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33화 (33/186)

33. 광전사(2)

“야. 저기.”

“알아. 형벌부대…. 황자님 직속으로 배정된 녀석들이잖아.”

“듣자하니 이전 사령관 밑에서 대부분 죽고 살아남은 녀석들이라던데…. 명불허전이야.”

차량에 탄 발굴단을 호위하는 일반병들은 중간 지점에서 길 양옆에 멈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요철이 많은 산길에 바닥 또한 진창이라 예전보다 더 피로감이 쌓여 기진맥진한 상황.

그런 일반병들과 달리, 검은 침투복 차림의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휴식중인 병사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흥, 그래봤자 범죄자들로 구성된 부대잖아. 상종할 놈들이 못 되.”

“쉿! 그러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못 들었어? 눈만 마주쳐도 다른 부대랑 패싸움했다는 거.”

마지막에 들린 말에 맞장구치던 일반병이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자, 침투복 차림의 형벌부대원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언제 여기에!?”

“그, 우리가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험담이 들킨 일반병의 얼굴이 사색이 되자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거리는 형벌부대원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가 쭈그려 앉았다.

“걱정 마라. 이제 그럴 일 없다.”

“그, 그래…?”

“너네랑 충돌했다는 소리가 나오면, 우리 중대장님이 가만두질 않으시거든.”

“주, 중대장?”

“얀 베르쿠트 중위님. 저기 계신 분.”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형벌부대원.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글레이프니르의 뒤편에 기대선 얀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콜로서스 뒤가 아니면 담배도 제대로 못 핀다니, 참 얄궂은 일이지.”

글레이프니르와 나란히 선 페이지 한 기의 조종석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기사가 나타났다.

“발터 경.”

얀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씨익 웃어 보인 중년의 기사는 얀이 하듯이 조종석 아래로 내려와 품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귀족 가문에서 애용하는 고급품이었다.

“자네, 황자 전하 직속이면 봉급도 적지 않을 텐데, 그 싸구려 보급담배를 아직도 피고 있나?”

“사제 담배도 핍니다만, 이게 제일 구하기 쉬워서요.”

“허허, 담배를 맛이 아니라 약으로 피는 친구였구만.”

약이라. 마약도 약이라면 약이겠지.

속으로 그렇게 뇌까리는 얀의 시선은 시종일관 거대한 수해를 향한 채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숲 곳곳에 퍼진 엘프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착잡하구만.”

“뭐가 말입니까?”

“그게 말이야….”

얀의 되묻는 동안 담배를 입에 문 발터가 성냥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렇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성냥을 몇 번 이나 신경질 적으로 그어댔다.

“이게 왜 이러는 거야?”

“여긴 습도가 높아서 사제 성냥으로는 안 붙습니다. 여기.”

그렇게 말하면서 얀이 자신의 성냥 한 갑을 던졌다.

“오! 고맙구만. 잘 쓰겠네.”

치익!

받아든 성냥을 긋자 한 번에 불이 붙는 것이 흡족한 듯, 미소 지은 발터가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저 수해 말일세.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데, 이 대삼림 전체에 얼마나 많은 엘프들이 살고 있을지.”

“그 엘프들이 이젠 전부 잠재적인 적이라는 게 문제죠.”

라나와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달아난 라엘의 얼굴을 떠올린 얀은 한탄하듯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래도 이쪽은 무장된 콜로서스가 둘일세. 교대로 경계를 해야 하니 실질적으로는 하나가 되겠지만, 부족 엘프 정도야 간단해.”

가슴을 퉁퉁 치며 그렇게 말하는 발터를 바라본 얀은 이내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뒤 밖으로 버렸다.

“경계인원. 나머지 세 분도 데려오는 게 좋았을 겁니다.”

“음? 어째서 그렇지?”

얀의 조언에 의문을 느낀 발터가 물었다.

“야간에 고블린과 싸워보시면 아실 겁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병사들을 잠시 바라본 얀은 콜로서스 안으로 들어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부 공간에 오염을 확인. 파일럿에게 신속히 오염물질을 제거할 것을 요구함.]

“이제 담배도 내 맘대로 못 피냐.”

닐의 투정에 그렇게 답한 얀이 글레이프니르를 움직였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회색빛의 거대한 유적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다!”

“그레이하운드 중대는 휴식 후 바로 북쪽으로 진출한다! 미리 준비해!”

“예!”

이미 선발대가 투입되어 기본적인 시설을 갖춰놓았다고 했기 때문에 병사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렇지만 발굴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콜로서스에 탄 발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졌다.

- 연기다.

- 그냥 연기가 아니야. 폭약으로 생긴 연기….

- 먼저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곧바로 속도를 올린 글레이프니르가 발굴지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전력질주하는 듯한 자세로 뛰어가는 글레이프니르의 모습을 본 기사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마디씩 덧붙였다.

- 언제 봐도 무지막지한 성능이야.

- 라엘이라는 놈이 왜 그렇게 유산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기사들의 말을 뒤로하고 발굴현장에 도착한 얀은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한 숨을 쉬었다.

질서 없이 땅에 버려진 소총들, 그리고 곳곳에 불을 피운 흔적.

그 불 속에 놓여있는 수많은 인간의 뼈와 고깃덩이처럼 꼬챙이에 걸려있는 인간의 시체.

“고블린….”

조용히 뇌까린 얀이 한 손을 들었다.

글레이프니르의 팔이 수신호를 하자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기사들의 콜로서스와 병사들이 발굴현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이, 이건!?

- 호위 병력까지 모두 습격당했군. 신호탄을 쏠 새도 없이…

- 심지어 이 흔적은, 인간을 먹은 흔적이 아닌가!

곳곳에 쌓여있는 사람의 뼈를 본 기사들이 하나같이 치를 떨었다.

“젠장…!”

현장을 보고 얼굴을 찡그린 단델이었지만, 이전처럼 졸도하거나, 겁에 질리는 일은 없었다.

단지, 이전에 자신 때문에 고블린의 먹이가 된 병사들이 생각나 이를 악물었을 뿐이다.

“임무 중지! 시신 수습한다! 다들 움직여!”

“하~ 씨발 거, 휴식시간 공쳤네.”

“좆같은 고블린 새끼들, 많이도 쳐먹었어.”

단델의 외침에 형벌부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널브러진 사람의 뼈와 시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야 이거….”

“사람 뼈다. 산채로 뜯어 먹었어….”

“욱! 우욱!”

표정 없이 현장을 정리하는 그레이하운드 중대원들과 달리, 전선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는 일반병들은 곳곳에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야만적인 일을, 그것도 비무장 상태인 발굴단원들까지…!

발굴 현장이 습격당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설마 고블린들에게 먹이로 던져줬을 줄이야.

알프라이아 군에서도 좀처럼 하지 않는 야만적인 처사에 기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 이봐. 여길 보게. 라엘 그 자식은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모양인데.

씹어뱉듯 그렇게 말한 발터의 콜로서스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가리킨 곳은 발굴현장의 한 가운데.

그곳에는 인간의 피로 라엘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 제국어로 써놓다니, 친절하기도 하지.

- 개같은 놈들….

곳곳에 선혈이 낭자한 발굴현장은 마치 지옥을 보는 것만 같았다.

-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가서…!

- 안됩니다.

분기탱천한 발터의 외침을 가로막은 것은 얀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 콜로서스가 있다 해도 나무 아래에선 시야가 제한됩니다. 고블린들이 진을 친 숲속에 병력을 밀어 넣게 된다면 그대로 잡아먹힐 겁니다.

잡아먹힌다.

눈앞에 말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기에, 얀의 말을 듣는 기사들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 단델.

“예, 중대장님.”

확성기를 통해 이름이 불린 단델이 얀이 탄 글레이프니르를 바라보았다.

조종석 해치가 열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얀이 그에게 물었다.

“시신의 부패 상태는 얼마나 되지?”

“발굴단 측 검시관 말로는, 최소로 잡아도 열 두 시간입니다.”

“그럼 야간에 습격당했다는 말이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각.

엘프의 통제가 아닌 이상, 야생 고블린들은 낮에는 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 로렌츠 기사단 여러분.

- 음?

- 뭔가?

자신들을 부르는 얀의 음성에 발터와 커크스의 콜로서스가 응답했다.

- 저녁 중으로 한 번 더 습격할겁니다. 그 전에 개활지를 확보하죠.

그렇게 말한 얀의 글레이프니르가 등에 장비한 제국 콜로서스용 검을 꺼내들었다.

- 허허, 첫 임무가 나무꾼 노릇이라니.

- 빨리 끝내자고. 병사들이 방어진지를 만들 시간도 필요하니.

말을 마친 기사들이 얀과 함께 검을 꺼내들어 숲으로 향했다.

체구가 큰 병사가 끌어안아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두꺼운 나무들이었지만, 마력로에 마력을 가득 머금은 콜로서스가 검을 휘두르자 마치 갈대처럼 우수수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비켜! 머리 위로 나무 떨어진다!”

“접근금지! 잘못하면 여기서 사고사할 수도 있어!”

30분.

발굴지역의 개활지를 세 배로 넓히는 데 사용된 시간이다.

“언제 봐도 정말….”

“창조주님 만만세야.”

다른 공사장비로는 일주일이 걸려야 겨우 처리할 법한 작업을 단 30분 만에 끝내버리는 위용.

발굴작업마다 콜로서스의 지원을 받는 발굴단원들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언제 봐도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볼 때, 콜로서스는 공사 장비가 맞는 것 같아.”

“고대인들은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콜로서스의 작업을 바라보는 발굴단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의 말대로,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콜로서스는 기계 구조상으로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다.

전고가 높아 은엄폐가 힘들며, 구동계는 복잡하고, 장갑을 두른다면 무게 대비 접지압이 높아 지형 적응성 또한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로서스가 병기로써 절대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세 가지.

첫째는 마력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지속성.

별도의 수리 장비 없이 콜로서스로 콜로서스를 수리할 수 있는 상호 정비.

마지막으로, 저 육중한 장갑판의 무게를 견디며 땅에 두 발로 서는 골격 그 자체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콜로서스를 뛰어넘는 기갑장비를 목표로 수많은 과학자들과 마법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거듭했으나, 결국 그들이 낸 결론은 한가지였다.

지금의 기술로써는, 콜로서스를 대체할 기갑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유적 발굴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골격에 비해 생산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다.

“뭐, 아무리 좋아보여도.”

“우리같이 마력 없는 것들에게는 머나먼 얘기지.”

그렇게 말한 발굴단원들이 몸을 돌려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고블린 답지 않게 잘 보존되어있는 발굴장비들을 재가동시키기 위해서였다.

“나무들은 잔가지를 정리해서 주변을 둘러주십시오! 거기에 맞춰 진지를 구축하겠습니다!”

- 알겠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피투성이가 된 숲을 휘돌고 있었고 세 대의 콜로서스는 밤중에 있을 습격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

“윽! 으으윽…!”

인구가 5000명이 넘는 커다란 엘프 마을.

그 중 가장 큰 저택에 자리 잡은 라엘은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역시, 이 정도의 피로는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 건가, 거부반응이…!”

하프엘프의 특징은 인간과 엘프, 양 쪽의 피를 전부 수혈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또한 개체 나름. 고대인의 피와 나노머신은 새로운 몸에 반발하며 계속해서 라엘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방 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라엘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윽고 잠시 후, 고통을 누그러트린 라엘이 이전과 같은 평온한 목소리로 문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예. 괜찮습니다.”

그 대답과 동시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은 젊은 엘프였다.

“성공입니다! 인간놈들, 전부 고블린 밥으로 던져버렸다구요!”

초롱초롱한 눈빛의 젊은 엘프는 선망의 눈빛으로 라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하셨습니다. 이걸로 저들도 우리가 얼마나 굳건한 의지로 일어섰는지 다시 알게 되겠지요!”

온화한 미소와 함께 그의 어깨를 토닥이는 라엘.

그 광경에 다른 엘프들은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씀하셨던 아이는….”

“아! 무당집 핏덩이들 말이군요!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손짓하는 젊은 엘프.

이윽고 쭈뼛거리며 나타난 어린 엘프들을 보며 라엘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 이 마을 무당이구나?”

무당의 혈통이라 해도, 모든 혈족들이 체내에 나노머신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돌연변이와 같이,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나올 수 있는 귀중한 아이.

다른 마을에서 손님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이들은 약간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혀, 형이 그 손님이에요…?”

“그래. 너희를 데리러 왔단다.”

원하던 열쇠를 찾은 라엘의 미소가 점점 깊어졌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수십 개의 마을 사이에서도 가장 피의 순도가 높은 아이들.

이들의 피를 통해 남부 케르단 대삼림의 엘프들은 유적을 열고 들어가 창조주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이에요? 저희, 창조주님 보러 갈 수 있는거에요?”

“물론이지. 자, 함께 가자꾸나.”

“우리 믿음이 이제야 보답 받는군.”

“그래. 저 아이들과 창조주님의 유산이 있으면 우리도 알프라이아와 같은 왕국을 세워서 귀족이…!”

개국공신이 된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한 엘프들이 황홀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런 엘프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라엘의 손에 이끌린 아이들은 천천히 그의 거처 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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