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보라, 제국 최강의 기사를.(2)
- 마, 막아라! 저 기사를 막아!
- 으아아아-!
엘프 기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다.
적군에 오러 블레이드가 확인된 이상, 최대한 빨리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마력이 쇠퇴하여, 극소수의 인간만이 마력을 타고나는 지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를 살려보낸다면 향후 알프라이아에 어떤 해가 끼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후우…. 이게, 진자 기사들이 보던 풍경이었군.”
일제히 달려드는 4호 콜로서스들을 잠시 바라본 케인이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그 틈사이로 달려들었다.
쿵-!
- 자, 잠깐!
- 언제 여기까지…!
포탄과 같은 속도로 뛰어오른 케인의 콜로서스가 곧바로 달려들던 콜로서스 군집을 횡으로 베었다.
방금 전까지의 움직임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속도였다.
끼긱! 끼기긱!
사선으로 베어넘긴 콜로서스의 몸이 쩍 갈라지며 그 안에 있는 파일럿 또한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렇게 쓰러진 콜로서스의 뒤로, 다른 두 대의 콜로서스가 힘을 잃은 듯 쓰러지고 있었다.
- 아, 안돼…! 무리야!
- 진짜 기사라니, 말도 안된다고! 어떻게 이기란 말이야!
기사.
세상 모든 인간들이 마력을 가지고, 시골 범부들마저 마력을 마음대로 다루던 검의 시대에서, 기사라는 칭호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에 마력을 넣어 압도적인 힘을 얻듯,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콜로서스의 골격에 마력을 주입하고, 그것을 결정화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자.
콜로서스가 없던 이전 시대에는 오러 유저, 또 어느 시대에는 소드마스터. 온갖 역사와 기록에서 온갖 명칭으로 불려왔던 이들.
전락하고 몰락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경과 신비를 담아 부르는 칭호야말로 기사라는 창호였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그 의미의 원형을 짐작할 수 있고, 누구라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창조주시여…! 어찌 인간에게…!
푸른 빛으로 빛나는 검을 들어올린 케인의 콜로서스가 앞으로 나서는 것과 동시에, 엘프군 콜로서스들이 뒤로 물러났다.
- 아직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음을 다잡은 알프라이아 기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알프라이아 황실의 인장을 어깨에 새긴 6호 콜로서스.
알프라이아 성왕의 근위기사 중 한 명이었다.
- 적은 현재 지치고 피폐한 상황! 전황은 우리 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기체로 녀석을 찍어누르면 나머지 기사들을 제압할 수 있어!
전황을 정확히 꿰뚫는 그의 한 마디에 지쳐있던 로렌츠 기사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 큭!
- 제길, 다들 일어나! 가주님을 지원해야 한다!
- 가주님께서 싸우시는데, 우리가 뻗어있으면 안되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로렌츠 기사단이었지만, 이미 계속된 싸움으로 지친 그들은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 그, 그래!
- 아직 이길 수 있다! 다들, 목숩을 걸어라!
- 으아아아!
케인의 오러 블레이드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엘프 기사들이었지만, 이내 로렌츠 기사단의 상황을 본 그들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전의를 끌어올렸다.
- 제길!
- 가주님, 저흰 괜찮습니다! 일단 퇴각을…!
그에 비해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계속된 전투로 누적된 피로로 인해 로렌츠 기사들의 마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
절대적인 힘을 가진 오러 블레이드라 하더라도,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러를 다루게 된 케인 로렌츠를 무사히 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 아니. 난 퇴각하지 않는다.
나지막이 내뱉은 케인의 목소리와 함께, 케인이 검에 서린 오러를 거뒀다.
점차 전의를 다지는 엘프 기사들.
그렇지만 이후 벌어진 광경에, 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제국 최강의 기사이자, 로렌츠 공작가의 가주! 제국의 2대 공작이자 중앙 기사단장인 케인 로렌츠가, 이 자리에 모인 기사들에게 명한다!
확성기를 향해 울려 퍼지는 그의 이름.
그동안 칭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압박하던 수많은 칭호들이 그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않는다는 듯, 찬연하게 빛나는 눈을 한 채, 그가 자신의 기사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 일어나라! 그대들의 영웅! 케인 로렌츠가 함께하리라!
자신을 영웅이라 칭하는 케인의 일갈과 함께 결정화된 마력이 원형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그가 허락한 자, 그의 편에 선 자들의 지친 몸과 기체에 마력이 주입되며, 지친 몸에 활기가 돌아온다.
“몸에, 힘이 돌아온다!”
“회복하는 데에 이틀은 넘게 걸리는 것이 마력인데, 이렇게 빨리!”
“이길 수 있어! 일어나라! 공작님을 따라!”
“다들 일어나라!”
쿠구구구…!
하나, 둘… 동력을 잃고 쓰러진 콜로서스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푸르게 솟아오르는 빛무리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콜로서스들의 모습은 성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경건하고, 또 신비로워 보였다.
- 마력이 전부 고갈됐을 터인 기사들이…?
- 마나 링크…! 진짜야, 진짜 기사라고…!
넘치는 자신의 마력을 베풀어 지친 아군을 일으키는 기사의 권능. 마나 링크.
소설 속 영웅담에서나 그려지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 그것을 바라보는 엘프 기사들의 눈에선 더 이상 전의를 찾을 수 없었다.
“틀렸어….”
“진짜, 진짜 영웅이잖아. 우리가 평생 동경해 온 검의 시대를 살던 영웅! 저걸 어떻게…!”
자신들이 평생에 걸쳐 동경해오던 전설이 눈앞에 나타난 이상, 더 이상 그들에게 전투 의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러 블레이드.
검의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있어, 그것은 어쩌면 창조주의 권위와도 같은 무게를 지닐지도 모르는 무인의 신성이었다.
- 케인 로렌츠가 명한다! 이 요새에 남아있는 알프라이아 군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케인의 한 마디에 일제히 검을 뽑아든 로렌츠 기사단의 기사들은 어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적 진영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주님께서 저들의 피를 원하신다!
- 로렌츠를 위하여!
-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 앞으로! 앞으로!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앞으로 나선 케인의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힘의 결정. 단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수십 겹의 장갑을 두부 자르듯 베어낼 수 있었다.
스걱! 촤아악!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 기.
검격을 흘려낼 수도, 받아낼 수도 없었다.
- 돌격포! 마력포는 어디로 간 거야!
- 마법사들은 뭘 하고 있느냔 말이야!
첨탑에서 마법을 사용하던 마법사들을 찾는 기사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전설과 검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며 비웃는 그들이라면, 저 자연재해와 같은 힘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줌 기대감 때문이었다.
“마법사 3진, 사살 완료.”
“두 명 도망간다. 셋에 저격해.”
“위치 확인.”
그러나 그들이 찾는 마법사들을 이미, 첨탑을 점거한 그레이하운드 중대 저격수들의 표적이 된 상태였다.
푸슉!
“아악!? 소, 손이!”
“제길, 차라리 죽이란 말이다! 이 더러운 인간놈들!”
탈출을 위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법의 원천인 손과 머리에 총알이 박힌다.
마력포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는 마법사들이었지만, 포격용 마법진도, 경호원도 없는 상황에서는 그저 이들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귀쟁이 새끼들, 케르단에서 네놈들 마력포에 몇 명이 죽었는지.”
“이번 작전에서도 두 명이 갔지. 사살허가 떨어졌으니 맘대로 해.”
타앙-!
총성과 비명이 이어지는 요새는, 그들만의 인간 사냥터로 변해있었다.
- 1진의 붕괴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라면 조준하기 전에 놈들이 들이닥칠 거다!
- 고블린들이 도망친다!
휘둘러지는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내려던 4호 콜로서스가 검을 세운 그대로 일도양단되었다.
순식간에 사기를 되찾은 로렌츠 기사단과 달리, 요새를 방어하던 알프라이아 군 기사들은 혼비백산한 채 요새를 버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요새에서 모든 알프라이아 군을 몰아냈을 때, 그들은 100기가 넘는 콜로서스를 파괴한 뒤였다.
쿵-! 쿵-!
자정에 시작한 전투가 끝을 맺은 것은 지평선에 태양이 걸렸을 때였다.
오랜 격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케인의 콜로서스가 천천히 요새의 꼭대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 설치된 알프라이아의 깃발을 단칼에 베어버린 케인은, 그 자리에 이곳이 제국의 영토임을 선언하는 국기. 그리고 이 영토를 개척한 가문인 로렌츠의 가문기를 세웠다.
- 이번 전투! 로렌츠 기사단의 승리다!
- 와아아아아-!
- 이야아아아아!!
100기의 콜로서스가 참여한 요새 공략전.
최후에 살아남은 기사들은 총 63대였다.
[파일럿 상태 진단. 의식 및 생명 활동에 문제 없음. 허나 장시간의 운용 후유증이 우려되는 바, 2주 이상의 안정을 권함.]
“그래. 이번엔 진짜 휴가나 써야겠다.”
[기체 상태 진단. 흉부 장갑 17% 파손. 자가복구가 불가능한 바, 전문 수리시설에서의 복원을 요구.]
“그래. 또 수도에 들러야겠군.”
전투가 계속되는 사이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케인의 콜로서스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 짓고 있었다.
요새 꼭대기에서 검과 깃발을 들고 자신의 기사들을 굽어보고 있는 케인의 콜로서스와, 요새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기사들.
“저거 잘하면, 역사책에 실릴 장면이겠는데.”
무너진 성의 잔해에 누워 그것을 바라보는 글레이프니르는 조용히, 새 시대의 영웅이 탄생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때요 집사님? 제 말이 맞죠?”
뒤누아 성의 개인실.
긴급 속보라며 전해진 제국군의 승전보, 그 주인공으로 케인 로렌츠의 이름이 당당하게 실려 있는 것을 본 알리에노르 공작은 빙글빙글 웃음 지으며 그 신문을 살폈다.
“칫, 그분은 안 나오셨네.”
그녀가 찾는 얀은 함께한 기사들의 명단에 이름만 짤막하게 나왔을 뿐이었다.
전투 초기에 목숨을 걸고 요새에 돌격한 안델의 영웅담만이 빼곡하게 쓰여진 신문을 이리저리 훑어본 알리에노르 공작은, 이내 흥미가 떨어진 듯 신문을 구겨 방구석에 던져놓았다.
“허나 아가씨, 무도회는 적어도 2주일 정도는 미루시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응? 무슨 일 있으신가요 집사님?”
그렇게 되묻는 알리에노르에게 집사 파비앙은 편지 하나를 건넸다.
고급 양피지에 붉은 밀랍 봉인.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문양.
그것을 알아본 알리에노르가 조용히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 발칙하게도 선수를 치려 하는군.”
그렇게 말하며 봉인을 뜯자, 그곳에는 황제 카르디어스 반 바일사르의 친서가 담겨있었다.
“황제 폐하계서도 이번 전투에 대해 관심이 높으신 듯합니다.”
“그 재미없는 정치놀음에 굳이 날 끼우려는 이유가 뭔지.”
그렇게 내뱉은 알리에노르는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뭐, 좋아요. 가죠.”
폐하의 명령이라 싫어도 가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눌러 참은 파비앙은 어깨를 으쓱였다.
“무도회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한 달 정도 미루죠. 대신 준비는 차질 없도록 해주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파비앙은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 기사님. 다시 만나는 날이 너무 기대되네요.”
이윽고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 누운 알리에노르.
텅 빈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알리에노르의 웃음소리만이 뒤누아 성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