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타우르(2)
- 얀! 괜찮나!?
- 이런 미친 팔이…!
곳곳에서 기사들의 침음성이 흘러나왔지만 타우르는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글레이프니르와 얀을 향해 꼬리에 달린 입자포를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동조율 고정 해제. 나노머신 최대 활성화.]
닐의 목소리와 함께 제복 아래의 얀의 온몸에 실핏줄이 올라왔다.
피 속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제어를 잃고 이리저리 날뛰는 느낌. 온 몸이 통째로 터져나갈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느낌이었다.
“얀. 아까도 말했지만 이 이상 끌어올리면 네 몸은…”
“당장 뒤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이를 악문 얀은 그렇게 말하며 요동치는 온 몸을 다잡았다.
[부적격 지성체. 대답을 듣겠다.]
“그 사이에 별명까지 지어놨어?”
[해당 AI의 농담회로에 결함을 확인. 시급한 삭제, 혹은 폐기가 필요함.]
거대한 기체를 차지한 타우르에게 닐 또한 짜증이 났는지, 자신의 주인을 부적격 지성체라고 칭하는 AI를 비꼬았다.
“들었지? 좆까라는데.”
닐의 응답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있던 타우르의 AI.
[귀하와 그 파일럿의 사고회로는 심각하게 모순되어있다. 인류연방 관리수칙에 따라, 귀하를 소거한다.]
그렇게 내뱉은 뒤, 타우르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하전입자포를 발사했다.
쿠오오오-!
- 얀 중위!
- 이런 제길! 직격이야!
기사들의 침음성과 함께 조금이라도 타우르의 주의를 돌리려는 포격이 이어졌다.
정신을 파린 병사들 또한 포격을 재차 시작하며 타우르가 있는 자리에 수많은 포탄이 쇄도했다.
[요격 시스템 1차 복구 완료. 요격 개시.]
그러나 타우르의 한 마디와 함께 그의 등판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빛줄기.
수십 발의 탄환을 전부 맞춘 빛줄기들은 철갑탄의 탄두를 녹여 탄도를 비틀고, 고폭탄을 공중에서 폭발시키며 상처 하나 없이 구덩이를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놈이 올라온다!”
- 이렇게 된 이상 몸으로라도 막아야 해! 로랑! 샤드!
- 알겠습니다!
- 이판사판이군요!
케인의 명령을 받은 두 기사가 앞서가는 케인과 함께 타우르로 돌진하려는 그 순간.
- 잠깐만! 포연 속에 무언가가!
발터의 외침에 기사들이 글레이프니르가 있던 지점을 들여다봤다.
“얀 중위, 어떻게…?”
콜로서스 안에서 그 광경을 본 케인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글레이프니르. 그것도 온 몸의 장갑판을 활짝 열어젖힌 이질적인 형태의 글레이프니르였다.
- 장갑 틈새에서, 연기가…
활짝 열린 장갑 틈새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연기. 온 몸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에 둘러싸인 글레이프니르의 모습은 기계로 이루어진 콜로서스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파일럿 상태 확인. 응답 바람.]
“그래. 아직 멀쩡하다.”
꺼질 것 같은 미약한 얀의 목소리가 닐의 부름에 답했다. 반쯤 멀어버린 한쪽 눈은 나노머신의 과부하를 이겨내지 못했는지, 수정체 속 투명한 액체와 피를 함께 쏟아내며 완전히 부서져있었다.
“팔다리 중 못쓰게 된 곳이 있나?”
“눈 한쪽이 전부야. 영원히 회생 불가지만.”
“불행 중 다행이네. 반신불수는 솔직히 되기 싫었거든.”
그렇게 주고받는 것과 동시에 얀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게, 네가 보던 세상이었구나. 닐.”
모니터 너머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시야.
눈동자를 움직이자 곧바로 반응하여 움직이는 글레이프니르의 몸체를 바라본 얀이 눈앞에 있는 타우르를 바라보았다.
[의문. 당 기체가 방금의 포격을 피해낼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함. 그럼에도….]
“0은 지랄, 피해지니까 피한거지.”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타우르를 향해 몸을 날리는 글레이프니르.
반응속도나 기체의 순발력이 빠르고 느리고를 논할 단계가 아니었다.
오감이 수십 배 증폭되어 의지가 가는대로 움직이는 몸. 본래의 자신의 몸보다도 더욱 자유롭게 움직이는 글레이프니르의 팔다리를 느낀 얀은 순식간에 타우르의 몸체로 쇄도하여 그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카앙-!
한 번에 일격에 부서져나간 것은 글레이프니르가 들고 있는 대검뿐만이 아니었다.
특수강으로 이루어진 대검조차 비켜내지 못하는 엄청난 위력의 검격에 타우르의 거체가 크게 요동치며 장갑판을 뭉텅이 째 도려냈다.
- 비상, 비상, 긴급 요격 시스템 작동. 목표, 전방의 비인가 시스템을 운용중인 부적격 지성체.
그렇게 내뱉은 타우르가 온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방금 전 자신에게로 날아온 포탄을 전부 떨어트린 그 빛이었다.
파스스!
그렇지만 소용없었다.
글레이프니르의 장갑 틈새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에 닿은 빛들이 마치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녹아 산란해버린 것이다.
- 창조주의 빛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이 나간 기사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글레이프니르.
쾅! 투쾅!
그를 막기 위해 내리쳐지는 타우르의 굴착기와 기계 팔들을 쳐내고, 붙잡고, 비틀며 앞으로 나아가는 글레이프니르.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한 타우르가 뒷걸음질 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쿠륵! 쿠르륵!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과도한 움직임으로 너덜너덜해진 지반이 다시 한 번 주저앉으며 발버둥치는 타우르를 향해 흙더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경고, 경고, 전투 회피가 요구됨. 본 기체의 대항 수단은….
“늦었어. 새끼야.”
쿵!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타우르가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 하는 그 순간, 타우르의 등판에 도착한 글레이프니르의 승리선언이 타우르의 인공지능에게로 전해졌다.
[하전 입자포 긴급 가동. 발사까지, 2…. 1…!]
“슬슬 포기하고 좀 가라.”
투콰아아앙-!
임계한계까지 다다른 하전입자포의 포구를 글레이프니르의 레일캐논이 꿰뚫었다.
[원거리 무장 전체 파괴. 관절부 60% 파손. 장갑 송상률 42%… 전투력 평가 결과, 본 기체의 승률은 12%로 하락. 전투 불능….]
콰작!
이성이 없는 라엘이 타우르를 조작하고 있을 때, 레일캐논의 탄환이 뚫고 지나간 부분을 글레이프니르의 손이 사정없이 헤집었다.
뿌드드득…!
한쪽 무릎을 꿇고 너덜너덜한 왼팔로 장갑재를 뜯어낸 글레이프니르.
과부하에 걸려 스파크를 튀기고 있는 왼쪽 팔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생명반응 확인.]
“…그래. 나도 보인다.”
장갑재를 뜯어낸 곳에 존재하는 것은 조종석이었다.
온갖 기계장치에 둘러싸여있는 라엘의 몸을 발견한 얀은 그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아아…. 아우으으….”
수백 개의 바늘이 머리에 박힌 상태로, 온 몸의 팔다리를 거세당한 채 기계장치에 매달려있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었던 음흉한 이중간첩도,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는 야심가도 아니었으며, 수많은 아이들을 이용한 미친 과학자도 아니었다.
단지 고대인의 유물에 이용당한 고깃덩이.
전제부터 뒤틀린 반쪽짜리의 말로.
“아직, 한 발 남았다.”
우드득!
글레이프니르가 그의 몸뚱이를 매달아놓은 조종석에 레일캐논의 포신을 박아 넣었다.
‘오빠!’
한 순간 스쳐지나간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환청일까, 아니면 자신의 한줌 죄책감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얀은 눈앞의 하프엘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투콰아아앙-!
굉음. 섬광. 그것으로 끝이었다.
힘을 다한 듯 주저앉은 타우르는 그렇게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파일럿 소멸 확인. 적 AI코어유닛 전소. 적 기체, 반응 없음.]
푸쉬이익-!
열어젖힌 장갑 틈새에서 검은 연기가 걷히고, 열기를 품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점차 퍼즐을 맞추듯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글레이프니르.
거진 한 달에 걸친 전선기지에서의 사건들은, 어떠한 여운도, 감정도 남기지 못한 채, 그렇게 끝이 났다.
***
“해 떨어졌다! 랜턴에 불 올려!”
“여긴 괜찮습니다! 엘프들이 마력광을 비춰준답니다!”
전투가 모두 끝난 뒤 일주일.
라엘과 합심하여 반란을 획책했던 마을들은 이후 마을로 진입한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에게 무기와 골격을 반납하고 투항했다.
저항하는 이들의 의지는 그들을 향한 중대원들의 서슬 퍼런 눈빛과, 그들의 뒤에 서 있는 타우르를 죽인 기체. 글레이프니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처럼 녹아 사라진 듯하다.
“대장님, 발터 경으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단델의 목소리에 그곳을 돌아본 얀이 쪽지를 받아들었다.
‘마지막 콜로서스 골격을 확보. 얀 중위와 단델 소위는 전선기지로 출두할 것.’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너랑 같이 본부에 얼굴 비추라는데, 우리 애들 뭐 사고 친 거 있어?”
“예!?”
갑작스럽게 툭 던져진 얀의 한마디에 다른 중대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내 단델의 표정을 본 중대원들은 십년감수했다는 얼굴을 한 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아, 여기 추가 내용이 있습니다. 사고 때문이 아니라, 지난 전투에 대한 포상 같은데요?”
“삼 일을 쳐먹고 마셨는데 더 준다고?”
“고대병기 아닙니까. 심지어 거진 혼자서 잡아내셨고요.”
그렇게 말한 단델의 시선이 얀의 얼굴에 닿았다.
이윽고 착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단델을 보며 얀은 한숨과 함께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전쟁터에서 눈 한쪽 사라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지만, 정말 다른 데 이상은 없으신 겁니까?”
“없어. 우리 정비반장 공인이야.”
중대장의 건강에 정비반장의 공인이 왜 필요한지 단델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얼추 마무리가 되는군.”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당연히 빨리 해야죠.”
대치 상황이 끝난 엘프 마을을 관리하는 데에는 단델의 공이 컸다.
전선기지에 눌러앉은 엘프들과 협상하면서 엘프와의 대화에 익숙해진 단델이 전면에 나서자, 다른 엘프 마을과 전선기지의 교류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엘프 마을들이 보유하고 있던 콜로서스 골격을 징발이 아닌 구입이라는 명분으로 제국의 물자와 교환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런 능력은 나한테는 없지.’
기껏해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레이하운드 중대를 앞세워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는 정도인 얀에 비해, 단델의 방법은 엘프 마을과 제국군,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방식이었다.
“이걸로 당분간 식량난은 해결, 알프라이아의 활동영역도 줄어들어.”
“주요 거점이 날아가고, 근방 마을에서의 민심도 잃었으니 당연한 거지.”
치익!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본 렌이 짧게 평하자 얀은 그렇게 답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푸우-
내뿜어져나온 담배연기. 이윽고 이전에 라엘을 쐈던 유적 입구로 향하는 행렬이 일제히 마력광을 만들어 은하수와 같이 마을 한편을 수놓았다.
“와~ 저건 뭡니까?”
“위령제. 라엘에게 희생당한 애들을 기린다던데.”
그렇게 말한 얀은 얼굴을 찌푸린 채 자신이 피던 담배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이윽고 잠시 후, 다 피지도 않은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려 밟아 끈 얀이 혀를 차며 읊조렸다.
“이제 담배도 맛없네.”
그러는 사이 유적으로 향하는 행렬 곳곳에서 올라오는 창조주의 상징물들.
“깊은 구렁 속에서, 나 창조주께 부르짖사오니,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이 말을 들어주소서!”
“자비가 있사옵고, 구속이 있음이니-!”
“자비가 있사옵고, 구속이 있음이니-!”
“창조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자비가 있사옵고, 구속이 있음이니-!”
“자비가 있사옵고, 구속이 있음이니-!”
위령제의 시작을 할리는 축문과 함께 각지의 유적으로 퍼져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잠시 바라본 얀은 발걸음을 돌려 글레이프니르에 몸을 실었다.
[굿 모닝 파일럿.]
“낮에는 그런 소리 한 번도 안하는 주제에.”
기체에 몸을 연결하자마자 들리는 닐의 농담에 대충 답한 얀이 라나가 살던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이다.”
“손님이 오셨어.”
한쪽 팔이 너덜너덜해진 글레이프니르였지만, 그것을 대하는 엘프들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타우르를 부숴버리는 광경을 멀찍이서 목격한 몇몇 엘프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가?
이윽고 기체에서 내려 마을 변두리에 있는 유적을 찾아간 얀.
마을 변두리에서 사당까지 유적으로 향하는 길은 위령제의 흔적인 마력광이 가득했다.
쏴아아아-
침엽수를 스치는 바람이 다 떨어지는 낙엽을 휘날리며 방문객을 맞이했다.
가을이 끝나고 어느덧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숲속.
오색찬란한 천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것을 비추는 마력광과 어우러져 형용할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마치 티 없이 발랄했던 그 아이의 색동옷처럼 오색찬란한 길.
홀로 천천히 그 길을 걸어가던 얀은 이윽고, 그 길의 끝에 있는 무너진 유적에 도착했다.
영구 폐쇄와 함께 라나의 몸을 끌고 들어갔던 시설.
금줄과 꽃들로 수놓아진 무너진 유적은 마치 그 아이가 뛰어놀다 간 것처럼, 색색의 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스륵-
품속에서 붉은 천을 꺼냈다.
이전에 피를 흘리는 그 아이에게 감아줬던 붕대였다.
이미 검게 죽어버린 피 때문에 검붉은 색으로 변해버린 천이었지만, 얀은 그 천을 금줄 한 가운데에 감아두었다.
쏴아아아-!
어느새 불어온 바람이 라나의 묘에 놓인 꽃들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와 동시에 숲 속 곳곳에서 죽어간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등불을 올려 보내는 것이 보였다.
“후우….”
색색이 찬란한 꽃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얀. 그리고 그런 그의 시야에, 홀로 날아가는 등불이 눈에 들어왔다.
괄시받고, 핍박받던 라나의 이름이 적힌 등불. 그것이 올라간 곳을 더듬어보자, 멀찍이 그녀의 할머니가 그 등불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래. 아무리 무당이라도, 옷이 유난히 깨끗했었지.”
군납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살림에도 꿋꿋이 그 몸에 걸치던 색동옷은, 손녀를 무당으로 쓸 수밖에 없는 할머니 나름의 죄책감이었을까.
하늘로 올라간 꽃들과 라나의 등불이 한데 어우러져 하늘 높이 날아간다.
라나의 무덤에서, 이름 없는 언덕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얀과 노파는 하늘을 향해 멀어지는 등불을 얼마간 쳐다본 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홀로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날아간 라나의 등불이, 다른 이들의 등불과 함께 어우러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