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10화 (110/186)

110. 원수의 무덤에서

“야, 얀 중위님….”

주변 도시에서 소식을 접한 기사들이 달려온 시각은 루브라 해방군이 총독부를 급습한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원병력과 함께 도착한 기사단이 본 것은, 주저앉아있는 글레이프니르와 그를 남겨두고 떠난 듄켈의 델타 콜로서스.

그리고 콜로서스에 탄 채 짓이겨진 베릭트 황자의 시신이었다.

“중위님. 이건…. 대체….”

“황자님이, 전사하셨다고?”

“말도 안돼…! 어떻게…!”

습격이 지나간 총독부의 상황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곳곳에 널브러진 해방군 대원들과 총독부 직원들의 시신들 속에서도, 그리고 무너진 잔해 속에서도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다.

“해방군의 습격에 맞서, 가능한 모든 보복과 방어전을 펼쳤지만, 황자님을 지키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얀은 그들에게 그레이하운드 중대가 사살한 해방군 인사의 명단을 건넸다.

“허!”

“이 자들은…!”

명단에 적힌 식민지 출신 인사들과 제국측 인사들을 확인한 이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금의 규모도 문제였지만, 자금의 출처 대부분이 중립국 잔스카르에서 비롯되었지 때문이다.

이에 제국 외교부는 잔스카르 대사를 추방하고, 남부 국경지대의 벨커스 기사단을 전진배치하제 된다.

“젠장, 제국 황자를 죽이다니. 반란군 새끼들이…!”

“그래도 이젠 자금책도 다 사라졌다며? 알아서 말라 죽을 텐데 뭐.”

제국 신문에 적힌 해방군의 현황을 전해들은 제국인 대부분은 그렇게 안도했다.

해방군에게 수십억 상당의 자금을 지원하던 자금책 천 이백 명이 사살되었고, 안그래도 재정 문제에 시달리던 해방군에게 있어 이와 같은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총독부 습격 사건에서 방어를 진두지휘하고, 끝내 87독립중대화 함께 살아남은 클라우스 황자는 죽은 베릭트의 생전 의사에 따라 식민지의 임시 총독이 되었다.

이후 이 소식은 제국 황성에 알려지게 되고, 식민지 해방군의 침공에 맞서 최후까지 용맹하게 싸운 베릭트 황자에게는 제국 최고의 영예인 제국 십자사자훈장이, 그를 보좌하여 총독부를 지키고 끝까지 살아남은 기사, 얀 베르쿠트에게는 제국 은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

“…여기까지가, 제국 중앙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이군요.”

“그래. 사건이 터진 지 보름이 지나서야 신문이 전달되는군.”

루네스에 위치한 제국 총독부 집무실.

베릭트 황자의 빈자리를 차지한 클라우스 황자는 몰려드는 식민지의 예산안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2주 째 격무에 시달려도 도저히 끝날 생각을 안하니, 미칠 노릇이군.”

습격으로 황폐해진 제국인 거주지와 총독부 복원사업, 그리고 새로이 충원되는 기사단 인원 관리 등의 문제로 제국 총독부는 역사상 유례없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장례식 말씀하시는 거라면, 부중대장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얀은 집무실을 나와 총독부 중앙 광장으로 나왔다.

클라우스를 포함한 총독부의 모든 행정관들이 머리를 싸매며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하던 때, 얀이 바라보고 있는 총독부 건물 중앙 광장에서는 베릭트 황자를 위한 추모식이 한창이었다.

“식민지의 자비로운 통치자이자, 모든 식민지인들의 아버지셨던 베릭트 황자님의 죽음을, 그리고 함께 싸웠던 용감한 기사들을 기리며….”

베릭트 황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의 장례를 치루는 것은 87독립중대의 몫이었다.

투타타탕-!

일곱 명의 대원들이 세 발씩.

총 스물 한 발의 예포가 장례식장을 울리며 이곳에 참석한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형벌부대는….”

“쉿! 기사님들에게 들리면 경을 칠겁니다.”

“맞아요. 생전에도 같이 어울리셨다고 하니, 다른 부대보다는 낫겠지요.”

형벌부대가 황자의 장례를 치른다는 사실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마지막까지 베릭트의 곁에서 자리를 지킨 얀 베르쿠트의 부대라는 점 덕분에 연출된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아예 나가는 줄 알았더니, 이걸 보고 있었나?”

뒤에서 들려온 클라우스 황자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인 얀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젠 제가 근처에 와도 괜찮으시군요. 1주일 전에는 근처에만 가도 죽일 것처럼 하시더니.”

“죽일 것처럼 안했네만.”

“군대 짬이 몇 년인데, 눈만 봐도 다 보입니다 황자님.”

마치 시답잖은 농담을 하듯 평이하게 이어진 대화였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속뜻은 훨씬 어두운 것이었다.

“아무리 친형이 아니라지만, 자넨 내 형제를 죽인 걸세. 얀 중위.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자네와 있을 수 있는 건….”

베릭트 자신이 죽음을 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뒷말을 흐리는 클라우스를 바라보며 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저도 제 복수가, 마냥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간 베릭트 황자님처럼, 저도 제 나름의 대가를 치를 대가 오겠죠.”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복수를…?”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해야만 할 일이었으니까요.”

천천히 들려온 얀의 한마디에 클라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형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르셔야 했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묘지에 안치되는 베릭트의 관을 바라보는 클라우스의 눈에는 착잡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음?”

이윽고 시간이 지나 베릭트 황자의 시신이 안치되자 꽃을 바치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이어졌다.

그런 행렬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역시 제국인들이었지만, 그 중 특이한 무리를 발견한 클라우스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아이들인가? 빈민가의….”

교회의 수도사 옷을 입은 갈색 피부의 어린아이들.

식민지 출신 분명한 외관임에도 베릭트 황자의 묘소에 몰려든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그의 묘비를 향해 꽃을 올려다놓고 있었다.

“식민지의 아이들이 어째서…?”

“아, 저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클라우스의 의문에 답한 것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린이었다.

“베릭트 황자님이 루네스 외곽에 설치하셨던 고아원 아이들입니다.”

“고아원?”

“예. 직접 방문하시기도 하고, 저 아이들이 자라날 때 까지 쓸 수 있는 재화를 기부도 하셨구요.”

“그런가?”

비스크 대학살 이후, 베릭트가 펼친 미련하다시피 한 유화정책은 되려 식민지인의 반발만을 불러 모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죄책감을 덜기 위한 부질없는 몸부림이라고 해도, 그의 위선에 구원받은 이들은 어느 형태로든 존재하는 법이었다.

“단지 제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죠.”

“…말하게.”

얀의 한 마디에 클라우스가 호응하자 고개를 주억거린 얀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입니다. 선행으로 죄를 덮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선의를 더럽힐 수도 없죠.”

“동의하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은 ,어떤 방향으로든 언젠가 그 대가가 찾아오기 마련이지.”

베릭트의 묘지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아이들.

그 작은 손에는 창조주의 상징물이 소중한 보물인 양 꼬옥 쥐어져 있었다.

“베릭트 황자님의 죽음이 당신 과오에 대한 결과였다면, 저 아이들은 황자님의 선행에 대한 결과겠죠. 저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얀은 그의 말을 듣던 클라우스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지 쓰십니까? 처음 보는 인장입니다만.”

“아, 이거 말인가?”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가 오른손을 들어올 리가 그곳에 들린 편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색으로 봉인하는 바일사르의 편지와는 달리, 검은 밀랍으로 이루어진 편지.

발신지는….

“록펠트…. 옛 루브라 왕국의 수도라고 들었습니다.”

“오, 자네 그 사이에 상식이 좀 늘었군 그래?”

‘매일 밤마다 상식공부랍시고 들들 볶아대는 여자 덕분에 말이죠.’

그렇게 생각한 얀이었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은 채 클라우스를 향해 질문을 계속했다.

“식민지배가 시작된 이후 지금에 와서는…. 구 왕족밖에는 살지 않는 땅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네. 그리고 자네가 짐작하다시피, 이 편지는 그 구 왕족들에게 보내는 것이고 말이야.”

식민지의 총독이, 옛 왕족에게 편지라.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뭐, 정치적 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 거진 10년 만의 연락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얀은 이전에 가르드 2황자가 클라우스를 어떻게 불렀는지를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모친이신 8황후께서 식민지 출신이셨군요.”

“베릭트 형님과 같이 말이지.”

그렇게 말한 클라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편지를 흔들어보였다.

“옛 왕국의 인맥까지 활용하지 않으면 입지를 다질 수가 없는 임시총독일세.”

식민지라는 완전히 낮선 땅에서 아무런 기반 없이 시작하는 자신에 대한 자학이었지만, 얀은 대충 그것을 웃어넘기며 총독부 청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위, 어디 갈 생각인가?”

밖으로 나가는 얀을 향해 클라우스가 그렇게 묻자 잠시 그를 돌아본 얀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곧 야시장이 열리지 않습니까? 동업자는 지금쯤 뭐 하고 있나, 궁금해서요.”

“야시장?”

“아, 그리고.”

클라우스의 되물음에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운을 뗀 얀이 뒤를 돌아 자신의 목에 박힌 계급장을 보여주었다.

“중위는 단델이고, 이제 저 소령이랍니다. 아이린은 정식 기사.”

점점 갈수록 말이 짧아지는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며 클라우스는 황망한 표정으로 거기에 답했다.

“알겠네. 다음부턴 주의하지. 얀 소령.”

***

“먼저 오자고 한 거. 의외.”

“그런가?”

두 달이 넘어서 다시 찾은 야시장이었지만, 꾸밈없는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는 변함없이 얀과 렌을 반기고 있었다.

“뭐야, 이번에는 또 무슨 난리를 벌일 생각으로 온 거야?”

“이제 좀 가라 제발…. 네가 오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처음 야시장에 왔을 때, 얀에게 시비를 걸던 해방군의 인원들이었지만, 공동작업을 거친 이후 그들이 얀과 그 부대원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천 이백 명의 벨커스 종자를 잡아내는 와중에 사상자는 단 두 명.

입이 떡 벌어지는 전과였다.

“놔두게. 적어도 오늘은 그 칙칙한 군복 차림은 아니지 않나.”

낮은 중저음과 함께 사람들 속에서 듄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기휴가라고 너무 풀어지는 것 같은데, 너네는 애들 관리 안하냐?”

“자네처럼 관리한다면 한 달도 안가서 전부 탈영할걸세.”

얀의 비꼼을 받아친 듄켈이 얀과 마주앉자 분위기를 알아챈 다른 대원들이 자리를 비켰다.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다시 우릴 찾아온 이유가 뭔가?”

여느 때와 같이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야시장.

소음에 묻혀 누가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게 될 때 즈음, 표정을 굳힌 듄켈을 향해 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으로 확실해졌지. 식민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 또한 벨커스라는 사실.”

그렇게 말하자 듄켈 또한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번 동업이 성공했다 하더라고, 언제 다시 새로운 벨커스의 수족이 들어올지 몰라.”

“그런 의미에서, 제안을 하나 하지.”

그렇게 말한 얀은 듄켈을 향해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벨커스와 내가 정면으로 맞붙을 때 단 한번. 우릴 지원할 수 있겠나?”

그 말을 들은 듄켈은 그 자리에서 팔짱을 끼웠다.

“가진 패는?”

“로렌츠. 현 식민지 총독. 그리고 나.”

짧은 답변.

그렇지만 그것을 들은 듄켈을 흰 이를 드러내며 얀의 제안에 답했다.

“좋아. 받지. 연락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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