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원수의 아비(3)
콰드득!
이전의 뭉툭한 대검과는 차원이 다른 파열음이 핏불 테리어의 몸체에서부터 흘러나왔다.
까가가가각-!
[절삭무기에 대항하는 반응장갑의 존재를 확인.]
고속으로 진동하는 글레이프니르의 대검이 달려오던 핏불 테리어의 복부를 꿰뚫자 닐의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장갑이 단단하면, 이 검을 쓰는 건 잘못된 판단 아닌가?”
얀이 그렇게 말하며 땅에 메다꽂은 핏불 테리어의 몸체를 비틀려 하자, 곧바로 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정. 출력으로 분쇄하겠음.]
그 말과 함께 글레이프니르의 동력로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득!
이윽고 출력을 이기지 못한 장갑판이 통째로 뒤로 밀려나며 복부에 꽂혀있던 글레이프니르의 검이 그대로 핏불 테리어의 옆구리를 산산조각 내며 시커먼 검신을 드러내었다.
키이이이이-!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그렇지만 그 또한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방에 접근중인 두 개체 확인. ES-014 레일 캐논, 전용 탄두 장전 완료.]
“조준 보정 완료. 사격모드는 삼점사.”
닐의 안내음과 동시에 들려온 것은 렌의 목소리였다.
촤르륵-!
손에 장착해서 발사해야 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어깨에 걸쳐진 채 자동으로 목표물을 조준한 레일 캐논이 달려드는 세 대의 핏불 테리어를 사선 안에 집어넣었다.
“Fire.”
렌의 무감정한 목소리와 함께 이름 없는 유적에서 발굴된 글레이프니르의 레일 캐논이 불을 뿜었다.
쿠콰쾅-!
키이이이-!
단말마와 함께 원거리에서 달려오던 핏불 테리어들의 몸체가 그대로 꿰뚫려 산산조각났다.
“이, 이런 미친! 전부 제식장비들이잖아…!”
순식간에 네 대의 기체를 산산조각 낸 가공할 위력에 트로이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군용장비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이상, 정비작업을 거친다 해도 저런 개량은 불가능해! 1번은 저 자식이랑 같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용자의 주문이 없을 경우, 자율 정비시설은 기체의 제원을 함부로 변경하지 않는다.
핵폭발과 기체 피로도로 소모된 상태, 최악의 경우라고 해 봐야 완전히 정비된 순정 상태의 글레이프니르 뿐.
그렇게 생각했기에 준비한 핏불 테리어였다.
그것을 상정하여 고안한 전략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무기들을 줄줄이 달고 나타난 거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트로이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사이, 얀의 등 뒤로 돌진하던 한 기를 세로로 갈라버린 케인이 입을 열었다.
- 단순히 힘으로 저 괴물을 짓이기다니, 안그래도 괴물 같은 기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케인이었지만, 그가 움직이는 6호 콜로서스 또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촤아악-!
한 번의 검격.
그것만으로 돌진해오던 다른 한 기가 횡으로 쪼개져 바닥에 처박혔다.
콰드득-!
“오러 블레이드. 새삼 느끼지만….”
[개당 기체에서 감지되는 특수한 에너지 파장은 본 기체와 정비시설의 기술로도 해석이 불가능함.]
압도적인 출력과 물리력으로 적을 짓이기는 글레이프니르와 달리, 마력장과 오러 블레이드로 무장한 케인의 콜로서스는 마치 사람의 몸이 움직이듯 빠른 속도로 핏불 테리어들을 베어나갔다.
힘의 압도가 아닌 기술의 압도.
그와 동시에 마력이라는 미지의 힘은 오히려 옛 인류의 유산에게 있어 너무나도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스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연달아 세 대의 핏불 테리어가 쓰러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트로이얀이 이를 악물었다.
“저 좆 같은 보노보 새끼들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드는 것과 동시에 남아있던 핏불 테리어들이 대열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내가 직접 지휘한다. 이렇게 된 이상 지구전으로…!”
트로이얀이 그렇게 내뱉는 순간.
[관측 사격에 의한 사격제원 산출 완료. 전술 제안. ES-014 레일 캐논, 사격모드 변경. 메인 제네레이터에 직렬 연결.]
철컹! 철컹-!
어깨에 걸쳐진 글레이프니르의 포 뒷부분이 빠져나가며 밑으로 내려오자, 그것을 확인한 얀이 그 포신을 움켜쥐었다.
흡사 87중대원들이 기관총을 들고 사격할 때와 같은 모양새였다.
우우웅-!
이윽고 등에서 뽑혀 나온 전선을 포신 뒷부분에 연결하자, 네 갈래로 갈라진 포신 사이에 전자파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건, 타우르의 꼬리에 있던…?”
그렇게 얀이 내뱉는 순간, 닐의 추가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사격 모드 변형 완료. 동력 연결상태, 올 클리어. ES-014 하전입자포, 발사준비 완료.]
적을 이기는 방법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것을 분석하고, 재현하고, 개량하는 것.
“조준하고 당기면 되는데 뭐가 전술이야?”
[가장 유효한 행동을 추천 후 실행. 이는 사전적 의미의 전술에 해당.]
“하여튼 한 마디를 안 지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얀은 입술을 핥았다.
요새 한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린 타우르의 하전입자포, 그리고 백상어의 동체를 그대로 녹여버린 그 거포의 운용법을 떠올리자 얀의 눈앞에 조준선이 나타났다.
“뭐야. 나한테 할 것 없이 그냥 쏘면 되잖아?”
자신의 등 뒤에 선 렌에게 그렇게 묻자 렌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조준선 한 가운데에는 전자기를 보고 경악한 표정의 트로이얀의 모습이 있었다.
“같은 생체단말은 서로 죽일 수 없어.”
“그런 건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격을 방해하기 위해 핏불 테리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케인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하, 하전입자포?! 개새끼가 도시 내부에서 전략무기를…!”
고대인의 도시를 지킨다는 생체단말로서의 인식은 남아있는지, 이를 뿌득 갈아붙인 트로이얀이 얀을 노려보았다.
“언젠가 네 것이 될 지도 모르는 곳이란 말이다!”
- 내 것이 될 거니까 내 맘대로 부수는 거잖아. 니가 뭐 어쩔 건데?
“이 미친새끼…!”
복장을 뒤집어놓는 얀의 한마디에 트로이얀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장 달려들어! 저 놈을 죽이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트로이얀이었지만, 그의 말은 실현되지 못했다.
얀의 포구에 모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감지한 핏불 테리어들이 순식간에 한 지점으로 모였다.
“저건?”
사선 위로 자신의 몸을 들이대는 핏불 테리어들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자 렌의 대답이 들려왔다.
“경비단말의 제 1 우선순위는 시민의 안전 보호. 사선상에 거주구가 들어있다면, 저 아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막아.”
“저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하지만 거주구를 지키라는 명령은 남아있지.”
마치 죽으려는 듯 입자포의 사선으로 모여드는 핏불 테리어들을 향해 말하는 렌의 목소리에는 뜻 모를 슬픔이 담겨있었다.
[고열원 감지. 입자병기 가동 확인.]
[거주구 보호조치 이행. 방어모드 활성화.]
[피난경보 발령. 3등급 이상의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핏불 테리어들을 보자 답답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트로이얀이 핏불 테리어들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고철덩어리들아! 아무도 없어! 그냥 달려들어서 죽이라고! 씨발, 계속 명령 코드를 보내고 있잖아! 움직이라고 이 쥐좆만한…!”
그렇게 말하는 트로이얀이었지만, 그의 앞을 막아선 경비단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시민을 보호하라.]
[시민을 보호하라.]
[시민을 보호하라.]
[시민을 보호하라.]
“덕분에 일이 좀 편해졌군.”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몰려든 경비단말들을 보며 무감정하게 내뱉은 얀은 그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쿠오오오오오-!
천둥소리를 전부 파묻어버린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수정도시를 감싸고 있던 유리 장벽이 곳곳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그 압도적인 충격량을 온 몸으로 받아낸 수십 기의 핏불 테리어들은, 몸체 곳곳이 녹아내린 채 자신들의 임무를 끝마쳐 고철로 돌아가 있었다.
[적 기체 침묵. 교전 종….]
“아니. 아직 남아있잖아.”
완전히 가동을 중지한 핏불 테리어들을 보며 들려온 닐의 목소리를 차가운 얀의 한 마디가 가로막았다.
“끅, 끄으윽…!”
산산조각난 핏불 테리어들의 잔해 속에서 비척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땅에 끌며, 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남자.
14번 생체단말, 트로이얀이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그 좆 같은 씨발년만 아니었어도! 이 다리만 제대로 있었더라도! 아아아아아악-!”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끊임없이 내리치며 그렇게 외치는 트로이얀의 모습은, 완전히 미친 사람의 그것과도 같았다.
- 그 다리가 그렇게 그립나보지?
그렇지만 그런 트로이얀의 모습에 연민을 느낄 새도 없이, 글레이프니르의 등에 장비된 단분자 커터가 곧바로 트로이얀의 몸이 있는 자리에 내리꽂혔다.
콰드득-!
“아아아악-!”
이제는 형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하반신.
감각은 아직 살아있었던 것인지, 비명을 지르는 트로이얀의 표정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여기서 이렇게…!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이렇게…!”
- 아니. 여기서 끝이다.
그의 독백에 답한 것은 얀의 목소리였다.
쿵-!
지척까지 다가온 글레이프니르의 손이 남아있던 트로이얀의 상반신을 움켜쥐어 들어올렸다.
“내가 말 했지. 쌍판을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크윽…!”
조종석 해치를 열고 모습을 드러낸 얀의 모습에 트로이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장님.”
- 그래. 뭘 하려는지 알겠네.
얀의 말을 들은 케인이 검을 뽑아 트로이얀의 몸 바로 밑에 갖다 댄 뒤, 그대로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이 정신나간 새끼, 설마!”
“하이람은 잔해만으로도 널 살려냈지. 난 그런 실수는 하기 싫어서 말이야.”
닿기만 해도 존재를 지워버리는 오러 블레이드의 검날.
저 검면에 트로이얀의 몸을 던져 넣는다면, 그의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씨발, 알았어! 알았다고! 네가 이겼어! 네가 보스야! 네가 주인이라고!”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질려버린 트로이얀이 얀을 향해 내뱉었다.
“원하는 건 말만 해! 전부 가져다줄게! 전부 다 만들어올게! 평생 널 모시면서! 네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그러니…!”
“뭐든지 하겠다. 정말인가?”
재차 확인하듯 묻는 얀의 말에 트로이얀이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정말이야! 인정하겠어! 당신이 계승자야! 당신이 인류의 후계자야!”
“좋아. 그럼 명령하지.”
얀은 트로이얀의 말에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그 곳에서 한 줌 희망을 느낀 트로이얀을 향해, 웃음지은 얀의 입이 열렸다.
“뒤져버려. 영원히.”
그 한마디와 함께, 트로이얀의 상반신을 잡고 있던 글레이프니르의 순이 펼쳐졌다.
“아, 안돼! 잠…!”
트로이얀의 말은 이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치이이익-!
무른 나무토막이 사포에 갈려 사라지듯, 오러가 서린 검날로 떨어진 트로이얀의 몸은 그대로 흩어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