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서자와 사생아.
“으윽…!”
로렌츠 저택의 연무장.
장례식을 빙자한 귀족 모임 때문에 텅 비어버린 이곳엔 단델과 아이린 두 사람 뿐이었다.
“힘과 체력은 한참 전에 넘어섰을 텐데, 어째서…!”
“나도 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눈앞에 있는 단델을 향해 달려든 아이린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지른 주먹을 잡고 엎어 치고, 발을 내밀면 남은 한 발을 가격해 몸의 균형을 무너트린다.
“하나같이 괴물들인 애들이랑 다르게, 난 별 볼일 없는 일반인이잖아. 살아남으려면 온갖 수를 다 동원해야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공격을 전부 파훼하는 단델의 격투는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주먹을 주고받는 격투가 아닌, 날아오는 적의 힘을 이용해 받아치는 카운터.
들어오는 상대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위력 또한 증가하는 싸움법이었다.
“명색이 87중대 부중대장인데, 막내한테 지면 애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 훈련 말씀이시죠?”
“어. 난 지금도 죽을 것 같거든.”
로렌츠 영지에 파견되어있는 동안 아이린의 훈련을 맡은 것은 단델이었다.
터득할 때 까지 쳐맞으라는 얀의 훈련과는 달리, 싸우는 중간, 싸움 뒤에도 피드백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단델의 훈련은 다른 의미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 훈련을 만들어낸 게 당신이잖아….’
훈련체계가 잡히지 않은 87독립중대가 지금과 같은 체계를 갖추게 된 데에는 단델의 공이 컸다.
아무리 전투에 통달했다 하더라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재능은 엄연히 다른 법.
몸으로,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깎아가며 터득한 형벌부대 대원들의 모의전투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체계화하고 훈련 코스로 다듬었다.
관찰력, 신임 소위에 불과한 단델이 케르단 변방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좋아. 일단 끊고, 잠시 쉬자.”
그렇게 말한 단델은 아이린에게 수건을 건넸다.
군복 외투를 벗어놓은 채 검은 셔츠에 군복 바지 차림의 두 사람.
이윽고 발소리와 함께 그들을 이 자리에 모아놓은 장본인이 나타났다.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어, 훈련은?”
“양호합니다. 습득 속도가 중대원 중 가장 빨라요.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대련 결과.”
“전패입니다.”
“그럼 아직 멀었네. 후방 지원조로 빼.”
“알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는 얀에게 아이린이 달려가 외쳤다.
“격투술은 사격전에서는 쓸 일이 별로 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래. 맞지.”
아이린의 한 마디에 얀이 짧게 긍정했다.
실전과는 상관없는 격투 훈련에 진절머리가 난 탓인지, 아이린의 얼굴은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전, 사격 정확도는 부대에서 가장 높습니다.”
“보고서 확인했다. 그래서?”
평온한 어조로 되묻는 얀이었지만, 아이린은 긴장에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하, 할 수 있어요!”
“뭐?”
그렇지만 용기를 낸 것인지, 아이린이 얀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아이고….”
그걸 들은 단델이 못 말린다는 듯 침음성을 냈지만, 아이린은 그걸 알아챌 겨를도 없었다.
이윽고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린이 급히 말투를 고쳐 말했다.
“아니, 하, 할 수 있습니다!”
“말투 지적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한 얀이 아이린이 한 말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위.”
“예.”
자신을 부르는 얀의 한마디에 단델이 다가왔다.
“어떨 것 같아?”
지레짐작이나 눈대중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대원들의 자질을 평가하고 영입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그들의 성취를 평가하는 것은 부중대장인 단델의 몫이었다.
“안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저 저는…!”
그렇게 말하며 반박하려던 아이린은 이내 이마에 느껴지는 격통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자. 너 방금 죽었다.”
격통의 근원은 단델이 들고 있던 펜의 뒷부분. 뒤늦게 그것을 알아챈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어, 언제….”
“침투조 투입 예정인 애들은 다 보고 피한다.”
그렇게 말한 얀이 아이린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린. 실전에 나가본 적 있나?”
“어, 없습니다.”
“그럼 너 죽는다. 무조건.”
얀의 한 마디를 들은 아이린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입대한 신병일 때의 자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
반사신경, 사격술, 체력. 실전에 필요한 부분에서는 87중대 중대원들을 전부 뛰어넘었다.
그런데 왜?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인데요.”
“내가 해야 하나?”
“제가 하면 효과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안경을 고쳐 쓰는 단델을 보며 얀은 푸념하듯이 한숨 쉬었다.
“그래. 악역은 내가 제격이라는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얀이 아이린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때릴 거다. 죽도록 아플 거야.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서 내게 맞서라.”
“예, 예!”
“니가 신호해, 그럼 들어갈 테니.”
고개를 끄덕인 아이린이 얀과 마주선 뒤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내 준비를 마친 아이린이 표정을 굳힌 채 얀에게 달려들었다.
“흐아압!”
그리고 그 순간.
뻐억-!
충격. 대포로 후려친 듯한 엄청난 충격이 아이린의 몸을 강타했다.
“흐윽!?”
그렇지만 이미 얀의 움직임을 보고 예측한 바, 피격 예상부위에 마력을 끌어 모은 뒤 곧바로 반격에 들어간다.
아니, 정확히는 들어가려 했다.
“어어!?”
단델이 쓰던 기술이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은 아이린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반격자세 그대로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 순간, 얀은 그녀의 정강이를 차올려 그대로 땅에 쓰러트렸다.
“빨리 일어나야…!”
그렇게 생각하며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위를 쳐다본 순간.
뻑!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양 손을 감싼 얀이 아이린의 머리를 향해 양 손을 내리꽂은 것이었다.
이윽고 한 번 더.
뻑!
한 번 더.
뻐억!
혼신의 힘을 다한 얀의 강타가 그녀의 머리를 내리칠 때마다, 그것을 막아내는 그녀의 팔에 모인 마력이 옅어지고 있었다.
“집중해!”
“흐윽!?”
흐려지는 의식. 그 와중에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공격하는 얀의 고함소리 때문이었다.
“지금 양 팔에 마력을 풀면 불구가 된다! 마력 모아! 버텨!”
“네…. 네!”
그렇게 외치며 아이린의 정신을 다잡는 것과 동시에, 얀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녀의 양 팔에 둘러진 마력장에 막힌 얀의 주먹이 터지며 피를 쏟아냈다.
“으, 으윽!”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얀의 주먹에서 튀는 피, 그가 내뿜는 살기.
거기에 압도당한 아이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필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모아 내리쳐지는 얀의 주먹을 막아낼 뿐이었다.
뻐억-!
마지막 일격.
그것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여기까지.”
“하아…! 하아…!”
종료를 선언한 얀이 피 묻은 손을 툭툭 터는 사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단델이 아이린을 잡아 일으켰다.
“정신이 좀 들어?”
“아, 어…!”
아직도 넋이 나가있는 아이린을 보던 얀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아이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전까지 대련하고 있던 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제 봐봐. 너와 내 몸 상태가 어떤지.”
그렇게 말하며 얀은 두 팔을 벌려 자신의 손을 보였다.
핏줄이 터져 피가 뚝뚝 흐르는 얀의 두 주먹.
그에 비해 마력장으로 온 몸을 두르고 있던 아이린은 긁힌 생채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널 죽이려고 달려든 난 부상당했고, 넌 그렇지 않지. 체력 소모도 너에 비해 내가 압도적으로 커. 그런데, 넌 방금 날 이겼다고 할 수 있나?”
“….”
얀의 말을 들은 아이린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통제된 공간에서의 1대1 전투조차도, 살육전이 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져. 기술이나 힘의 유무를 따지기 이전에, 의지가 꺾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
대항할 수 있었다.
마력을 끌어 모아 얀의 주먹을 비껴가게 할 수도 있었고, 아예 힘으로 얀을 들어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럴 마음만 먹으면, 아이린은 너무나도 쉽게 눈앞에 있는 자신의 중대장을 이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린은 그러지 못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우리가 투입되는 곳은 전장이야. 언제 어디에 날아올지도 모르는 포탄에 옆 사람이 다진 고기가 되고, 튕겨 나온 돌조각 하나에 내장을 쏟는 전장.”
혼자서 자책하는 아이린에게 선고와도 같은 얀의 말이 내리꽂혔다.
“단순히 네 의지만으로 가고 말고를 결정할 수는 없다. 후방에서 실전을 겪어. 아군이 죽는 것, 적을 죽이는 걸 경험하고, 익숙해져라. 네가 나서는 건 그 다음이다.”
“…알겠습니다.”
이 이상의 반론은 없었다. 얀의 부연설명에 아이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생했어.”
단델이 건넨 수건에 대충 피를 닦아낸 얀이 아이린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잠깐 추스르고 있어. 마실 거라도 좀 가져다줄 테니까.”
짧게 그녀를 위로한 단델 역시 얀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홀로 남은 아이린이 연무장에서 싸움을 곱씹고 있을 때, 얀은 연무장 밖으로 나와 담뱃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치익-!
“이제 비싼 담배 피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을 부르며 다가온 단델의 목소리에 피식 웃어 보인 얀이 담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치켜들었다.
“돈 아까워.”
“쓰지도 않으시는 분이 그런 말씀 하십니까?”
“남이사 쓰던 말던.”
그렇게 말한 뒤 담배연기를 내뱉은 얀이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임무가 내려왔다. 장소는 중부전선. 우리 중대가 가장 먼저 투입되고, 가장 나중에 복귀한다.”
“뭐, 항상 하던 임무네요.”
“아니. 이번엔 달라. 부대원들의 2할은 죽어나갈 테니까.”
그 말을 들은 단델이 말을 멈춘 뒤 얀을 바라보았다.
“중대장님. 전사자 비율이 20%면 부대 재편입니다.”
“그건 일반 사단 기준이잖아. 우린 형벌부대고. 까라면 까야지. 충원은 해준다더라.”
“누가 지시한 작전입니까?”
“2황자. 가르드.”
뿌득, 단델에게서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사연이 많은 것 같은데.”
“제 부모님이, 2황자파에게 숙청되셨으니까요.”
“클라우스 남작은 2황자를 지원하는 걸로 안다만.”
“집안싸움입니다. 현 가주는 승리했고, 저흰 패배했죠. 덕분에 전 동생들과 함께 본가에 입적한 뒤….”
“장교 신분으로 형벌부대에 끌려 들어왔군.”
“본가의 장남 대신에 말이죠.”
푸우-
이 사연,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켈트 교국에서 머리통을 날린 아이락과 그걸 바라보는 아이린의 얼굴을 떠올린 얀이 피식 웃음지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떠오르셨습니까?”
“아니. 웃기잖아. 열다섯 살짜리 애한테 전선에 가라느니 살해에 익숙해지라느니.”
“하하, 전쟁이 웬수죠.”
단델의 한마디에 얀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전쟁을 끝낼 거래! 그럼 다같이 평화롭게 사는 거야!’
그 옛날,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녀의 한 마디를 떠올린 얀은 쓰게 웃으며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전쟁이 웬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