진 얀의 눈앞에, 무언가가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투콰앙-!
대포를 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게 하는 거대한 폭음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먼지구름을 뚫고 나온 콜로서스의 하얀 팔이 글레이프니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쿵-!
이윽고 먼지구름이 걷히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콜로서스.
온 몸의 관절부에 추진기가 장착되어있는, 새하얀 콜로서스가 글레이프니르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알리에노르…! 콜로서스 조종사였단 말이야?”
처음 보는 이질적인 모양의 콜로서스를 바라보며 얀이 그렇게 말했지만, 이어지는 닐의 설명에 얀은 다시 한 번 사고가 정지하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기체 제원 확인. 인류연방 소속 강습형 기동병기, EUA-011. 흐레스벨그.]
눈앞에 있는 새하얀 콜로서스는, 글레이프니르와 같은 고대인의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