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17화 (117/186)

117. 친구

쿠우우우….

폭발이 멎을 때까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유리로 가득 찬 대지는 움푹 패여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냈고, 핏불 테리어와 같은 장갑을 지니지 못한 소형 드론들은 동체 전체가 녹아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2차 폭풍 관측 완료. 기체 폐쇄조치 해제.]

촤르르륵-!

사이사이 열려있던 모든 장갑판 틈새를 메꿔 빈틈없이 밀봉되어있던 글레이프니르가 굳어버린 몸체를 일으켰다.

뿌득. 뿌드득!

그렇지만 그 또한 폭발의 충격에서 온전히 무사하지는 못한 것인지, 온 몸의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장갑판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 단장님. 살아계십니까.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얀의 목소리와 함께 글레이프니르의 모니터가 두 콜로서스의 낙하지점을 비췄다.

산산이 부서져 눈송이처럼 변해버린 수많은 유리조각들에 파묻히다시피 한 케인의 6호 콜로서스가 보였다.

- 윽! 으으으….

확성기를 통해 나지막이 들려오는 케인의 신음소리를 확인한 얀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글레이프니르를 일으켰다.

쿠르르르….

“닐. 기체 상태는?”

방금 전의 아수라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요한 정적을 느끼며 얀이 그렇게 묻자 노이즈 낀 화면 속에서 닐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체 손상률 50% 초과. 비상상황에 의거한 자가복구 시스템 작동. 기초 운용능력 복원까지 앞으로 360분.]

“반파라….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부러지고, 뒤틀리고, 우그러진 장갑판과 구동계를 드워프 정비창의 기술로 억지로 이어붙인 상태. 완전한 성능을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수리라고 해 봤자 이 아이의 기준에서는 응급처치밖에 안돼. 이 정도의 충격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케인의 덕.”

“단장님 덕이라고?”

등을 맞대고 앉은 렌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공중에 반투명한 화면을 띄운 렌이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빅!

이윽고 노이즈 낀 글레이프니르의 화면에 폭발 당시의 화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여튼 착해 빠져서.”

공중에 뜬 상태로 글레이프니르를 끌어안은 채 마력장을 펼치는 케인의 모습을 보자 맥이 풀린 듯 중얼거린 얀이 조종간을 조작해 조종석 해치를 열어젖혔다.

푸쉬익-!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목덜미의 연결이 해제된 것을 느끼자, 얀은 기체에서 나와 유리조각에 파묻힌 케인의 콜로서스로 걸어갔다.

촤륵! 촤르륵!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얀이 낀 가죽장갑을 베어 들어갔지만, 내부에 있는 케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흉부 장갑에 쌓인 유리조각을 걷어낸 얀이 그곳에 있는 비상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쇳소리와 함께 장갑한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철컹-!

“아…. 얀 소령. 무사해서 다행일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케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혀를 찬 얀은 곧바로 그의 어깨를 붙잡아 조종석에서 끄집어냈다.

“괜찮네. 외상은 없고, 단지 마력 소모가….”

“압니다. 입 다물고 밖으로 나오기나 하십쇼.”

털썩!

이윽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글레이프니르에 케인의 몸을 눕힌 얀은 폭발이 끝난 거대한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치칙! 치지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몸뚱이를 비척거리는 핏불 테리어 몇몇이 보였지만, 그 수 또한 얼마 되지 않았다.

‘닐.’

[상태 진단. EMP역장에 의한 전기 회로 붕괴를 확인. 자가복구 시스템은 가동하지 않음.]

“그나마 저 놈들이 다시 일어날 일은 없다는 거군.”

부서진 부위를 혼자서 수리하는 글레이프니르나 장갑을 뭉텅이 째 도려내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타우르같은 기체들과는 달리, 몸을 비척거리는 저 녀석들의 명줄은 그리 길지 않은 듯 했다.

“전투 단말이 아닌 경비단말의 한계야.”

“경비 단말이 엘프를 잡아 피를 빨아먹는다고?”

“원래 그렇지는 않았어. 굳이 말하자면, 파수견과 같은 아이들이야.”

그렇게 말한 렌은 허공에 화면을 띄워 얀에게 그것을 보였다.

“도시 내부에 있는 제조시설에서 개조된 거야. 이 정도의 권한을 가진 것은 멸망 전 인류. 아니면….”

“생체단말. 트로이얀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

그렇게 말하며 얀은 주먹을 쥐었다.

벨커스를 만들어낸 생체단말.

부랑아였던 하이람 벨커스에게 아름을 주고 그를 백작으로 키워낸 자.

야니카를 죽음으로 몰아간 기술을…. 그에게 건네준 자.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수정도시 내부로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며 얀은 글레이프니르를 보았다.

철컥. 철컥.

장갑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떻게든 기능을 회복하려 하는 닐을 보며 얀은 단념한 듯 표정을 풀었다.

“단장님 상태도 그렇고, 오늘은 여기서 야영이군.”

그렇게 말한 얀은 글레이프니르에게로 천천히 걸어가려 했다.

“안 오고 뭐해?”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핏불 테리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는 렌을 보며 그렇게 묻자, 얀을 돌아본 렌은 고개를 내저으며 얀을 향해 말했다.

“트로이얀이 저 아이들을 개조했다면, 장치를 남겨놓았을 거야. 그걸로 위치를 알아낼게.”

그렇게 말하자 움직임을 멈춘 얀이 렌에게 물었다.

“고대인이 만들어낸 존재가, 그렇게 쉽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데.”

“아니. 남겨.”

렌의 단언에 고개를 갸웃하는 얀을 바라보던 렌은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단말은…. 그런 성격이야.”

그렇게 말한 렌의 등 뒤로는,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

“이거 참, 신세지는군.”

“그렇게 생각하시면 몸이나 빨리 추스르십시오. 그 몸으로 모닥불은 무슨.”

“하하하.”

간이형으로 만들어진 작은 화로에서 고체연료가 소리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오른팔을 들어 올린 글레이프니르의 손에는 천막에 쓰이는 거대한 천의 중간 부분이 들려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드워프들이 이전에 알려준 방법대로, 유리 바닥에 홈을 새겨 갈고리를 건 얀은 천막의 끈을 잡아당겨 팽팽하게 고정시켰다.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지 30분, 케인이 누워있는 자리에는 콜로서스를 기둥 대신 사용한 거대한 텐트가 만들어졌다.

“누추해도 좀 참으십쇼. 단장님.”

“아닐세.”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에 걸터앉은 얀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케인에게 그것을 보였다.

“아, 난 괜찮네.”

“아뇨. 준다는 게 아니고, 펴도 되냐고 물어본 겁니다만.”

참신하게 불손한 친구.

클라우스 황자의 비유를 떠올린 케인은 즐거운 듯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하게.”

그렇게 담배에 불을 붙인 얀이 푸우,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자넨 정말…. 못하는 게 없군.”

“야전군 생활만 10년인데, 이것도 못하면 선임병들에게 맞아죽습니다.”

형벌부대 출신인 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살벌한 이야기는 단순한 비유만이 아님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선임들은?”

“죽었죠. 5년 전이었는지, 6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그런가….”

잠시동안의 정적.

동업자이니, 동맹이니. 최측근인 양 얀을 대해왔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단 둘이 얘기한 적은 없다는 것을 떠올린 케인이 무료함을 달랠 겸 입을 열었다.

“벨커스의 파멸. 자네는 그게 목적이라고 했지.”

“맞습니다.”

짧은 대답이 이어지고, 케인은 이전에 그가 얘기해 준 얀의 어머니, 야니카의 죽음을 상상하려 해 보았다.

로렌츠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벨커스의 농간에 돌아가신 어머니. 그렇지만 케인이 품은 복수심은, 얀이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나와 황자님의 목적은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그를 위해, 뒤에서 전쟁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벨커스를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죠.”

“황자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네. 그 말을 듣고, 난 그 분을 황제로 만들겠다 다짐했지.”

로렌츠가 계승권 최하위인 13황자를 지원한다고 공표했을 때, 케인이 클라우스와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귀족 사회는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충성구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당시 후계자 신분이었던 케인 로렌츠였다.

“사실, 일종의 거래라고 봐도 무방했어. 명목상의 계승권과 영지 외부로의 진출루트를 제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로렌츠는 기사와 가문의 권위를 제공한다는. 흔해빠진 정치적 거래.”

“….”

로렌츠 공작가가 황권을 노린다.

가르드 황자를 키우는 벨커스 백작처럼.

이것이 제국 귀족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거래를 하는 와중에도 전쟁을 끝내겠다는 다짐만큼은, 분명 진심이네.”

“그렇습니까.”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케인이었지만, 그에 답하는 얀은 마치 남의 일을 듣는 것처럼 흐린 표정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클라우스 황자님게서 황권을 잡으신다면, 우린 이 제국의 역사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할 걸세.”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라….”

그렇게 말을 흐린 얀이었지만, 이내 그는 관심없다는 듯 담뱃불을 들이마셨다.

“자네는 그런 계획이 없나? 벨커스를 몰락시킨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렇게 말을 흐리는 케인을 잠시 바라본 얀은 흐릿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요. 살아있을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만.’

글레이프니르의 나노머신을 받아들이고부터.

그리고 계속해서 저 기체에 몸을 담는 순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었다.

“어디 틀어박혀서 요양이나 하겠죠. 고대인의 유산을 억지로 가동시키는 겁니다. 몸에 부담이 없을 리가 없어요.”

대충 둘러대며 그렇게 말한 얀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케인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렇군. 그래서 그 때 무도회장에서도 허공에….”

“아니, 그거 말고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을 언급하자 급히 손을 들어 그 말을 막은 얀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케인의 눈은 그대로였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가?”

“….”

‘앞으로 길어야 2년.’

이전에 전선기지에서 그렇게 말한 렌의 한 마디를 떠올린 얀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좀 피곤하니까요. 쉬고 싶을 뿐이죠.”

“그런가…?”

얀이 케인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였다.

“찾았어.”

등 뒤에서 들려온 렌의 목소리에 케인과 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들을 풀어놓은 14번 생체단말. 트로이얀의 위치.”

그렇게 말한 뒤 렌은 손가락을 들어 그들이 있는 곳 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거주구역 심층부, 통합관리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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