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39화 (39/186)

39. 타우르(1)

“비상! 발굴지역에서 진동 확인했습니다!”

보초병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전선기지에서 뛰쳐나왔다.

지난 삼 일 동안 콜로서스 조종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전투 준비에 한창이었던 기사들도 찌뿌둥한 몸을 풀고 하나 둘 정비창에서 콜로서스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기사단장님께서 먼저 돌입하십니다! 중위님은 사격 위치로 이동해주십시오!”

- 확인.

확성기를 통해 짧게 답한 얀의 글레이프니르가 정비창에서 걸어 나왔다.

등에 장비된 레일캐논과 허리에 가로로 수납된 대검은 평범한 콜로서스가 들기에도 벅찰 만큼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열원 감지. 지하 120미터 지점에서 상승중. 도착까지 앞으로 1분.]

- 1분 뒤에 놈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닐의 안내를 기사들에게 전하자 알았다는 듯이 발광신호로 응답하는 페이지 콜로서스들.

케인이 조종하는 6호 콜로서스 역시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며 얀의 말에 알겠다는 발광신호를 보냈다.

“조종석에 이런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급격한 기동중 사격관제는 제어 AI에 과부하가 걸려. 조준 보정은 내가 담당하는 게 효율적.”

목덜미에 신경을 연결한 얀과 등을 맞대고 앉아있는 것은 렌.

그녀의 허리께에 장착되어있던 기계장치에 연결된 네 개의 전선이 조종석 곳곳에 연결되어있었다.

[생체단말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함. 본 AI는 기동간 사격과 같은 임무 또한 100%의 효율을 낼 수 있음.]

“저렇게 말하고 있는데.”

“건설기계를 무기화한 기체라고 해도, 출력은 이 기체의 열 배 이상이야. 자존심 세워봤자 의미 없어.”

[본 AI는 자존심이라는 감정회로를 탑재하지 않음. 생체단말의 발언을 정정할 것을….]

쿵-

조종석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진동에 렌과 닐의 말다툼이 멈췄다.

예정된 위치에 도착해 등에 장비된 레일캐논을 꺼내드는 글레이프니르.

그와 함께 작전지역에 도착한 다른 기사들 또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조종간에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다!”

쿠콰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발굴지역이 통째로 박살나는 것이 보였다.

폭음에 놀란 숲속의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난 것과 동시에, 폭발로 일어난 흙먼지가 발굴지역을 가득 채웠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경계 철저히 해!”

확성기를 향해 그렇게 말한 케인이 긴장된 눈빛으로 흙먼지가 일어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뭉게뭉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장갑판으로 뒤덮인 거대한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르르르….

이윽고 흙먼지가 걷히자 모습을 드러낸 타우르.

낮게 깔려있는 몸체를 지탱하는 네 개의 거대한 다리.

굴삭기와 같은 공사장비로 된 거대한 두 팔.

그리고 마지막으로, 끄트머리에서 열을 발산하고 있는 거대한 꼬리.

육중한 갑각으로 뒤덮인 전갈과도 같은 모양이었다.

엘프 종족의 마을 하나가 통째로 걸어오는 듯한 거대한 크기에 그것을 보는 병사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괴물이다…. 진짜 괴물이잖아!”

“저런 걸 무슨 수로 잡으라는 거야!”

단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병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범접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은 기술에 대한 경외. 어쩌면 동경과 같은 감정이 병사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총구를 땅으로 떨어트렸다.

“제군들! 날 보라!”

그런 병사들의 마음을 다잡은 것은 경장 차림으로 전선에 나온 클라우스 황자였다.

“눈앞에 있는 창조주의 유산은 거대하고, 그에 대항하는 우리들은 한없이 미약하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한마디에 일축한 황자의 말에 병사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럼에도 그대들에게 감히 청하니, 두려워 말라! 제국 최강의 기사 케인 로렌츠와! 바일사르 제국 황자 클라우스 반 바일사르가 그대들과 함께 서리라!”

- 황자님을 위하여!

- 다들 고개를 들어라! 우린 살아남을 것이다!

전장으로 직접 뛰쳐나온 황자의 연설. 그리고 마지막에 들린 케인의 외침에 먼저 총을 다잡은 것은 지난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케인의 모습을 기억한 병사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래! 여기서 죽은 수는 없지!”

“기사단장님을 따르라! 황자님을 따라!”

쿠오오오-!

마치 울음소리와도 같은 기묘한 외침이 병사들을 휩쓸었다.

타우르의 함성소리. 그렇지만 거기에 맞서는 병사들 또한 미친 듯이 두려움을 이겨내며 자신의 위치를 사수했다.

“1포대부터 12포대까지 방열 완료했습니다!”

“1포대부터 관측사격 개시!”

쾅! 투쾅!

전선기지에서 쏘아올린 포탄이 타우르가 서있는 곳을 휩쓸었다.

초탄이기에 대부분이 빗나갔지만, 두어 발 정도가 타우르의 상부장갑에 명중해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 아아아아아-! 야아아안-!

확성기? 모르겠다. 콜로서스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목소리가 케르단 대삼림을 가득 메웠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것은 얀 혼자뿐.

“라엘….”

들려오는 그이 목소리에서는 한 줌의 이성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곧바로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타우르.

그것을 본 얀이 글레이프니르를 조작해 레일캐논으로 타우르를 겨눴다.

“조준 완료.”

삐-!

렌의 목소리와 함께 들린 경고음에 맞춰 방아쇠를 누르는 글레이프니르.

이윽고 굉음과 폭음이 온 전선을 휘감으며 레일캐논이 불을 뿜었다.

카앙-!

예상치 못한 충격에 당황한 듯한 걸음 물러서는 타우르.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비관통. 잔탄수 다섯 발.”

“젠장.”

장갑 일부분이 우그러진 것 까지는 좋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충격에 자극받은 듯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타우르의 속도가 증가했다.

- 발을 묶어야 한다! 포격 개시!

고폭탄과 자탄이 들어찬 콜로서스들의 돌격포가 불을 뿜었다.

얀의 레일캐논으로도 뚫리지 않은 장갑에 철갑탄을 때려 박아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만, 고폭탄의 열과 충격 그리고 비산하는 자탄의 파편들이 장갑과 구동계의 틈새에 들어가 유격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였다.

쿠오오오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글레이프니를르 향해 돌진하는 타우르.

마치 사이즈를 수십 배로 불려놓은 투우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레일캐논 수납. 무장 변경.]

손에 든 레일캐논을 등에 수납한 글레이프니르가 허리춤에 장비된 대검을 들었다.

양 손으로 쥔 거대한 대검. 콜로서스의 키를 조금 넘을 정도로 거대한 철덩어리를 짊어진 글레이프니르가 곧바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타우르를 향해 쇄도했다.

쿠콰앙-!

압도적인 운동량과 함께 맞부딪힌 검과 타우르의 장갑이 굉음을 내며 불꽃을 튀겼다.

다른 콜로서스라면 이미 전신이 우그러졌을 어마어마한 충격.

조종석에 앉은 얀은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이를 악문 채 타우르의 거대한 몸체를 받아내고 있었다.

- 크으으!?

라엘의 침음성이 들렸다.

다른 콜로서스들이 든 검이라면 맥없이 부러져야 정상일 텐데, 어째서 글레이프니르가 들고 있는 대검은 멀쩡한 것일까.

의문과 당혹이 섞인 시선을 느낀 얀이 입가를 비틀었다.

“렌. 아무래도 이거, 생각보다 쓸만한 거 같다.”

“레일캐논의 탄환 재료로 공수해온 특수강을 검의 형태로 가공. 현재 제국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최대 강도.”

글레이프니르의 손에 들린 대검은 탄으로 채 가공하지 못한 원자재를 겉면만 가공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 엄청난 무게를 관절 강도와 출력으로 들어 올린 글레이프니르는 그 육중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콰직!

타우르의 돌진을 받아낸 대검을 땅에 꽂아 넣은 글레이프니르가 등에 수납된 레일캐논을 다시 장비했다.

“바로 앞에서 쏘면 뚫리겠지!”

투콰아아앙-!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겨누고 곧바로 레일캐논을 발사하자 불꽃과 함께 타우르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관통 성공. 잔탄 수 네 발.”

반동에 의해 글레이프 또한 뒤로 밀려나, 서로간의 거리가 확보된 상황.

쿠오오오-!

비명인지 분노에 찬 함성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른 타우르의 모습은 고대의 병기가 아닌 미쳐 날뛰는 괴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뭐야, 꼴에 빡돌았네?”

기계장치 너머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에 얀의 입가에 띤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좋아, 몰아넣었어!”

“신관을 작동시켜라! 폭파한다!”

클라우스의 목소리와 함께 대기중인 병사들이 일제히 신관을 작동시켰다.

쿠르릉-!

짓눌린 폭음과 함께 요동치는 땅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타우르의 주변을 둘러싼 원형의 땅이 푹 꺼지면서 타우르의 거체를 땅속으로 처박았다.

- 좋았어!

- 마력이 다 될 때까지 삽질한 보람이 있구만 그래!

토목공사의 주역이었던 발터와 커크스가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폭음과 함께 땅 속으로 꺼진 타우르의 몸 위로 어마어마한 얀의 흙더미가 쏟아졌다.

전선기지 하나를 통째로 묻어버릴 양의 흙이 한순간에 쏟아지자 순간 그 부하를 견디지 못한 타우르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 아아아! 아아아아-!

확성기를 통해 라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들었던 대로, 기체를 조종하기 위한 처리장치로 변한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갈 데 없는 파괴본능과 눈앞에 있는 얀, 자신에 대한 증오심뿐이었다.

“전 포대, 포격 개시! 놈이 일어날 틈을 주지 마라! 콜로서스는 놈이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즉시 일점사!”

- 명을 받듭니다!

- 자탄은 효과가 없다! 차탄 고폭탄!

투콰콰콰쾅!

타우르가 파묻힌 구덩이에 야포 세례가 빗발쳤다. 미리 포격 지점을 계산해놓은 덕에 쏟아지는 포탄은 정확히 구멍 속으로 들어가 타우르의 몸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좋아! 억누르고 있어!”

“전 포대! 계속 쏴라! 포신이 다 불 탈 때까지 쏴!”

- 아아아! 으아아아아!

라엘의 비명과 함께 발버둥치는 타우르가 구멍을 파헤치며 밖으로 나오려 할 때 마다, 다섯 기사의 돌격포가 튀어나온 발을 집중사격하며 구멍 속으로 밀어낸다.

- 얀 중위!

케인의 부름과 함께 튀어나간 글레이프니르.

등판에 올라탄 글레이프니르의 손에는 임계상태에 다다른 레일캐논이 준비되어있었다.

- 좋았어! 이대로라면…!

“아니, 뭔가 달라!”

환희에 찬 기사들의 함성들 사이에서 클라우스 황자의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관측 화면을 띄워주게!”

직속 병사 한 명이 들고 온 수정판에 마력을 주입하자 케인이 바라보고 있는 시야가 그곳에 나타났다.

그것을 통해 타우르의 상태를 관측하던 황자가 이를 악물었다.

“방출되는 빛의 색이 바뀌었네! 기체의 통제권이 수호자 본인에게로 넘어갔어!”

그렇게 말하는 사이, 타우르의 등에 올라탄 채 레일캐논을 겨누는 글레이프니르.

“통제권이 AI에게로 넘어가고 있어.”

“그럼 그 전에 해치우면 될 일이지.”

삐-!

충전이 완료되는 것과 동시에 격발된 레일캐논. 굉음과 함께 뻗어나간 탄환이 타우르의 등 한 부분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쿠콰아앙-!

“좋아! 성공이야!”

“해치웠나!?”

타우르의 거체를 뚫고 들어간 섬광과 폭음을 본 병사들이 주먹을 꽉 쥐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춘 타우르.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클라우스 황자와 얀은 이를 악물었다.

- 이 정도로는 날 죽일 수 없다.

들려오는 것은 라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증오와 고통에 미친 비명이 아닌, 너무나도 안정된 착 가라앉은 목소리.

근엄한 법관의 선고처럼 고저 없는 중저음에 그것을 들은 병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 인류의 유산으로 일어나, 인류의 땅에서 부정한 삶을 사는 생명. 모두 사라져야 한다.

-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 너희와 모든 불순물을 청소하고, 찬란한 인류의 영광을 이 땅에 다시 일으켜야 한다.

-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 가치 없는 목숨을 내놓아라. 너희들이 훔쳐간 모든 유산을 내놓고 발 아래에 엎드려라.

-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관리자가 인격을 갖추고….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니?”

클라우스가 침음성과 함께 포병대에게 지시했다.

“포격을 멈추지 마라! 전부 소진해도 좋…!”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투확!

포연과 화염을 뚫고 솟아오른 거대한 꼬리가 전선기지를 겨눴다.

- 이런 젠장! 녀석이 뭔가 할 속셈이야!

- 쏴라! 저 꼬리를 떨어트려!

솟아오른 꼬리를 향해 미친 듯이 돌격포를 쏘아대는 콜로서스들.

그렇지만 꼬리는 기괴한 각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포탄을 피하면서도, 끄트머리에 달린 포구에 입자를 모으고 있었다.

[적 기체 열량 증가. 하전입자포 임계까지 앞으로 3…. 2…. ]

“젠장, 제어권을 빼앗자마자 쏴버릴 속셈이군. 렌!”

“조준 보정 개시. 곧바로 들어 올려서 쏴.”

쿠오오-!

포신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글레이프니르가 손을 들어올렸다.

양 손에 들린 레일캐논이 붉게 달아오른 포신을 빛내며 그 몸체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 난 너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삐-!

타우르의 하전입자포가 밝게 빛나는 것과 동시에 레일캐논의 탄환이 포구를 스쳐지나갔다.

돌격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량에 옆으로 비틀린 하전입자포 포구가 눈부신 빛을 쏟아냈다.

쿠오오오오오-!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의 숨결이 이런 것일까.

그 광경을 지켜본 병사들은 한 순간 넋을 잃고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요, 요새 벽이….”

“통째로 녹아내렸어…?”

그나마 대부분의 병력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는 게 천만 다행이었을까?

아니, 요새 내부에 수용되어있던 부상병들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겠지.

원래의 목표였던 야포 포대들을 지나친 하전입자포의 눈부신 빛은 그들의 옆에 있던 요새 외벽을 통째로 녹여버린 뒤 그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다.

[피해 계산. 거점 구조물 전체의 20% 소멸. 내부 거주 생명체 또한 완전 소멸을 확인.]

“…과열에 의한 오차 발생. 명중 실패. 잔탄수 두 발.”

“괜찮아. 포대는 무사해.”

그렇게 짧게 평하는 얀이었지만, 그 광경을 눈앞에서 바라본 병사들.

특히 그 포격이 눈앞에서 스쳐지나간 포병대 병사들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사라진 자신들의 요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포병대! 정신차려라! 포격이 끊겼…!

- 제어권 확립. 타우르, 전투 출력으로 기동.

쿠구구구구…!

타우르는 계속해서 자신을 짓누르던 포격이 한순간 멎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바로잡는 타우르.

요동치는 발판에 자세제어를 위해 정신을 집중하던 얀의 귀에 닐의 경고음이 들려왔다.

[경고. 적 굴착기계 접근중.]

“이런 미친!?”

쿠콰앙-!

굉음과 함께 글레이프니르의 몸이 붕 하고 공중에 떴다.

바르자엘의 포탄이 온 몸에 직격한 것과 맞먹는 충격량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한 얀이었지만,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인류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어리석은 생명. 난 귀하의 존재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닐이 나타났을 때와 같이 화면에 떠오른 타우르의 문양. 곳곳에 노이즈가 껴있는 그의 문양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인정받겠다고 한 적 없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짓쳐들어오는 거대한 굴착기.

온 힘을 쥐어짜내 옆으로 피한 얀이었지만, 이내 소름기치는 감각이 그의 왼 팔을 타고 전해졌다.

“끄으윽!? 이건 또 무슨…!”

그렇게 말한 뒤 고통의 근원지를 바라본 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글레이프니르의 팔 한쪽이 완전히 짓이겨져있었다.

[해당 기체의 AI에게 경고한다. 투항하여 파일럿을 이양하라.]

얀의 기체를 향해 울려 퍼지는 타우르의 목소리. 그에 답한 것은 화면에 자신의 문양을 띄운 닐이었다.

[인공지능 타우르에게 전달한다. 귀하가 공격하고 있는 것은 인류연방에 정식으로 등록된 본 기체의 파일럿이다.]

[부정. 해당 파일럿은 인간의 신체와의 동질성을 보일 뿐, 본 AI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당 파일럿은 기체 내부에 존재하는 연방 표준 승인절차를 갖춘 상태이다. 또한, 귀하의 사고회로에 극심한 결함이 감지된다. 즉시 공격행위를 중단하고….]

[본 AI의 사고회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시 경고한다. 파일럿의 신체를 이양하라.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이윽고 잠시 동안의 정적.

글레이프니르를 완전히 부수는 것은 그 또한 원하는 바가 아니었는지, 잠시 이쪽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다.

“야, 닐. 어쩔 거냐.”

갑작스럽게 이어진 닐과 타우르의 설전을 듣고 있던 얀이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파일럿의 생명은 협상대상이 아님. 오랜 격리로 인해 폭주한 AI는 인류연방 관리규칙에 의거 소거, 삭제되어야 함.]

피식.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얀의 웃음소리와 함께 글레이프니르가 고개를 들었다.

“내 몸이 터져나가도 상관없으니, 동조율 끌어올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로.”

그와 등을 맞댄 렌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닐 역시 이전과 같은 거부는 없었다.

[명령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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