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루네스의 사자.(2)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건 처음이군. 해방군 총수, 듄켈일세.”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권하는 듄켈이었지만 얀은 얼굴을 찡그리며 내밀어진 손을 쳐냈다.
“내 이름을 알고 있나?”
“제국 신문에 나오더군. 은기사 케인과 함께 중부전선을 박살낸 기사. 설마 이 루브라에 행차하실 줄은 몰랐지만 말일세.”
경계심을 끌어올린 얀을 향해 능청스럽게 대답한 듄켈은 즐겁다는 듯이 야시장에서 벌어지는 광대들의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닐. 지원할 수 있나?’
[불가. 비상체제로 가동한다 해도, 본 기체가 도달하기 이전에 가동이 중지.]
‘쯧, 어쩔 수 없군.’
닐에게 조종을 맡겨 글레이프니르를 가져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들리지 않게 혀를 찬 얀은 듄켈의 주변에 포진한 해방군들을 둘러보았다.
‘무기를 숨긴 녀석은 총 열 일곱. 건물 위에 저격수가 하나….’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에 얀은 이를 악물었다.
열일곱, 렌과 연계한다면 돌파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문제는 눈앞에 있는 듄켈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얀과 렌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던 모습을 떠올린 얀은 최적의 퇴로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만 두게. 난 자네와 싸울 생각 없어.”
적의 배치, 무장을 살피며 행동을 계산하던 얀은 갑작스레 들려온 듄켈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탈을 쓴 광대들의 공연을 바라보는 듄켈은 얀과 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하하하하! 이번 공연도 아주 걸작이구만 그래!”
마치 어디에나 있을법한 주정뱅이와도 같은 모습은 그가 해방군의 중추라는 사실을 한 순간 잊게 할 정도였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아니. 이대로 자네들을 묶어두면 언젠가는 지원이 오겠지.”
복귀시간을 초과할 시, 완전무장한 채 야시장으로 진입할 것.
자신이 87독립중대원들에게 지시해놓은 사항이었다.
“그걸 알고 있다면 번거로운 짓 하지 말고 죽이는 게 편할 텐데?”
정말로 밥이나 먹자고 자신을 불러 세운 것을 아닐 것이었다.
태평한 듄켈의 태도에 짜증을 느낀 얀이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그것을 듣는 듄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벌써 죽였겠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죽일 생각이 없다면, 날 찾은 이유가 뭔데.”
“그냥 인사나 하려고.”
웃기는 소리.
웃기지도 않다는 듯 입가를 비튼 얀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자신을 대할 때와는 정 반대의 살가운 목소리와 함께 종업원이 나타나 좌판 위에 음식들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이야~ 멜리네, 이게 다 뭐야? 몇 접시 더 올리면 상다리가 부러지겠는데?”
“대장님이 찾아왔다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준비해드려야 한 대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포장마차 안쪽에서 털이 수북한 팔이 나타나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가 오늘 장사할 걸 다 먹어버렸구만 그래?”
“많이 먹고, 우리 루브라 독립 좀 시켜달래요. 이젠 대장님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하하하! 그래야지! 그러고 말고!”
화기애애한 대화 끝에 돌아간 종업원이 내놓은 음식을 바라보는 듄켈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자, 자네도 들게! 이번엔 특별히 내가 대접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듄켈이 얀에게 권한 것은 접시에 수북이 쌓인 고기들이었다.
‘이런 식사를 얼마 전 해봤던 기억이 나는데.’
고기에 고기. 그리고 또 고기.
온갖 향신료로 들어찬 고기요리의 향연을 바라보는 얀은 성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는 베릭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입에 맞지 않는 건가? 모처럼 주인장이 솜씨를 부린 건데, 통 먹을 생각을 안하는군?”
“해방군 총수에게 준 음식을 제국군이 먹는다고 하면 그쪽 이전에 주인한테 살해당할 판이야. 그리고….”
접시에 담긴 고깃덩이들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은 듄켈을 바라보며 얀이 말을 이었다.
“참 누구와 닮았다 싶어서 말이지.”
배신자.
눈앞에 있는 듄켈은 베릭트 황자를 마주했을 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유의미한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것을 받은 듄켈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베릭트 황자 말이지? 듣자하니 아직도 자기가 루브라인인 것 마냥 먹고 다니나보군.”
태연을 가장한 한마디.
그렇지만 그 한 마디에는 숨길 수 없는 한 줄기 불쾌감이 섞여있었다.
듄켈 또한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짧게 혀를 차곤 얀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젊은 친구가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남이사.”
그렇게 되받아친 얀은 어디선가 렌이 받아온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상품가치가 있는 원두는 전부 제국으로 보내졌기에 부산물로 만든 가짜 커피에 가까웠지만, 의외로 맛은 훌륭했다.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해서, 루브라 사람들이 제국의 노예가 된 것 만은 아니지.”
눈앞에 놓인 요리, 활기차게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춤추는 탈.
제국의 압제와 수탈 속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은 루브라의 일상을 바라보며 해방군 총수인 듄켈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지금은 루네스 한 곳 뿐이지만, 해방군이 규모를 갖추게 된다면 다른 도시도 해방할 수 있네. 비스크와 같은 도시도….”
“비스크?”
항만지구에 몰려든 군중들이 외치던 구호를 떠올린 얀이 물었다.
‘비스크를 기억하라.’
“제국군은 그 사건을 묻기 급급하겠지. 제국 최대의 기사단이 그런 짓을 벌였으니.”
“민간인 학살을 말하는 건가?”
얀이 그렇게 되묻자 듄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정보력이면 진작에 알았을 텐데? 책임자는 베릭트 황자였지만, 실질적인 학살의 주도자는 벨커스 가문이라는 걸.”
“확실히, 민간인 학살에 가장 주도적이었던 것은 벨커스의 기사단이었지.”
식민지의 마력 보유자들은 높은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조종기술을 선보인다.
마력만을 갖췄을 뿐, 운용능력은 현저히 모자란 벨커스의 기사들이 그렇게 빠른 기간 내에 식민지의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싸우는 것은 기사와 병사지만,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민간인.
해방군의 거점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해방군을 지원하는 농민들이라는 판단이었다.
“식민지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명분하에 해방군에 가담한 이들의 가족들은 전부 연좌제를 부여받았지.”
“해방군의 콜로서스를 이길 수 없으니, 보급의 원천인 농민을 살해해 굶겨죽이겠다.”
얀이 그렇게 평하자 듄켈이 헛웃음 지었다.
반란 진압이라는 성과 하나만을 위해 감행한 최악의 한 수였다.
그로 인해 비탄에 빠진 식민지인들은 다시 반란을 꿈꾸고, 제국은 그런 식민지인을 제어하기 위해 기사를 파견하고, 같은 루브라인 끼리 차등을 만들어 분열시키는 등 끝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루브라를 이 꼴로 만든 벨커스가 뒤에서 해방군을 지원한다라….’
실소가 절로 나왔다.
듄켈 또한 그 냄새를 맡고 연락책이었던 저크를 쫒은 것이겠지.
‘해방군이 규모를 갖추기 전까지는, 싫어도 벨커스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을….’
“벨커스는 해방군의 숙적이다. 언젠가는 부숴버려야지. 그렇지만 베릭트,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그 자다.”
“벨커스 기사단의 투입을 승인한 죄인가?”
얀이 그렇게 말하자 듄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 얼굴을 봐서 특별히 알려주지.”
이후 들려온 듄켈의 한 마디에 의해, 얀은 하고 있던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베릭트 로스 바일사르. 그는 루브라의 총독이 되기 전, 비스크의 영주로써 우리와 함께 루브라의 해방을 꿈꾸던 자였네.”
그 말을 들은 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땡- 땡- 땡-!
얀이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 입을 여는 순간, 시장 한 구석에서 야시장의 폐장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즐거운 시간은 어찌 이리도 빨리 끝나는지.”
“자자, 어서 치우고 돌아가자구! 또 일 해야지!”
“젠장. 이번에야말로 그 주인 놈의 면상에….”
“아직도 그 얘기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파도는 순식간에 얀과 듄켈을 뒤덮었다.
[열원 중첩. 마력파장에 의해 신원 특정 불가.]
“제길. 미치겠군.”
인파에 휩쓸린 얀이 뒤늦게 닐의 인공지능을 사용해 그의 흔적을 쫓았지만, 듄켈은 이미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숨긴 뒤였다.
“얀.”
“알아. 돌아가야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자, 활기찬 야시장은 순식간에 황량한 공터로 변했다.
“벨커스 기사단을 끌어들여 자신의 영지민을 학살하게 방조한 영주라…. 생긴 것과는 다르게 노는군. 베릭트 황자.”
그렇게 중얼거린 얀은 판잣집과 주택가를 넘어 높이 솟아있는 제국 총독부 중앙청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적막이었다.
***
“대장님.”
“음? 무슨 일인가?”
루네스 외부, 루브라 남동부 평원.
미리 세워져있던 콜로서스 에 짐을 싣고 있는 듀켈은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얀 베르쿠트, 그 자는….”
얀과 렌을 살려 보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해방군 소속의 콜로서스 조종사가 듄켈에게 물었다.
“보병부대만으로 콜로서스를 잡아낸 위험인물이지. 잘 알고 있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물으며 말끝을 흐리는 대원을 본 듄켈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저 자의 어깨에 새겨진 낙인. 뭔지 알고 있지 않은가?”
“형벌부대의 낙인 아닙니까? 그게 어째서….”
그렇게 말하던 해방군 대원 또한 뒤늦게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국군 형벌부대에는 사연 없는 이들이 없지. 제국에 충성하는 이 또한 없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듄켈이 입가를 비틀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낸, 득의한 미소였다.
“물건은 언제 도착한다지?”
“이미 다음 거점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렇지만 가동시간이….”
“걱정 말게. 이래봬도 루브라 최고의 기사가 아닌가. 훌륭하게 다뤄 내야지.”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대원의 어깨를 두드린 듄켈은 뒤를 돌아 자신을 따르는 대원들을 보았다.
루네스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빠져나와, 이 평야에 집결한 이백 명의 대원들.
무장을 갖춘 다섯 대의 콜로서스와 이백 명의 기병대가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레빌! 동포를 핍박하는 제국의 개를 처단하고, 그곳의 황금을 차지하러 간다!”
우렁찬 듄켈의 목소리. 그와 함께 드넓은 평원을 가득 메울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가자아아!”
“루브라를 위하여-!”
그리고 일주일 후, 루브라- 바일사르 최대의 금광인 리벨 광산은 해방군에게 점령되었다.
이에 바일사르 제국 총독부는 광산 탈환 및 그곳에 구금된 광산주를 구출하기 위해 87독립중대, 그레이하운드를 파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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