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4화 (4/186)

4. 당신도 그들 중 하나(1)

의식이 돌아온 건 언제부터였을까.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눈을 뜬 얀은 자신이 어두운 조종석 안에 앉아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강제로 안을 열어볼 수는 없는 건가?"

"시도해봤지만, 여기 있는 장비로는 장갑판에 흠집도 낼 수 없었습니다."

"콜로서스로 억지로 벌려보려고 해도 무리였소. 어떻게 되어먹은 장갑인지…."

"허, 사면초가나 다름없군 그래."

발굴단에 섞여있던 연구원들과 기사들이 주변에 모여들어 대화하는 것이 들려왔다. 애써 정신을 다잡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정신을 잃은 뒤 시간이 꽤 지난 것인지 아까 전보다는 몸에 활력이 조금 돋았다.

이어서 느껴지는 이물감.

격통이 몰려왔던 목덜미에 손을 가져가자, 무언가가 그곳에 연결된 것이 보였다.

"전선? 이런 미친, 사람 몸에 뭘 박아 놓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힘줘서 뽑으려 하니, 방금 느꼈던 격통이 다시 밀려왔다.

"흐윽!?"

확신했다. 이건 아니다.

이걸 뽑으면 최소 반신불수의 몸이다.

"하아…."

손 쓸 수도 없는 상황.

창조주의 기술인만큼, 섣불리 건드리는 것보단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진짜 미칠 노릇이네."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반쯤 부스러기가 되어있는 성냥갑에서 그나마 멀쩡한 놈을 꺼내 담배에 불을 지폈다.

값비싼 사제담배의 연기가 폐를 훑고 지나가자,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 진짜로 움직일 수 있을 줄이야.'

나가게 되면 알아봐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콜로서스와 자신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전투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렌이라고 했지. 그 여자.'

사람에게서 모든 색이 빠져나간 듯 새하얬던 그녀.

자신을 이 콜로서스 안으로 집어넣은 그녀를 가장 먼저 찾아봐야 했다.

마력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이 녀석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 어떻게 이 녀석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정보가 부족했다.

"전투 중에 잘못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혼잣말하며 머금고 있던 담배연기를 내뿜는 순간.

[내부 화재 경보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연결 해제. 사용자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여주십시오.]

"뭐?"

기계음과 함께 순식간에 목덜미에 연결되어있던 전선이 뽑혀나갔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전선이 뽑혀나가는 것과 동시에 조종석이 아래로 내려오며 해치가 위아래로 열렸다.

"열린다! 열립니다!"

"뭔가 알아낸 건가?!"

"아뇨, 저절로 열렸습니다! 이봐요! 거기 괜찮…. 히이익!?"

열린 조종석 문 사이로 얀을 발견한 연구원이 환희에 차 말하다가 나자빠졌다. 그의 군복 어깨에 새겨진 낙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형벌부대…!"

그 한마디와 함께 얀을 바라보던 기사들의 낯빛이 바뀌었다.

"모든 기사들 전투준비! 형벌부대원이 콜로서스를 제어하고 있다!"

거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주위에 있던 콜로서스들이 일제히 손에 든 무기로 자신을 겨누는 것이 보였다.

중범죄자로 이루어진 형벌부대.

신원을 알 수 없는 범죄자에게 제국의 최강 병기가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얀 베르쿠트 하사입니다. 도움을…!"

곧바로 양 팔을 들어 저항의지가 없다는 것을 밝힌 얀.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들의 거친 손이 얀을 붙잡아 조종석 밖으로 그를 끄집어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그의 목을 곧바로 기사들의 무릎이 짓눌렀다.

"제압 완료!"

"젠장, 어떻게 이 안에 들어간 거야!?"

곧바로 소총으로 자신을 겨누는 병사들을 보며 얀이 한숨 쉬었다.

"…아까 싸우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지는데."

피곤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얀은 양 팔을 머리 위에 올렸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바로 총살될 테지.

"수갑 가져와! 어서!"

"젠장, 아무리 비상사태라지만, 형벌부대에게 콜로서스라니?"

"차라리 여기서 죽여 버리는 게…!"

격양된 분위기로 당장이라도 얀에게 방아쇠를 당길 듯한 기사들이었지만, 이내 들려온 맑은 목소리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만! 전투 의지가 없는 자를 함부로 죽이려 들다니!"

그 목소리에 얀의 목을 짓누르던 힘이 어느 정도 느슨해진 것을 느꼈다. 기사들 역시 당황한 듯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케인 경!"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얀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금발에 푸른 눈, 총기로 가득 찬 분위기,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하고 흰 피부에 조각 같은 얼굴까지.

제국의 은기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화 속 귀공자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란델 경! 당장 그를 놔주세요!"

"그, 그렇지만 기사단장님! 이자는 형벌부대원입니다! 콜로서스에 타서 무슨 짓을 할지…!"

"엘프의 콜로서스를 막아내고 단원들을 구했지요.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명령입니다. 그를 풀어주세요. 당장!"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얀의 목을 짓누르던 란델이라는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그를 노려보던 란델은 기사단장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몸을 일으켜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얀에게 은기사 케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부하의 무례를 용서하게. 너무 갑작스러웠던 상황이어서 말이지."

"이해합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정변화 없이 그렇게 말하는 얀을 보자 기사들은 부아가 치밀었다.

"이해한다고? 형벌부대 버러지가 어딜 기사단장님께…!"

"그만!"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기사 란델이었지만 케인의 일갈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하마터면 소중한 발굴단원들을 잃을 뻔하지 않았나. 자네가 아니었으면 무슨 사달이 났을지 몰라."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그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케인.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얀에게 살짝 웃어 보인 그는 뒤돌아서 다른 이들에게 명령했다.

"전군 철수! 회수할 수 있는 골격만 회수한 뒤 나머지는 폭파한다!"

"예!"

그의 명령과 함께 흩어진 기사들.

이윽고 콜로서스들이 무너진 동굴 속에서 골격을 통째로 집어 들었다.

한 대에 두 기 씩 골격을 집어든 콜로서스들이 먼저 나아갔고, 얀이 타고 있던 콜로서스는 두 대가 나서서 옮겼다.

- 발크 경! 잘 좀 들어보게! 이쪽도 하중이 장난이 아니야!

- 하고 있습니다! 젠장, 뭔 놈의 무게가…!

축 늘어진 채 양 팔을 붙잡혀 끌려가는 콜로서스.

그마저도 중량을 견디지 못해 하반신을 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형국이었다.

"마치 짐승을 끌고 가는 것 같군."

끌려가는 얀의 콜로서스를 바라보면 케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얀 하사라고 했나?"

"예. 형벌부대 소속 얀 베르쿠트 하사입니다."

"흠, 형벌부대원들을 가끔 봤지만 자네 같은 이는 처음 보는군. 귀족식 예법이 몸에 배어있다니 말이야."

"…."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질문.

순간, 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 사정이 있었겠지. 깊게 묻지는 않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사령부에서 형벌부대에게 명령서가 내려왔네."

그렇게 말하며 케인은 얀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얀은 명령서를 읽더니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중대장의 익숙한 서명이 눈에 들어왔다.

'글을 읽을 줄도 아는군. 간부 명령서라 전문용어도 많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읽는 얀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케인.

그렇지만 얀은 거기엔 신경 쓰지 않으며, 서류를 접고 그에게 경례했다.

"명령 확인했습니다. 몸소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은 무슨, 그쪽이야말로…. 고생하게."

그렇게 말한 얀은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호송차량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어깨에 낙인을 진 이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형벌부대원들이었다.

그런 얀의 모습을 바라보는 케인.

그런 그에게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기사단장님?"

"전장에서 일어나는 온갖 더러운 일들은 저런 식으로 처리되는 거였군. 나도 공부가 부족했어."

"예?"

중얼거리는 케인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

뒤늦게 그를 알아차린 케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시체는 발견됐나?"

"아, 아뇨. 아마 탈출한 것 같습니다. 버려진 콜로서스의 인장을 보아하니, 콜로서스를 조종하던 기사의 이름은 델란엘이었습니다."

"델란엘…. 엘프 왕성의 근위기사가 직접 나섰단 말이군."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 나오자 케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유적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근위기사단을 파견하다니.

"근위기사가 나왔다면 콜로서스의 수도 예상 이상이겠군. 경비를 철저히 해야겠어."

"예. 그리고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의 증언대로면…. 우리 측 병력규모가 적에게 알려진 듯 합니다."

이 전선에 파견된 제국의 콜로서스는 10량 정도.

엘프군 콜로서스 7대를 겨우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대로는 방어선이 망가지겠군. 기사단 본부에 연락해서 증원을 요청하게. 가동 가능한 콜로서스들은 전량 전투대기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케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팔이 통째로 뜯겨나가 있는 엘프군 콜로서스.

마치 쥐어서 터트린 듯 처참하게 구겨져 있는 머리와 뽑혀나가 널브러진 팔.

짐승에게 뜯어 먹힌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

케인의 물음에 자리를 뜨려던 기사가 대답했다.

조용히 생각하던 케인이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그에게 말했다.

"방금 전 돌아갔던 얀 하사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게. 직접 얘기해봐야겠어."

***

"이번에도 살아 돌아오셨네요. 하사님, 존경스럽습니다."

"존경은 무슨."

호송차량 안.

전투의 피로로 녹초가 된 병사들이 짐칸에 몸을 실은 채 한밤 중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콜로서스에 대해선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기에, 형벌부대원들은 그가 단순히 살아 돌아온 줄만 알았다.

"에, 엘프 마을이면, 우리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실탄 줬잖아 새끼야. 하늘에 한발 쏴서 위협하고, 저항하면 땡겨!"

"그…. 그치만."

"그치만은 니 애미 씨발!"

뻑!

"흐윽!?"

선임의 말에 토를 달다가 배를 얻어맞은 일병이 마른 기침소리를 냈다.

"야, 야! 하사님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임마!"

근처에 있는 선임병이 그렇게 외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예? 아, 뭐,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몰라서."

"뭐? 이 새끼가 상관한테…!"

"그만 해."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신병들에게 분개하는 부대원을 말렸다.

본래 제국 각지의 온갖 인격파탄자들이 모이는 곳이 형벌부대.

제국 최악의 범죄자들을 다루려고 해 봤자 헛수고다.

"하차!"

앞차에 탄 소위의 외침에 부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무장을 점검했다.

병사에게는 소총. 간부들은 기관단총이었다.

"소탕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민간인이다! 인명피해는 최소화하도록!"

"하, 똑같은 귀쟁이 새끼들인데 민간인은 니미, 쏘가리 새끼가."

"야, 야. 듣겠다."

"아 들으라 해. 씨발, 지 살겠다고 있는 거 없는 거 죄다 불어버린 새끼가 아가리는…."

부대원의 볼멘소리가 들렸는지, 어린 소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곳에 온 이들은 태반이 형벌부대원. 범죄를 저질러 사형 대신 이곳에 파견된 이들이다.

심지어 새로 들어온 직후 파견되어 피로와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

신입장교의, 그것도 패장의 입바른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야, 얀 하사님…."

"말씀 편히 하십시요. 저보다 상관이십니다."

"그, 그럼 그렇게 하겠네…. 같은 전장을 살아 돌아오기도 했으니…"

졸지에 전선을 위험에 빠트려 역적이 된 소위가 그렇게 말했다.

부하를 살리기 위한 판단이었으나, 그 상황을 목격한 병사들은 이미 고혼으로 변한 탓에 항변할 수도 없었다.

형벌부대원들이 도착한 곳은 유적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생 엘프 부락.

상부는 이곳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판단하여 아무 구실이나 붙여 보복할 것을 명령했다.

"우, 우리는 제국군이다! 현재 이 마을은 제국군의 작전구역이다! 신속히 퇴거하라!"

온 마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는 소위.

그렇지만 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말한다! 이곳은 잠시 후 제국군에 의해…!"

빠악!

소위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를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기 때문이다.

"여긴 우리 마을이야! 인간 놈들은 당장 꺼져!"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분노에 찬 남자아이의 외침이었다.

"이야~ 잘 던지네?"

"야, 야. 우리 쏘가리 갔다. 완전히 갔어."

"킥킥킥."

갑작스러운 일격에 정신을 잃은 듯한 소위.

부대원들은 그런 그를 부축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비웃고만 있었다.

얀 또한 별다른 조치는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전경고는 명령에 없었습니다. 소위님."

쓰러진 소위를 보며 얀이 중얼거렸다. 그가 기절한 이상, 이제 현장 지휘권은 자신에게로 넘어왔다.

"적 집단의 선제공격 확인. 퇴거 명령 철회하고 소탕작전으로 전환한다."

그렇게 말하며 얀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형벌부대원들을 보았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변함없는 인생들. 고기방패가 아니라면, 이런 용도로 쓰는 것이다.

더러운 일, 보기 흉한 일, 보복, 전쟁범죄 등….

싫다고 거부하는 순간 죽는 것은 자신들.

이들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었다.

"사령관 명령에 따라, 마을에 있는 인원들을 적군으로 간주. 전원 사살한다. 헤쳐."

"헤쳐~!"

얀의 명령에 호송차량에서 내린 60명의 병사들이 함성과 함께 마을 곳곳으로 흩어진다. 이윽고 마을 곳곳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거 놔! 놔라 인간! 여긴 우리 집이다!"

탕!

"잔스! 아버지가 총에…!"

"이 개 같은 새끼들아!"

탕! 탕!

엘프와의 전투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간 동료들의 복수라도 하려는 것인지.

마을을 청소하는 형벌부대원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아악?! 이 귀쟁이 새끼가 마력을!"

"이 개새끼가!"

곳곳에서 저항이 보였지만, 마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무장한 병사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윽고 두 손을 든 엘프와 죽은 엘프들, 그리고 몇몇 고블린들의 시체가 마을 광장으로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것이오! 우린 엘프 왕국과는 관계없는 부족민들이란 말이오!"

"알고 있습니다만, 상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명령인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하는 엘프 노인의 말에 대꾸한 얀.

그 무감정한 태도에 되려 분노가 치미는 듯 했다.

"양해? 양해라니! 아들딸을 전부 죽여 놓고 양해라니!! 세상천지에 이런 미친놈들이 어디에 있…!"

"사살해."

탕! 타타탕! 탕!

얀의 지시에 항변하던 촌장과 함께, 끌려나온 엘프들이 모두 벌집이 되었다. 100명이 넘는 부족민들을 모두 죽이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 측 손실은?"

"5명 부상. 2명 사망했습니다."

"시체는 엘프들이랑 같이 태우고, 부상자는 호송차량에 태워서 먼저 보내."

전사자 수에 집계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형벌부대. 시체를 남겨봐야 짐만 될 뿐이다.

그렇게 마을을 정리하는 사이, 한 구석에서 방금 전 소위를 비웃던 병사 셋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야. 미리 빼놓은 여자들 저쪽으로 모아. 소위님 아다나 떼 드리자."

"우리 일은 어떡하게?"

"하사 있잖아~ 그 얀인지 뭔지. 그 새끼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방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하사님. 저 새끼들 방금 간부를…."

"알아. 여기 시체 처리하고 있어."

그렇게 말한 뒤 얀은 천천히 그들이 들어간 민가 쪽으로 걸어갔다.

퀴퀴한 냄새와 열기.

그 안에는 나체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있는 엘프들과 거기에 깔린 신입소위, 그걸 보며 낄낄거리는 삼인조가 있었다.

"어, 뭐야. 우리 얀 하사님 오셨네?"

"이거…. 같이 하십니까?"

죄책감은 느껴지지도 않는지 씨익 웃어 보이는 병장.

그렇게 말하며 축 늘어진 엘프 여자를 들어 보이는 부대원들.

피멍이 들어있는 팔이 역으로 꺾여있었다.

'미친 새끼들.'

조용히 뇌까린 얀이 앞으로 나왔다.

"너희가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예?"

의아한 듯 되묻는 상병.

"전선에 배치된 지 얼마나 됐냐고."

"아, 그…. 이틀째입니다. 예."

"그래. 이틀…."

한숨이 나왔다. 어제 배치 되서 오늘 투입됐다는 말이었다.

"그냥 알아두라고. 형벌부대원이 장교들 건드리면 재판 없이 즉결처분이야."

"예? 아, 그, 그렇습니까? 어우, 귀하신 몸이었네."

즉결처분.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멈칫한 상병이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 죄송합니다. 그래도 아직 깨어나신 건 아니고…."

"그리고 그 집행은 최고 선임자인 내가 해."

예? 라고 되물을 시간은 없었다.

탕!

곧바로 얀의 홀스터에서 뽑힌 권총이 그의 미간에 총알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털썩!

"…어?"

"꺄아아악!!!"

"하사님 바, 방금 아군을…!"

아직 정신이 남아있는 엘프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구심점이 되어주던 상병이 순식간에 시신으로 변하자 고양감에 젖어있던 두 병사의 정신은 순식간에 현실로 복귀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 생각난 것이었다.

얀 베르쿠트. 형벌부대 복무기간 10년.

죄목. 상관 및 아군 살해.

"전체 차렷."

"차, 차렷!!!"

상황 파악이 된 두 병사가 곧바로 부동자세로 일어났다. 형벌부대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였다.

후우-

담배연기를 내뿜는 사이 총성을 듣고 달려온 병사가 다가왔다.

"얀 하사님."

"엘프들 사살하고 소위님 모셔. 문제 생기면 내가 사과드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얀이 건넨 기관단총을 받아들고 짧게 답한 병사는 한 달 이상을 살아남은 부대원이었다.

“제, 제발 살려…!”

타다다당! 투다다다당!!

총성이 끝난 뒤 잠시 동안의 정적.

"끝났습니다."

"빨리 나가. 소위님 잘 모시고."

"예."

부동자세로 서 있는 병사들의 등 뒤엔 벌집이 된 엘프들의 시체가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침묵이 지나간 후, 천천히 얀의 입이 열렸다.

"절차대로 할까?"

"아, 아닙니다!"

"아니긴, 니 선임들 다 일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만 재미보고…."

"죄, 죄송합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 그…. 엘프들한테 그…."

"내가 니들 귀쟁이 따먹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같아?"

그렇게 말한 얀은 담배 연기를 한 번 더 들이마셨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두 병사들.

그렇게 고요한 정적이 얼마나 더 흘러갔을까.

"여기 있는 거랑 광장에 있는 시체. 니들 둘이서 묻어. 후임 시켰다는 소리 들리면 죽여 버린다. 알았어?"

"예! 아,알겠습니다!"

"목소리."

"알겠습니다아아아!!!"

미친 듯이 소리 지른 탓인지 두 병사들의 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푸우, 하고 연기를 한 번 더 내뱉은 얀은 다 핀 담배를 던지며 밖으로 나갔다.

"알아들었으면 일해. 꺼져."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광장으로 달려간 이들은 야삽으로 미친 듯이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그것을 잠시 지켜보던 얀이 호송차량으로 돌아가니, 신음소리와 함께 신입소위가 깨어나고 있었다.

"으으…. 얀 하사? 이게 어떻게 된…. 히익!?"

그렇게 말하며 깨어난 소위의 눈앞에 보인 것은 마을 주민들의 시체더미.

산처럼 쌓인 시체였다.

"야, 얀 하사! 이건…!"

전장 이상으로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소위에게 얀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탕임무 완수했습니다. 부상자들이 있어서 복귀해야 할 것 같은데, 남은 인원들은…."

이 인간에게는 감정이 없나?

백 명이 넘는 마을 주민들을 몰살한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무표정을 보며 공포에 질린 소위가 애써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인솔하겠네. 얀 하사는 그…. 머, 먼저 복귀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경례와 함께 전달을 끝낸 얀은 이윽고 호송 차량 뒤편으로 사라졌다.

피곤하다는 듯이 조수석 시트에 몸을 맡기자, 시동을 건 차량이 진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