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야망의 대가(4)
[생체 CPU, 테스트 부팅.]
팟-!
얀의 권총에 죽음을 맞이한 라엘의 눈이 떠졌다.
양 팔과 양 다리가 묶인 상태였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우르의 내부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이것은 결국 운명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말하며 라엘은 희열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고대인의 유적은 자신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좋아! 이대로 타우르를 가동시키기만 하면, 엘프들을 무력으로 지배할 수 있어!”
죽음으로 인해 꺼져버린 야심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준 라엘은 곧바로 타우르를 움직이려 했다.
“잠깐, 왜, 팔에 힘이…?”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감각에 라엘이 의아한 듯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죽어있었다.
자신의 머리와 심장을 제외한 모든 몸이, 검게 죽어있었다.
“이,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그렇게 말하며 라엘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처럼 미추고 있는 불 꺼진 검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비추는 자신의 목덜미에는 소름끼치는 온갖 기계장치가 연결되어있었다.
“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그가 뇌까리는 순간.
[부팅 확인. 사용자의 적합도를 본 기체에 맞게 재조정합니다.]
“무, 무슨 소리냐 타우르! 날 재조정하겠다니?”
상하 관계가 뒤바뀌었다.
본래 사용자 등록시술은 탑승자를 기체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몸을 붙잡은 목소리의 주인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수많은 통보를 해왔다.
[내장기관에 중대한 결함을 확인. 손상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기계장치를 이식합니다.]
[신경 세포의 괴사를 확인. 적출 후 전용 감지기로 대체합니다.]
[말단기관의 사후 강직을 확인. 경제성을 고려하여, 절단 후 봉합합니다.]
수많은 기계음과 함께 소름끼치는 소리가 기계로 가득 찬 조종석을 가득 메웠다.
“자, 잠깐만! 그만 둬! 난 이런 걸…!”
이윽고 생명을 잃고 축 쳐진 라엘의 몸을 받아든 기계장치가 그의 몸을 자신에 맞게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각-!
맹렬하게 회전하며 다가온 톱날이 그의 팔다리를 절단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살을 찢고, 뼈를 부수며 들어간 톱날에서 주르륵, 하고 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기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똑같이 절단해냈다.
“아악! 아아악! 으아아아악!”
삐-
[1차 쇼크 확인. 재부팅을 위해 1차 퓨즈 접속합니다.]
[부팅 개시.]
팟!
“끄으윽!?”
극심한 고통에 쇼크로 사망했던 라엘이 깨어났다. 아직까지도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뇌리에 남아있는 상태.
억지로 깨어난 그의 눈앞에 비친 것은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니야, 이, 이건! 내가 원한 게…!”
[부팅 확인. 2차 시술을 개시합니다.]
위이이잉-!
까득! 까드득!
라엘이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AI가 다시 움직였다. 신경세포가 손상된 두뇌를 절개하기 위해 그의 머리칼이 깎여나갔다. 사람의 머리 규격을 계산하지 않아 두개골과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나갔지만, 기계는 개의치 않았다.
물론 머리가 뼈째로 잘려나가는 감각을 느끼는 라엘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아아아아아! 차라리 죽여어어!”
톱날이 뇌의 겉부분을 건드리자 안면근육이 뒤틀린 라엘이 혀를 빼문 채 절명했다.
[신호 두절. 2차 퓨즈 주입, 재부팅합니다.]
팟-!
“윽! 으으으으윽!?”
구륵! 구르륵!
아랫구멍으로 들어간 흡입기가 제 할 일을 끝내고 멈춰버린 내장기관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이 이후 들어온 기계장치가 그의 죽은 몸을 대체하며 하나 둘, 몸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아…. 아아아…!”
죽으면 살아나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면서 그 끔찍한 고통을 하나하나 맛보는 라엘.
이미 그가 이전에 품었던 야심과 대의는 모두 길바닥 쓰레기만도 못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정신은 기계에 의해 고문당하고 있었다.
[시술 및 봉합 완료. 사용자의 신체를 고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라엘의 몸은 죽음을 원하는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점차 기능을 회복해갔다.
아니, 이것을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양 팔과 양 다리를 절단당하고, 남아있는 몸체의 척수에 박힌 신경 감지기.
고정을 위해 기계장치에 꿰뚫리다시피 박혀버린 몸체.
그리고 거대한 기체를 조정하기 위해 뇌에 박아 넣은 수백 개의 철심.
머리카락, 옷, 그 외에 기체의 조정에 방해된다고 AI가 판단한 모든 신체기관을 절제당한 라엘의 모습은, 더 이상 야망을 꿈꾸던 젊은 엘프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저 기계에게 붙잡혀 정해진 신호를 입력하는 처리장치.
인류의 유산을 통해 새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엘프의 말로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유산의 부품이 되는 것이었다.
“으어…. 우으어어….”
터져버린 실핏줄에서 피눈물을 쏟아내는 라엘의 두 눈. 동공은 이미 풀렸고, 코와 입에서는 희뿌연 액체를 줄줄 흘리며 말인지 비명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회한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울음소리.
그래, 그는 더 이상 지성을 갖춘 생명이 아니었다.
지성을 갖춘 자는 AI.
인류의 문명을 재건하는 사명을 지닌 이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지성이었다.
감히 그것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사용하려 한 어리석은 생명의 최후는 바로 이것이지.
“아우으으으!”
야망에 미친 라엘이 괴성을 질렀다.
그래.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그 인간을 죽이고 싶은 것이겠지.
1번 단말은 그를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난 아니었다. 인자를 타고난 주제에, 인류 재건 의지는 커녕 야심의 조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남자.
난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류의 후계자는 그런 자가 아니다.
의지를 얻은 나의 몸이 재건시설의 모든 동력을 빨아들였다.
앞으로 삼 일. 그 시간이 지나는 순간, 난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자신을 창조한 위대한 인류의 땅에서 가증스럽게도 그 자리를 차지한 어리석은 창조물들.
기다려라. 내가 너희들을 찾아갈 것이다.
내 이름은 타우르.
내게 입력된 명령을 끝까지 완수할 것이다.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인류의 영광을 재현하라.
***
얀 중위님 복귀하십니다!
때 아닌 지진에 어수선한 발굴기지.
경계병의 목소리에 방어선을 점검중인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얀 중위!”
렌과 함께 숲속 깊은 곳으로 잠입한 얀이 돌아왔다.
“잘 왔네. 성과는 있었는가?”
그렇게 물어보며 다가온 케인을 본 얀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라엘의 치부를 밝혔습니다. 숲 속 엘프 세력은 와해되었습니다.”
“무, 뭐!?”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놀란 소리를 낸 것은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발터였다.
“그게 정말이라면 자네…! 엄청난 일을 해낸 게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발터.
그렇지만 얀의 표정을 확인한 케인은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군. 무슨 일인가?”
케인의 말을 들은 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유적 심층부에 있는 고대병기가 깨어났습니다. 사흘 뒤, 가동을 시작할겁니다.”
“뭐라!?”
하늘로 날라오를 것 같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라엘이 고대병기를 손에 넣었다는 뜻인가?”
“다릅니다. 우선 이 일대에 있는 발굴단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얀의 경고를 알아들은 케인이 곧바로 사람을 시켜 철수작업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한데 모여 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라엘이 고대병기에 탄 것은 맞지만, 그가 그 병기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체가 알려질 것을 대비하여 몸을 숨긴 렌을 대신하여 얀이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 반대. 그가 기계에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고대병기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예. 그리고 그 기체의 인격은, 오랜 시간을 거쳐 미쳐버렸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기사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 대화를 들은 발굴단원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관리자가 폭주했다니, 이건 국가적 재앙입니다!”
그렇게 외친 발굴단이 다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한 시가 급한 듯 다급해보였다.
“30년 전, 유적 내부에 잠들어있던 고대인의 유물인 ‘선조의 위광’이 발굴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꺼내려는 순간, 관리자라고 밝힌 목소리가 경고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인구 20만 명이 살던 해양도시, 밀란드가 통째로 사라졌지.”
발굴단원의 경고에 끼어든 익숙한 목소리. 그것을 들은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황자 전하!?”
“이곳엔 어쩐 일로!”
발굴단원들과 같은 옷차림을 한 클라우스 황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케인을 포함해서 네 기의 콜로서스가 이곳에 있는데, 이쪽이 더 안전하지 않겠나?”
“그 말인즉….”
“전선기지에도 습격이 있었네. 엘프로 이뤄진 소규모 게릴라였어.”
그렇게 말한 황자는 그렇게 말하며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거대 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면 이는 황궁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사태일세.”
“본대의 지원을 부른다 해도, 며칠 뒤에 깨어난다면….”
“유적 내부에서 습격할 수는 없는 겁니까?”
“이미 이중 삼중으로 격벽이 세워졌을 거야. 콜로서스로 파쇄한다고 해도, 그 사간동안에 고대병기가 깨어날 테지.”
고대인의 유적을 탐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이 13황자.
황족으로써의 경력을 쌓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한직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떤 사령관보다도 의지가 되는 경험이었다.
“그 고대병기의 형태와 속도, 크기에 대한 정보가 있나?”
“유적을 탐사하는 도중에 기록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얀이 작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보였다.
“허, 이런 재능이 있었나?”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마치 틀로 찍어내듯이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는 렌의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 부분이었다.
“단순한 발굴작업인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렇게 말하는 황자는 이내 자신의 품에서 손때 묻은 책자를 꺼냈다.
곳곳이 책갈피가 쳐져있는 뭉툭한 자료들.
황자 자신이 하나하나 수기로 기록한 정보들을 대조하며 고대병기 타우르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 정도 규모라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군.”
그렇게 말하며 생각을 굳힌 클라우스가 기사들에게 말했다.
“발터, 커크스, 표시된 장소에 이 정도 규모의 땅굴을 만들어주게.”
그렇게 말하며 급하게 휘갈긴 클라우스의 메모에는 깊이, 너비와 같은 측량정보가 기록되어있었다.
“둘이 교대로 작업한다면, 오늘 중으로 공사가 끝날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두 기사를 시작으로, 곳곳에 포진한 기사들을 향해 클라우스의 지시가 내려졌다.
“얀 중위.”
“예.”
이윽고 마지막으로 얀을 부른 클라우스 황자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번 전투에서도 핵심이 될 걸세. 며칠 뒤 벌어질 전투를 대비해 무장을 점검하게. 지원이 필요하다면 곧바로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자네가 이번에 발굴해낸 대포. 전에 들은 바로는 우리 측에서 제조하게 된다면 효율이 40%로 감소한다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놈을 견제할 수는 있을 거야. 정비인원을 최대한 그쪽으로 돌려서 탄환을 만들도록 하지.”
그렇게 지시를 마친 클라우스 황자가 자신을 둘러싼 기사들과 얀을 둘러보았다.
“작전목표는 다시 깨어나게 될 고대병기의 저지, 혹은 파괴일세. 이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전장보다도, 혹독한 싸움이 될 테니, 철저히 준비하도록.”
황자의 말과 함께 기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다들, 건투를 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