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게릴라 vs 게릴라.
“다섯 명 사살했습니다. 적 보초들도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었어요.”
새벽.
정탐조로 다녀온 두 명의 중대원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들의 몸을 가리고 있던 위장복을 풀어헤쳤다.
갖가지 수풀과 낙엽이 얽혀있는 위장복은 수풀 속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은신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고했어. 요새화된 적을 무리하게 공격하는 것 보다는 이런 식으로 소모시키는 게 효율적이지.”
입맛을 다시는 중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한 단델은 다음 당번자에게 위장복과 저격총을 건네라는 말을 남긴 뒤 작전실 한가운데에 있는 얀에게 걸어갔다.
“저희가 작전에 투입 된지도 벌써 보름째군요.”
“우리도 듄켈 녀석도, 피로도는 극에 달했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얀은 퀭한 눈으로 급하게 준비된 샌드위치를 씹어대고 있었다.
“레일 캐논 잔탄 열 발. 적 콜로서스는 이제 듄켈 하나.”
“확인했습니다.”
렌의 보충설명에 그렇게 답한 단델은 얀과 등을 맞대고 앉아있는 아이린을 보았다.
“푸우….”
“얜 아예 잠들었네요.”
얀의 등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아이린을 보며 단델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계속해서 전투에 참가하는 동안 24시간 경계태세였지.”
그렇게 말한 얀이 어깨를 흔들어 아이린을 깨웠다.
“어엇?! 저, 잠들었나요…?”
이제 막 콜로서스에 타기 시작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린의 성장은 빨랐다.
첫 주에 여섯 시간 기동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가동 시간은 점점 늘어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장장 열 두 시간을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가서 체력 관리해. 다음 전투까지 버티려면 네 콜로서스가 필요하니까.”
“네, 네….”
그렇지만 콜로서스를 가동할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체력 소모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기에, 단델의 말을 들은 아이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벽 쪽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경계조와 교란조, 정찰조 임무를 번갈아 수행한 중대원들이 녹초가 된 몸을 뉘인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야…. 다음 경계조 어딨어.”
“저기. 죽은 거 같은데.”
“죽어도 깨워. 보초는 자는 거 아니야.”
“살려줘어어어~”
피로감에 제정신이 아닌 병사를 보며 단델이 쓴웃음을 지었다.
리벨을 점거한 해방군들은 그곳을 관리하던 광산주와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은 채 성 안에서 농성 중이었다.
얀과 87독립중대가 광산 근처에 주둔한 지 보름, 24시간 동안 계속되는 저격반의 교란작전 덕에 해방군의 전투피로는 극에 달해있었다.
“덕분에 적의 의도는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식민지 중앙부 보급선도 안정됐고, 곳곳의 기사단도 정상적으로 배치됐어요.”
“덕분에 우린 죽을 맛인데 밀이지.”
리벨을 중심으로 곳곳으로 퍼진 해방군들은 제국군 거점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친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광산의 진입로를 손에 넣은 그레이하운드 중대가 온갖 방법으로 광산 밖으로 나가려는 해방군들을 저지하며 광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틀어막고 있었다.
듄켈을 포함해 다섯 기에 달하던 콜로서스 역시 얀의 침투로 인해 계속해서 그 수가 줄어들어, 이젠 듄켈의 기체 단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얀과 그레이하운드 중대는 확실하게 듄켈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슬슬 끝내지. 아이린이 회복하는 대로 침투플랜 개시. 듄켈을 잡는다.”
아이린을 잠시 바라본 얀이 그렇게 말하자 벽에 기대 몸을 추스르던 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대장님. 정찰조에서 보고입니다.”
침투작전을 준비중인 얀에게 다가온 단델이 그에게 귓속말하자 얀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델타 콜로서스?”
“예. 장갑구조 역시 알프라이아에서 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황제가 얀에게 준 정보대로, 해방군은 델타 콜로서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6호 콜로서스의 세 배 이상의 마력을 소모하는 기형적인 기체. 여태까지 꺼내지 않던 것을 지금 꺼냈다는 건….”
글레이프니르로 걸어가며 단델의 보고를 곱씹은 얀의 눈이 깊어졌다.
보름 동안 이뤄진 포위전에서 얀의 출격횟수는 스물한 번.
그 중 듄켈과 마주한 것은 열 번이었다.
듄켈이 지휘하는 다섯 대의 콜로서스는 낮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보름 동안 글레이프니르에게서 리벨 광산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지만, 그것도 여기서 끝.
델타 콜로서스를 꺼내들었다는 것은 듄켈 또한 뒤가 없다는 뜻이었다.
“좋든 싫든, 이번 전투에서 끝을 봐야하는군.”
그렇게 혼잣말한 얀이 글레이프니르에 몸을 싣자 익숙한 기계음이 얀을 맞이했다.
[굿 모닝. 파일럿.]
“웬일로 아침에 그 인사를 다 받아보는군.”
[전원 가동시간 289시간 경과. 본 인공지능의 농담회로에 이상을 감지. 빠른 시일 내에 휴면 상태로의 전환을 요구.]
“땅 속에서 수천 년은 지낸 놈이 이 정도로 엄살이냐?”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닐의 볼멘소리를 들은 얀이 그렇게 답하자 조종석이 빨갛게 점등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AI 모듈의 가동은 기체 수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2563년, 서울 과학진흥원의 연구 논문을 근거로 제시. 파일럿의 행위는 논문에 문구를 인용하자면 ‘폭력적 혹사’로 정의하며….]
“잘 알았다. 너도 제 정신은 아니란 말이지.”
생전 처음 보는 글자로 이루어진 문서를 들이미는 닐을 대충 진정시킨 뒤 목덜미에 이어진 어댑터를 통해 글레이프니르에 신체를 연결했다.
우우웅-!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뜬 얀은 자신의 시야가 글레이프니르의 그것으로 바뀐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기체를 일으켰다.
[동조율 안정. 글레이프니르, 시스템 정상 작동중.]
퉁-! 퉁-!
작전 시작을 알리는 듯이 장갑판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글레이프니르가 몸을 낮췄다.
곳곳에 세워진 망루나 방어초소에서 뒤늦게 글레이프니르를 감지한 듯 보였지만, 너무 늦었다.
[출력 상승.]
뿌드드득!
인공섬유로 이루어진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포탄처럼 튀어 오른 글레이프니르가 일직선으로 해방군 거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쾅-!
글레이프니르가 달려가는 궤적에 존재하는 집, 헛간, 민가, 성벽.
모든 엄폐물과 지형지물이 꿰뚫리며 목표지점까지의 직선루트가 만들어졌다.
“지금이다, 돌입!”
선두에 선 단델의 지휘에 따라 스무 명의 침투도 대원들이 광산 곳곳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감시초소와 함께 바리게이트가 무너지자 혼비백산한 해방군들이 달려왔지만, 역부족이었다.
타타탕-!
투타타탕-!
“아악?!”
“이런 제길, 어느 새 여기까지!”
“막아라! 다른 구역에 있는 놈들도…!”
이미 87중대의 저격반에 시달린 지 보름.
하루에 다섯 명에서 열 명이 꾸준히 죽어나간다는 공포와 피로감에 절어있던 해방군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스러져갔다.
- 정말 무식한 전술을 쓰는군. 얀 베르쿠트.
콜로서스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글레이프니르가 고개를 들었다.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상반신, 진녹색으로 도색된 이질적인 형태. 거기에 외부로 돌출된 세 개의 마력로까지.
듄켈이 타고 있는 델타 콜로서스였다.
- 설마 50 명도 안 되는 인원이 300명의 병사를 상대로 포위전을, 그것도 지구전을 걸어올 줄이야….
- 우리 애들이 체력 하나는 좋아서.
질렸다는 듯이 말하는 듄켈의 감탄을 받아낸 얀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레일 캐논을 발사했다.
투콰앙-!
듄켈의 기체가 굉음과 함께 쏘아져나간 레일 캐논을 피한 것을 확인한 얀이 곧바로 차탄을 쏘아냈다.
투콰앙-!
그렇지만 그것을 알아챈 듄켈은 곧바로 몸을 틀어 차탄을 피해낸 뒤 글레이프니르에게로 달려들었다.
‘역시, 대응법을 연구해왔군…!’
듄켈과 싸우는 것은 이걸로 열한 번째.
보름에 걸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전투 스타일이나 이동 동선, 세세한 잔버릇까지 파악한 상태였다.
카앙-!
포신을 폐쇄한 글레이프니르의 레일 캐논이 휘둘러진 델타 콜로서스의 검격을 막아냈다.
- 이렇게 되면 포격은 사용할 수 없겠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듄켈은 곧바로 기체의 다리를 안쪽으로 들이며 글레이프니르의 관절부를 옭아맸다.
- 아이린에게 했던 것과 같은 수법을!
- 지난 전투에선 출력이 모자라 실패했지만, 델타 콜로서스라면 어떨까?
유연한 인간의 관절과는 달리, 콜로서스의 관절은 목각인형처럼 뻑뻑하다.
유격을 파악한 뒤, 거기에 관절을 얽어 움직임을 막는 전술.
보름 동안 글레이프니르의 관절구조를 전부 파악한 듄켈만이 가능한 묘기였다.
우득! 우드득!
콜로서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력을 올리는 글레이프니르에 맞춰 델타 콜로서스의 마력로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 해방군 전원에게 알린다! 전원 퇴각! 21번 은신처로 결집하여 최고 선임자의 지시를 따른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듄켈의 목소리와 함께 델타 콜로서스가 글레이프니르를 더욱 옥죄었다.
- 얀, 미안하지만 이대로 조금만 더 어울려주게. 동포들이 퇴각할 때 까지…!
- 웃기는 소리. 너랑 붙어먹은 게 몇 번인데 이걸 예상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얀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 닐!
[동조율 고정 해제. 전 장갑판 개방.]
파캉! 파캉!
글레이프니르를 감싼 장갑판들이 하나하나 열리며 내부에 들어간 기계장치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장갑판이 열린 틈새로 가동범위를 확보한 글레이프니르가 서서히 델타 콜로서스의 관절을 붙잡아 뜯어내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맨손으로 콜로서스의 골격을 찢어발기는 출력.
압도적인 힘에 헛웃음지은 듄켈의 기체가 뒷걸음치고, 글레이프니르는 뽑아낸 델타 콜로서스의 팔을 집어던진 뒤.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 이제 끝이다. 듄켈.
- 하,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오는 성능이군. 자네….
장갑판을 모두 열어젖힌 귀기어린 모습으로 다가오는 글레이프니르를 본 듄켈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헌데, 임무를 착각하지 않았나?
- 무슨 말이야?
- 뒤를 보게. 인질이 나오지 않았나.
그 말을 들은 얀의 시야 한 구석에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이 인질을 데리고 광산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철컹-!
그리고 그 순간 들린 쇳소리를 들은 얀은 이를 악문 채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 허, 이 개새끼가 인질을 미끼로…!
- 항만지구 민간인을 미끼로 쓴 보답이라고 해 두지.
그렇게 말한 듄켈의 콜로서스가 손에 내장된 인마살상용 기관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젠장, 닐!”
[장갑판 폐쇄. 요인 경호 모드로….]
틱. 틱.
다급한 상황에 몸을 낮춘 글레이프니르에게 들려온 것은 공이를 때리는 소리였다.
- 듄켈 너 이새끼….
- 공포탄에 대한 보답일세. 얀 베르쿠트. 또 보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듄켈은 해방군의 남은 인원들과 함께 레빌 광산에서 사라졌다.
***
“후우….”
리벨에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중앙청으로 복귀하는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은 열차 전용칸에 몸을 파묻은 뒤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베르쿠트 경! 그대가 아니었다면 전 야만스러운 해방군 놈들에게…!”
“아, 예. 그러십니까….”
자기 또래의 청년을 만났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쁜지, 식민지의 젊은 광산주인 시귄 리벨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차라리 기절시킬까….’
당장이라도 귀를 막던가, 눈앞에 있는 시귄의 입에 총구를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얀은 열차 뒷칸에 적재된 글레이프니르를 돌아보았다.
‘닐. 기체 상태는?’
[가동률 71% 유지. 작전행동은 가능한 범주이나, 빠른 시일 내에 정비가 필요함.]
‘앞으로 한 달 간은 정비 못할 텐데.’
[재차 강조함. 빠른, 시일, 내에. 정비가 필요함.]
말이 좋아 71%지, 보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작전, 특히 마지막 전투로 인해 글레이프니르는 온 몸의 관절부가 삐걱거리는 상황이었다.
‘광산은 탈환했고, 해방군도 몰아냈지만 정작 중요한 듄켈은 놓쳤으니….’
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얀과 대원들을 실은 열차는 루네스 도심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