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게릴라(3)
투콰앙!
굉음과 함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거포가 불을 뿜었다. 뒤로 뛰어올라 어렵지 않게 피해낸 얀은 침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해안 경비를 설 필요가 없었단 말이군.”
고지대를 점거하여 섬 전체를 커버할 수 있으며 화력 또한 절륜하다.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벨로스터를 통째로 가루로 만들었겠지.
“이걸로 확실해졌군. 이 해적들의 배후에는 잔스카르가 있어.”
해적 같은 비정규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대응 속도. 그것을 확인한 얀이 입가를 비틀었다.
고대인의 유물을 해적이 다룬다는 시점에서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이것을 기록함으로써 물증을 확보한 셈이었다.
“계속해서 주의를 끈다. 섣불리 이탈하면 순양함이 침몰할거야.”
[지시 확인.]
얀의 명령에 글레이프니르가 앞으로 쇄도했다. 이전까지 그들이 상대해 온 콜로서스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반응속도에 당황한 듯 뒤늦게 움직이는 입자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포격은 정확했다.
쿠와앙-!
폭음과 함께 땅이 지반 째 녹아내렸다. 압도적인 열량에 혀를 찬 얀이 계속해서 좌우로 몸을 날리며 대포의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이 이상 접근하면 직격당할 텐데.”
[예상 작전시간에서 4분 경과.]
“씨발.”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은 얀이 포대를 노려봤다. 이대로 지체하는 사이 잔스카르 함대가 개입한다면 해적들을 잡을 기회를 놓칠 것이다.
외교적 수단으로 시간을 번 사이 잠수함과 알프라이아 함대가 도착한다면, 전장은 다시 수렁에 빠지겠지.
‘작전에 실패한다면 차후 부대의 명성에 흠집이 난다.’
독립중대, 황자 직속,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그들의 본질은 범죄자 집단인 형벌부대.
자그마한 허물이라도 부풀려지고, 와전되어 커다한 상흔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사상누각을 책임지는 중대장. 얀의 행동과 성과에 부대의 명줄이 잡힌 셈이다.
‘실패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때였다.
투두둥-!
해안가에서 들려온 함포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얀이 뒤를 돌아보았다.
콜로서스 수용과 위장을 위해 컨테이너 속에 숨겨놓은 순양함의 후미 함포가 불을 뿜고 있었다.
피유우-!
그와 동시에 쏘아져 올라가는 신호탄.
“뭐야 저 새끼, 육군 발광신호도 알고 있어?”
시간이 촉박. 서두를 것.
순양함에서 쏘아진 신호탄의 발광신호를 알아차린 얀이 꼭대기의 입자포를 바라보았다.
기이잉-!
함포 소리에 정신이 팔려 벨로스터에게 포구를 겨누는 하전입자포.
“그래. 어울려 줘야지!”
카일의 의도를 알아챈 얀이 곧바로 등에 장비된 레일 캐논을 들어올렸다.
[경고. 조준 보정에 추가적인 시간이….]
“수동으로 돌려! 저걸 저지할 수만 있으면 돼!”
그렇게 말한 뒤 직감에 맡긴 채 방아쇠를 당긴 얀. 그와 동시에 섬 꼭대기에 위치한 하전입자포 또한 불을 뿜었다.
투콰아아앙-!
쿠오오오-!
서로를 향해 쏘아져나가는 두 개의 광선. 그렇지만 얀이 노리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한 지점에서 만난 입자포와 레일건 탄두가 교차하며 그 자리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삐이이-!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폭음이었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교차지점에 일어난 폭연과 폭압에 벨로스터를 노린 입자포가 산란하여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
“저게 무슨…!”
벨로스터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 수병들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들릴 리 없는 얀은 아랑곳하지 않고 레일 캐논을 등에 수납했다.
“닐. 기체 출력 올려. 끝까지.”
얀이 정신을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알아챈 닐이 글레이프니르의 장갑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동조율 고정 해제. 최대 출력으로 가동.]
“이젠 안전이니 뭐니 토 달지 않아서 편하네.”
짧게 평한 얀이 그대로 포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글레이프니르. 대포를 피하기 위한 회피경로가 아닌 직선 코스였다.
쐐애애액-!
“이, 이런 미친!”
“저건 또 뭐야!?”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입자포를 조작하던 해적들이 놀라는 사이, 글레이프니르는 이미 지척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쿵-!
기사들의 갑옷처럼 정갈하게 생긴 것이 아닌, 마치 짐승의 갈기와도 같은 날것의 모습.
거기에 혼비백산한 해적들이 대포를 버린 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포대 무력화 완료. 시간 얼마나 남았어?”
[작전 시간 7분 경과.]
“젠장, 맨몸으로 날뛰어도 잠수함을 부수는 게 고작인데.”
방금 전의 폭음으로 잔스카르 해군 또한 이변을 알아챘을 터, 위장을 유지한 채 몸을 빼기 위해서는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전술 제안.]
눈살을 찌푸린 얀을 향해 닐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제안? 이 녀석이 직접?
의문을 표한 얀이었지만 닐은 얀의 눈앞에 무력화한 하전입자포의 설계도면을 띄웠다.
[본 입자포는 정상 기능을 유지중이며 인류 연방의 제식번호를 부여받음. 스캔 결과, 사용자 권한에 의한 제어가 가능.]
“그 말인즉, 노획이 가능하다?”
[긍정.]
닐의 말을 들은 얀은 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닐이 표시한 부분에 글레이프니르의 손을 집어넣었다.
콰드득-!
입자포 안으로 들어간 글레이프니르의 손이 인식장치를 건드리는 것과 동시에 닐이 대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K-9 하전입자포 제어기관 강제 접속 완료. 긴급 상황에 의한 인류 연방군 징발 명령 발령.]
닐이 그렇게 말하자 처음 듣는 목소리가 글레이프니르의 조종석에 울려 퍼졌다.
[제식번호 K-9 00782호. 상위 AI의 인격정보 인식. 제어권 이양 개시.]
“저 대포도 너랑 같은 인공지능이 있는 건가?”
[중요하지 않음. 관제인격 삭제 명령. 제어권 획득 완료.]
[인류에게 영광을]
[인류에게 영광을]
짧은 구호와 함께 화면에 조준점이 나타나며 글레이프니르의 오른팔과 하전입자포가 연결되었다.
“징발이라니, 훌륭한데?”
[인류 연방 소속임을 인지하고 있는 AI가 본 기체를 공격함. 이는 중대한 규정 위반이며, 이에 따른 처분으로 해당 입자포의 제어 AI를 말소함.]
즉, 힘과 계급으로 억지로 굴복시켰다는 말이었다.
‘일종의 하극상이군. 그래서 빡친 건가?’
생각보다 성질이 더러운 인공지능인걸까 생각한 얀이었지만 굳이 입 밖에 올리지는 않았다.
[인형병기 운용 모드로 전환. 트리거 사출.]
푸쉬익-!
입자포의 옆면에서 글레이프니르의 크기에 맞는 손잡이와 방아쇠가 튀어나왔다. 이윽고 그것을 잡은 글레이프니르가 포구를 돌렸다.
“자기 무기에 당한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군.”
그렇게 말한 얀은 자신의 시야 아래에 펼쳐진 공장과 잠수함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빨리 파괴하고 몸을 뺀다. 포대는 과부하 시켜. 화력은 최대로 끌어올리고.”
[명령 확인. 조준 보정 완료. 하전입자포, 최대 임계 상태. 포격 모드, 연사로 설정.]
끼기기기기기긱-!
소름끼치는 기계음과 함께 하전입자포의 포신에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땅 속에 매립된 동력로가 과열되며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야, 야. 저거….”
잠수함 기지.
경보 소리에 잠수함에 탑승하던 해적들이 꼭대기에 위치한 하전입자포를 보며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콜로서스가, 대포를 들고….”
“이쪽을 겨누는데…?”
그렇게 말하는 순간.
투화악-!
쏟아지는 빛무리에 항구에 정박된 백상어 잠수함의 중앙이 녹아내렸다.
쾅! 투쾅-! 콰아앙-!
막사에 한 발.
공장시설에 한 발.
지휘본부에 한 발.
식당구역, 정박소, 물자 수송용 통로….
기관총마냥 미친 듯이 퍼부어대는 하전입자포의 빛무리에 잔스카르 특유의 견고한 시설물이 녹아내리며 폭발했다.
[스캔 결과. 지하 탈출루트 확인. 탈출중인 생체 반응 10개체를 확인.]
“기지 상태는?”
[파괴율 97%. 이후 복구는 불가능.]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얀이 글레이프니르가 짊어진 하전입자포를 바라보았다.
지직! 지지직!
붉게 달아오른 포신과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
마지막 한 발을 쏘면 그걸로 이 대포의 수명도 끝이겠지.
[탈출하는 인원 조준해. 잔스카르 쪽 인물일 테니.]
생포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저들을 생포하겠다고 지하를 헤집는다면 그 사이 잔스카르 해군이 글레이프니르를 발견할 터.
이미 닐의 스캐너로 살아있는 모든 해적들의 위치를 알아낸 얀이 눈을 빛냈다.
“이 기체를 본 인간들은 전부 사살한다.”
글레이프니르의 양 팔에서 수십 개의 총구가 튀어나왔다.
철저히 인마살상을 위해 제작된 소형 기관포였다.
쿠오오오-!
지하 탈출로를 향해 작렬한 하전입자포의 열선을 바라보는 해적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야, 저거….”
“본토와 연결된 마지막 터널이야…. 우린 이제 이 섬에 갇힌 거라고!”
쿵-!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말하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글레이프니르의 동체가 내리꽂혔다.
“아악! 아아악!”
“콜로서스가 내려왔다! 다들 도망쳐!”
“사방이 막혔는데 어디로 도망치라는 거야!?”
건물 안에 숨어있는 해적은 집 째로 날려버리고, 굴을 파고 숨어든 이는 직접 즈려 밟았다.
“항복! 항복하겠소!”
“우, 우린 잔스카르의 군인이요! 제르나 협약에 의한 대우를 요구…!”
- 잔스카르 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항복을 외치며 목숨을 구걸하던 해적들에게 내려온 것은 얀의 비릿한 비웃음이었다.
- 너흰 해적이야. 해적한테 국제법을 적용하는 집단이 있었나?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게 아니라 우리는…!”
- 하물며 주권국가인 잔스카르의 군인임을 사칭하기까지 하다니, 죽어 마땅하지.
이후, 그들의 하소연에 대한 대답은 기관포가 대신했다.
부와아아아앙-!
남은 작전 시간은 약 8분. 섬 안에 있던 3000명의 해적들 중, 그 누구도 살아서 이 섬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
“함선정보 확인! 벨로스터입니다!”
“신호 확인하게! 작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훈련을 빙자한 무력시위를 마치고 이틀 만에 항구로 돌아온 지크 백작의 함대.
2함대의 기함인 순양전함 갤리온에 탄 지크 백작이 그렇게 묻자 망원경으로 벨로스터를 바라보던 수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기신호 확인! 작전 성공! 적 기지 및 잠수함은 완전히 무력화함! 제국을 위하여! 이상!”
“오오!”
“됐어!”
수병의 말을 들은 함장들이 두 주먹을 꽉 쥐며 환호했다.
알프라이아와의 해전에서 지크 백작의 기지로 얻어낸 대승리. 이를 통해 진작에 장악할 수 있었던 제해권을 드디어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해군으로써는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정말로 혼자 해적을 쓸어버릴 줄이야…!”
“놀라운 전과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번에는 저희가 기사단에게 큰 빛을 졌습니다.”
“동감일세.”
부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지크 백작이 점점 가까워지는 벨로스터를 바라봤다.
“2함대 사령관 지크 웬리 백작이 명한다. 전 함대. 함대 대열을 변경, 이번 전투의 영웅을 맞이하라. 이상.”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의 직접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신호병이 힘차게 깃발을 흔들었다.
“저게 뮈 하는 거야?”
돌아오는 벨로스터의 갑판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얀이 자신의 옆에 다가온 카일에게 물었다.
전투 대열로 모여 있던 함대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다.
“아버지도 참,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하시네.”
그렇게 말한 카일은 피식 하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윽고 점차 함대와 합류하는 벨로스터.
지크 백작의 기함을 필두로 양 옆으로 늘어선 함선들은 마치 벨로스터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