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90화 (90/186)

90. 만신창이 보금자리.(3)

“푸하아!”

열 시간 가량의 훈련은 군인들에게 있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며, 특히 그것이 전방에서 활동하는 부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훈련 종료! 다들 막사로 복귀해!”

그렇지만 이들을 훈련시키는 단델 클라우스의 훈련법은 시간은 둘째고 그 밀도가 차원이 달랐다.

“모의전투 결과, 전원 사망판정 및 방어 실패. 오늘 저녁은 비상식이다. 각자 식당으로 흩어지고, 다음 훈련 대비해서 쉬어둬.”

“아아~!”

“이틀째 전식이냐 진짜!”

“야! 끝나고 다 모여! 전술 다시 짠다!”

네 시간의 훈련, 그리고 야외에서 이뤄지는 네 시간의 모의전.

실제 총기와 렌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모의탄.

그리고 교관을 맡은 열 명의 87독립중대원으로 이뤄지는 이 가상전투는 보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들을 어엿한 병사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번에 피격된 인원 있나?”

“없습니다. 저희가 등신도 아니고.”

“스무 명 중 저희 위치를 알아낸 게 두 명. 대응사격은 방향도 제대로 안 잡혔어요.”

전투복 곳곳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중대원들이 그렇게 말했다.

“공포탄은 다 좋은데 총에 뭐가 많이 껴서….”

“이거 또 언제 다 닦냐?”

“몰빵해 몰빵. 그거 걸고 포커나 치든가.”

“포커는 니미, 널 포커로 이길 바에야 나가서 모의전을 한 번 더 뛰지.”

“모의전은 이길 거 같냐? 지금 한번 떠 줘?”

“어어? 이 새끼 영지에 짱박히더니?”

어느새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 중대원들이 식당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단델에게 부대원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보통 병사보다는 괜찮게 하는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우리 부대가 아니라 영지 주둔군이잖아. 최대한 약식으로 빨리빨리 키워내야지.”

그렇게 말하며 단델은 다음에 들어올 죄수들의 명단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가 훈련시키는 인원들은 비교적 죄가 가벼우면서, 다른 지역에 연고가 없어 정착하기 쉬운 이들.

하루가 다르게 이곳저곳으로 파견되며 격전을 치루는 형벌부대로써는 자격 미달인 인원들이었다.

“그럼 저희 중대에 충원될 인원들은…?”

처음 말을 건 부대원이 그렇게 묻자 쓴웃음을 지은 단델이 검지손가락으로 땅 밑을 가리켰다.

“중대장님이 직접 선발 후 교육하신다. 너희들도 기억나지?”

그 말을 들은 중대원들의 얼굴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부대 창설 초기를 제외하곤 얀이 부대원들을 직접 훈련시킨 적은 없다시피 했다.

자신이 콜로서스에 타서 전장에 나가는 경우가 워낙 많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훈련을 받은 인원은 삼 일간은 활동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신입들도 우리 같은 종자들이니, 기를 꺾을 필요는 있겠지만….”

“으으, 훈련받던 때가 떠올랐어. 식욕이 뚝 떨어진다….”

“그걸 훈련이라고 해야 하나? 가혹행위나 고문 아니야?”

“내 말이….”

단델의 말을 들은 중대원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진저리치는 사이, 얀은 중대원 두 명과 함께 성 지하에 있는 격리 수용소로 향하고 있었다.

“허, 뭐야. 생각보다 반반한데?”

“영주님~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얼굴 한번을 안 보여주셨을까아~?”

“킥킥킥….”

철창들 사이에서 걸쭉한 욕설과 함께 갇혀있던 죄수들의 조롱이 흘러나왔다.

“이 새끼들은 영주님 소문 못 들었답니까?”

“소문을 듣고 꼬리 내릴 놈들이면 여기 가두지도 않았어.”

비쿠스 영지에 새로 들어온 오백 명의 죄수들 중 고르고 고른 마흔 명의 흉악범.

머나먼 국경지대에서 들려온 소문 따위로 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히~!”

눈이 풀린 수감자 몇몇이 창살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그 광경만으로도 흠칫해 뒷걸음질 칠만한 흉흉한 인상들이었지만, 얀은 그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도 표정에 미동 하나 없었다.

“자. 골라 봐.”

마치 가게에 진열된 상품을 고르라는 듯, 등 뒤에 도열한 부대원들에게 얀이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중대원 두 명이 양 옆으로 흩어졌다.

“뭐야. 씨발, 뭘 야려?”

푹 눌러쓴 군모 사이로 느껴지는 시선이 불쾌했는지, 죄수 중 한 명이 그렇게 이죽거렸다.

“수감번호 27범 하보크. 살인 10회, 강도 7회, 법정 판결은 사형…. 따로 얘기할 특이사항 있나?”

독방에 한 명씩 수감된 죄수들의 욕설로 시끄러워진 감옥.

소음 속에서도 평이하게 이어지는 대원의 질문에 퉤, 하고 침을 뱉은 하보크가 이죽거렸다.

“뭐야, 지금 나 스카우트 하게?”

“대답하는 거에 따라서.”

“푸하핫!? 야! 들었냐?!”

“하하하하하!”

짧은 긍정에 다른 감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븅신이냐? 니들처럼 제국의 개가 되느니 차라리 여기서 주는 밥이나 쳐먹…!”

“그럼 됐어.”

명단에 기재된 인적사항과 본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부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27번. 불합격입니다.”

그 말과 함께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중대원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타앙-!

사방이 꽉 막힌 감옥에 울려 퍼지는 총성에 욕설과 조롱으로 가득 찬 소음이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잠깐만. 지, 진짜 죽였…?”

“다음.”

이윽고 찾아오는 것은 정적.

판결도, 유언도 없이 순식간에 죽음에 도달한 죄수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지자 그 순간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정적이 찾아오자 들려오는 평온한 목소리의 주인인 얀이 수감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열 명.”

난데없이 튀어나온 숫자. 그 한마디에 수감자들 사이에 한 줄기 불안이 감돌았다.

“무, 무슨…?”

“지금부터 찾아갈 ‘면접관’들이 선발한 열 명 빼고 다 죽일 거다. 그러니 너희들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어떤 기술이 있는지. 요령껏 말해 봐.”

그렇게 말한 뒤 얀은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감번호 82번. 죄목은….”

“자, 잠깐만! 이, 이건 말도 안 돼! 우린 제국 법정에서 형을 확정 받았어! 이런 식으로 우릴 다루는 건…!”

“불합격.”

그렇게 항변하려는 수감자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타앙-!

두 번째 총소리와 함께 한 명의 수감자가 시체로 변했다.

“다음. 수감번호 71번.”

“드, 들어갈게! 들어간다고! 하라는 건 뭐든지 다 할게! 그럼 되잖아!”

상황을 파악한 71번 수감자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면접관이 입을 열었다.

“특이사항 말해봐.”

“트, 특이사항?”

“없어?”

그 말에 뭐라 말 할지 어물거리는 사이, 눈앞에 있는 면접관은 판단을 모두 마쳤다.

“불합격.”

그렇게 한 구의 시신이 더 생기자, 남아있는 다른 수감자들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세 명이 죽었으니 앞으로 스물 일곱…!’

“싫어, 난 싫어!”

이렇게 87독립중대, 그레이하운드의 입대심사가 시작되었다.

“나 의사였어! 약이나 수술은 어느 정도…!”

“제국 의사 교범 1조 읊어봐.”

“화, 황제 폐하의 신민을 위하여, 네 기, 기술과 지식을 베풀어라!”

“좋아. 합격.”

“사람을 죽이는 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

“불합격.”

“헤, 헤헤헤, 난 이런 거 잘 못하는데에~.”

“이것도 불합격.”

의료 기술, 혹은 폭발물을 다룰 줄 아는 이들이 살아남았다.

허위로 말을 꾸며내는 이들은 갑작스럽게 던져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사살되었고, 그 와중에 쾌락살인마, 정신이상자, 특이전과자들은 예외 없이 살처분 당했다.

기준치에 따라 생과 사가 결정되는 지옥과도 같은 절차.

처음에 그들이 가졌던 호승심이나 반항심은 동료 수감자의 비명과 총성에 묻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입니다.”

“열 명 째…. 굳이 인원 맞출 필요 없이, 기준치 이하면 사살해.”

“알겠습니다.”

아홉 명의 중대 신병을 확보한 얀이 그렇게 말하자 감옥 사이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수감번호 13번. 마렉 스탈링.”

“약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 그리고 격투전이라면, 아무에게도 안 져.”

젊은 남자의 목소리. 들짐승과도 같은, 독기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아무에게도? 증명할 수 있나?”

“니들 중 아무나 한 명 덤벼보던가.”

확신에 찬 목소리에 이상을 느낀 중대원들이 얀을 바라보았다.

“상대해볼까요?”

“아니. 내가 확인하지.”

그렇게 말한 얀이 감옥으로 다가와 마지막 수감자, 마렉과 마주보고 섰다.

“열어.”

얀의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인 중대원이 열쇠를 꺼내 감옥의 철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격경보.]

머릿속에 울리는 닐의 목소리와 함께 얀이 반사적으로 얼굴을 옆으로 틀었다.

파앙-!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순식간에 뻗어 나온 주먹이 얀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공기를 가르는 정권의 속도.

정면으로 맞았다면 무사하지 못할 괴력이었다.

“허, 이것 봐라?”

“씨발, 이걸 어떻게?!”

자신의 공격이 빗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한 순간 보인 빈틈을 파고든 얀이 그의 명치에 팔꿈치를 꽂았다.

“이 새끼!”

얀의 움직임을 본 순간 곧바로 몸을 뺀 마렉이었지만, 닐의 행동예측을 통해 그것을 간파한 얀은 한 간격 더 파고들어 기어코 그의 명치에 정타를 쑤셔 넣었다.

“크억?!”

한 순간에 일어난 일 합. 돌발상황을 파악한 중대원들이 곧바로 쓰러지는 마렉을 구속한 뒤 땅에 그의 얼굴을 박아 넣었다.

“중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이 새끼가 예고도 없이 중대장님을…!”

“합격.”

격분한 중대원들의 욕설이 얀의 한 마디에 멈췄다.

“이 녀석까지 해서 열 명이다.”

그렇게 말한 얀이 몸을 돌려 감옥을 나가고, 긴장이 풀린 아홉 명의 신병들과 마렉이 가쁜 한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중대장님 덕에 산 줄 알고, 나머지 인원들은 감옥 내부의 시체들을 성 밖으로 옮긴 뒤 연무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이 시체를 다 옮기라고…?”

“지상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그들의 힘없는 항변이 이어졌지만, 군모를 푹 눌러쓴 두 명의 대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30분 이내로 완료하지 않는다면 탈영으로 간주, 사살한다. 시작해!”

“예, 예-!”

악에 받힌 구령소리를 확인한 중대원들 두 명이 팔짱을 끼고 그들의 작업을 감독하는 사이, 지하 격리실에서 나온 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루 훈련을 마친 단델이었다.

“중대장님.”

“뭐야. 일과 끝나면 쉬라고 안했나?”

부중대장의 환대에 그렇게 답한 얀이 옆으로 다가온 단델에게 말했다.

“중대 신병 중 마렉이라는 녀석. 인적사항, 가족관계, 지인 전부 재조사해.”

“무슨 일 있으십니까?”

“뒷골목에서 좀 날던 놈인가 했는데, 그 이상이야. 기사, 혹은 그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놈이다.”

마렉과 겨룬 짧은 순간, 글레이프니르의 보조를 받는 얀의 왼쪽 눈동자는 그의 공격 경로와 그곳에 담긴 살수를 놓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지시해 두죠. 그리고….”

“응?”

얀의 지시를 머릿속에 넣어둔 단델이 뒤이어서 얀을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성 앞으로 이런 우편이 도착해서요.”

그렇게 말한 단델이 편지봉투를 꺼냈다.

보라색 색지에 고풍스러운 필체로 적힌 초대장이었다.

“이 초대장은….”

보라색 초대장을 뒤집어 발신인을 확인한 얀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알리에노르 라 뒤누아….”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은, 뒤누아 성에서 개최되는 무도회 초대장이었다.

다음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