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신도 그들 중 하나(4)
[호흡 불안정 확인. 맥박수 증가. 신경 연결에 과부하를 확인했습니다. 기동 중지를 건의합니다.]
“닥쳐. 계속해.”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인공지능의 목소리에 얀이 답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얀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
없는 힘을 전부 쥐어짜 엘프군 콜로서스가 있는 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쿵.
쿵.
- 저것이 자네가 보고한 괴물인가? 델란엘?
- 저, 저것을 당장 죽여야 하오! 저건 괴물이야!
- 괴물?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델란엘의 동료 기사 부르타엘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지의 적에 대한 호승심이 새어나온 탓이다.
- 이름 없는 기사여! 엘프 왕국의 근위기사 부르타엘이 그대를 상대하겠노라!
그렇게 말하며 랜스를 바로잡은 부르타엘이 돌격자세를 취했다.
곧바로 부르타엘의 공격동선에서 벗어난 케인. 그렇지만 얀의 느린 움직임으로는 불가능했다.
[적 기체 충돌까지 앞으로 5…. 4….]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받아내야 하나!’
지끈거리는 머리에 가빠오는 숨.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급하게 기동하는 순간 다시 의식을 잃어버리겠지.
전장 한복판에서 그렇게 된다면 죽은 목숨이다. 자세를 낮춘 얀의 콜로서스가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설픈 방어자세였다.
- 무슨 짓인가?! 콜로서스의 기병창이네! 막아낼 수 없어!
그것을 본 기사 한 명이 그렇게 외쳤다. 케인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곧바로 팔에 장비된 기관포를 부르타엘에게 퍼부었다.
부와아아앙!
엘프군 콜로서스의 진녹색 장갑판에 불꽃이 튀었지만, 부르타엘의 자세에 변함은 없었다.
- 인간의 무기 따위로!
그렇게 외친 부르타엘의 랜스가 순식간에 짓쳐들어왔다. 제국군의 콜로서스를 통째로 꿰뚫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 흐아압!
힘찬 기합과 함께 랜스의 밑동에 붙은 추진기가 열을 뿜었다.
마력광에 의해 푸르게 물든 채로 기체를 더욱 가속시키는 랜스.
포탄과도 같은 엄청난 속도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이어지는 충돌.
투콰아앙!
마치 대포가 떨어진 것 같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현장에 연기가 자욱해졌다.
- 젠장!
- 한 기 당했다! 다들 엄호! 단장님을 구출해!
연기를 향해 돌격포를 겨누는 기사들.
만약 자신들의 기체가 그 충격을 받아내었다면, 그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나마 애물단지로 여기던 기체였기에 손실은 덜한 편이다. 그렇게 생각한 기사들은 천천히 연기가 걷히는 것을 기다렸다.
위치가 정확히 나오는 순간, 제압사격으로 놈의 발을 묶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연기가 걷힌 순간 , 기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끼긱…. 끼기기긱…!
기사들은 연기가 걷히는 순간 부르타엘의 콜로서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달랐다.
[충격 흡수. 기체 자세제어 이상 없음.]
랜스에 꿰뚫렸어야 할 얀의 콜로서스는 아직까지도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 무, 무슨!
- 랜스를…. 손으로 잡았다고!?
조종석에 랜스가 닿기 직전.
살벌하게 빛나는 창신에는 진회색빛 콜로서스의 두 손이 얽혀있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건, 그 안에 타고 있던 얀. 한 사람 뿐이었다.
[파일럿 생체신호에 지속적인 이상이 감지됩니다. 전투 회피를 건의합니다.]
“내가 닥치라고 했지…!”
온 힘을 쥐어짜내 랜스를 잡은 두 팔을 위로 올렸다.
빠득! 빠드드득…!
콜로서스의 악력을 견디지 못한 랜스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찌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 이럴수가?! 이건, 이건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르는 부르타엘.
그렇지만 이내 가로막힌 창 손잡이에 콜로서스가 끌려가는 감각에 황급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다.
끌려간다니, 이 콜로서스가?
수십 톤의 중장갑을 두른 이 괴물이?
- 아니, 아직 아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엘프 근위기사단에서 손가락에 꼽는 승부사.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하는 대신, 곧바로 자신의 본능에 몸을 맡겼다.
걸어오던 기체의 모습. 그리고 기체의 저 압도적인 성능에 비해 너무나 소극적인 움직임.
둘 중 하나였다. 조종하고 있는 기사가 초보이거나, 아니면 기체를 조종할 마력이 부족하던가!
‘그렇다면!’
곧바로 델란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얀의 콜로서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손이 위로 올라간 탓에 저 콜로서스는 완전히 앞이 열린 상태.
스파이크가 없는 주먹이라 해도, 조종석을 꿰뚫기에는 충분할 터!
[적 기체 접근.]
“이런 젠장…!”
다가오는 적의 콜로서스를 보며 얀은 입을 다물었다.
- 이거나 먹어라!
투콰앙!
굉음과 함께 얀의 콜로서스가 크게 들썩였다.
갑작스럽게 이어진 강한 충격.
이미 몸이 한계에 다다라있던 얀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욱! 우웩?!”
멀미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에 속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낸 얀.
시야 가장자리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격을 성공한 부르타엘 역시 미칠 지경이었다.
조종석에 구멍이 나긴 커녕, 흠집 몇 가닥만 남긴 채 멀쩡한 것이 아닌가?
- 말도 안 돼! 성기사의 장갑판이라도 이걸 막아내진 못할 터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자 부르타엘의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는 콜로서스.
도저히 같은 콜로서스라 생각할 수 없는 그 흉흉한 모습에, 부르다엘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이익! 괴물 같은 놈!”
그렇게 외치면서 물러난 부르타엘.
창을 빼앗긴 이상, 남아있는 무장은 보병용 기총 뿐.
이대로는 저 괴물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쿠콰콰쾅!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델란엘과 부르타엘이 방어자세를 취했다. 기체를 통해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은 곡사포의 그것이 아니었다.
‘콜로서스들용 돌격포!? 제길,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어!’
- 잘 해줬네. 얀 하사! 원군이야!
원군의 등장을 알리며 마력을 끌어 모으는 케인.
그런 그의 뒤로 채 조립되지 않은 콜로서스 골격들이 나타났다.
장거리 사격용 돌격포를 들고 있는 채였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케인 경! 무장 장비 완료했습니다!
- 좋아. 전원 조준하라! 난 저들의 발을 묶겠다!
지시를 마친 케인이 전장을 둘러보았다. 얀의 싸움으로 발이 묶인 콜로서스들. 그 덕에 전황이 훨씬 호전되었다.
엘프군의 콜로서스가 자신을 잡는 것을 실패하면서, 콜로서스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고블린 보병대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키익! 키이익!”
“은기사께서 적들의 콜로서스를 막고 계신다! 밀리지 마라! 버텨!”
아무리 엘프의 무기를 준다 하더라도, 저들은 고블린.
병사로서의 자질이 인간에 비해 한창 못 미치는 이들이다.
“재장전한다! 시체 치워! 기관총 사선 확보해!”
“엘프군 콜로서스의 발이 묶였다! 포격지원해! 신호탄 발사!”
“키이익?! 밀린다! 도망쳐라아악!”
전선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고블린 시체 때문에 기관총의 사선도 나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도살장 닭들 마냥 떼죽음당하는 것을 본 고블린들.
돌격한 콜로서스들 또한 지지부진하자 고블린들의 의지 또한 사그라들어 버렸다.
“기사단이 왔는데도 꽁무니를 뺀다니, 저 열등한 것들…!”
홀로 세 대의 제국군 콜로서스를 견제하던 엘프 기사가 내뱉었다.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에 먹는 것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미개한 고블린들.
엘프 왕국이 자랑하는 무기를 아무리 들려줘봤자 금세 이 꼴이다.
아무리 고블린들을 전선에 밀어 넣어도 보병간의 전투로는 인간을 이길 수 없었다.
- 부르타엘! 전황이 좋지 않소! 이대로는 포위될거요!
- 젠장, 이번 전투는 여기까진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나는 부르타엘. 독이 잔뜩 오른 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 이름 없는 기사! 다음 전투에선 그대를 반드시 쳐부수겠다! 근위기사 부르타엘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정신을 차린 델란엘이 얀과 케인을 향해 기관포를 퍼부었다.
충격을 버티기 위해 자세를 낮춘 케인.
그와는 다르게 얀의 콜로서스는 잡고 있던 랜스를 들어 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하사! 뒤로 물러나게! 추격은 우리들이 도맡을 테니…!
그렇게 외치던 케인은 얀의 낌새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 얀 하사?
쿵!
콜로서스가 들고 있던 랜스가 떨어지며 무거운 쇳소리를 냈다.
힘이 다한 듯 축 늘어진 콜로서스.
이내 처음 전투에서 그랬듯, 온 몸의 장갑판이 열리며 증기를 배출하기 시작한다.
치이이익- !
- 얀 하사! 얀 베르쿠트! 대답을 하게! 이봐!
대답은 없었다.
[긴급 상황에 의한 가동 중지. 냉각 개시.]
[파일럿 생체신호에 이상 발견. 동조율 저하.]
[생명유지 모드로 전환. 기체를 폐쇄합니다.]
다급한 듯이 빛나는 조종석과 들려오는 기계음.
“헉…! 윽, 으으윽?!”
조종석에 앉은 얀은 병에 걸린 사람처럼 고통에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상징후 감지. 연결부를 통해 안정제 투입합니다.]
삐-!
기계음과 함께 얀의 목덜미를 따라 약물이 주입된다. 떨림이 멎은 얀의 호흡이 안정되고, 그와 동시에 얀의 목덜미에서 전선이 뽑혀나갔다.
“안돼, 의식이….”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계속해서 되뇌는 얀이었지만,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흐려지던 시야가 암전되고, 얀은 정신을 잃은 채 조종석에 축 늘어졌다.
[파일럿의 바이탈 수치 불안정. 제세동기 기동합니다. 3…. 2….]
***
“케인 기사단장. 정말 고생 많으셨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오에 시작한 전투는 5시간이 지나 끝났다.
전선에서 엘프군이 후퇴한 지 수 시간.
뉘엿뉘엿 지는 노을 사이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참호에 고블린들의 시체가 쌓이고 있었다.
후두두둑!
기사단에서 차출된 콜로서스 골격 세 대가 시체 처리작업에 동참했다. 참호 앞에 쌓인 시체를 처리하기엔 인력이 모자란 탓이었다.
수십 구의 시체를 한주먹에 담은 콜로서스들의 손이 무심하게 그것들을 참호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기사단 덕분에 한 시름 놓았소. 역시 황제폐하 직속 기사단다운 용맹한 진격이었소!”
“급히 나와 준 생도들의 공이 큽니다. 나중에 포상해 줄 생각입니다.”
“그동안 저 엘프의 콜로서스를 막아낸 것은 자네가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령관을 보며 케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도 그 전장을 보았을 텐데.’
의도적으로 얀의 존재를 없는 양 취급하고 있는 사령관. 그의 입에 걸린 것은 미소가 아닌 비릿한 비소였다.
그마저도 저 멍청이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같이 싸운 이들의 공이 큽니다.”
“하하하, 제국의 은기사께서는 겸손까지 갖추셨군. 내 아들 녀석도 자네의 반만 따라갔으면 좋겠어.”
“과찬입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케인의 어깨를 두드린 뒤 자리를 나선 사령관.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여인들이 그의 양팔에 붙어 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전선 한복판까지 정부들을 데려오다니. 병사들의 전사율이 높은 것도 알만하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케인의 시선은 참호 구덩이로 떨어지는 시체들에서 떠날 줄 몰랐다.
고블린 시체에 섞여 구덩이로 떨어지는 인간들의 시체.
제대로 된 장례도, 전사자 기록에도 남지 않는 형벌부대원들이었다.
화르륵!
통로를 막고, 기름을 부어놓은 참호 구덩이에 불꽃이 타올랐다.
살을 태우는 묘한 기름내와 매캐한 연기.
그리고 사람의 머리칼을 태우는 악취가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참호 줄기를 따라 피어오른 불길. 그 뒤에 있는 공터에는 일반병들의 시체가 천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찰스 더빈. 32세. 커른 마을 출신…. 막내야, 지명은 특히 제대로 기록해라. 잘못해서 다른 마을로 가면 답 없어.”
“그쪽 형님이 확실합니까?”
“맞습니다. 걸고 있는 목걸이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하늘 위의 창조주시여, 거룩한 빛으로 이들의 죄를 사하시옵고….”
교단에서 나온 신부들과 검시관들. 그리고 군종병들이 천에 싸인 전사자들의 시체에서 신원을 확인할만한 물건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사진, 인형, 이름이 새겨진 팔찌. 우표, 펜. 어떤 것이 되었든 아무거나 좋았다.
이번 전투의 사망자는 약 칠천 명.
불과 다섯 시간 동안에 이 많은 사람이 고혼으로 사라진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던 케인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인상에 음울한 눈빛을 한 남자.
얀이었다.
“몸은 좀 어떤가?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거짓말.
콜로서스의 손에 인양되어 본부로 운송되었음에도 그가 탄 콜로서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이 열린 것은 기술진들이 철수하고 두 시간이 지나서.
그동안 어떤 응급처치도 받지 못했을 텐데, 몸이 멀쩡할 리 없지.
“자네는 10년 동안 이 광경 속에서 살아 온 건가?”
다짜고짜 이어지는 질문에 얀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참호 한 줄을 못 쓸 정도의 전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공세는 반년에 한 번 정도로….”
“난 이 광경을 오늘 처음 봤네.”
자신의 설명을 끊는 케인. 총기에 넘치던 그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비전투 병과를 제외한 분야에서 유일하게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 부대가 어디인지 아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얀의 대답은 빨랐다.
“기사단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 기사단은 지금 숙소에 모여서 승리를 자축하는 축배를 들고 있다네. 술도, 고기도 모두 고급품들이지.”
“….”
그렇게 말하는 케인의 등 뒤에 보이는 수많은 시체들. 그리고 그 시체의 무리에 끼지도 못한 채 적군의 시신과 함께 불태워지는 형벌부대.
“하,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등 뒤에 두고 잘도 그것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군.”
아무런 말없이 서있는 얀에게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사단은 저희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지? 마력을 타고난 것 외에 다른 차이가 있나?”
얀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 케인이 얀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전장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는 자네와 같은 형벌부대야.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입대되어 소모되는 이들이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국가적 역량이 전장에 집중되는 시대. 명백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는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군대에 보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시대다.
결의에 찬 눈으로 이어지는 그의 연설을 아마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맞장구쳤을지도 모를 일이지.
“단지 마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저 수많은 목숨들이 제국을 위해 희생된 걸세. 웃기는 일이지.”
“기사단장님.”
이어지는 케인의 말을 얀의 한 마디가 가로막았다.
“뭔가?”
“전 제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
얀의 한 마디에 케인의 웅변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다른 부대원들도 저와 비슷할 겁니다. 그냥 살고 싶어서 싸운 것뿐입니다.”
조용하게 이어지는 형벌부대원의 말에, 케인은 고개가 내려갔다.
“그들의 죽음이 제국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내 오만이었다는 말인가?”
대답은 없었다.
잠시 동안 기다린 뒤 경례를 올린 얀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숙여진 케인의 고개는 올라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