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25화 (25/186)

25. 라나(1)

“알프라이아 군을 마을에 불렀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른 아침.

얀에게 받은 간식을 손에 쥔 채 잠들었던 라나는 마을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촌장의 고함소리에 잠을 깼다.

“쿨럭, 쿨럭! 씨이…. 또 피나.”

기침이 나오는 입을 막은 라나. 이윽고 펼쳐보인 양 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그것을 대충 닦아내고 문 밖으로 나온 라나는 뜻밖의 장면을 보았다.

“할머니, 뭐야?”

“쉿. 어른들 얘기하신다. 신경쓰지 말고 넌 사당에 공양하러 가.”

“치이….”

얀이 마을에서 떠난 뒤 일주일. 거대한 신체를 끌고 온 그의 방문이 마치 한 순간의 꿈인 듯 라나의 일상은 빠르게 제 자리를 되찾아갔다.

색동옷을 갖춰 입은 라나는 마을 밖으로 나가는 대신 광장 건물의 장독대 사이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라나가 숨어드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그러는 와중에도 촌장과 그의 아들간에 말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야말로 정신이 나가신 거요! 저들이 누군지 모르는 겁니까? 인간이에요! 바일사르 제국 놈들이란 말입니다!”

“입 닥쳐라 이놈! 신체를 눈앞에서 보고도 그런 망발을 지껄이느냐! 그분은 손님이란 말이다!”

“손님이기 이전에 인간이요! 우리 선조들을 노예로 사고팔던 인간! 창조주님의 유산을 쓴다고 해서 그 몸뚱이가 엘프로 바뀌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뒤에 서있는 젊은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도시에 나가 생필품을 사오는 사이, 함부로 인간을 마을에 들이고, 창조주의 유적까지 안내했다니. 혈기왕성한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국군에 협조하기로 한 마을들 좀 보소! 왕국에서 식량도 지원하고, 콜로서스가 나오면 그걸 가지고 기사도 시켜준단 말입니다! 당장 그쪽에 붙어도 모자랄 판에 인간을, 그것도 제국 군인들을 마을에 들이면…!”

“그 마을들이 멀쩡하다고 보느냐? 수백 년 동안 모셔오던 사당을 무너트리고 엘프 교단으로 강제로 개종 당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렇게는 못 살아!”

“그 망할 놈의 창조주가 우리한테 빵 한 조각이라도 준 적이 있단 말이요!?”

“원래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그분들께서 만드신…!”

“그놈의 창조주 타령 좀 그만 하시라고요!”

촌장의 말을 듣고 있던 젊은 엘프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콧김을 내뱉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알프라이아 왕국에 협조한 다른 마을들이 받는 자원과 기회가 부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지만 촌장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원로 엘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전부터 알프라이아 군에 협조하자는 자신들의 부탁을 무시하는 통에 불만이 쌓이는 와중에, 이젠 자신들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인간을 들이다니?

“이미 기사님들과 얘기했소. 내일 중으로 마을에 오실 예정이니, 그리 아시오.”

“왕국 기사들에게 마을을 팔아넘길 셈이냐?”

“먼저 인간을 들인 건 아버지요! 우리도 더는 못 참아!”

“오늘 중으로 손님이 오신단 말이다! 만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래? 그럼 차라리 잘 됐지.”

촌장의 일갈이 이어졌지만,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그의 아들이 한 손을 들었다.

“뭐, 뭐하려는 거냐?”

“손님맞이는 내가 하지. 아버지는 들어가 쉬쇼.”

“이놈이 설마 기사들에게 손님을!?”

“창조주의 유물을 넘긴다면, 우리 부족들도 왕국에 들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겠지.”

그의 말을 신호로 젊은 엘프들이 일제히 촌장을 붙잡았다.

안된다며 반발하는 원로들이었지만, 평소에 외부의 위협에서 마을을 지켜온 것은 젊은이들.

그들이 마음을 굳힌 이상, 늙고 병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이거 놔라! 감히 창조주님의 후손을 팔아치워 제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냐!”

“전쟁 중이요. 아버지, 전통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악스러운 젊은이들의 손에 끌려가는 촌장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나라고 그걸 모르는 줄 아느냐!? 알프라이아 왕국은…!”

“조용히 하쇼 촌장!”

젊은이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은 다른 원로들에게도 뻗쳐왔다.

옆 마을에서 얻어온 소총을 짊어진 젊은이들이 하나 둘 그것을 빼들기 시작하자 원로들은 금세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마을 구석진 곳에 구금되었다.

“오늘 중으로 인간들이 찾아온다! 축제로 위장해 놈들을 방심시킨 뒤 손님이라는 놈을 제외하곤 전부 없애버려!”

그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젊은 엘프들.

장독대 사이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라나는 촌장과 함께 잡혀가는 자신의 할머니를 보며 사당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빠가 위험해!’

***

“불빛이 예전보다 더 강한데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시간. 숲속은 이미 나무들의 그들에 가려 캄캄한 밤이 되어있었다.

수풀 사이로 드러난 마을에서 불빛과 웃음소리가 나오는 것이 의아한 듯 단델이 의문을 표했다.

“마을에서 축제를 하는 모양입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젊은이들이 돌아온 듯 하군요.”

“젊은이들이요?”

라엘의 대답에 단델이 되묻자 슬쩍 웃음지은 라엘이 입을 열었다.

“알프라이아 변경도시인 비크마일에 수확물을 팔러 가곤 합니다. 돌아오는 날이면 먼 길을 다녀온 이들에게 감사하며 작은 축제를 열죠.”

“그럼 저희들이 마을에 찾아가도 되는 겁니까?”

그동안 젊은 엘프들이 없는 게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 동안 몇 번 마을을 방문하면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게 된 단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그들도 창조주 신앙을 접하며 자랐으니, 손님의 방문을 막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라엘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깔려있었다. 본적 없는 기괴한 미소에 단델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그들 머리 위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글레이프니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위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선 글레이프니르.

그를 향해 단델이 라엘이 말한 내용을 전했다.

이윽고 글레이프니르의 확성기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부대원들을 전부 보내는 건 위험해. 날 포함해 열 명 정도의 인원만 동행하고, 나머지는 마을 주변에서 숙영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부대원들도 오랜 행군에 지쳤을 텐데….”

그렇게 되묻는 라엘이었지만 얀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 현지 인원이 달라졌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 부대 지휘권자는 저와 단델 소위입니다. 황자 전하의 지인이라고 해서 부대의 이동까지 간섭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라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넘었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 단델이 고개를 끄덕이고 병사들을 불렀다.

이윽고 얀과 라엘, 그리고 그들과 동행할 여덟 명의 인원이 글레이프니르와 함께 마을 쪽으로 향했다.

“소위.”

“예 중대장님.”

갈라지기 직전, 단델을 불러 세운 얀이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뭔가 말했다.

“세 명입니까?”

“어. 안 보이는 데에 대기시켜.”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단델은 몸을 돌려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글레이프니르를 앞세우고 마을을 향해 다가가는 얀과 라엘.

거대한 콜로서스가 다가오는 것을 본 마을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손님을 만나 영광입니다.”

앞으로 나선 젊은이가 그렇게 말하자 마을에 있는 엘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잘 훈련된 군대와 같이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훈련이 잘 되어있어. 그냥 마을 주민들과는 다르게.’

이번 탐사임무 이외에는 이렇게 큰 규모의 엘프 마을에 와본 적이 없는 얀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턱을 괴었다.

[파일럿에게 보고사항 있음.]

그러는 사이, 갑작스럽게 들려온 닐의 목소리에 얀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평소에는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잘 없는 녀석인데. 의외의 행동에 얀이 물었다.

“뭔데.”

그러자 얀의 눈앞에 작은 화면이 나타났다.

마을의 전경을 전체적으로 비춘 뒤 벽면을 한 겹 벗어낸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에 다수의 보병화기가 은닉됨.]

“호오?”

화면 한 구석에 창고로 보이는 건물.

그 안에 가지런히 놓여 진 수십 정의 소총을 본 얀의 눈이 깊어졌다.

“추가로 더 있나?”

[한 건물 안에 다수의 엘프들이 밀집되어있음. 영상 확인을 요청함.]

그 옆 건물을 투시한 화면이 나타나자 얀이 입가를 비틀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양 팔이 묶인 채 구금되어있는 촌장과 원로 엘프들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게 뇌까리면서 얀은 자신을 둘러싼 젊은 엘프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이전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 자신 외의 인간은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하던 것과 다리 다른 인간들에게도 호의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라엘은 이 상황을 알고 모든 부대를 엘프 마을로 유도한 건가?’

방금 전의 대화를 떠올린 얀은 기체 밖에서 엘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라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만일 그가 마을의 상황을 안 채로 부대원들을 마을로 들여보내자 한 것이라면, 그 즉시 그를 알프라이아 군의 첩자로 잡아들여야 할 것이다.

“얀 중위! 내려와 주십시오!”

그 와중에 자신을 향해 내려와 달라고 외치는 라엘.

닐이 아니었다면 아무 정보 없이 저 안으로 부대원들을 밀어 넣을 뻔 했다.

‘영상에 나온 바로는 라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군.’

마을에 글레이프니르를 가져온 이유는 보존 시설 안에 들어있는 그 무기 때문인데, 정작 중요한 열쇠인 라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쯧.”

혀를 찬 얀이 조종석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중위. 이쪽에 있는 엘프 분은….”

퉁. 퉁.

그렇게 라엘이 젊은 엘프를 소개하는 사이, 얀의 군홧발이 글레이프니르의 해치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신호한 대로, 눈을 빛내며 동행한 중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확인한 얀은 기체에서 내려오는 와중에 그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위험 상황. 신호탄 대기. 경계 태세.

고개를 끄덕인 부대원들이 하나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글레이프니르로 협박할 수도 있었지만, 라나의 위치를 모르는 이상 위험 요소를 간과할 수는 없었다.

라나가 유적에 들어가는 열쇠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상, 인질로 잡히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사살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중대장님.”

그에게 다가온 대원 중 한 명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얀이 말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있다. 중요 인물이야. 위치 파악하는 대로 확보해서 데려와.”

“저항하면 어떻게 합니까?”

“손님 친구라고 해. 이거 쥐어주고.”

이전에 자신이 줬던 사탕을 부하에게 건넨 얀이 그렇게 말했다.

그 사이에 자신에게 다가온 엘프.

건장한 체격과 총기 있는 눈은 그가 이 마을의 젊은이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손님.”

“…협조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숲 속 탐사가 수월해졌습니다.”

“인간의 출입은 전에 없던 일이긴 합니다만, 손님의 부탁이니까요. 아버지께서도 거절하실 수 없었겠죠.”

웃는 낮으로 그렇게 말하는 엘프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손님이 아니었으면 인간 따위를 들였겠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군.’

아버지인 촌장과는 달리,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혈기가 넘치거나, 아니면 완전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둘 다일지도 몰랐다.

“마침 비크마일에서 가져온 술을 꺼낸 참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하시는 것이….”

“죄송합니다. 임무 중 음주는 군법 위반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서 얀은 자신의 주위를 호위하는 다른 중대원들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역시, 젊은 여자 엘프 몇몇이 그들에게 달라붙어 술을 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임무중이라.”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죄송합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었지만, 술을 권하는 엘프들이 보이지도 않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병사들을 뒤로 한 엘프들이 조용히 혀를 찼다.

“제길, 다른 인간들이었으면 진작에 넘어왔을 텐데.”

“인간들, 쓸데없이 충성심만 높아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엘프들이었지만, 술을 거부하는 대원들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얀의 시선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느라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중대장님이 우릴 죽여 버리겠지.’

그런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눈앞의 엘프에게 말했다.

“우선, 황자 전하께서 보내시는 작은 성의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작은 꾸러미를 건네는 얀.

그 안에는 알프라이아에서 통용되는 금화 스무 닢이 들어있었다.

“이건….”

“바일사르 금화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 들었기에,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럼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이 마을에서 무당 일을 하는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당을?

그렇게 생각하는 엘프였지만, 이내 얀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라나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마 사당에서 기도중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올 때가 됐는데….”

자신을 부르는 라나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오빠!”

그렇게 외치며 얀에게 달려드는 라나.

아직도 팔에 자신이 만들어 준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을 보며 얀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왔습니다. 라나.”

그렇게 말하며 라나를 자신의 등 뒤에 숨긴 얀.

그것을 본 엘프와 청년들이 표정을 굳혔다.

“저기, 손님? 죄송하지만 그 아이는 저희 마을의….”

“무당이죠. 유적으로 들어가는 열쇠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얀의 등 뒤에 숨은 라나가 얀에게 외쳤다.

“오빠! 저 사람들, 오빠를 잡아간대! 잡아서 기사님들한테 넘겨준댔어!”

“뭣!?”

“라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갑작스러운 라나의 외침에 깜짝 놀란 엘프들이 그렇게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젠장, 우선 콜로서스에 타던 놈부터 처리해!”

그렇게 말한 젊은 엘프가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엘프군 장교들이 사용하는 권총. 민간 도시에서는 구할 수 없는 군납품이었다.

‘마력을 가진 기사라도 이렇게 빨리 뽑지는 못해!’

그렇게 생각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팍-!

정확하게 권총을 쥔 손에 라이플 탄이 명중하며 피가 튀었다.

“아아악!?”

“저격수!? 언제 이 마을까지!”

한 손으로 라나의 눈을 가린 얀이 그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늘 위로 손을 올린 얀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피유우우우-!

하늘로 올라간 신호탄.

신호 내용은 돌발상황 발생. 지원 요청이었다.

그리고 그 신호탄에 화답하듯, 마을을 둘러싼 모든 방향에서 예광탄이 쏘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미친!? 이미 마을 전체가 포위당했어!”

“처음부터 알고 마을에 들어 온 거였나!?”

“말도 안돼!”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진 마을에서 당황한 엘프들이 그렇게 외치는 사이, 그를 호위하던 여덟 명의 대원들이 얀을 보호하듯 둘러싸며 사방으로 라이플을 겨눴다.

“엎드려! 움직이면 발포한다! 주동자 제압해서 데려와!”

“손 보이게 올려! 움직이지 마 이 새끼들아!”

쿵-!

반원형으로 얀을 둘러싼 대원들.

그런 그의 바로 뒤로 다가온 글레이프니르가 곧바로 몸을 낮춰 한 손을 내밀었다.

“오빠, 방금 그거 총소리…!”

“닐. 이 엘프, 조종석에 태울 수 있나?”

[파일럿과 동승시에만 가능.]

“그럼 우선 손 위로 올려.”

[명령 확인.]

글레이프니르의 손에 라나를 먼저 올린 얀은 이내 피를 줄줄 흘리는 손을 감싸 쥔 엘프를 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적대 행위 확인. 이 시간 이후로 이 마을은 제국군 제87 독립중대가 통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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