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12화 (12/186)

12. 내부의 적(5)

“닐, 가동 시간 안에 다 해치울 수 있나?”

눈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다섯 기의 엘프군 콜로서스.

이미 전부터 얘기가 되어있던 것인지 란델의 콜로서스와 함께 진형을 갖추는 것이 보였다.

[적 기체 중 일부가 저격 무장을 장비한 채 고지대로 향하는 중. 제압 불가능.]

“쯧.”

글레이프니르의 모니터에 표시된 다섯 기의 콜로서스. 그들은 후방의 안전한 사격 지점에서 자신을 겨눌 것이다.

혀를 찬 얀이 뒤를 바라보았다.

도망쳐야 하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전선마저도 밀리고 있는 상황.

오크 군단의 기세에 최전방에 배치된 참호들이 하나 둘 돌파당하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후퇴한다고 해도 전선 째 목이 날아갈 판이군.”

그렇게 생각한 얀은 다시 앞을 보았다.

이미 진형을 갖춘 여섯 기의 콜로서스.

그중 낯익은 몇몇 기체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날 잊지 않았겠지. 이름 없는 기사.

그렇게 말하는 진녹색 콜로서스는 손에 거대한 사슬을 들고 있었다.

- 원래라면 제대로 된 결투를 통해 쓰러트리고 싶은 적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내 개인적인 욕심은 접어두지.

- 부르타엘. 쓸데없는 소리 마라. 우린 이곳에서 저 녀석을 죽여야 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양손에 파일벙커를 장착한 델란엘의 기체였다.

두 기사가 앞으로 나서는 것과 동시에 란델을 포함한 네 기의 콜로서스가 검을 들고 글레이프니르를 에워싸고 있었다.

- 어쩔 텐가? 저항하지 않고 기체를 넘긴다면 고통 없이 죽여줄 의향이 있다.

제압된 콜로서스 조종사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엘프족에 붙잡힌 기사의 시체를 부검했더니, 배 속에서 세 사람 분량의 군장이 나온 사례도 있을 정도.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죽음이었다.

-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얀의 목소리에 델란엘과 부르타엘이 움찔했다.

처음으로 듣는 저 괴물의 목소리.

백전노장이나, 피에 미친 괴물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멀쩡한 목소리가 아닌가?

- 운 좋게 창조주의 유산을 손에 넣었을 뿐인 네놈이 기사단장님의 눈에 든 것도 짜증나는데, 감히 내 행사를 방해하다니. 그것도 모자라서 잘도 내 얼굴을…!

한 구석에서 검을 들고 있는 란델이 으르렁거렸다. 엘프들의 진녹색 콜로서스와는 다른 회색 콜로서스는 유독 눈에 띄었다.

- 자. 네놈에게 마지막으로 말하마. 목숨을 구걸해라! 땅바닥에 엎드려 우리를 모욕한 것을 사죄해라! 그렇게만 한다면 네놈의 무위에 경의를 표하며 고통 없이 죽여줄…!

- 하, 귀쟁이 새끼들이 아가리만 살아서는.

델란엘의 말을 끊고 내뱉은 얀의 욕설.

순간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엘프 기사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지?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하는 건가?

인간 진영에서 출동한 콜로서스가 마력포 세례를 뚫고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

그 시간동안 열 기가 넘는 엘프군 콜로서스들이 얀 한 명을 처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 기체 성능에 눈이 멀어 제대로 된 판단도 하지 못하는군!

- 네놈의 사지를 찢어 고블린들에게 먹이로 던져줄 것이다! 쳐라!

귀쟁이라는 멸칭에 분노한 부르타엘이 손짓하자 곧바로 엘프군 콜로서스 세 기가 얀에게 달려들었다.

근접전투용 검과 망치를 든 콜로서스.

이전 전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부에 있는 얀을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쿵. 쿵. 쿵.

거리를 좁혀오는 세 대의 콜로서스를 본 얀의 눈이 깊어졌다.

“온다. 준비해.”

[명령 확인. 전술패턴 A에 따라 전투관제.]

닐이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글레이프니르가 움직였다. 천천히 자세를 낮춘 글레이프니르의 동력로가 터질 듯 맹렬하게 회전했다.

[전투 개시.]

퉁!

황무지의 흙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가는 글레이프니르. 이전 전투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러운 기동에 부르타엘의 눈이 크게 띄었다.

“마지막 전투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의 움직임을?”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 사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대의 콜로서스에게 역으로 돌진한 글레이프니르가 그대로 콜로서스 중 한 기와 충돌했다.

투콰앙!

철과 철이 부딪히는 파공음과 함께 장갑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 마, 말도 안돼! 무슨 출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타고나는 엘프. 그런 엘프들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콜로서스는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출력을 가진다.

단순히 탄을 주고받는 원거리 전투라면 몰라도, 근접 전투에 있어서는 인간의 콜로서스는 엘프의 콜로서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순간, 엘프 기사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 출력에서 밀린다고!? 이건 말도 안돼!

- 방심하지 말라고 했을 터! 놈은 다른 인간의 콜로서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충돌하는 힘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콜로서스. 그를 보호하기 위해 양 옆에서 두 대의 콜로서스가 검을 휘둘렀다.

[우선 대응대상 선정. 방어 권장.]

“이미 하고 있어!”

카앙!

한 손으로는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검을 붙잡고 다른 한 손은 튀어나온 팔꿈치를 들어 횡으로 휘둘러지는 검격을 막아냈다.

끼기기기긱!

동시에 가해진 두 공격마저 무리 없이 막아내는 모습을 보며 엘프군 기사들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제길! 도대체 뭐로 만들었길래 장갑이!

- 두 기의 콜로서스를 상대하는데도 힘이 남아돈다는 말인…. 으어어!?

단순히 그것들을 막아낸 것 뿐 만이 아니었다. 방어를 위해 자세를 낮춘 글레이프니르가 그대로 점점 몸을 일으켰다.

검으로 그를 찍어 누르던 콜로서스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려 할 때, 그는 자신의 검이 글레이프니르에게 잡혀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젠장, 이거 놔…!

“놔줘야지. 이 상황을 돌파한 후에 말이야.”

그렇게 말한 얀이 다른 한 기를 뿌리친 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검을 잡은 손을 끌어당기자, 콜로서스 한 기가 맥없이 딸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 이런, 검을 놓게! 어서!

- 한 기를 상대하는 데, 기사 된 자가 검을 놓을 수는…!

그렇게 내뱉은 기사가 안간힘을 써가며 검을 잡은 손을 당기던 때였다.

- 안돼! 도망치게! 어서!

- 우선 한 기.

으직!

무기를 잡힌 콜로서스가 양 손으로 검을 잡는 순간, 비어있던 글레이프니르의 다른 한 손이 콜로서스의 조종석을 그대로 꿰뚫었다.

순식간에 힘을 잃고 축 늘어진 콜로서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심지어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콜로서스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모습.

저격 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엘프 기사들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 제, 젠장! 돌격포 발사! 벌집으로 만들어버려!

- 경거망동하지 마라! 포연에 놈의 모습이!

그렇게 외치는 부르타엘이었지만 이미 고지대에 있는 콜로서스들이 발광신호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쿠콰콰앙!

다섯 문의 돌격포가 차례대로 불을 뿜으며 글레이프니르가 있던 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침음성을 삼키는 부르타엘.

그렇지만 덕분에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생겼다.

쿠구구구….

포연이 걷히고, 모래먼지 속에서 서서히 글레이프니르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타난 글레이프니르의 모습.

그 흉악한 모습에 엘프 기사들이 일제히 침을 꿀꺽 삼켰다.

“콜로서스를…. 한 손으로….”

상처 하나 없이 당당하게 서있는 글레이프니르.

한 손에는 포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엘프 기사의 콜로서스가 축 늘어져있었다.

하반신이 완전히 터져나가 상반신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상황.

그 상반신 끝에, 엘프 기사의 시체가 걸레가 된 채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 방패 치곤 내구성이 좀 허접한데.

확성기를 통해 그렇게 한 마디를 내뱉는 얀.

- 이이익…!

- 미천한 인간놈이 감히 엘프 왕국의 기사를!

- 잡아! 놈을 잡아서 끄집어내라!

동료의 죽음에 이어지는 얀의 도발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엘프 기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경고. 적 기체 출력 증가. 적을 자극하는 행위는 비효율적이라고 판단. 파일럿의 행동 수정을 요구함.]

“어. 나도 아는데, 상황이 너무 짜증나서.”

[일부 동의.]

그렇게 닐과 얀이 주고받는 사이, 지척까지 접근한 두 기의 콜로서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힘의 검격이 얀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촤르륵!

팔을 비스듬히 세우자 그에 맞춰 뾰족하게 세워져있던 장갑판들이 일제히 눕혀져 평평한 면을 만들어냈다.

캉!

경사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친 콜로서스.

힘의 방향이 이상한 곳으로 튀자,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상대 기체의 자세제어기능에 문제점이 보임. 내부 프레임에 적용된 기술에 비하여 열등한 장갑재와 조작법. 비효율적.]

“열등? 엘프가 그 정도면 우리 측 콜로서스는 뭔데?”

[평가 기준을 하향한다면, 기술 시연 및 레저 스포츠용으로는 다소 적합. 파일럿의 어휘능력에 맞추자면, 장난감에 불과함.]

“내 어휘가 뭐가 어째?”

엘프의 기술은 결함투성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아예 군용품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이었다.

저 신랄한 평가를 본부 기사들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경고. 적기, 계속해서 접근 중.]

닐의 음성이 얀을 상념에서 깨웠다.

균형을 잃은 콜로서스를 발로 차버린 뒤 곧바로 두 팔을 들어 내리쳐지는 검격을 막아냈다.

“크윽!?”

빗맞은 방금 전의 검격과는 다른 완벽한 정타.

조종석이 크게 진동하며 그 충격이 고스란히 얀에게 전해져왔다.

- 뒤쪽이 텅 비었지 않나! 얀 베르쿠트!

“란델…!”

투콰앙!

뒤로 돌아온 란델의 검이 글레이프니르의 등을 후려쳤다. 방금 충격에 이어 예상치 못한 충격이 한 번 더 이어지자 얀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가동시간 3분 경과.]

“젠장, 장난감이라고 한 것 치곤….”

[기체 상태에는 이상 없음. 파일럿의 동조율에 따른 결과.]

“아직 내가 미숙하다는 말인가?”

[부정. 지나치게 높은 동조율 덕분에 기체에서 자체적으로 분담해야 할 충격이 파일럿에게 그대로 피드백됨. 차후 조정이 필요함.]

“그런 게 있으면 진작에…!”

투콰앙!

한 번 더 내리쳐진 검격에 얀과 닐의 대화가 멎었다. 등을 타고 이어지는 충격은 마치 자신이 직접 저 검격을 받아내는 듯 했다.

[가동 시간 5분 경과.]

“말 안 해도 알아.”

한쪽에서는 힘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끝없이 검격을 내려친다.

계속되는 충격에 정신이 오락가락 했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크으윽…!”

힘을 쥐어짜내 글레이프니르의 출력을 올린다.

검의 압력에 짓눌려 자세를 낮춘 글레이프니르가 다시 한번 일어나면서 엘프 기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 이 괴물이 어딜!

투콰앙!

방금 전 발로 차버린 것을 되갚으려는 것인지, 다른 콜로서스의 발이 글레이프니르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글레이프니르.

그렇지만 그걸 조종하고 있는 얀은 충격에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젠장. 조금 나아졌다 뿐이지, 이 답답한 느낌은 그대로잖아…!”

[….]

그렇게 내뱉는 얀이었지만 닐에게서의 답변은 없었다.

혼잣말에도 좋다고 나불대던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지다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얀은 글레이프니르에 정신을 집중했다.

쿠구구구….

방금 전의 발차기 덕분에 포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서로 행동반경이 간섭하는 것을 우려한 기사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라도 더…!”

그렇게 뇌까린 얀의 명령에 따라 글레이프니르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 작작 하고 쓰러지란 말이야 이 괴물이!

그렇게 외치는 기사들의 발광신호와 함께 글레이프니르를 향해 돌격포가 쏟아졌다.

“젠장, 틈이 없어.”

재정비를 위해 거리를 벌리는 순간 포격이 시작되고, 근접전에 돌입하는 순간 수적 우위를 내세운 연계로 압박해온다.

“방금 전 기습으로 한 기를 처리한 덕인지, 방심하는 기색도 안보이네.”

[열등한 조작기술에 비해 연계 방식과 타이밍은 굉장히 효율적. 고도로 훈련된 것이 확인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완벽한 덫이다.

- 부르타엘. 마법사들에게서 텔레파시가 오고있소. 전선에 증원이 필요하다는데.

- 저 괴물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 마력포와 오크 전사들로도 충분히 밀어낼 수 있을 터!

포격에 열중하던 기사 한명이 한 질문을 그렇게 일축한 부르타엘이 양손에 든 사슬을 점검했다.

인간 진영에서 온 배신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저 괴물의 남은 가동시간은 4분 남짓.

계속 압박하면서 시간이 다 될 때를 기다린 뒤, 기체를 묶어 본영으로 끌고 가면 될 일이었다.

[기체 기동 정지까지 앞으로 3분.]

“젠장.”

예광탄의 범위가 닿지 않기에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캉! 카앙!

계속해서 교대로 가해지는 검격.

어느 새 자신의 행동패턴을 알아낸 것인지, 빈틈없는 연계를 갖춘 콜로서스들이 교대로 자신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 이걸로 끝이다. 얀 베르쿠트! 형별부대 버러지가 고귀한 기사를 욕보인 죄. 그 목숨으로 갚아라!

그렇게 외친 란델이 마무리를 하려는 듯, 비틀거리는 글레이프니르에게 돌진했다.

- 죽으면서 되뇌여라! 내 이름을! 벨커스 가문의 기사 란델 벨커스의 이름을!

“…!”

벨커스.

그 이름을 떠올린 얀의 눈빛이 뒤집혔다.

피로감과 나른함이 섞인, 반쯤 체념에 가까운 눈에서, 한 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분노로.

쿵!

달려드는 란델의 콜로서스를 곧바로 붙잡는 얀.

란델의 검격이 글레이프의 머리를 강타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벨커스! 네놈들은…!”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은 얀이 그대로 란델의 콜로서스를 압박했다.

끼기기긱!

[가동 정지까지 앞으로 1분.]

- 젠장, 다 죽어가는 놈이…!

쿵! 쿵!

자신의 기체를 찍어 누르는 얀을 떼어내려는 듯, 자신을 붙잡은 글레이프니르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란델.

그렇지만 얀의 콜로서스는 란델의 콜로서스를 덮친 그대로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대로 방금 전에 한 일처럼, 조종석을 통째로 꿰뚫을 생각이었다.

- 히, 히이익!?

완전히 제압당한 것을 깨달은 란델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너희 벨커스 놈들 만큼은!”

그렇게 외친 얀이 란델이 탄 콜로서스의 조종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공할 힘으로 점점 그에게 다가오는 글레이프니르의 손에 겁에 질린 란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쿠구구구….

그렇지만 예상한 충격은 가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의문을 느낀 란델이 천천히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 으헉!?

조종석 바로 앞에, 지금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 흉흉한 기세의 손이 멈춰있었다.

푸쉬이이익-!

그대로 동작을 멈춘 글레이프니르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헉…. 헉….”

기체와의 연결이 정지되면서 몸에 가해지던 부하가 사라진 얀.

마른 숨을 내쉬는 얀의 머리 위로, 청천벽력 같은 닐의 안내가 이어졌다.

[파일럿 상태 진단. 이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 생명유지상태로 전환. 기체 폐쇄. 글레이프니르, 기동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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