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25년, 7월 1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곳에는 인류가 평생 간직하고, 명심해야 하며, 보고 각성해야 하는 흔적이 있다.
2등급 모래시계문.
일명 최후의 문.
검은 어둠을 품은 듯한 그 모래시계문은 인류가 그들의 세상을 위협하는 미증유의 무리들과 맞서 싸워 승리했다는 증거이자, 그 승리에서 얻은 전리품이었다.
동시에 인류에게 언제든 미증유의 위협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자명종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인류라면, 인간이라면 이 문 앞에 서서 그들이 치른 역사를 바라보는 게 마땅한 일일 것이며 때문에 매년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문을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엄숙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돌입하면, 매년 수백만 명이 외국인이 방문하는 이 장소는 돈벌이를 하기에 제격인 장소였고 당연히 그들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이들 덕분에 최후의 문 주변에는 권리금만 해도 억소리가 날 법한 가게들이 위치해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프레데터란 이름을 가진 가게였다.
그야말로 조악하다 못해 괴상망측하기 그지없는 이름을 가진 이 가게에서는 가게 상호처럼 괴물 같은 칼로리와 단맛을 자랑하는 초콜릿 음료를 판매했다. 전 세계 모든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곳은 유명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명소이기도 했다. 가만히 가게에 앉아 죽치고 있으면 못해도 연예인 한두 명 정도는 볼 수 있는 장소였고, 그 덕분에 단 걸 싫어하는 인간들도 때때로 이 가게를 찾아 자리를 차지하고는 했다.
김재범이 그 가게를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람으로 가득 찬 가게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진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네, 쓸어 담아.”
짧게 혀를 찬 그에게 가게 업무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다가왔다. 매니저는 김재범을 알고 있는지 곧장 고개를 숙였다. 김재범이 매니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은?”
“병원 가셨습니다.”
“병원? 어디가 아파서?”
“그야 사모님 때문에…….”
사모님이란 말에 김재범이 실소를 흘렸다.
“아니, 아직 출산까지 반년은 남았을 텐데 무슨 병원을 하루가 멀다 하고 가?”
“그야 사모님이 남들보다 연약하지 않으십니까? 사장님도 걱정이 많으신 거지요.”
“연약?”
김재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블리자드 리자드를 상대로 눈깔이 뒤집힌 그 인간을 봤으면 그런 말은 입에 칼이 들어와도 못했을 거다. 연약은 개뿔, 작심하면 이 바닥에서 그 사람 이길 인간이 없어.’
속으로 푸념을 뱉은 김재범을 매니저가 지그시 바라봤다. 그 매니저에게 김재범이 주문을 했다.
“됐고, 커피 한 잔. 아이스로.”
“8천 9백 원입니다.”
“돈 받아? 나 여기 사장이 불러서 왔는데?”
“사장님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재범 씨에게는 꼭, 무조건 돈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미치겠군.”
김재범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아니, 그보다 여기 커피값은 뭐 이래? 내가 무슨 커피 1리터를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뭐, 관광 명소 아닙니까? 자릿값이죠.”
“돈도 많으신 양반이 아주 그냥 돈에 미쳐가지고…… 젠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커피 한 잔에 9천 원이라니. 원두값은 기껏해야 백 원도 안 될 텐데!”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직원들이 손님을 확인하고 허리를 숙였다.
이 가게 사장의 등장이었고, 그 사장을 따라 임부복을 입은 채 배가 살짝 부른 금발의 여인이 따라 들어왔다.
그 둘을 보는 순간 김재범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김재범이 그 둘에게 말했다.
“그냥 차라리 병원에서 지내시지, 왜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 말에 사내, 이강우가 대답했다.
“우리 와이프가 꼭 먹고 싶다는데 출근 도장 찍어야지.”
“그래서 애는 잘 큽니까?”
“우리 애 걱정보다는, 네 연애 사업이나 걱정해. 혜연이가 우리 와이프한테 전화했어. 가뜩이나 태교가 중요한 상황인데, 둘 연애 트러블 때문에 우리 와이프가 안 좋은 소리 들어야겠냐?”
“맞아요.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채유리가 한마디 거들었다.
김재범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전 잘못한 것 없습니다.”
“없어도 고개를 숙이는 게 연인이다. 연애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치 여보?”
이강우의 질문에 채유리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 둘의 모습에 김재범은 대답 대신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네 부부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날이 오다니, 죽을 때가 온 모양이야, 젠장!’
그때 새로운 사람이 가게 문을 열고 등장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어? 저 사람?”
“하선우! 하선우다!”
“꺄! 여기에 하선우가 단골이라는데 진짜였구나!”
하선우!
여전히 범접하기 힘든 연예인 포스를 풍기는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들어 그를 찍었다. 하선우는 그런 주변의 관심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연예인답게, 그런 모든 관심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 하선우가 이강우와 채유리를 바라보며 가볍게 목을 숙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대답은 김재범이 했다.
“아니, 넌 여기 왜 와?”
김재범의 투정에 대한 대답은 이강우가 했다.
“그쪽하고는 다르게 매출에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해주시는 분에게 무슨 소리야?”
김재범이 울상을 지었다.
‘아니, 내가 여기서 먹어 준 커피가 몇 잔인데…… 진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그 개고생을…… 진짜 형님만 아니면 내가 한 번 판을 뒤집어…… 봤자, 뭐 대장은커녕 형수님도 못 이기는 게 내 팔자이긴 하지. 혼자서 2등급 모래시계문을 클로즈한 양반한테 개기면 안 되겠지. 아무렴.’
그때 곧바로 안중현이 등장했다. 등장한 안중현의 뒤에는 권재용 박사가 있었다.
‘어?’
김재범이 그들을 보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우연히 이들이 이곳에서 이렇게, 이 시간대에 모였을 리 없다. 무엇보다 권재용 박사가 있다는 게 이상했다.
김재범이 권재용 박사를 바라봤고, 권재용 박사를 김재범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김재범의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설마.’
한편 권재용 박사와 안중현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포식자 멤버들이 전부 모이는 순간 이강우는 표정을 바꾸었다.
“멤버가 다 모였으니, 내려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들을 데리고, 가게 지하로 내려갔다.
가게 지하에 위치한 창고, 그 창고에 숨겨진 비밀의 문과 비밀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무수히 많은 마법 아티팩트로 채워진 아티팩트 룸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강우는 모두를 앞에 두고 말했다.
“드디어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문 너머로 향할 수 있는 마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강우가 2등급 모래시계문을 클로즈한 이후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문은 등장하지 않았다.
바츠무, 그들이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지구를 떠났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강우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강우만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그들이 이 세계로, 지구를 향해 다시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려고 할 줄 몰랐다.
때문에 반격을 준비했다.
그들이 문을 이용했던 것처럼, 인류도 문을 이용해 그들에게 반격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반격을 위한 밑거름이 완성됐다.
“이제부터 우리는 놈들의 야욕을 막을 겁니다. 놈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놈들로부터 종말을 맞이하는 문명을 구할 겁니다.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아닌 모든 것의 미래를 위해서.”
이강우, 그는 다른 문명이 남긴 유산 덕분에 살아남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세계를 구했다.
그때 결심을 했다.
지구만이 아니라, 인류만이 아니라, 바츠무로부터 위협받은 다른 세계마저 구하겠다고.
그 결심을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고, 드디어 결심을 실천에 옮길 날이 왔다.
이미 그런 이강우의 계획을 알고 있던 이들이었기에 모두는 놀라기보다는 이강우의 결심에 동조한 듯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진지함 속에서.
“덤으로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최근 우리 와이프의 입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와이프를 위한 보양식도 구해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몬스터를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몬스터를 못 먹어서 그런지 요즘 몬스터를 먹는 꿈을 꿀 정도입니다. 적어도 몬스터가 우리 애 태몽이 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강우가 한마디를 더 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정말 진한 본심이었다. 너무 진지해서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반면 채유리만이 기쁜 듯 방긋,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강우의 말이 진심이란 걸 알았을 때 나머지 멤버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오직 한 명 김재범만이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둘 사이에 태어난 애기 돌잡이 날, 장담하는데 연필이나 돈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치킨 닭다리를 잡을 거다. 아니면 족발 다리를 잡거나.’
그렇게 유적 포식자가 다시 한번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유적 포식자』완결>