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총알받이 10년차(2)
"충성. 얀 베르쿠트 하사입니다."
"얀…! 아니, 그, 2중대 3소대장 단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위님 저보다 상관이신데, 말씀 편하게 하시는 게…."
"소, 소위! 단델 클라우스! 죄, 죄송합니다!"
'장교가 왜 부사관한테 관등성명을 대고 자빠졌어?'
대체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듣고 온 건지 바짝 겁먹은 소위를 달래고 돌려보낸 얀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동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콜로서스 매장지가 이런 곳에 있었다니."
콜로서스.
그 어떤 군사병기로도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거인이다.
수년이 걸려 파놓은 참호도 한 걸음에 뛰어넘는 돌파력과 장갑과 돌격포를 들고 연사하는 무지막지한 화력.
바다에 전함이 있다면 땅에는 콜로서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전장에서 이 병기의 존재감은 컸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이 병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콜로서스를 두른 장갑과 들고 있는 무기는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근간이 되는 골격과 마력로를 만드는 기술은 인간에게도, 엘프에게도 없었다.
새로운 콜로서스를 만들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 유적에서 골격을 발굴해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 발굴단장 긱스 마틴이요…. 그, 아무쪼록 우리 단원들에게는 피, 피해가 없도록…"
방금 본 소위 이상으로 긴장한 발굴단장.
안경 뒤의 얼굴에는 공포감이 넘쳐났지만 얀은 내심 안심했다.
침 뱉고 욕하는 사람이 아닌 시점에서 할 일이 줄어든 셈이었으니까.
"호송차량 비워! 기사가 쓰러졌다!"
"여기! 사람이 부족합니다! 아무나 한 명만 와주세요!"
돌발 상황이 생긴 듯 했다.
주변 경계는 빠릿한 소위가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으니 얀은 그쪽을 돕기 위해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여기 기사분이…. 히이이익?!"
쓰러진 기사를 넘기던 발굴단원이 얀의 어깨에 새겨진 낙인을 보자 공포감에 뒤로 나자빠졌다.
"혀…. 형벌부대?"
범죄자. 그중에서도 1급 중범죄자들만을 모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것이 형벌부대.
민간에서는 그것이 와전되어 일종의 살인집단이라는 인식이 퍼진 듯 했다.
'뭐, 범죄자인 것도 맞고. 다른 애들 보면 그게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얀은 말없이 눈앞에 쓰러진 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일종의 중독증세가 나타난 것인지, 피부가 검게 죽은 상태로 신음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황급히 그를 들쳐 매고 들것에 옮기자 병사 두 명이 호송차량으로 그를 옮겨갔다.
"유적에 함정이 있는 겁니까?"
위험요소가 발견되었다면 그곳에 들어가는 것 또한 자신과 같은 형벌부대였기에 먼저 확인했다.
"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녀석 때문입니다."
존대와 격식 있는 말투에 마음이 놓인 듯 발굴단원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건…?"
무릎을 꿇고 있는 콜로서스. 골격이 아닌 장갑이 붙어있는 완전한 형태였다.
제국에서도, 엘프왕국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모양.
기사의 갑옷과 같은 통짜 장갑이 아닌 온갖 모양의 수많은 장갑을 촘촘하게 두른 녀석의 모습.
용의 비늘 같기도 했고, 짐승의 털 같기도 했다.
"저희도 처음 보는 형태입니다. 장갑이 남아있는 콜로서스들이라도 대부분은 골격만 남은 채 부식된 상태였는데, 이 녀석은 거의 새 것처럼…."
그렇게 말하는 발굴단원의 뒤로 의무병들이 신호하는 것이 보였다. 보고를 위해 보낸 수신호. 이미 저 기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기체에 탄 기사는 방금 저분뿐인 겁니까?"
"아뇨. 앞으로 두 분 정도가 타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탑승자를 죽이는 콜로서스라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두 눈은 마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다음 먹이는 너냐?'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거기! 호송 끝났으면 와서 거들어!"
"예! 금방 갑니다!"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발굴단원이 분주하게 자리를 떴다. 말상대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얀은 마치 매료된 듯이 그 자리에 멈춰 녀석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넋 놓고 녀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기."
"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여자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자 목소리의 주인이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여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앞에 있는 여인을 잠시 바라봤다.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겨우 닿는 키, 흰자와 겨우 구별할 수 있는 옥색 눈동자. 탈색 되서 하얗게 샌 머리칼.
그리고 마치 인형과 같이 아름다운, 그렇지만 무감정한 얼굴까지. 단지, 오랜 전장 생활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길을 잃으신 겁니까? 책임자를 불러드릴 수 있습니다만…."
퍼뜩 정신을 차린 얀.
입고 있는 복장은 발굴단들이 입고 있는 코트였기에 얀은 그렇게 말했다.
"렌. 내 이름."
"어…. 얀 베르쿠트. 하사입니다."
다짜고짜 이뤄진 통성명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렌이라 밝힌 그녀의 입이 열렸다.
"방금 질문에 대답. 그동안 길을 잃은 채였는데, 지금은 찾아냈어."
"예?"
"내 길. 방금 찾았어."
"아, 네…. 그러십니까?"
발굴단엔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많다더니, 정말인가보네.
그렇게 생각하며 꾸벅 목례하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작은 손이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렌! 어디 갔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목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얀의 뒤에 숨는 여인.
"방금 단장님이 찾던 사람, 그쪽 아닙니까?"
"날 찾는 게 아니야. 내가 알아낸 지식을 찾는 거지."
"그…. 렇습니까?"
'잘못 걸렸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려 봤지만 자신을 올려보는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 그대로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에게 질문할 뿐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 들어가?"
기다려? 누가? 저 콜로서스가?
"저기 들어가면 저도 죽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묻자 렌이라고 불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확신으로 저러는 거지. 다른 기사들도 저 여자한데 뭔가 들은 건가?
그렇게 의심을 지우지 않으며 얀이 답했다.
"못 들어갑니다. 콜로서스는 기사 외에는 접촉 금지인지라, 허락 없이 들어가면 총살이에요."
"총살? 죽어?"
"예. 그리고 전 보시다시피 이런 사람이라, 가까이 오셔서 좋을 게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군복 어깨에 새겨진 형벌부대의 낙인을 보이는 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질색하거나, 두려워하며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지.
그렇지만 눈앞의 소녀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반대. 여기에서 이러고 있으면, 곧 죽어."
"…네?"
뭐지, 일종의 정신병인가? 오는 길에 엘프 시체 쌓아놓은 거라도 본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붙잡힌 옷깃을 떨쳐내려 손을 뻗는 순간, 렌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저기."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눈길이 닿은 곳.
거기에 있는 것은 원래 유적의 입구였던 것처럼 보이는 장소, 그 잔해였다. 자신을 잡아끄는 그녀를 따라 그곳으로 간 얀은 의아한 듯이 그 잔해들을 살폈다.
"이건, 제단인가? 이 꽃, 거기에 이 문양은…."
숲 전체를 뒤져도 두 송이를 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꽃.
그것이 거의 꽃다발처럼 놓여있었다.
거기에 그 옆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나무패.
넝쿨에 휘감긴 검의 문양.
그것을 확인한 순간, 얀은 머리에서 피가 쭉 빠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엘프왕국의 인장…."
그렇게 혼자 뇌까린 후에 다시 한 번 유적 발굴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현장을 살피는 것도 잠시.
조용히 등에 맨 라이플에 실탄을 먹이며 얀은 체념한 듯 읊조렸다.
"씨발, 함정이네."
그렇게 말하는 순간.
피유우우우!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숲 속에서 빛줄기 하나가 솟아올랐다.
노랑, 빨강, 파랑 등 다채롭게 색을 바꿔가는 마력광.
엘프들의 신호탄이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발소리.
쿵.
지축을 뒤흔드는 그 소리에 발굴 작업이 한창이던 현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바, 방금 그 소리는…. 콜로서스?"
"오늘 이곳으로 파견될 기사단은 없다고 했는…. 데…."
오늘 부임한 소위가 벌벌 떨면서 그렇게 말했다.
불안에 찬 중얼거림이 현장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러는 사이 낌새를 눈치 챈 병사들은 일제히 매고 있던 라이플을 고쳐 잡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쿵-
"북북서 2킬로미터에 콜로서스 확인! 전원 전투준비! 발굴단 피난시켜!"
"콜로서스다! 엘프군의 콜로서스가 왔다!!!"
신임 소위의 일갈을 시작으로 발굴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대피! 모두 대피해!"
"장비를 챙겨! 이게 없으면 이 구역에서 발굴이 불가능해진다고! 어서 움직여!"
"젠장,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아낸 거야!?"
"그냥 호위임무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뭡니까?! 진짜 쳐들어온 겁니까?!"
도망가기 위해 운전병을 닦달하는 사람.
장비를 옮기겠다고 난리를 치는 발굴단장.
갑작스러운 기습에 우왕좌왕하는 신병들이 뒤섞여 현장은 통제불능이었다.
- 창조주의 성지를 습격한 인간놈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키이이익!!!"
"인간! 모두 죽여라!!!"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콜로서스와 그들을 따르는 고블린들.
총성과 함께 돌진해오는 그들을 이곳의 병력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그들을 이끄는 저 콜로서스.
저게 나온 이상 승산은 없었다.
탕! 탕!
"키이익!?"
등에 맨 라이플로 다가오는 고블린 두 마리를 맞춘 뒤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렌이 보였다
"이쪽으로!"
콜로서스와 함께 나타난 고블린들은 미친 듯이 총탄을 퍼붓고 있었다.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동굴 안으로 피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기를 들어라! 곧 기사단이 올 거다! 그때까지 버텨!"
- 놈들이 성지 안으로 도망간다! 포위해라!
"키이이익!!!"
콜로서스의 팔에 장비된 기관포가 불을 뿜으며 발굴 현장에 세워진 호송차량이 모두 터져나갔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
밖에 있는 인원들을 모두 도륙한 고블린들은 동굴 입구를 포위한 채 천천히 이곳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제국군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제국군이다! 엘프의 포로가 될 바엔 끝까지 싸우다 죽겠어!"
그렇게 일갈한 신임소위가 동굴 밖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투다다다!!!
"키익?!"
"키익! 인간 놈들! 쓸데없…!"
그렇게 말하는 고블린의 머리를 얀의 라이플 탄이 꿰뚫었다.
"키이이익!!!"
예상 외로 거센 저항에 동굴 안으로 몰려들던 고블린들의 낌새가 잠시 주춤해지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왜 콜로서스로 공격해오지 않는 거지?"
"골격이 안에 있잖아. 녀석들도 상처 없이 가져가고 싶은 거겠지."
사람들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잠시 정신을 놓은 얀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렸다.
"하사님?!"
"괜…. 찮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경계해. 내 총 들고."
그렇게 말한 얀이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지옥 같은 참호전을 치룬 것이 아침이다.
그 피로감을 그대로 지닌 채 다음 작전에 투입되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
'여기서, 이렇게 쓰러지면 안 되는데….'
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런 얀에게 방금 전 보았던 흰 머리의 여인이 다가왔다.
렌이었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 안 들어가면, 죽어."
"기다려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든 얀이 흠칫한 듯 그 자리에서 멈췄다.
"저 녀석, 아까 전이랑 머리 위치가…?"
단순히 직감이나, 착각이라고만 느꼈지만, 이젠 더 부정할 수도 없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 녀석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저 녀석을 움직일 수 있다고…?"
"응. 움직일 수 있어. 오직 너만이."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나온 대답에 얀이 몸을 일으켰다.
"놈들이 다시 밀고 들어옵니다!"
"기관총탄은 더 없나?!"
"이게 마지막입니다!!"
제압사격을 위해 계속해서 퍼붓던 탄들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대로 가면 타든, 안타든 어차피 개죽음.
도박을 할 수밖에 없겠지.
"씨발!"
콜로서스에게 달려간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녀석의 조종석에 앉는다.
제국의 조종계가 아닌, 처음 보는 형태의 조종석.
어디선가 붉은 빛이 흘러나와 얀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유전정보 인증 완료. 신규 사용자 등록시술을 개시합니다.]
난생 처음 보는 수많은 문자들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자였다.
"저기,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는…. 어?"
자신과 함께 조종석 앞까지 왔던 렌에게 그렇게 묻는 얀.
그렇지만 그가 돌아본 곳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로 간…!"
그리고 뒤이어 느껴지는 격통.
"끄으윽?!"
예고도 없이 느껴지는 고통에 온 몸이 비틀리는 듯 했다. 발버둥 치려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자신의 몸에 뭔가를 집어넣은 것이 분명했다.
"이런 건, 얘기한 적 없었잖아…!"
생살을 찢고 척추를 파고드는 소름끼치는 감각에 몇 번이고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사용자의 의식동조를 위한 절차를 시작합니다. 1차 연결 개시까지, 3…. 2….]
파직! 파지직!
"끄으으으으!!!"
하지만 이 녀석을 그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지, 조종석 곳곳에서 발산하는 자극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1차 연결 완료. 신경망 연결을 개시합니다. 접속까지, 3…. 2….]
파지지지직!
"아아아악!!!"
마취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이뤄지는 수술.
조종석 곳곳에 낭자한 피를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허억…."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어 시술 완료. 동조율 안정. 비상동력으로 전환합니다. 글레이프니르. 시스템 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