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31화 (31/186)

31. 로렌츠 기사단(2)

“좋습니다! 그대로 조금 더 왼쪽으로!”

철컹, 철컹.

전선기지 공터에 놓인 콜로서스 정비창에는 오랜만에 콜로서스들이 꽉꽉 들어차있었다.

이전에 기사단이 파견되었을 때와는 달리, 하나같이 로렌츠 가문의 인장을 달고 있는 콜로서스들.

다른 제국군 콜로서스와는 다른 각진 장갑이 인상적인 기체들이었다.

“도련님. 반 년 만에 뵙습니다.”

“로랑, 커크스, 샤드, 발터. 그리고 바이슨.”

새로 합류한 다섯 명의 기사들을 둘러본 케인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다섯 기사 또한 서로가 오랜만인지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북방은 좀 어땠나?”

“어이구, 말도 말게. 어찌나 춥던지, 콜로서스 관절이 삐그덕 하더라니까?”

“이 친구 또 엄살은?”

“하하하하!”

오랜만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을 보며 케인은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저 기체가 그겁니까?”

“맞네. 지금까지 이 전선을 지켜준 든든한 기체지.”

새로 전선에 배치된 기사들의 최고 관심사는 정비창 한 구석을 차지한 글레이프니르였다.

전원이 들어와 있지 않은 기체는 기존의 진회색 몸체에 더불어 등에 수납된 거대한 레일건이 덧붙여져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듣던 대로군요. 도저히 콜로서스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외형이야.”

“등에 장비한 건, 대포인가? 어떤 원리로 발사되는 거지?”

기체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기사들이 눈앞에 있는 기체에 대한 추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비계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조종석 해치가 열리고, 그 안에서 검은 제복 차림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호오, 저 친구가….”

“얀 베르쿠트.”

“생각보다 굉장히 어린 친구군요. 도련님 또래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흰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정비복 차림의 여인이 그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보였다.

정비창을 오가는 정비병 중 몇몇이 그녀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어보는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보통 경력은 아닌 듯 했다.

“기사와 정비공이 저렇게 허물없이 대화하다니, 다른 기지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저런 식으로 정비하는 건 로렌츠 정비창뿐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벨커스 정비창 봤나? 어찌나 살벌하던지….”

그렇게 새로 배치된 기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 사이, 글레이프니르에 내장된 가상 전투를 마친 얀은 해치 바닥에 걸터앉아 새로 장비된 무장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세 번째 사격에서 조준점이 두 클리크 흐트러졌어. 장거리 저격이라면 거의 10M정도의 오차.”

“환경 데이터를 바꿔서 해 봐야겠군. 탄 제작은 어떻지?”

“가용 인원을 전부 돌려도 한 달에 열 발이 한계. 전투 한 번이면 바닥날 거야.”

“쯧, 안 좋은데.”

갑자기 정비창이 북적해진 것은 좋았지만, 덕분에 글레이프니르는 원거리 탄약이 부족한 상태. 턱을 괸 채 고민에 잠긴 얀이 조용히 물었다.”

“양산기들이 사용하는 제식장비, 이 녀석이 쓸 수는 없는 건가?”

그렇게 말하자 열려있는 조종석 한 구석이 빛나며 닐이 입을 열었다.

[조준 후 격발하는 것은 가능하나, 대부분이 재래식 무장인 바, 사격통제 시스템 적용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

“사용은 할 수 있다는 거지?”

처음 기체에 탈 때 만났던 델란엘이라는 기사. 그가 사용하던 양 팔의 기관포를 떠올린 얀은 글레이프니르를 잠시 바라보았다.

[추가적으로, 본 AI의 기준 현재 이 구역에 있는 무기체계 중 기체에 적합한 제품은 현재 장비하고 있는 것뿐이라 판단함.]

“결론은 후진 무기는 끼기 싫다는 거 아니야?”

[일부 긍정.]

이젠 아니라고도 말 안하네.

그렇게 말하는 얀이었지만 제국군 콜로서스들이 장비하는 무기의 성능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장갑에 맞는 순간 탄이 깨져버리는 돌격포에 격발하는 순간 조준기가 망가지는 기관포 등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성능이 뒤떨어지는 것이 현 제국군의 실정이었으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없으면 저거라도 써야지.”

다른 기사들이 들었으면 노발대발할 만한 발언이었지만, 얀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봐! 거기 강아지!”

밑에서 들린 목소리에 얀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 무리의 기사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얀의 얼굴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설마 또 란델 같은 부류는 아니겠지.’

자신을 향해 내려오라 손짓하는 기사들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얀은 이내 그들에게 다가가 경례했다.

“충성. 중위 얀 베르쿠트입니다.”

“엉? 우린 계급 없어. 그냥 기사니까 편하게 해도 돼.”

“…자유기사셨습니까?”

자유기사.

개인의 콜로서스를 가지고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의뢰를 받는 콜로서스 조종사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들처럼 전장으로 오는 이들은 극소수.

마력을 지닌 퇴역기사나 부유한 상인들이 건설, 운송용으로 골격만 구매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콜로서스를 활용하기 전과 후의 무역량 차이가 150%가 넘어간다는 것은 노동현장에서의 콜로서스가 얼마나 큰 힘을 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기사단장님과 친분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아, 우리 도련님? 당연하지. 같은 집안 사람들인데.”

“같은 집안?”

친척이라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의아해하고 있을 때, 기사 중 한명이 얀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은 기사들끼리 술 한 잔 어떤가?”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아니, 왜?”

“근무시간이니까요.”

어깨에 새겨져 있는 형벌부대의 낙인과는 억만 광년정도 동떨어져있는 얀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상하군. 내가 봤던 형벌부대들은 완전히 달랐는데.”

“근무시간이 탈영 모의시간과 일맥상통하는 친구들 아니었나?”

“난 콜로서스 아니었으면 진작에 그 친구들한테 죽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얀의 한마디에 각자 의견을 내뱉고 있던 때였다.

- 자네들 아직 잠이 덜 깼나보군? 근무 시간에 잡담이라니.

“오, 도련님!”

“알프라이아 콜로서스는 느낌이 어떻습니까!?”

케인의 잔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외치는 기사들.

이전에 만났던 제국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널널한 분위기에, 순간 얀 자신도 휩싸여갈 뻔 했다.

- 장갑도, 운동성도 기존의 4호를 압도하고 있네. 새삼 그쪽과 우리의 기술력 차이를 눈으로 확인한 느낌이네.

“그 정도로 차이가 납니까?”

- 물론 단점 또한 명확한 기체야. 마력 소비가 너무 커서 웬만한 엘프들도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

인간 평기사가 다룬다면 한 시간.

엘프 평기사가 다룬다면 반나절이 한계라는 것이 케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잠깐만요 도련님. 그걸로 지금 20시간 기동하고 오시는 거 아닙니까?”

“우리 도련님 또 자기자랑 시작하시네.”

- 다 들린다네. 배은망덕한 친구들.

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때, 건장한 그들의 근육 사이에 묻혀있던 얀에게 뜻밖의 제안이 날아왔다.

- 얀 중위. 이참에 훈련 삼아 모의전 어떤가?

전에 말한 기체 조정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한 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솜씨 구경 좀 하겠는데.”

흥미로운 눈으로 눈을 빛내는 기사들. 그런 그들을 빤히 쳐다보는 케인의 콜로서스에서 뭐하냐는 듯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자네들은 빨리 탑승 안하고 뭐하는 건가? 자네들도 훈련 해야지.

“아.”

“젠장. 된통 걸렸군.”

***

초록색 잔디가 나 있는 요새 앞 전선.

알프라이아군과의 전투가 끝나자 하루에만 수천 명이 죽어나가던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시멘트로 요새화된 전선기지에서 병사들이 얼굴을 내밀며 이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기사단장 주도로 현재 전선에 있는 모든 기사들이 한 곳에 모여 모의전을 주최했기 때문이었다.

-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 아무리 고대인의 유물이라지만, 6대 1이라니요. 저희도 나름 기사 나부랭이인데.

모의 전투용으로 제작된 뭉툭한 연철 검을 장비한 제국군의 페이지 콜로서스 다섯 대와 6호 콜로서스.

그들을 마주보고 있는 것은 역시나 뭉툭한 연철 검을 들고 있는 글레이프니르였다.

- 수적으로 유리하다고 해서 방심한 엘프 기사들은 모두 이 전선에서 고혼이 되었다네. 장담하건데, 죽을힘을 다 해도 이기기 힘들 걸세.

모의전이라고는 하지만, 직접 적으로써 검을 맞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지라 케인의 눈에도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그 때 보았던 글레이프니르의 전투.

전쟁터 한복판에서 춤추듯 화려하게 움직이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케인은 조종간을 쥔 손을 꽉 잡았다.

피유우우우우-!

전투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네 기의 콜로서스가 얀의 사방을 둘러쌌다.

- 얀이라고 했나?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 집단전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인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네 명의 기사. 그 안쪽으로 들어온 것은 케인의 6호 콜로서스와 로랑이라는 기사의 페이지였다.

[전술 추천 시스템 가동. 적 기체의 예상경로를 산출….]

“이번엔 됐어. 나 혼자 해볼게.”

갑작스럽긴 했지만, 모처럼 겪는 모의전.

이 기회에 최대한 기체를 다루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얀은 전투를 보조하는 글레이프니르의 모든 시스템을 정지시켰다.

- 간다!

- 흐아압!

빠른 속도로 짓쳐들어오는 케인의 6호 콜로서스, 글레이프니르 특유의 반응속도로 그것을 피해내는 사이 롤랑의 2격이 이어진다.

퉁!

“윽!”

무른 재질의 철이 장갑판을 때리면서 쇳소리를 냈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중단이 구부러진 검을 본 기사들이 망연한 듯 중얼거렸다.

“이건 예상 못했군.”

“아무리 연철이라지만, 한 방에 구부러진 건가?”

“도대체 장갑판을 뭘로 만든 건지.”

그렇게 말한 롤랑이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를 커크스가 대체했다.

이윽고 전투가 지속됨에 따라, 커크스가 샤드로, 샤드는 발터로, 이어서 발터는 바이슨으로. 케인이 공세를 이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차례차례 교대하면서 자신의 체력을 빼내고 있었다.

“이거, 실전이었으면 위험했겠는데.”

[긍정. 출력을 극복하진 못했으나, 각 기체의 동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변수를 유발함.]

실전에서는 이러한 공격에 더불어 돌격포와 같은 장거리 무장의 지원사격, 그리고 거기서 오는 어마어마한 충격량을 견뎌내야 했다.

“역시 기사는 기사. 나 같은 벼락부자는 따라갈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거군.”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대응법을 바꿔나가고, 패턴이 파악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배치와 순서를 바꿔주는 연계.

기체 성능에 의존한 채 마음 가는대로 싸우는 자신과는 영 딴판인 싸움법이었다.

- 어떻게 된 것인가 얀 베르쿠트!

- 계속 막아내기만 하면 재미없지!

그렇게 자신을 도발하며 파상공격을 걸어온ㄴ 로렌츠 가문의 기사들.

그렇지만 그들 역시 균형을 잃지 않고 피해를 받아내는 얀의 능력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여섯 대의 콜로서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해.’

‘거기에다가 검격을 가할 때마다 묘한 각도로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어. 본능인가?’

‘이게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조종사의 움직임이라니?’

이윽고 계속해서 검격을 주고받던 끝에, 생각을 마친 얀이 자세를 낮췄다.

‘온다!’

노리는 것은 예상외로, 가장 견고한 부분인 케인.

쿵!

뒤로 내리쳐지는 검격을 튕겨낸 뒤, 그 반동을 추진력삼아 메인에게 달려드는 글레이프니르.

- 단숨에 저기까지 가속했다고!?

예상 외로 빠른 속도였지만, 내리쳐지는 글레이프니르의 검격을 케인의 6호 콜로서스가 순조롭게 막아냈다.

까앙!

질 낮은 철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얀과 케인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출력으로 압도한다.”

[지시 확인. 출력 증가.]

우우우웅-!

글레이프니르의 구동음이 점점 높아지며 그의 검격을 막아낸 케인의 콜로서스를 짓누르고 있었다.

“도련님이 힘에서 밀린다니!?”

“말도 안돼!”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이 놀랍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 과감한 돌격, 그리고 기체의 출력을 이용해 대장기인 날 붙잡은 것 까지는 흠잡을 데 없군. 훌륭해.

-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검을 누르는 힘을 풀지 않는 글레이프니르.

그 순간, 득의의 미소를 지은 케인이 확성기를 통해 얀에게 말했다.

- 혹시 자네, 란델과 결투했을 때 기억나나?

‘뭐?’

그 말과 동시에 케인의 검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끼리릭!?

높은 출력을 이기지 못한 글레이프니르가 한 순간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 잘 하셨습니다, 도련님!

- 빈틈이 없으면 이런 식으로 만들면 될 일이지!

그렇게 외친 기사들이 순차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정면, 상단, 하단, 찌르기, 중단.

균형을 잃은 순간에 시간차로 이어지는 공격을 채 막지 못한 글레이프니르가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 좋아, 거기까지.

득의의 미소를 지은 기사들이었지만, 글레이프니르가 쓰러지는 순간에 시합을 중단시킨 케인의 선언에 모두가 의아함을 느꼈다.

- 도련님, 왜그러십니까? 조금만 더 하면 제압할 수 있…!

마지막으로 검격을 내리친 롤랑의 말이 중간에 멈췄다.

케인의 콜로서스 옆에 꽂힌 얀의 검과 함께 자신의 조종석을 겨누고 있는 글레이프니르의 손톱을 보았기 때문이다.

- 이 모의전, 얀 중위의 판정승이야.

조용히 이뤄진 케인의 선언에 글레이프니르가 자세를 풀었다.

그러는 사이, 본영에서는 기사들을 호출하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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