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77화 (77/186)

77. 중부 평원 전투(2)

[파일럿 탑승 확인. 글레이프니르, 시스템 기동,]

정비창에서 몸을 일으킨 진회색 콜로서스가 정비창에서 걸어 나오자 다른 기사들의 이목이 그곳으로 쏠렸다.

“저것이 그 고대인의 콜로서스로군.”

“타우르인가 하는 괴물을 격파했다고 들었네만.”

변방에서 홀로 솟아나 전황을 뒤집었다고 전해지는 콜로서스의 모습을 실제로 보자, 자유기사들 몇몇이 흥미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흥! 로렌츠에서 지어낸 허풍일세. 마력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다니, 저건 그냥 깡통이 아닌가?!”

“내 말이 그 말일세. 마력 없이 어떻게 알프라이아를 이길 속셈인지.”

글레이프니르를 바라본 벨커스 가문의 기사들과 신흥 귀족파의 귀족들이 그렇게 혹평을 이어갔지만, 조종석에 탄 채 지도 정보를 입력하는 얀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지형 데이터 입력 완료. 토질 분석결과에 따른 최적의 경로를 설정.]

얀의 눈앞에 나타난 지도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목적지까지 가는 정찰루트가 나타났다.

“좋아. 가 보자고.”

그렇게 말한 글레이프니르가 팔을 들어 어디선가 보고 있을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에게 수신호했다.

“중대장님 신호 확인했다.”

“은폐 유지한 채로 이동한다. 이상사태 발견 시 사전신호 없이 곧바로 대항할 것.”

숲이 울창한 덩굴이나 시가지, 마을같이 엄폐물이 많은 장소와는 달리, 이 곳의 지형은 탁 트인 황무지였다.

“그나저나, 왜 중앙 전선임에도 보병들의 수가 적은가 했더니….”

“나와 보니 알겠군. 이 넓은 곳을 콜로서스 수백 대가 돌아다닌다면, 우리 같은 땅깨들은 뼈도 못 추릴걸.”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이어지는 87독립중대원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중부 전선. 바일사르와 알프라이아의 국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붉은 대지는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로, 자연스럽게 보병보다는 콜로서스 위주의 전투명력이 오가게 되었다.

양 국가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서로 수천대의 콜로서스를 보유한 상황에, 이제 이 평원에서는 더 이상 전투원이 활동하지 않는다.

붉은 위장복으로 갈아입은 87독립중대원들을 제외한다면.

쿵-! 쿵-!

중대원들이 그림자에 숨어 은밀기동을 계속하는 사이, 스스로 미끼를 자처한 글레이프니르는 등에 장비된 레일 캐논의 잔탄수를 확인하며 미소 지었다.

“적어도 이제 탄 걱정은 없겠군.”

그렇게 뇌까리며 글레이프니르는 팔에 레일 캐논을 장착했다.

그와 동시에 닐의 화면의 한 구석이 점등하기 시작했다.

[적 병력 이동 감지. 보급품 수송차량 4량, 콜로서스 4량. 호위병력 다수. 5분 뒤 현 지역에 도착.]

닐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가 중대원들을 향해 수신호 했다.

‘전원 매복. 신호탄 발사까지 발포 금지.’

그렇게 말한 뒤 천천히 자세를 낮추는 글레이프니르. 곧바로 얀의 기체 곳곳에 달라붙은 중대원들이 글레이프니르의 몸에 위장막을 덮기 시작했다.

글레이프니르의 유동성 장갑판이 움직이며 그들의 작업을 돕자, 거대한 글레이프니르의 몸체가 다 가려지는 데에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광학미채 사용 불가. 관련 부품, 확인되지 않음.]

“이런 지형은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

곧바로 몸을 최대한 낮춘 글레이프니르가 천천히 레일 캐논을 들었다.

언덕 뒤 쪽에 진을 친 채 엎으려있는 글레이프니르의 자세는 마치 오랜 시간 목표를 기다리는 저격수의 그것과 같았다.

‘대기.’

사막 모래로 기체를 덮은 채 총구만을 빼꼼 내민 글레이프니르는 천천히 이 길목을 지나갈 알프라이아 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쿵-!

쿵-!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알프라이아의 6호 콜로서스.

그렇지만 글레이프니르에 탄 얀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림자 속에서 매복중인 부대원들에게 신호했다.

‘대기. 두 번째 콜로서스까지 통과.’

이윽고 다음 콜로서스가 지나가고 그들의 뒤를 보급차량이 따라나섰다.

“닐. 녀석들이 옮기는 화물.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나?”

목소리를 낮춰 묻는 얀의 한마디에 닐의 답변이 돌아왔다.

[불가능. 해당 화물의 내부는 특수재질로 이루어져 탐지용 전자파의 진입이 차단되었음.]

“그 말인 즉, 고대인의 기술이 연관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

생각을 마친 얀의 눈앞에는 벌 세 번째 콜로서스가 콩과한 뒤, 마지막 콜로서스가 걸어가고 있었다.

우우웅-!

날카로운 구동음과 함께 엄폐한 글레이프니르의 포신에 전자파가 맺히기 시작했다.

“신호탄 장전. 전투 시작한다.”

[확인. 글레이프니르, 동조율 고정. 전투 출력으로 전환.]

닐의 답변을 듣는 것과 동시에, 얀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콰지직!

조종석을 정확히 꿰뚫린 채, 허공에 붕 떠오른 6호 콜로서스.

그 일이 벌어진 후 1초 뒤, 포탄보다 늦게 도착한 포성이 이동 중이던 콜로서스 집단을 뒤흔들었다.

투콰아앙-!

- 적습! 적습이다!

- 전원 전투준비!

불의의 기습에 의해 사라진 아군 콜로서스를 확인하자 엘프 기사들이 당황한 듯 침음성을 냈다.

“키이익!?”

“적! 적이다! 화물을 지켜라!”

호송차량을 호위하던 고블린들 역시 혼비백산한 채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여력이 없었다.

“좋아. 아직 우리 위치를 못 잡아냈어.”

그렇게 말하는 사이, 글레이프니르의 조준선이 빛나고, 거기에 맞춰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키이잉-!

사선으로 기울인 대방패.

콜로서스의 장갑재를 몇 겹이나 덧대어 만든 거대한 방벽에 도탄 된 레일 캐논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방패를 길게 찢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탄도를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는지, 방패를 버린 6호 콜로서스가 매복한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발각됐군.”

[레일 캐논 수납. 근접 전투 무장으로 전환.]

투화악!

닐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를 감싸던 붉은 모래가 폭발하듯이 튀어 올랐다.

모래먼지로 인해 차단된 시야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윤곽을 따라 콜로서스의 무기가 불을 뿜었지만, 글레이프니르의 장갑에 닿은 것은 한 발이 채 되지 않았다.

“이까짓 걸로!”

곧바로 하늘에서 내리꽂히며 검을 수직으로 휘두른 글레이프니르.

압도적인 물리량에 장갑판이 우그러졌고, 톱니 같은 검날에 걸린 조종석이 그대로 콜로서스에게서 뽑혀 나왔다.

“아, 아아아…!”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파일럿이었지만 얀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우드득!

조종석을 완전히 우그러트린 뒤 남아있는 두 대의 콜로서스를 바라보았다.

“호오, 저건 또 뭐야.”

한 손에는 거대한 기병창,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기관포.

처음 보는 무장 조합에 얀이 의문을 표하는 사이, 한 대의 콜로서스가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기관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부와아아아앙-!

구경, 연사력, 모두 이전에 상대했던 엘프의 콜로서스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물건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무기에 놀랄 틈도 없이,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짓쳐들어온 6호 콜로서스의 기병창이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쇄도했다.

콰드득!

한 손으로 그것을 붙잡은 글레이프니르였지만, 적의 무기의 중량 때문에 그 이상의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 네놈이구나! 케르단 전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원흉이!

“허?”

자신을 안다는 듯이 소리치는 엘프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얀은 의아한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 부르타엘의 원수!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으로 갚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붙잡힌 랜스를 조종하는 6호 콜로서스.

곧이어 랜스 밑부분에서 튀어나온 부스터 모듈이 점화하며, 글레이프니르의 거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 구엘!

- 으아아아아!

이윽고 다른 한 기체 또한 기병창을 꼬나쥔 채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투콰앙-!

짓쳐들어오는 두 콜로서스의 공격을 받아낸 얀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크윽!?”

쿠와왕!

이윽고 졀벽까지 밀려난 글레이프니르를 바라보는 두 콜로서스 파일럿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감돌았다.

- 드디어! 드디어 이 녀석을!

- 부르타엘! 우리가 해냈소! 그대의 원수를…!

그렇게 외치는 두 엘프가 눈앞의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 기체, 목표 지점까지 유도 완료.]

“좋아. 신호탄 발사해.”

그러나 그 때, 글레이프니르의 등판이 열리며 그곳에서 무언가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펑!

이윽고 하늘을 채우는 신호탄.

색 조합을 통해 그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챈 엘프 기사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공격 개시…?”

그 순간.

콰앙-!

6호 콜로서스의 두 다리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한 부위는 내부의 관절부. 균형을 잃은 이족보행병기가 육중한 몸체와 마상창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 구엘! 젠장, 어디냐! 어기에서…!

그렇게 말하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엘프 기사, 피엘은 미친 듯이 적의 콜로서스를 눈으로 찾고 있었다.

“없어! 어디에도! 도대체 고블린들은 뭘 하고 있는…!”

그렇게 뇌까리던 피엘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는지, 눈을 돌려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이, 이건! 잔스카르의…!”

발밑에서 거대하고 검은 원통을 짊어진 채 자신을 겨누는 병사들. 제복의 왼쪽 견장에는 회색 사냥개의 인장이 들어가 있었다.

“방열 완료!”

“발사한다!”

콰아앙-!

방금과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무릎 관절부에 이상이 생겼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쿠웅!

균형을 잃고 쓰러진 6호 콜로서스. 이윽고 달려든 얀의 글레이프니르가 콜로서스의 모든 팔다리를 우그러트렸다.

- 생존자 생포 해. 본부로 데려간 뒤 정보를 캐낸다.

그렇게 내뱉은 얀이 곧바로 쓰러진 두 콜로서스의 해치를 잡아 뜯었다.

“키, 키이익?! 인간! 기사님들을 붙잡았다!”

“고, 공격! 엘프님들을 보호해라…!”

뒤늦게 콜로서스를 따라온 고블린 병단이 합류했으나, 그들을 엄호할 콜로서스가 사라진 이상, 그들은 글레이프니르의 먹이에 불과했다.

부와아아아앙-!

글레이프니르의 왼팔에 장착된 인마살상용 중기관포가 고블린을 육편으로 만드는 사이, 순식간에 제압된 두 명의 엘프 기사가 부대원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다.

“이, 인간놈들이 감히!”

“이거 놔! 이거 놓으란…. 커헉!”

이윽고 관자놀이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쳐 기절시킨 대원들이 그들을 전선기지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경고. 적 기체 접근 중. 도착까지 5…. 4….]

“씨발, 이 타이밍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얀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콰앙-!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굉음.

중대원들을 향해 날아온 돌격포의 포탄을 한쪽 팔로 받아낸 글레이프니르가 그것이 날아온 곳을 조용히 응시했다.

쿠구구구구…!

이전에 보았던 델란엘의 기체와 같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몸체와 양 손에 장비된 돌격포.

[열원 및 기체 형상 식별. 이전 교전 데이터와 공통점 확인.]

“그래, 보고서에 있던 세 놈 중 하나로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