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루브라-바일사르.
베릭트 로스 바일사르.
제국 6황자임과 동시에 황도 제 2군 사령관.
제국 국토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식민지, 루브라 바일사르를 관리하는 변방의 왕이자, 황족 제일의 기사이기도 하다.
“신형이라고 해서 타봤는데, 로렌츠에서 물건을 만들어냈군? 훌륭한 물건이야!”
“그러…. 십니까.”
단순히 높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해서 부리나케 막사를 청소하느니, 부대를 사열하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에게 잘 보일 이유로, 필요도 없는 부대였고, 무엇보다도 얀 자신이 2황자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독종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이 어색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아무나 저 인간 아가리 좀 틀어막았으면….’
말이 끊이지 않는다.
콜로서스에 내려 첫 인사를 할 때부터, 훈련을 참관하고, 자신과 저녁식사(혼자 먹겠다는 걸 억지로 끼어들었다.)를 하는 지금까지도, 이 황자는 뭐가 그리 기쁜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혼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 요청을 드렸더니 자네를 쓰라고 답신이 오질 않나? 내 궁금해서 직접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네!”
“아 예에….”
졸지에 비쿠스 영지의 주방장이 되어버린 6황자의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 준 요리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베릭트의 말을 받으며 얀은 눈앞에 있는 호화로운 음식을 바라보았다.
‘고기에 고기에 고기에 또 고기…. 성격 나오는구만.’
모든 건더기를 돼지고기로 채워 넣은 듯한 매운 수프. 소 안심 통구이, 양 다리, 사슴 고기 등 끝없는 고기의 향연이었다.
세상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들고 온 듯한 식탁이었지만, 계속되는 베릭트의 말을 받는 통에 얀의 접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자네, 입이 짧은 편이구만? 아직도 다 못 먹었나?”
당신 때문이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관뒀다.
“…평소에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라서요.”
“흐하하! 전과와 악명으로는 무슨 삼두육비의 괴물일 것 알았는데, 의외로 점잖은 친구였군?”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겨우 생긴 여유에 스프와 고기조각을 입에 대충 밀어 넣었다.
자극적인 향신료 향과 함께 진한 육향이 올라오는 맛.
‘짜. 전식도 이거보단 밍밍하겠는데.’
고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가 맛봤다면 감탄할 솜씨였지만, 그 진미를 눈앞에 둔 얀은 별 흥미가 없었다.
“자. 그럼 배도 어느 정도 채웠겠다, 일 얘기를 좀 하지.”
식사를 마친 뒤 나온 커피를 단번에 들이킨 베릭트 황자가 얀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펄펄 끓는 물에 탄 커피를 무슨 찬물마냥 들이키는 모습을 본 얀은 점점 더 표정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졌다.
“자네, 식민지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벨커스가 진압하고, 로렌츠가 관리했다 들었습니다. 그 외에는 모릅니다.”
단편적인 정보. 그것이 얀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자네 말대로일세. 벨커스가 힘으로 모든 저항세력을 부숴버린 뒤, 로렌츠가 주둔하여 치안을 관리했지.”
그렇지만 반란은 일어났다.
심지어 1차 루브라 해방전쟁 때는 없던 콜로서스마저 동원된 채로.
“이상한 일이지. 군사 거점도, 군수공장도 모두 파괴되었을 터인데, 해방군은 마치 정규군처럼 훈련받고, 장비 수준은 점점 더 올라가니 말일세.”
그렇게 말한 베릭트 황자는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탁! 소리와 함께 내밀어진 것은 권총.
재질도, 표면의 마감 상태도 제국의 군수품에 뒤지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전투 중 들어온 노획품일세. 해방군 장교가 쓰던 물건이지.”
음각으로 새겨진 옛 루브라의 문양을 바라보는 사이, 베릭트는 품속에서 담뱃종이를 건네 얀에게 내밀었다.
“이건….”
“바일사르 해역에서 비슷한 것을 봤겠지?”
크로키와 같이 단시간에 그려낸 것이 아닌 세세한 곳까지 묘사가 되어있는 그림.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백상어….”
“역시 알아보는군.”
조용히 기억 속의 그 이름을 되뇐 얀의 왼쪽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닐. 분석해봐.’
[형상 대조. 전투 기록에 기재된 잠수정 형상 확인. 그림자료와 크기 대조결과, 내부 무장창이 제거. 수송능력을 위해 개조된 것으로 유추됨.]
바일사르 해역의 감시를 피해 식민지 항구에 나타난 잔스카르의 잠수함이었다.
만일 해방군이 사용하는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것이 저것이라면….
“식민지의 반란에는 잔스카르가 개입되어 있군요.”
“의혹일 뿐이지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인 베릭트 황자를 바라보며 얀이 입을 열었다.
“해방군과 잔스카르 사이에 직접적인 거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곡창지대, 광산, 유적지 등은….”
“모조리 제국 소유이지. 땅 한줌 남기지 않고.”
그 한마디에 얀이 입을 다물었다.
제국 제 1 식민지 루브라-바일사르.
카르디어스 황제 즉위 이전, 제국의 초기형 콜로서스로 이루어진 전격전에 의해 정복된 루브라는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제국의 식민지로써 착취당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저들이 군대를 유지할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략, 전술, 의지.
전쟁을 이기기 위해 요구하는 덕목이지만, 이것은 전쟁을 수행하게 하기 위한 요소일 뿐, 전쟁을 이기는 요소는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돈.
자원의 양과 그것을 운송하는 유통, 보급의 차이로 결정되는 것이 전쟁의 승패였다.
“맞네. 산업기반을 전부 제국에게 빼앗긴 지 백 년. 독립을 꾀하는 이들도, 이를 지원하는 이들도 전부 말라죽고도 남을 세월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규모가 커진다면, 답은 하나지.”
“외부에서 반란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잔스카르입니까?”
“가장 가능성이 높지. 전쟁이 제국의 승리로 끝난다면 전쟁특수로 그들이 누리는 호황이 사라질 테니.”
넌지시 얀이 물었지만 베릭트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그쪽으로 가닥을 잡고 수사했네. 그렇지만 알아낸 것은 그들이 물자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품목, 규모 뿐. 가장 중요한 자금원은 오리무중이야.”
베릭트가 그렇게 말하자 얀 또한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잔스카르가 아니라면 누가…?”
“모르지. 잔스카르는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언젠간 결과가 나오겠지만…. 계속해서 헛다리를 짚는 느낌이야.”
그래서 자신들을 불렀다는 말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얀을 바라보며 웃음지은 베릭트가 얀과시선을 마주했다.
“87독립중대는 출신 성분뿐만 아니라, 온갖 인종이 혼합된 혼성부대이지?”
“맞습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종자들 중 능력 하나만을 보고 선발한 이들이다.
가문, 인종, 출신….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그들 또한 아무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는 인간은 이 부대에 오기 전에 시체로 변했을 테니.
“그렇기에 자네들에게 부탁하고 싶네. 루브라-바일사르의 수도, 항구도시 루네스에 진입해서 그들의 정보를 모아주게.”
베릭트의 한마디에 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황자님. 저흰 정보부대가 아닌 전투부대입니다.”
“알고 있네.”
“그렇다면 이런 임무는 저희가 아닌 황도군의 정보부대에 맡기시는 편이….”
“루네스에서 제국군이 어떤 시선을 받는지 모르겠나?”
“아.”
국가의 모든 산업기반을 수탈하고, 자신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트린 제국.
현지의 식민지인들이 치안 유지중인 제국군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하아….”
얀이 납득하자 한숨을 내쉰 것은 베릭트 황자였다.
“할 수 있으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걸세. 자네를 부를 필요도 없이.”
“….”
얀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한번 혀를 찬 베릭트 황자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의 손가락만큼 굵직한 담배였다.
“자네도 하나 하지? 아, 담배도 안하나?”
“아뇨. 전 따로 피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얀은 자신의 담배를 꺼내들었다. 군대 사병들에게 보급되는 싸구려 담배였다.
“허, 그걸 피나?”
“이젠 이게 아니면 기별도 안가서요.”
가격이 낮은 대신 독성은 최고로 끌어올린 담배. 애연가라 할지라도 한 개비 피우면 삼일 동안은 금연을 한다는 악평이 자자한 물건이었다.
“이걸 피는 사람은 하이람 백작 이후 처음 보는구만.”
“…그렇습니까.”
자신의 원수와 같은 물건을 쓴다는 사실에 순간 확 불쾌감이 밀려왔지만, 황자 앞에서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의 담배가 타들어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 베릭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루니스항은 유일하게 제국이 소유하지 못한 항구임과 동시에 부동항일세. 관리 또한 시에서 직접 하기에 반군의 거점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지.”
“그렇지만 조사하려고 해도, 현지인들이 제국에게 협조할 리 없군요.”
“설상가상으로 내 부하들이나 주둔군이나, 전부 제국인일세. 잠입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이지.”
형형색색의 머리색을 가진 제국인과는 달리, 얀과 같은 무채색의 머리칼은 루브라인의 특징 중 하나였다.
물론 제국인의 형질이 섞인 얀의 외모는 대체로 갈색의 피부를 가진 그들과는 구별이 되었지만, 그 정도는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이 베릭트의 설명이었다.
‘덩치와 성격과는 다르게 안목도 있고, 판단이 빠르군. 가르드 같은 종자였다면 수도를 족쳐서라도 자기가 한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식민지인을 자극하지 않은 채 일을 진행한다는 융통성도 엿보였다.
전공에 미쳐 아군 기사단을 통째로 먹이로 던져주는 머저리 황자를 떠올린 얀은 감개무량한 듯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파견지역에서 만난 상관은 말이 통하는 인물일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인원 선별이 끝나는 대로 루네스로 이동, 해방군에 대한 정보를 모으겠습니다.”
생각을 마친 얀의 응답이 들려오자 베릭트의 얼굴이 화색을 띄었다.
“고맙네, 베르쿠트 경! 이거, 클라우스 녀석에게 빚을 지는구만!”
“특수임무임을 고려했을 때, 이동 시간을 제외해도 적어도 2주는 걸립니다만, 추가로 하달하실 명령이 있으십니까?”
“아, 글쎄…. 뭐가 있을까….”
얀의 말을 들은 뒤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던 베릭트가 멋쩍은 듯 웃으며 얀을 향해 말했다.
“그럼, 가는 길에 나 좀 호위해줄 수 없나?”
“…예?”
방금 한 생각 취소.
이 인간은 역시 머저리가 맞다.
***
“끄으으으!”
얀의 휘하에서 치러진 3일 동안의 신고식. 마흔 명의 죄수들 중 선별된 열 명의 그레이하운드 신참들은 이어지는 단델의 훈련코스에 진절머리가 난 듯 막사에 주저앉았다.
“이게…. 이게, 어딜 봐서 훈련이야!”
“미쳤어…. 정상이 아냐. 70시간 동안 한 숨도 못 잤다고!”
훈련을 마치고 막사에 복귀한 신병들의 몰골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송장에 가까웠다.
한겨울에 흘린 땀방울이 얼어붙어 피부에 달라붙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신병들에게 훈련에서 복귀한 선임들이 다가왔다.
“오, 신입들! 이번 주에 몇 명 낙오했냐?”
“두, 두 명입니다….”
살인자, 사형수 같은 독종으로 이루어진 열 명이었지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중대원들을 향해서는 깍듯한 존댓말을 잊지 않았다.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었다.
그 독종들이 커서 된 것이 이들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모의전 때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시간부로 내일 자정까지는 휴식이야. 씻고 밥 먹어라.”
훈련에 대한 불평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평온한 얼굴로 자신들에게 말하는 단델이었다.
“내가 봤을 땐 저 인간이 제일 이상해….”
“훈련 내내 우리랑 같이 있었잖아? 왜, 왜 저렇게 멀쩡한데?”
70시간동안의 모든 일정을 자신들과 같이 수행한 인간이, 아무 일도 엇었다는 듯이 말을 마치고는 서류작업을 위해 자신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신기하냐?”
“예, 예….”
“걱정 마. 너네도 저렇게 될 수 있어.”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한 선임들을 바라보는 신입들이었지만,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마주본 선임병들이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될 때 까지 조질 거니까.”
그 한마디에 신입들의 몸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쭉 빠져나갔다.
차라리 먼저 죽은 서른 명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잠입에는 성공했다.”
신입들이 선입들의 약속에 기쁨을 주체 못하는 그 사이, 막사 뒤편에 몸을 숨긴 한 남자가 펼쳐진 오른손을 향해 입을 열고 있었다.
- 당장의 지시는 없다. 버티면서 그들 사이에 파고들어라. 차후 지시하지.
“그, 그렇다면 그…!”
말을 마치려는 목소리를 황급히 불러 세웠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듯, 그의 오른손에 펼쳐진 빛무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그를 진정시키듯 말했다.
- 걱정 마라. 치료는 순조로우니까. 마렉. 넌 임무에 관해서만 생각해. 통신 종료한다.
“…확인했다.”
그 말과 함께 그레이하운드 중대의 신병 중 한명인 마렉의 손에서 빛무리가 사라졌다.
제국에선 극소수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마력통신이었다.
“씨발…!”
쿵!
신경질적으로 눈앞의 벽을 주먹으로 친 마렉은 이를 악문 채 등을 돌렸다.
드디어 주어진 하루 동안의 휴식.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