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전선에서 살아가는 법-3화 (3/186)

3. 총알받이 10년차(3)

"키익! 빨리 따라 나와라!"

"이 더러운 놈들, 뜸들이지 말고 빨리 죽이란 말이야!"

"키이이익!!!"

동굴에서 농성하던 인간들이 하나 둘 밖으로 끌려나오고 있었다.

골격 발굴기술을 갖춘 이들은 엘프왕국에서도 흔치 않은 인재.

최대한 상처 없이 잡아오라는 것이 기사단장의 명령이었다.

거기에 성지 안에 들어있는 콜로서스 골격까지.

예상외의 큰 성과에 엘프 기사 델란엘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기사님! 인간, 모두 잡았다! 발굴단은 따로 모아 놨다!"

"음. 고생 많았다. 곧 네놈들에게 연회를 베풀도록 하지."

"키이! 연회다! 키이이익!!!"

기쁨에 겨워 괴성을 지르는 고블린들.

이윽고 델란엘은 인간들의 무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군복을 입은 이들.

양 팔을 묶인 채 자신의 콜로서스를 노려보는 이들이었다. 조종석에 앉아 확성기를 통해 말을 건다.

- 목숨을 구걸해봐라. 네놈들의 본거지에 있는 콜로서스의 수와 배치. 그걸 말하면 살려주지.

예상외의 제안에 당황한 듯 병사들이 소위가 있는 곳을 보았다.

콜로서스의 배치상황 같은 고급 정보는 장교들에게만 공유되었으니까.

"수작 부릴 생각 말고 죽여라! 너희 엘프들한테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어!"

- 호오,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볼까?

그렇게 말한 기사의 콜로서스가 손짓하자 병사 한 명이 끌려나왔다.

"이 개새끼들! 뭐하는 짓이야?!"

- 우선 한 명.

투웅-!

기관포 한 발.

욕설을 퍼붓던 병사의 몸이 그 자리에서 터져나갔다.

"키이이이이익!!!"

이어진 것은 고블린들의 함성.

육편이 된 병사의 시체에 달려든 고블린들이 걸신들린 듯 그것을 자신들의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우욱?!"

"이 미친놈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얼굴이 창백해진 채 소리치는 장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델란엘이 다시 한 번 말했다.

- 네 부하들의 목숨을 구걸해라. 정보를 내놓으면, 너흰 보내주지.

"크윽! 이건 전쟁범죄다! 엘프왕국은 제나르 협정을 잊어버린 것인가?!"

-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이윽고 한 명이 더 끌려나왔다.

"소, 소위님! 제발, 저 좀 살려주…!"

- 다음은 두 명을 죽이지.

퉁!

"연회다! 기사님께서 연회를 베풀어주셨다!!!"

"키이이익!!!"

병사의 뼈를 빨아먹던 고블린들이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포식했다. 이렇게 되자 소위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소위님 제발! 저흰 죽고 싶지 않습니다!"

"상부에 보고하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제발, 저흴 좀 살려 주십시요!"

"고향에 가족들이 있는데…!"

간절한 병사들의 부탁에 소위는 점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잡히기 직전, 목숨이 아까워 자살하지 못한 대가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위.

콜로서스에 탄 엘프기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보게. 이 녀석들도 아직 배가 덜 차서 말이야.

"키이익!!! 좀 더! 좀 더 주십시오. 기사님!!!"

"키이이익!!!"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위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바뀌어갔다.

저 녀석이 입만 열면 살 수도 있는데.

저 녀석 때문에 우린 죽는 거야.

그런 생각이 점점 퍼져나가며 간절함은 원망으로, 원망은 이윽고 증오로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씨발! 말해!!! 말하라고!!! 네 부하들을 여기서 다 죽일 셈이야?!"

"어차피 장교라 자기는 살 수도 있다 이거잖아!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는 거지!!!"

"입 열어! 열라고!!! 이 개새끼야!!!"

불가항력의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같은 피해자인 소위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병사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꽉 쥔 소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들끼리 싸우고 물어뜯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재미있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콜로서스 조종석에서 흡족하게 웃고 있는 델란엘.

"내가 말하면, 부대원들의 목숨은 살려주는 건가?"

"흐, 드디어 입을 여는가."

고뇌를 마친 소위의 입이 열렸다. 조용히 읊조린 후 확성기에 대고 말한다.

- 내 제안에 변함은 없네.

그렇게 말하자 소위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전선에 파견된 콜로서스는 총 12량. 전선기지에 막 도착한 상태다. 그리고 추가로, 은기사 케인 로렌츠 경께서 직접 나오셨다."

- 케인 로렌츠! 황실 기사단장이 직접 행차하셨군!

뜻밖의 횡재에 델란엘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월척이다. 이 정보를 가지고 본부에 돌아가기만 해도 엄청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이런 변방에서 이렇게 큰일을 해낼 줄이야!

"자! 내가 가진 정보는 모두 말했다! 어서 내 부하들을 풀어줘!"

- 그래. 풀어줘야지. 난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한 콜로서스의 양 팔이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소위를 제외한 병사들의 면면에 안도의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 헌데, 내 고블린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양이 좀 모자란 것 같아서 말이야.

그 한마디에 그들의 얼굴에 떠있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비겁한 자식, 약속이 다르지 않나!"

- 아니, 약속대로지 않나? 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네. 열심히 도망치게. 소총으로 무장한 고블린들 사이에서 말이지!

"키이이이이익!!!"

"키이이익!"

델란엘의 말이 끝나자 고블린들이 함성을 지르며 하나 둘 총을 겨누기 시작한다.

"이 귀쟁이 새끼,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애초부터 살려둘 마음이 없었던 거잖아!"

점점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피해 한 곳으로 모이는 병사들.

군침을 흘리는 고블린들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때.

쿵.

"음?"

진동 소리에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마력장에 감지된 반응에 델란엘 역시 의아한 듯이 시선을 돌렸다.

콜로서스 골격들이 보관되어있던 동굴 안.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전원 정지. 고블린 1번 수색대!

"키이익!!!"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고블린들이 응답했다.

- 동굴 안에 뭔가가 있다. 샅샅이 뒤져!

"키익! 알겠다!"

그렇게 외친 고블린 10명 정도가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낯선 굉음에 고블린들 역시 긴장한 듯, 하던 일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 열량은, 콜로서스? 조종석도 없이 마력으로만 움직이는 건가? 인간이 어떻게…?"

계속해서 커지는 반응에 델란엘 자신 또한 마력을 끌어 모았다.

장갑과 무기를 붙이지 않은 골격이라 하더라도, 콜로서스는 콜로서스.

보병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동굴에서 황급히 뛰어나오는 고블린들.

'흠, 동굴 안에 쥐새끼가 남아있었나?'

"키이이익!!! 괴물! 괴물이 깨어났다!!!"

"뭐? 이 녀석들이 콜로서스를 몰라볼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데?"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고블린들을 보며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그때.

펑!!!

폭발음이 들렸다.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 그렇지만 이것은 화약으로 인한 폭발이 아니었다.

지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거대한 진동에 델란엘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진동의 근원으로 눈을 돌렸을 때, 델란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게, …뭐야?"

하늘 위.

거대한 콜로서스로도 고개를 들어야 할 정도로 높은 곳에 무엇인가가 떠올라 있었다.

목각인형과 같은 콜로서스의 골격이 아닌, 사람의 그것처럼 정교한 관절부.

하늘 위로 떠오른 그것이 순식간에 자신이 있는 곳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키이익?! 이쪽으로 떨어진다악!!!"

"젠장!?"

쿠콰아앙!!!

포탄이 떨어진 것만 같은 충격에 델란엘의 콜로서스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충격에 휘말린 고블린들이 이곳저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말도 안 돼, 콜로서스가 도약을 했다고?

심지어 저렇게 높이?

"저게 뭐지!?"

"워, 원군이다! 모두 반격한다!"

"키이익?! 인간 놈들이 무기를 들었다! 쳐라!"

순식간에 덤벼드는 병사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고블린들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

이윽고 흙먼지를 헤치고 튀어나온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군의 콜로서스? 아니야. 저런 형태의 장갑은 본 적이 없어. 신형인가?"

방어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플레이트 메일처럼 통짜로 주조하는 것이 콜로서스의 장갑이다.

그렇지만 눈앞에 나타난 저 녀석의 장갑은 다른 콜로서스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날렵한 몸체에 가시처럼 사납게 튀어나온 수많은 장갑판들.

짐승의 갈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용의 비늘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웬 놈이냐.

확성기에 대고 넌지시 말했다.

눈앞에 있는 진회색 콜로서스는 자신의 말을 들은 것인지 붉게 빛나는 눈을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 ….

대답은 없었다.

조용히 자세를 낮춘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콜로서스.

아니, 저런 모양을 한 기체를 콜로서스라고 부를 수 있었던가?

- 제국의 기사라면 운이 좋지 않았군. 명예로운 결투를 할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지.

불안한 의문을 애써 떨쳐낸 델란엘.

곧바로 양 팔에 장비된 기관포로 눈앞의 콜로서스를 겨눴다.

'제국군의 신형 설계라면, 장갑 강도가 올라갔겠군.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을 마친 델란엘의 콜로서스가 양 팔의 기관포를 재장전했다. 탄종은 고폭탄. 철갑탄을 장전하더라도, 구경이 낮은 화기로는 저 장갑을 뚫을 수 없다.

그렇지만 수천 발을 퍼붓는다면, 열과 충격량 덕분에 이어지는 접근전에서 선공권을 잡는 것이 가능했다.

부와아아아앙!!!

포성과 포연이 엘프의 성지가 있던 곳을 가득 메운다. 갑작스러운 기관포 세례에 당황한 듯 제국군의 콜로서스가 양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멍청하긴, 자기 스스로 시야를 가릴 줄이야!'

이 시점에서 승부는 났다.

곧바로 발사하던 기관포를 해제하여 땅에 버린 델란엘의 콜로서스가 앞으로 돌진했다. 양손에는 콜로서스의 조종석을 꿰뚫을 스파이크가 장비된 상태였다.

"이걸로 끝이다!"

콰아앙!!!

정확히 조종석이 있는 자리에 그의 강권이 명중했다. 최대 관통. 만약 뚫지 못했다 하더라도, 제국의 기사는 충격으로 인해 안에서 곤죽이 되어있을 터였다.

그것이 평범한 제국의 콜로서스였을 땐 말이지.

끼기기기긱….

델란엘의 눈이 커졌다. 콜로서스가 자신의 일격을 버텨냈다. 손으로 자신의 스파이크를 잡아낸 것이었다.

"무, 무슨…!"

뭔가가 이상했다. 당황한 채 서둘러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치 구속구에 걸린 양 꿈쩍도 하지 않는 자신의 콜로서스를 보며 델란엘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쿵.

"크윽!?"

기체에 가해진 충격에 델란엘이 침음성을 냈다.

다음 순간에 보인 것은 눈앞의 콜로서스가 자신의 머리를 붙잡은 상황이었다.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얼굴을 가까이 대는 콜로서스.

사람을, 그중에서도 기사를 본떠 만든 콜로서스와는 완전히 다른 형상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짐승과도 같은 모습.

- 이, 이거 놓지 못해!? 젠장, 무슨 놈의 힘이…!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

이대로라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모으는 델란엘.

그렇지만 아무리 마력을 끌어보아도 자신의 콜로서스를 붙잡은 적 기체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당황한 델란엘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뿌드드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그럴 수가,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다고 현실을 부정하며 델란엘은 적 기체가 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말도 안 돼…!"

이윽고 처음 보는 적 기체를 바라보는 델란엘의 눈이 공포에 잠겼다. 저 녀석은 지금 콜로서스의 머리를 붙잡고, 팔을 뜯어내고 있었다.

우지직!

마치 짐승이 사냥감을 먹기 좋게 뜯어내듯이 콜로서스의 팔이 뽑혀 나왔다.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장갑판도 종이처럼 찢어내고, 포병의 포격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는 콜로서스의 골격을.

저 괴물은 손으로 잡아 뜯어버린 것이다.

"으, 으아아아악!!!"

있을 수 없는 상황이 그에게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앗아갔다. 저놈은 콜로서스 같은 게 아니었다.

괴물!

남아있는 한쪽 팔로 머리를 잡은 콜로서스의 팔을 뿌리친 델란엘의 기체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몸에 있는 마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에, 조종석은 공포감에 흘린 땀과 오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쿵. 쿵.

자세를 낮추고, 주저앉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진회색 괴물.

양 팔을 늘어트린 채 천천히 다가오는 소름끼치는 모습에, 델란엘은 그 자리에 웅크려 미친 듯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오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쿠구구구….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콜로서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 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적에 델란엘이 공포로 꾹 감고 있던 눈을 겨우 떴다.

푸쉬이이익-!

전신의 장갑판이 열리더니, 하얀 증기를 내뿜은 콜로서스.

지친 맹수가 한 숨을 내뱉듯, 열기로 가득 찬 연기를 내뿜은 괴물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도, 도망가야 해! 저런 걸 무슨 수로 이기란 말이야…!"

마지막 기회.

가까스로 조종석에서 뛰쳐나온 델란엘은 허겁지겁 자신의 진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괴물이 완전히 무방비에 놓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잠식된 그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퇴, 퇴각! 전원 퇴각이다!! 저 괴물한테서 도망쳐! 어서!!!"

"키익?! 기사님이 도망친다!"

"키이익!!! 도망쳐라! 기사님이 당했다!!!"

자신을 이끌던 기사가 도망치자 남아있는 고블린들 역시 와해되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도망가는 고블린들에게 미친 듯이 총탄을 퍼붓는 병사들을 소위가 막아섰다.

"엘프 기사가 도망칩니다!"

"이 개새끼들! 거기 안 서!?"

"추격하지 마라! 붙잡힌 발굴단원들 먼저 구출해야 해!"

그렇게 말한 소위는 고블린들이 사거리에서 벗어나자 조용히 총구를 내렸다.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앙다문 병사들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는지, 현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또 다시 들려오는 발소리.

- 생존자! 생존자는 없는가!?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제국군의 콜로서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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