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14화 (114/186)

114. 진실이 잠든 곳.(2)

“추, 충성! 오랜만에 다시 뵙습니…!”

“넌 누군데?”

다시 돌아온 케르단 전선기지에서 엘프 마을, 그리고 교국까지 이어지는 길은 이전에 왔던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여기가 우리 중대가 태어난 곳입니까?”

“말하자면 요람 같은 곳이지.”

“우와아….”

그렇지만 처음 이 곳을 찾은 중대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던 듯, 처음 보는 북방의 풍경과 자신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엘프들을 보며 신참들은 교국으로 가는 길 내내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옛날 생각나는군.”

“꼭 10년은 더 되어서 온 것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동안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보게. 10년은커녕 100년은 더 지난 것 같아.”

열차로, 그리고 드워프 유랑단의 호그에 탄 채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에퀴테스의 조종석에 탄 채로 교국을 향해 이동하는 케인은 오랜만에 찾은 케르단 전선이 감개무량한 듯 그렇게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지루해 죽겠는데 말이지.’

케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한 얀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교국으로 향하는 대교를 건넌 얀 일행은 의외의 광경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얀 베르쿠트 경! 케인 로렌츠 경! 교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리 너머 교국으로 통하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위병이 그렇게 외치자, 얀이 타고 있던 글레이프니르가 조명등을 깜빡였다.

성하의 아량에 감사한다, 라는 뜻의 광신호였다.

쿵- 쿵-

이윽고 위병의 안내에 따라 켈트의 시내로 진입한 두 대의 콜로서스와 중대원들.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얀이 피식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건물들에 색이 생기기 시작했군.”

처음 교국에 도착했을 때, 얀이 느낀 교국의 인상은 무채색이었다.

마치 성직자의 금욕을 형상화한 듯이 흰 색, 그리고 회색으로 점철된 켈트 시내의 모습은 대륙에 있는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질감을 품은 도시였다.

그렇지만 다시 도착한 교국의 수도, 켈트의 풍경은 1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무채색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 건물들과 달리, 색색의 천막이 씌워진 시장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밖을 뛰노는 아이들은 성직자의 법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교국에 대한 제 복수는, 합당한 것입니까?’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들었던 질문.

끝을 모르는 교국의 심연에서 목도한 추악한 진실과 교황의 복수를 떠올린 얀은 변화된 교국의 모습을 둘러보며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 얀 소령. 눈치 챘나?

- 예. 뭔가 이상합니다.

콜로서스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 케인의 한 마디에 얀이 그렇게 답했다.

교황청에게 허가받은 대로, 얀과 케인의 콜로서스가 교국 땅을 밟았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수도를 보며 케인이 탄 에퀴테스가 의문을 표했다.

- 콜로서스가 없군. 교국은 콜로서스 배치를 공식화하지 않았나?

켈트 교국과 제국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해 낸 케인이 그렇게 물었지만, 도시 곳곳을 둘려보는 얀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전에 벨커스의 기사들이 수도에 침입한 사건 이후, 교국은 콜로서스의 배치 수를 극한으로 늘렸다는 것이 케인의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얀이 둘러본 교국의 수도 켈트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콜로서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부 경비용 콜로서스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교황의 거처를 보호하기 위해 배치하는 콜로서스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 얀이 의문을 표했다.

‘교황이 그 새 마음을 바꿔 콜로서스를 전량 파기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하던 얀이 이내 생각이 닿은 듯, 입을 열었다.

“수도 방어용으로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란 뜻인가?”

삐-!

얀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역 스캔을 마친 닐의 모니터 한 구석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특이사항 발견. 화면에 표시.]

그 말과 함께 떠오른 지도와 그곳에 찍힌 점들을 보며 얀이 표정을 구겼다.

“교황청의 콜로서스들이…. 전부 장벽으로 몰려갔잖아?”

장벽을 나타내는 지도 앞에 몰려있는 수백 개의 푸른 점들을 보며 얀이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얀이 표정을 구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기체들은…!”

장벽에 몰려있는 수백 대의 콜로서스와 동시에 닐의 모니터에 표시된 수백 개의 붉은 점들.

이전에 그와 비델의 기사들이 상대했던, 핏불 테리어라는 고대인의 전투기계였다.

- 단장님. 아무래도 상황이…. 매우 심각한 모양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챈 얀이 그렇게 말하며 다가가자 케인의 에퀴테스 역시 그에 답하듯 글레이프니르 앞으로 다가와 조종석 해치를 열어젖혔다.

“무슨 일인가? 얀 소령.”

제복 차림의 케인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렇게 묻자 그에 답하듯 조종석 해치를 연 얀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열려고 했다.

- 고대인의 전투기계가 북부 대장벽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콜로서스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 앳된 목소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얀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조종석 해치를 열어젖힌 바얀의 콜로서스와, 그곳에 동승하고 있는 교황, 켈트 2세의 모습이 보였다.

“교황 성하.”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앳된 소년.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역대 교황들의 지식과 경험을 이어받아, 그 모든 교국의 역사를 받아내고 있는 교국의 괴물.

교황 켈트 2세를 부르는 얀의 한 마디에 케인 또한 눈앞의 소년이 누구인지를 알아챘다.

“알아 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교황 성하, 케인 로렌츠입니다.”

황급히 자세를 고쳐 예를 표하는 케인이었지만, 교황은 웃는 낯으로 손을 들어 그런 케인을 만류했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케인 경! 상황이 너무 긴박해서, 모처럼 와 주신 손님을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하네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 교황의 한 마디에 케인과 얀이 자세를 풀자 끄덕이자 바얀의 콜로서스가 교국을 찾은 얀 일행을 향해 수신호했다.

“우선 기체를 세울 장소로 안내하겠습니다. 회담을 위한 장소도 마련해 놓았으니, 이쪽으로.”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는 바얀의 콜로서스를 바라보며 얀과 케인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얀 소령.”

“예. 아무래도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모양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이곳에 오길 기다린 듯한 행동에 얀이 그렇게 말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바얀이 그들을 안내한 곳은 수도 외각에 위치한 정비창이었다.

콜로서스를 세운 얀과 케인이 내려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굳은 표정의 바얀이 그들을 맞이했다.

“북부 장벽에 수백 대의 콜로서스가 배치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수정도시에서 수백이 넘는 기계군단이 나타났죠.”

애써 담담하게 현 상황을 이야기하는 켈트 2세였지만, 이내 전투의 참상을 떠올린 듯 줙을 쥔 그의 작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 교국 기사단에게 있어 이 침공은, 사실상 첫 실전이 되는군.’

벨커스의 기사들과 대치했을 때, 침음성을 흘리던 교국의 기사들을 떠올린 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콜로서스를 탄 채 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가한 교황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알 것만 같았다.

‘하여튼, 빈틈없는 꼬맹이야.’

얀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수정도시와 장벽의 전술배치도를 꺼낸 교황이 그것을 지도 위에 펼쳐보였다.

‘야, 얀 소령. 시종은 따로 안쓰는 건…. 가?’

‘표정 관리하십시오 단장님. 저도 처음엔 적응 안됐습니다.’

황제와 견줄 수 있는 권위의 종교지도자가 직접 브리핑을 준비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진 케인이었지만, 얀의 한 마디에 어떻게든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세 대의 전투기계가 장벽을 넘어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몰살 당했죠….”

“이렇게 큰 규모의 습격은 교국 건국 이래 최초입니다.”

바얀의 보충설명에 의하면 이들이 침공을 시작한 이유조차도 불명이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조사단이 다녀간 이후, 교황은 수정도시에 대한 출입을 금지시키고 교국의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추기경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군.’

금욕으로 가득했던 이정의 교국과는 다른 바람이 불고 있던 거리를 떠올린 얀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탁자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켈트 교황은 얀과 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분께서 교국을 찾으신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교황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담겨있었다.

창조주의 기술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교황의 몸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몸.

전투를 지휘하고, 사람들을 독려하는 등의 격무는 그의 어린 몸으로써는 견디기 힘든 것이겠지.

“제국의 조사 권한을 이용하러 찾아왔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군요.”

무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케인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케인 자신도, 얀 또한 자신들의 출입을 허락한 교황의 심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교황 성하.”

“….”

얀이 조용히 그를 부르자, 눈을 질끈 감은 교황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말해.’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교황의 모습은, 이전에 자신에게 복수가 합당한지를 묻는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모양으로 교황의 의문에 답하자, 교황은 결심한 듯 케인과 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교국에서는 정식으로 제국에게 협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정도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는 정보가 알려지게 된다면, 제국은 협력하는 것이 아닌, 켈트 교국을 잡아먹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이는 새로운 진출로와 보급로가 절실한 알프라이아 역시 마찬가지인 상태였기에, 이 말을 꺼내는 교황의 태도 역시 매우 조심스러웠다.

“교국의 성기사단이 틀어막고는 있지만, 이 상태를 지속시킬 수도, 병력을 수정도시 내부로 진입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지요.”

교국에서 만든 콜로서스의 성능은 잘 쳐줘야 페이지와 동급.

숙련된 기사인 비델과 제자들의 연계로도 잡을 수 없는 것이 핏불 테리어였다.

그것이 지금은 수십 대.

“장벽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군요.”

얀의 한마디에 교황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저희에게도 계획이 있습니다. 교국을 찾아주신 손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사를 하고 싶으시다면, 저희 계획에 힘을 빌려주셔야 할 것입니다.”

교황의 손짓에 그렇게 말을 꺼낸 것은 바얀이었다.

“흠.”

“계획이라 하심은?”

수정도시의 지도를 살피던 케인이 바얀을 바라보며 그렇게 되묻자, 바얀은 고개를 돌려 교황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습니다. 바얀.”

“예.”

교황의 허가가 떨어지자, 고개를 끄덕인 바얀은 눈을 빛내며 얀과 케인을 번갈아보았다.

“여러분께서는, ‘선조의 위광’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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